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내부에서는 이해상충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국민연금이 논의 자체를 회피하거나 의결권을 포기(기권)하는 경우 책임투자 원칙을 훼손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고려아연 사외이사 후보에 국민연금 수책위 출신...이해상충 논란↑
17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고려아연은 오는 28일 정기 주총 이사 후보로 최대 8명의 인사를 추천했다. 이사 수 상한 유지를 전제한 추천 인사는 5인, 이사회 비대화를 막기 위한 의안이 먼저 부결될 경우를 전제로는 8인이다.
문제는 고려아연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군에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 전문위원을 맡았던 인사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고려아연 측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린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 교수는 불과 지난달까지 3년간 수책위원을 맡았던 인사다. 고려아연 측에서는 권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영입할 경우 국민연금 표심을 우호적인 방향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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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의 선택은 되려 자충수가 된 모양새다. 고려아연 후보자 명단을 검토한 국민연금 내부는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다. 권 교수가 수책위원 임기 만료 전까지 고려아연 주주총회 안건에 표결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이해상충 논란이 일 수 있어서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관계자는 “이번 주총에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 문제를 두고 아직 결정난 사안은 없다”며 “경영권 분쟁을 조기에 종식 시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도 주주로서 국민연금의 책임”이라고 전했다.
고려아연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는 선례가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주총에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차라리 분명한 기준 하에 찬성이든 반대든 하는 것이 맞다”며 “논란 소지가 있을 때마다 아예 논의를 포기하거나 기권하는 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논란을 국민연금 의결권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모두 경영권 분쟁 승리를 위한 전략을 짜줄 참모진들을 즐비하게 두고 있을텐데, 고려아연이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