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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이데일리가 방문한 SKT 대리점에는 영업시간 전부터 유심칩을 교체하려는 이용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날 오전 8시 37분께 서울 종로구의 한 대리점 앞에 있던 대기인원은 37분 만에 13명에서 50명으로 4배 가까이 불어났다. 하지만 이날 매장에 비치된 유심칩은 단 20개뿐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용자들은 “장난하느냐”, “힘들어 죽겠다”며 항의했고, 일부 이용객들은 “새치기하지 말라”며 고성으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정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중구의 대리점을 방문한 여성 이용객 3명은 유심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방문한 이용자들도 재고가 없다는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매장 직원은 “어제는 유심이 300개 정도 들어왔는데 오늘은 한 개도 안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광진구에 사는 70대 박모씨는 “해킹이 되면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고 그 순간에 돈을 다 빼 간다는데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제도 오전에 와서 2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내 앞에서 순서가 잘려서 잠도 못 자고 6시에 왔다”고 했다.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배경엔 최근 더 확산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있다. 특히 최근 피싱 조직은 정교한 ‘시나리오’를 짜고 일반인들에게 접근하는데, 유심 정보까지 이들에게 흘러들어가 조합될 경우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5878건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했다. 전체 피해금액과 건당 피해액은 무려 각각 120%와 188% 늘어난 3116억원과 5301만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악성애플리케이션과 탈취한 개인정보를 이용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고액 피해를 유발하는 기관사칭형 범죄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철저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으로 2차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전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는 “복제된 유심칩은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저장된 정보로 주변 사람에게 문자나 전화로 돈을 요구할 때는 금융기관처럼 별도의 본인인증 절차가 없어서 2차 오남용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업자나 정부도 해킹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사태를 비난하는 일보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 대학원 교수도 “사고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재발 방지와 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 체계 개선이 더 중요하다”며 “사고발생 시 개인은 △2단계 인증 적용 △비밀번호 정기 변경 △의심 링크 차단 등 기본 보안을 생활화해야 하고, 기업은 보안 예산을 확충해서 보안 인력과 시설, 장비를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