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 만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하는 등 수사를 재개하려 했으나 임 전 사단장이 참관 과정에 대한 녹음을 요구하면서 절차가 중단됐다.
 |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의 수사 포렌식 참관을 위해 23일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들어서며 입장문을 읽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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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관련 외압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이날 오전 임 전 사단장의 휴대전화 포렌식 절차를 진행하려 했으나 중단했다. 임 전 사단장이 조사 과정을 녹음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공수처는 절차를 중단하고, 임 전 사단장의 요청을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렌식 참관이란 휴대전화 등 전자매체에 담긴 디지털 증거 중 범죄사실과 관련된 부분을 선별할 때 피압수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절차다.
임 전 사단장은 이날 오전 9시 27분께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 위치한 공수처 포렌식 절차 참관 전 기자들과 만나 “제가 볼 땐 공수처가 구명로비가 없었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1월 임 전 사단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으나, 잠금을 풀지 못해 관련 증거 확보에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임 전 사단장은 지난해 7월 국회에 출석해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공수처는 자체적으로 일부 자료 복원에 성공했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묻는 말에 임 전 사단장은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그때도 기억을 못했고,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경찰에서 포렌식 작업을 위해 암호를 풀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휴대전화 암호가)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명로비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소명되길 간절히 바란다”면서 “박균택 의원과 김규현 변호사는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를 향해서는 신속한 수사를 통해 의혹이 소명되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말도 부연했다. 임 전 사단장은 “수사 객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상당히 (수사가) 지연돼 답답하다”며 “국민들에게 속시원하게 의혹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수처도 구명로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벽성을 높이기 위해 수사를 더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도 말했다.
공수처가 이른바 ‘채해병 수사 외압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 만이다. 비상계엄 이후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 꾸린 뒤 전 인력을 투입해 채해병 사건 수사를 일시 중단한 바 있다. 특히 임 전 사단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수사외압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공수처는 2023년 7월 채해병 순직 이후 해병대수사단이 책임자를 규명해 경찰에 넘기는 과정에서 대통령실 또는 국방부 관계자들의 외압이 있는지에 대한 수사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이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임 전 사단장의 휴대전화 포렌식은 혐의 입증을 위한 핵심 절차로 꼽혔다. 하지만 포렌식 절차가 잠시 중단되면서 관련 의혹 규명은 다시금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