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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었지만 우 의장의 상정 보류 결정으로 이날 입법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안 통과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경제계는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오늘 상정될 예정이었던 상법 개정안을 국회의장께서 상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자당 출신인 우 의장의 제동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진 의장은 “국민의힘의 몽니에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본회의 상정을 재차 요청했다. 윤종근 원내대변인도 “의장님도 고심이 많으시겠지만 언제까지 주요 민생 법안들이 정치 논리로 처리가 지연돼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민주당은 우 의장으로부터 상정 보류 이유에 대해선 별도로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우 의장은 28일 예정된 국정협의회에서 추가 논의를 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7일 오후 예정된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야 지도부가 참여하는 국정협의회를 주도하고 있는 우 의장으로선 국정협의회에서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선, 야당과 당정 간 이견이 큰 상법 개정안에서 추가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28일 예정된 국정협의회가 최 대행을 비롯해 여야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만큼, 논의를 통해 통 큰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한 야당 의원은 “여야 간 입장차가 큰 상법 개정안을 야당만으로 처리할 경우 겨우 출발한 국정협의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 본회의 때까지 국정협의회 등을 통해 여야 간 다양한 법안에서의 이견을 줄여보려는 시도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정협의회에선 연금개혁과 반도체특별법 등 여야 간 이견이 큰 법안들이 대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실무협의에서 제대로 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국정협의회에서 연금개혁과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사실상 모든 이슈가 다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특별법의 경우 ‘주52시간 근로시간 특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여당과 ‘근로시간 특례문제는 사회적 대화에 맡기고 국가의 재정지원 등 나머지 부분만 우선 처리하자’는 야당의 입장이 맞서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주52시간 특례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 패스트트랙 지정을 예고하며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의 경우 180일의 심사 기간이 필요해, 야당이 법안을 밀어붙이더라도 입법까지는 최소 6개월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위기가 커지는 상황에서 여야 간 이견으로 입법이 지연될 수 있는 만큼, 우 의장은 국정협의회 등을 통해 중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등 야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전자 주주총회 개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을 처리한 후, 추가적인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상법 개정은 자본시장 밸류업을 민주당 차원의 핵심 정책이다. 물적분할 등에 따른 소수주주의 피해를 막고 이들의 주주 권리를 강화 위해선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이사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표는 26일 “상법 개정안 통과는 대한민국 주식 시장이 선진 자본시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며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과 경제계는 강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업 자율성 침해하고 미래지향적 사업계획 수립 못하게 하는 기업 발목 비틀기로서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근간을 어지럽히는 악질법안”이라고 맹비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겉으로는 주주 보호를 내세우지만, 통과되는 순간 기업들은 무한 소송, 경영마비라는 맹독에 노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계는 상법 개정 재고를 간곡히 호소하며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체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가 주주로 확대되면 이사들은 배임죄 소송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R&D 등을 주저하게 돼 미래 먹기로 확보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도 ”적용 법인만 100만개가 넘게 된다”며 “실력 있는 알짜 중소기업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