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소액주주가 아닌 사모펀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번 달 임시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주요 화두로 떠오를 게 유력한 가운데 상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상법 개정안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 제382조의3 개정 즉,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 외에 △집중투표제 실시 의무화 △감사위원 전원 분리 선출 △독립이사제 도입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이 담겨 있다. 이는 대주주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켜 소수주주 권한을 강화시키는 효과보단,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권 공격 세력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토로다.
“상법 개정시 혁신 동력 사라질 것”
대한상공회의소와 이데일리는 1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이정훈 본지 편집국장의 진행으로 강원 교수, 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 신현한 교수와 함께 상법 개정안 공동 좌담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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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상법 개정을 통해 민간 기업이 증자해서 일면식 없는 소액주주가 생기면 대주주가 주인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고, 소액주주 말을 안 듣는 이사는 감옥에 가도록 하면 누가 증자를 하려 하고 누가 상장을 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대기업 등 경제 윗부분은 국가가 담당하고 소상공인 등 경제 아랫부분은 민간이 담당하는 중국식 경제 원칙과 다른 게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전문 경영 기업과 소유 경영 기업의 두 지배구조 체제 중 하나를 제도로 강요하는 선진국은 하나도 없고, 시장이 선택하게 한다”며 “한국만 전문 경영 기업인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상황은 너무 모험적이고 선동적”이라고 했다.
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상법 개정안은 기존 법체계를 훼손한다’ 발표에서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의 대상은 개별주주가 아니라 회사”라며 “모든 주주의 이익이 같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가 충실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불분명하다”고 했다.
“소액주주 아닌 사모펀드 실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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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수는 또 집중투표제 의무화의 폐해를 역설했다. 집중투표제는 한 주를 가진 주주가 이사를 선임할 때 후보 한 명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예컨대 이사를 세 명 선출해야 한다면 한 주당 세 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이를 특정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경우에 따라 대주주가 이사회 의석 과반을 확보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소수주주들이 사실상 대주주의 의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회사 운영을 좌우할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주주의 이익이라는 개념을 회사의 이익으로부터 떼어내어 별도로 인정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회사법의 인식의 틀과 정면 충돌한다”며 “(상법 개정은) 한국 사법체계에서 매우 중대한 작업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모펀드와 오너기업의 차이’ 발표를 통해 “상법 개정안은 소액주주의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한다”며 “그러나 이런 제도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소액주주가 아닌 사모펀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너기업 중심인 한국 산업계의 현실에서 상법 개정안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신 교수는 “사모펀드는 일정 기간 운영한 후 기업을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경영보다는 단기적인 재무 성과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 대응에 있어 빠른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반면 오너기업은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세대 간 경영 승계를 통해 경영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사모펀드가 장기적인 투자 관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유도가 필요하다”며 “단기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기업의 장기 가치 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