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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만의 권한대행 시정연설… 출마 질문엔 “고생 많으셨다”
이날 한 대행은 정부가 제출한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 그는 추경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국회의 신속한 심의와 처리를 요청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것은 1979년 최규하 당시 권한대행 이후 46년 만이다.
정치적 메시지는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시정연설 도중 박수나 반응 없이 침묵으로 대응하며 이례적인 ‘무응답 시위’를 벌였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총리는 대선 출마라는 망상을 버리고, 오늘 국민 앞에 불출마를 선언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조용했던 본회의장은 연설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 대행을 겨냥해 발언하면서 소란스러워졌다. 우 의장은 한 대행의 연설 직후 “권한대행은 파면당한 대통령의 총리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생이 어려운 지금, 권한대행은 국정 안정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의 이 발언에 항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고성을 주고받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박형수 수석부대표는 의장석 앞으로 나와 거세게 항의했다. 의장석 앞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반단일화’에서 ‘수용’으로… 홍·한 입장 선회
한 대행이 12조 추경을 들고 국회를 찾은 이날, 공교롭게도 그간 한 대행과의 단일화를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홍준표·한동훈 후보가 동시에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김문수 후보는 2차 경선에 오른 4명의 후보 중 가장 먼저 단일화 수용의사를 밝힌 바 있다.
홍준표 후보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덕수 대행이 출마하고 반(反)이재명 단일화에 나선다면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도 빅텐트를 위한 협상을 내가 후보가 되는 즉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 총리는 윤석열 정부 탄핵의 1차 책임자이며, 추대론 자체가 몰상식”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한 대행과의 단일화에 부정적이었던 한동훈 후보 역시 태도를 바꿨다.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본선 승리를 위해 모든 사람과 함께하겠다”며 “한덕수 총리와 저는 한국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생각에서 같다”고 밝혔다. 한 후보가 앞서 한 대행과의 단일화에 대해 ‘패배주의를 보여주는 것’, ‘단일화는 해당행위’라고 비판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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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지지층 흡수 전략” vs “대세론에 끌려가는 형국”
정치권의 해석은 엇갈린다. 홍·한 후보가 보수층의 ‘단일화 요구’에 능동적으로 반응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있는 반면 ‘한덕수 대세론’에 끌려가듯 태세 전환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 권한대행 지지층이 김문수 후보로 모두 쏠리는 것을 막고, 자기 캠프로 흡수하려는 전략”이라며 “홍 후보는 한 대행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단일화 경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의힘 당원 대다수는 한덕수를 통해 대선 구도를 전환하고 싶어 한다”며 “당심을 거스른 채 경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