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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 정상과 EU 집행위원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에서 3시간 반가량 비공식 회동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서양 동맹 관계를 ‘패싱’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기로 하자 다급히 대응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 의사와 현재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진행되는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게 동의했다. 우크라이나를 앞세우긴 했으나 사실상 유럽 땅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해 유럽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유럽 지도자들이 자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처음 평화유지군 아이디어를 제안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7월 조기 총선에서 참패해 사실상 레임덕에 빠졌고, 오는 23일 총선을 치르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퇴진이 유력하다. 유럽 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여전히 강하지만, 주요국이 정치적 혼란을 겪는 상황에서 파병 논의는 각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평화유지군 파병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관련 예산 확보도 각국에서 내부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대한 전면적인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는 점 역시 유럽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이는 EU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로렌스 프리드먼 킹스 칼리지 런던의 전쟁학 명예 교수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이클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있으며, 미국이 유럽의 안보를 완전히 포기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과거에는 미국이 신뢰할 만한, 유능한 국가라고 믿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마치 안전장치가 사라진 것 같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 유럽이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