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으로 금융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 결정에 금융사가 반드시 따르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될지 주목된다.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차원이지만 금융사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반발하고 있다.
 |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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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소액 분쟁 조정에 한해 금융회사가 분조위의 조정 결정을 의무적으로 따르게 하는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공약했다. 소비자는 조정 결정을 거부할 수 있어도 금융사는 무조건 따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분조위 조정 결정은 ‘권고’여서 금융사가 수락해야 효력이 생긴다.
이 대통령이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꺼내 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추진했으나 도입되지 못했다. 금융업계는 “헌법상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금감원이 배상 수준을 결정하고 강제하는 사법부 역할까지 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분쟁 조정이 이뤄지면 조정안은 확정 판결인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소액 분쟁 사건에 관한 조정이탈금지제도(금소법 제42조)와 결합하면 결과적으로 소액 사건에 대해 금융회사의 재판 청구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소액이면 무조건 수용하라’는 식이면 악용 여지가 크다는 얘기도 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에선 제도 악용을 우려해 분쟁 소지를 줄이고자 더욱 보수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며 “소액 분쟁 기준으로 거론되는 2000만원도 적절한지 의문이다. 과거 주가연계증권(ELS)나 라임펀드 분쟁 사태에서 손실액이 2000만원 이하인 고객이 상당수였기 때문에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고 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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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중은행 임원은 “특히 보험사 등 소액 금전 분쟁이 많은 금융사의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며 “조정 대응 비용 등 금융기관의 부담 증가로 결국 고객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반면 학계는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보다는 덜 하지만 우리나라도 분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며 “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처럼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개별 고객의 소액 분쟁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양측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일방적 결정보다는 합의의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금융당국도 취지에 공감하면서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세부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이 권고해도 금융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다른 수단이 없다”며 “다만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운영할지, 소액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할지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방안은 이 대통령이 당선 전 공개적으로 밝힌 금융위 조직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이 대통령은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기능과 독립성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집에 담았다. 실제로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이 떨어져 나가면 이 조직을 중심으로 제도 도입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