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환경단체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상대로 고리원전 2호기 계속운전(수명연장) 심의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에 나선다. 원안위가 23일 고리 2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할 경우 환경단체는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과 함께 무효 소송에도 나설 방침이다. 노후 원전인 고리 2호기의 안전성 논란이 법적 문제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환경운동연합과 탈핵부산시민연대는 17일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심의 절차를 정지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오는 20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 주체는 ‘고리원전 2호기 방사선비상구역계획 내 거주 주민들’로 부산 기장군 고리 2호기 반경 30km 내에 거주하는 부산 시민들이다. 이들 단체는 20일 소장을 제출하기 전에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정문 앞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 | 지난 1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길천마을에서 바다 건너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 원전이 보이고 있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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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단체는 “지난 9월 25일 원안위 회의에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안’과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계속운전 허가안’이 심의·의결 안건으로 각각 상정됐으나 원안위 위원들의 절차적·기술적 문제제기로 논의가 마무리되지 못했다”며 “안전과 절차를 모두 무시하는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시도)에 대해 사법적인 심판을 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절차적 하자와 원안위의 형식적 심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사고관리계획서와 계속운전 심의가 같은 날 동시 상정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 유에스더 활동가는 통화에서 “만약 원안위가 23일 고리 2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할 경우 결정에 대한 무효 판단을 구하는 본안 소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 길천마을 한 주민이 지난 1일 소규모모듈원전(SMR) 유치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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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원안위는 지난달 25일 오후 제222회 회의에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안건과 고리 2호기 사고관리계획서를 각각 상정하고 검토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충분한 논의를 위해 오는 23일 회의에 안건을 재상정하기로 했다. 고리 2호기 관련해서는 수명연장 심의의 절차적 정당성 논쟁 이외에도 안전성, 경제성, 주민수용성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진 상황이다.
최경숙 탈핵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은 “부산·울산·경남 380만명 주민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해선 안 된다”며 영구정지를 촉구했다. 반면 이기복 원자력학회장은 “철저하게 과학·기술적이고 사실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조속한 가동 필요성을 강조했다.(참조 이데일리 9월27일자 <“380만 목숨 걸고 원전 도박” Vs “과학 아닌 이념 앞선 탈핵”>).
부산에서도 고리 2호기의 안전성을 놓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고리 2호기 주변지역인 길천마을의 김형칠 이장(53)은 “50년간 원전을 마주 보며 살았던 우리가 안전하다고 하는데, 왜 괜한 트집을 잡고 있나”며 수명연장을 촉구했다. 반면 기장군에서 20년간 태권도 학원을 운영 중인 김용호 씨(49)는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지역인데 40년 넘은 노후 원전을 수명연장까지 해 가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했다.(참조 이데일리 10월16일자 <갈라진 부산…“빨리 원전 더 짓자” Vs “핵 쓰레기 안 돼”>)
 | | 1일 기장역 앞에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기장이 무사하겠습니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원전 밀집 지역에 방산업체 풍산금속까지 이전하는 것에 대한 기장 주민들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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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안위 국정감사에서 한수원이 고리 2호기의 ‘주기적 안전성평가’(PSR) 보고서를 법정 기한을 넘겨 제출한 것에 대해 “절차적 하자가 있는 상태에서 계속 운전 허가가 이뤄질 경우 법 위반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고리2호기는 40년이 넘은 노후 원전인데, 사고 대응 전략 문서를 병행 검토하는 것은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필요하다면 민간검증단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법적 절차를 위반하거나 형식적 요식화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 |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여부는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 향배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전국 곳곳의 9개 노후 원전(전남 영광 한빛 1·2호기, 부산 고리 3·4호기, 경북 울진 한울 1·2호기, 경북 경주 월성 2·3·4호기)의 수명연장 여부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자료=원자력안전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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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 최원호 원안위원장은 “(법정 기한을 넘겨 제출한 것은) 법 위반이 맞다”며 “벌금을 부과하고 수사를 의뢰했다”고 답변했다. 최 위원장은 “현재 환경 변화가 충실히 반영되도록 검토 중”이라며 “심사 보고서에 충분한 안전 여유도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