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지금 더욱 절실하다. 미국 투자를 늘리면 미국 내 기업에 공급할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건 나쁘지 않다.”(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대만 TSMC가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TSMC가 150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투자 금액을 쏟아부으며 트럼프 2기와 ‘밀월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정부와 함께 다양한 협상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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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兆 천문학적 투자…“지정학적 목적”
4일 업계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전날(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5조9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나온 첫 대규모 투자 계획이다. TSMC는 이번 투자 계획을 바탕으로 애리조나주에 5개의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경희권 연구위원은 “TSMC로서는 내부적으로 갖고 있었던 장기 계획을 관세 위협 등이 닥친 상황에서 살기 위해 꺼낸 카드”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도 세액공제가 일몰되기 전에 280조원에 달하는 투자 의향서를 제출해 놓은 게 있어서 장기 투자계획을 이미 갖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를 늘리는 방향성을 TSMC 발표로 더 확실하게 가져가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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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가 미국 정부와 손을 잡으며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는 고민이 깊어졌다. 이번 투자로 인해 미국 내에서 만들어지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부분은 TSMC가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고부가 제품의 수요를 창출하는 고객사들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미국에는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 ‘큰 손’ 고객사들이 밀집해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미국으로 모여드는 상황에서 미국 투자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희권 연구위원은 “이미 TSMC가 주름잡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물량은 (삼성이) 가져오기 어렵고 앞으로 (고객사들의 수요가 커지면서) 뜰 것 같은 제품을 가져와야 한다”며 “AI 프로세서는 연평균 성장률이 60% 이상 나올 예정이고, 엣지 사물인터넷(IoT), 차량용도 기대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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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생산 공장 증설보다는 기존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 등 다양한 협상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규복 석좌연구위원은 “현재 있는 공장에 새로운 기술을 넣어서 생산을 한다거나, 총생산량을 늘리는 등 제스처를 취하면서 한국 정부가 좀 더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며 “(정부가) 같이 협상을 해주되 조선 및 여러 분야의 협상 카드와 함께 반도체를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환 교수는 “미국이 원하는 건 최신 공정인데 최첨단 공정은 한국 내에 있는 게 좋다”며 “미국도 최신 공정을 원하고 있긴 한데 현지에 조성할 경우 기술 유출 문제가 있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규복 석좌연구위원 또한 “HBM 등 최첨단 공정은 당연히 한국에 있어야 한국이 ‘패싱’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