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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유기한 부분에 대해선 범행을 자백해 유죄로 인정된다”면서도 “유기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점에 대해선 행위와 결과에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언제 경막하 출혈(뇌출혈)이 발생한 것인지 전혀 특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즉시 보호 조치를 했더라도 피해자가 의식 불명에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상해 책임을 묻긴 어렵지만 핏자국을 보고도 피해자를 그대로 방치한 채 외출해 유기 정도가 중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피해자 측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사건 이전에 가정폭력으로 수사받을 당시 경찰로부터 ‘피해자 몸에 손대지 마라’라는 조언을 들은 상태였던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2023년 5월 9일 오후 6시 12분께 인천시 강화군 자택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50대 아내 B씨를 방치해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의붓딸 신고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도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적이 있다”며 “아내하고 그런 일로 더 엮이기 싫어서 그냥 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쓰러진 채 발견된 날에도 A씨의 가정폭력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는 알림 문자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B씨를 다치게 한 뒤 방치했다고 보고 유기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B씨의 머리 부상 관련 의학적 검증이 필요하다며 반려했다.
이후 경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유기치상에서 유기로 혐의를 변경해 A씨의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 수사 결과 B씨가 쓰러진 당일 A씨의 폭행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법의학 감정에서도 부상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B씨 자녀들 측은 “처벌불원서만 받으면 사건이 종결되는 가정폭력 법 제도의 허점 때문에 이 같은 결말에 이르렀다”며 “A씨는 아내의 중태를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방치해 뇌사에 이르게 했기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미수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 측은 “유기 사실은 인정하지만 치상 혐의는 부인한다”며 “피해자 자녀들의 주장은 이 사건 당시 폭행이 있었다는 취지인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A씨 측은 “피고인이 집 밖으로 나간 것은 오전 8시였고 그 이후 오후 6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느 시점에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거나 뇌출혈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