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진 최연두 기자] SK그룹이 사업 재조정(리밸런싱) 작업에 고삐를 늦추지 않는 배경에는 끝없이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지난해부터 사업 매각·통합으로 비대해진 몸집을 줄이고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석유화학·정유·배터리·건설 등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실적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앞으로 계열사 매각과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미래 먹거리 투자 자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거침없는 구조조정 불구…정유·석화·배터리 빨간불 SK그룹은 지난해 1월 20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시키며 전사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인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되며 강한 체질개선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 SK서린사옥 (사진=S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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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SK그룹은 빠르게 계열사 리밸런싱 작업을 추진했다. 미래 핵심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계열사와 지분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SK스퀘어는 크래프톤 지분을 2660억원에 매각했으며,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 지분을 8200억원에 처분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통해 아태 민간 최대 ‘종합 에너지 기업’을 출범시켰다. 동시에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배터리 소재 업체 SK온을 SK엔텀·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합병하며 재무 체력을 키웠다.
그러나 이같은 과감한 결단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은 합병 1분기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으로 유가가 급락하며 정유 사업 이익이 363억원에 불과했으며, 화학 사업은 중국발 공급과잉 탓에 1143억원의 적자를 냈다. 배터리 사업 손실은 무려 2993억원으로 집계됐다. E&S 사업의 영업이익 1931억원이 새로 포함됐지만 전사의 영업손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SK텔레콤이 해킹 사태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것도 변수다. 시장 과점 구조 덕에 SKT는 그동안 1조6000억~1조8000억원 수준의 이익을 내왔지만, 2분기부터 해킹 사태 여파가 반영되며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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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확보 지속 추진…추가 계열사 매각 및 IPO
SK그룹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계열사 매각 및 IPO를 통한 자금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번에 SK㈜가 SK에코플랜트에 SK머티리얼즈 CIC 산하의 자회사 4곳과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를 넘긴 것에 대해서도 SK에코플랜트의 IPO를 위한 사전작업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2022년 프리IPO 투자 유치 과정에서 2026년까지 상장하지 않을 경우 원리금에 더해 추가 배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에코플랜트는 불어난 부채와 자회사의 부진한 실적 탓에 2023년과 2024년 각각 456억원과 95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의 상장을 추진 중이다. SK엔무브는 수익성이 뛰어난 알짜 자회사로 IPO 시장 대어로 꼽히는 기업 중 하나다. SK이노베이션은 SK엔무브 지분 70%를 보유하고 있어, SK엔무브 상장 시 구주매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SK㈜는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 경영권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
SK그룹은 또 IT서비스 계열사 SK㈜ C&C의 사업재편 계획도 밝혔다. 사명을 ‘SK AX’로 변경하고 클라우드·인공지능(AI) 중심의 사업 구조로 전면 전환하는 게 골자다. 외부 기업·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센터 사업을 SK브로드밴드에 이관하고 내부 계열사를 위한 클라우드·인프라 역량에 집중하기로 했다. SK AX는 이번 전환을 계기로 산업 AI 사업을 확대하고,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공동으로 AI 데이터센터 및 AI옵스 플랫폼 구축에도 나선다. AI 솔루션인 ‘AI 명장’, ‘에이닷 비즈’ 등의 적용 사례를 확장하며 제조·금융·에너지 등 산업 분야의 AI 전환을 본격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