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미국 정부의 견제 속에서도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저비용·고효율 AI를 개발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가운데, 한국의 독자적인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한 네이버(NAVER(035420))의 이해진 창업자가 내달 이사회 의장(등기이사)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그는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며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전쟁에서 한국의 AI 굴기를 이끌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7년 3월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서 글로벌 진출에 집중한 지 7년 만이다.
 | 네이버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사진=네이버 |
|
밤낮 없이 나라 걱정하는 사람지인들은 이해진 GIO를 ‘밤낮없이 나라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야후 포털이 국내 1위를 차지하던 1999년, 그는 대한민국의 정보 검색력을 지키기 위해 우리만의 검색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네이버를 창업했다. 네이버가 국내 최고의 소프트웨어(SW) 회사로 자리 잡은 데에는 그의 고집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언어가 잘 검색되지 않으면 약해지고, 한글을 지키려면 좋은 검색엔진이 필요하다. 글로벌 검색엔진도 중요하지만, 자국민이 만든 검색엔진이 문화적, 정치적 가치를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네이버 플랫폼부문장 출신인 위의석 세나클소프트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CEO는 이해진”이라고 했다.
그가 GIO로서 글로벌 사업과 투자를 책임지기로 한 이유는, 우리 기술과 서비스로 세계 무대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그 결과, 네이버는 웹툰 엔터테인먼트를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00억 원 규모의 디지털트윈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팀네이버는 2월 9일부터 12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리는 글로벌 IT 전시회 ‘LEAP 2025’에도 참가해 네이버의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인프라-AI모델을 선보인다.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 직접 네이버 경영을 챙기겠다고 나선 이유는 바로 격변하는 글로벌 AI 생태계 속에서 국가AI 전략에서 네이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2016년 ‘공룡 네이버 논란’이 컸을 때, 이해진 GIO 주도로 플랫폼 기업으로서 소상공인·창작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프로젝트 꽃’을 띄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밑거름을 만든 것처럼, 이제 네이버의 AI 기술로 대한민국의 AI 생태계를 이끌겠다는 각오다. 네이버는 ‘공룡 네이버’ 논란 속에서 ‘프로젝트 꽃’을 시작하고 이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발전시켜 농촌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네이버 아이디만 있으면 누구든 자신이 갖고 있는 상품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
◇딥시크 파장, 글로벌 AI 속도전 시작되자 경영 복귀
사실, 이해진 GIO의 경영 일선 복귀는 예정된 일이었다. 그는 지난해 5월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각국의 정상과 국제기구, 주요 AI기업 대표들과 함께 참여한 세션 행사에서 AI가 안전하게 발전하려면 각 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다양한 AI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AI는 검색처럼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닌, 바로 답을 제시하는 방식이라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언급하며, AI의 안전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극소수 AI가 과거와 현재를 지배하면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다양한 시각을 반영한 AI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버린 AI(Sovereign AI)’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소버린 AI는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 인프라, AI 모델 등을 직접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하며, 국가의 AI 주권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됐다.
네이버는 이번 주 중 이해진 창업자의 사내이사 복귀 안건을 공시할 예정이다. 이후 내달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 창업자는 사내이사로 선임된 뒤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 한 임원은 “딥시크 사태 이후 저비용·고효율 AI 개발 가능성이 입증됐고, 인간의 능력과 유사한 일반인공지능(AGI) 출현이 2~3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의 AI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해진 GIO가 AI 사업을 챙기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국가 단위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오픈AI와 오라클이 참여한 것처럼, 네이버 역시 대한민국 AI 산업의 핵심 역할을 할 ‘국가AI컴퓨팅센터’를 운영할 특수목적회사(SPC)에 투자하며 민관 협력 모델을 구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적인 AI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에서 이해진 GIO의 등판은 예정된 일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