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맞은편에 초고층 건물을 세울 수 있게 한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1995년, 서울시는 유네스코에 ‘종묘 인근에 고층 건물을 짓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20여 년간 지켜온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단순히 시장의 판단 하나로 깨뜨리고 재개발을 몰아붙이는 지금의 서울시 ‘행정’은 행정의 일관성을 무너뜨리는 것, 나아가 행정이 스스로의 원칙을 ‘배신’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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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구청장은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종묘 앞 재개발’, 정 밀어붙이시려거든 세계유산영향평가라도 받읍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종묘 일대는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다. 서울이 세계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공공자산’”이라며 이같이 적었다.
이어 “2020년 영국 연구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자리한 도시는 연간 최소 약 3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둔다고 한다”며 “지역사회와 문화, 교육 등 공동체에 기여하는 비금전적 가치를 제외해도 재정적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종묘의 역사와 경관이 만들어내는 경제·문화적 가치는 이미 도시 전체의 브랜드이자 장기적 공익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행정에는 재량이 있을 수 있다. 필요할 때 행정은 도시의 활력을 위해 일정 정도의 사익을 허용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 재량의 한계도 분명하다. ‘그 사익의 극대화가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는 않는가, 침해가 된다면 그 정도가 중대한가’, 이 질문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바로 행정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 완화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를 감수할 만큼 이익이 큰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연간 최소 약 3000억 원의 이익보다, 규제 완화가 가져올 이익이 더 클 것인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 구청장은 “실제로 독일 쾰른에서는 2004년 대성당 건너편에 고층 건물 건축이 추진되자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위기에 처했고, 결국 엄격한 고도 제한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가 단순한 ‘명예 상실’에 그치지 않고, 관광, 세수, 도시 브랜드 신뢰 모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음을 우려한 결과였을 것”이라고 했다.
 | | 정원오 성동구청장. (사진=성동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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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정 구청장은 “도시 전체의 이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은 일을, 서울시 스스로 자초하려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스갯소리로,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갖고 온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후속편에서 종묘가 대대적으로 등장하기라도 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오세훈 시장께서 지금의 종묘 일대 세운4구역 재개발을 강행한다면, 개발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공성과 일관성을 잃은 서울시 행정의 실패로 기억될 것”이라며 “한 사람의 고집으로, 서울시가 지금까지 얻은 신뢰와 대한민국의 품격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은 도시의 장기적 이익을 따져보고, 행정의 일관성과 국제사회에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끝내 어겨야만 한다면, 그에 따른 절차를 투명하게 지키는 것”이라며 “오세훈 시장께선 지금이라도 유네스코가 권고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절차를 정식으로 밟고, 전문가와 시민 등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