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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람 그리고 법률

  • [삶, 사람 그리고 법률]안전하고 든든한 노후를 위한 소견
    안전하고 든든한 노후를 위한 소견
    이성기 기자 2019.12.28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 치매 등으로 판단 능력이 부족해진 뒤에 발생하는 여러 분쟁의 해결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상당수의 분쟁은 미래를 대비한 법적인 준비를 소홀히 한 데에서 출발한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지금은 또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무방비하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때를 대비하려고 하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접한 이유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첫째,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A씨는 치매가 올 때를 미리 대비해 큰 딸을 임의 후견인으로 하는 후견계약을 체결했고 공증도 마쳤다. 후견계약을 준비하면서 A씨 마음에 걸렸던 것은 평소에도 언니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아왔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둘째 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견계약 체결 사실을 알게 된 둘째 딸은 모녀 관계를 끊고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큰 딸도 동생과 관계가 나빠지면서까지 해야 하냐며 다시 생각해 보자고 설득했다. 결국 A씨는 후견계약을 철회했다. 둘째, 자신에 대한 과신(過信)이다. 자수성가한 B씨는 90대가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유한 상가 임차인 관리와 사소한 하자 수리까지 전부 본인이 도맡아 하고 있다. 보다 못한 B씨 자녀들은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주요한 재산은 신탁해둘 것을 제안했다. 아직까지 정정한 자신을 벌써부터 치매에 걸린 노인 취급하는 자녀들의 태도가 불쾌했고, 자식들이 `신탁`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었다. B씨는 자녀들에게 다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셋째, 체념이다. C씨는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시가 3억원의 20평대 아파트 이 외에는 특별한 재산이 없다. 정기적인 소득은 인근 상가 경비원을 하면서 버는 월 200만원이 전부다. 평소 경비원 월급으로 겨우 살아가는 자신이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생을 마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돌봄이나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관리를 맡긴다고 해서 여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미래에 대한 법적 대비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후견계약을 철회한 A씨는 2년 뒤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A씨의 돌봄과 재산을 놓고 자매 간 분쟁이 발생했고 결국 제3자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 이미 둘째 딸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불만이 있는 이상 후견계약을 체결해 두었더라도 분쟁은 발생했을 것이었다. 다만, A씨가 후견계약을 체결해 뒀더라면 분쟁에도 불구하고 임의 후견인인 장녀가 A씨를 평소 뜻대로 돌봐 적어도 존엄한 노후가 보장됐을 것이다. 둘째 사례의 B씨가 간과한 것은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신탁해두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신상, 재산에 대한 통제를 마지막까지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점이다. B씨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 신상과 재산은 자녀들 또는 생면부지의 제3자가 통제하게 될 것이고, 미리 법적 준비를 했을 때보다 B씨의 의사가 존중되기는 어려울 것이다.C씨와 같은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야 말로 법적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살고 있는 집 한 채, 각종 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 공적부조 외에는 특별한 자산이 없는 고령자들이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해져 그마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영위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노후와 관련해 갖는 걱정의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선진국들은 이런 걱정에서 출발해 미리 법적 준비를 하는 것이 정착돼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약 1200만명인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임의후견과 유사한 `지속적 대리권`(Lasting Power of Attorney)을 등록한 사람이 약 380만명에 이르고, 65세 이상 인구가 약 1770만 명인 독일은 마찬가지의 지속적 대리권(Vorsorgevollmacht)을 등록한 사람이 약 320만명에 이른다. 65세이상 인구가 78만명인 싱가포르도 지속적 대리권을 등록한 사람이 1만2000명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미리 자신의 재산, 신상에 대한 법적 준비를 해두는 것이 앞으로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미리 법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이다.☞배광열((裵光烈)변호사는△변시 3회 △사단법인 온율
  • [삶, 사람 그리고 법률]위대한 유산기부
    위대한 유산기부
    이성기 기자 2019.12.07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법무법인(유) 지평 마상미 변호사] “내가 죽으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 단체에 기부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가끔씩 공익단체에 이런 유산기부에 관한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전세보증금을 기부하겠다`, `사망 보험금이 나오는데, 얼마 안 되지만 기부하고 싶다`는 문의도 있다. 미국, 영국 등 기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산기부가 사회공익 실현과 사회자본 축적 및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부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도 기부에 관한 의식의 발달과 함께 비혼,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 사회 구조적 변화로 인해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유산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비해 유산기부가 이뤄지고 집행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유산기부는 계획기부, 사회적 상속과 같은 차원으로도 설명되고 있는데 법률적으로는 유언을 통해 상속재산이 공익 목적에 사용되도록 법정 상속인이 아닌 공익법인 등을 수증자로 지정해 기부하는 것이어서 상속법의 규율을 동일하게 받는다. 따라서 민법이 정한 엄격한 유언의 방식을 따라야 효력이 발생한다. 판례 중에도 유언의 방식을 갖추지 못해 유산기부가 무효화 된 사례가 있고, 실무에서 검토 중에 유언의 방식을 갖추지 못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유산기부가 적법한 방식에 따라 이뤄진 경우에도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으로 인해 유산기부자(유언자)의 뜻이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기부자가 생전에 공익단체에 기부할 경우에는 유류분 반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으나 유산기부, 즉 유언으로 증여를 하는 경우에는 유류분 반환을 피하기 어렵다.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유산기부자)이 증여나 유증을 했다 하더라도 빼앗을 수 없는 상속인의 권리이다. 아버지가 공익단체에 전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 아들(상속인)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일정 부분 보장해주는 것이다. 직계비속 및 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절반, 직계존속 및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받는다. 실제로 유산기부자가 공익단체에 재산을 유증하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공익단체가 유증을 받았으나, 상속인들이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 일부 반환된 사례도 있다. 유류분 반환을 고려해 미리 재산의 50%만 기부받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류분 부족액을 계산할 때 생전 특별수익을 고려해야 하고 특별수익의 가액은 먼 미래인 상속개시를 기준으로 하며 증여보다 유증에 대해 먼저 반환하는 등의 복잡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유류분 반환의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에 지난 10월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4인은 유산기부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현행 유류분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직계비속의 유류분 비율을 현행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서 3분의 1로 축소하고,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 범위에서 제외하며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 또는 유지에 기여가 없는 직계비속이 피상속인 사망 전 5년 이상 피상속인과 연락을 단절해 그의 연락처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유류분의 사전포기 제도를 도입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및 배우자가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상속 개시 전에 유류분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실제로 공익단체의 유산기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독신으로 배우자나 직계비속(자녀)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형제자매에게도 유류분권이 있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유류분권을 행사하는 것을 염려하는 경우가 많다.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유산기부를 활성화 하는데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유류분 제도는 남아선호사상의 시대에 딸들의 권리를 찾아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터라 유류분 사전포기 제도가 전면 도입될 경우 악용될 우려가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그러나 최소한 공익재단에 유산을 기부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유류분의 포기를 인정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싶다. 유산기부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유산기부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바란다. ☞마상미 변호사는△이화여대 법대 △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지평 가사상속팀, 건설·부동산팀 소속
  • [삶, 사람 그리고 법률]노후에도 내 뜻대로 재산을 관리하려면
    노후에도 내 뜻대로 재산을 관리하려면
    이성기 기자 2019.11.23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 70대 김순례씨는 매일 같이 오는 부동산 투자 홍보 문자를 지우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20년 전 2000만원만 투자하면 도로가 개설될 예정인 땅 주인이 될 수 있고, 곧 보상금으로만 1억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획부동산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부동산의 말만 믿고 산 땅은 맹지에 공유자만 백여 명에 달했다. 부동산은 자신들도 피해를 입었다며 이번에는 확실한 곳이라면서 다른 땅을 소개했다. 맹지도 아니고, 공유자도 2명에 불과했다. 개발제한구역인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곧 해제될 것이라는 부동산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김씨는 기획부동산으로부터 총 2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그 뒤 김씨는 부동산 투자에는 발길을 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기획부동산들은 집요하게 연락해왔고, 일확천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달콤한 말로 현혹했다.김씨는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혹시 치매라도 걸리면 남은 재산마저 송두리째 잃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다 못한 김씨의 자녀들이 적어도 어머니가 거주하는 아파트만이라도 안전하게 지킬 방법이 없겠냐고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는 아파트를 신탁하는 것을 추천했다.신탁은 자신(위탁자)의 재산 관리 처분 등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사람(수탁자)에게 그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고, 수탁자는 그 재산을 맡긴 사람(위탁자)과 협의한 바에 따라(신탁목적) 그 재산을 관리 처분하며, 그에 따라 발생한 수익은 위탁자가 지정한 자(수익자)에게 귀속시키는 법률관계를 의미한다.자기 재산을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관리 처분하게 하려면 그 권한을 위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구태여 소유권을 이전하면서까지 신탁을 이용하는 이유는 위임의 경우보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활용방안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먼저 신탁이 설정되면, 위탁자 또는 수탁자의 채권자는 신탁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발생한 채권의 실현을 위해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도산절연(倒産截然)효과는 신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만약 김씨가 자신의 아파트를 신탁한 이후, 또 다른 사기피해를 입어 큰 빚을 지게 되더라도, 김씨의 채권자는 위 아파트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둘째, 신탁에 의해 소유권이 이전될 경우, 대외적으로 신탁재산의 소유자는 수탁자가 되어 법률관계가 간명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김씨가 아파트 관리를 자녀에게 위임하였다고 생각해보자. 자녀가 아파트 관리를 위해 어떤 사무를 할 때마다 김씨가 작성해 준 위임장과 (경우에 따라서는) 김씨의 인감증명서, 자녀의 신분증 등을 구비하여 매번 거래 상대방에게 자신의 대리권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의심 많은 상대방이라도 만난다면 거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그에 반해, 아파트를 신탁한 경우라면, 대외적으로 수탁자인 자녀가 소유자이기 때문에 전술한 것과 같은 번거로운 일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단지 내 재산의 관리를 타인에게 맡겼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하는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이다. 셋째, 신탁은 내 재산을 관리해주는 사람의 부정행위를 차단하는 데에도 장점이 있다. 관리하고자 하는 재산에 신탁을 설정할 경우,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자신의 재산과 분리 독립하여 관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아파트를 신탁하는 경우, 부동산등기부등본에는 등기원인은 `신탁`으로, 권리자는 소유자가 아닌 `수탁자`로 표시되며, 신탁계약서가 `신탁원부`라는 형태로 별첨됨으로써 수탁자의 다른 재산과 구별된다. 나아가 신탁법에서는 수탁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넷째, 신탁은 당사자가 구성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위탁자가 본인이 사망할 경우 그 신탁재산의 수익자를 배우자 자녀 등 다른 사람으로 지정함으로써 유언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유언대용신탁도 유용하다. 일본의 경우 손자녀의 대학 등록금, 양육비, 결혼자금 등을 지원하기 위한 신탁도 존재한다. 증여세 비과세가 적용되어 2016년 3월말 기준으로 1조엔(약 10조원) 이상이 신탁되어 있다고 한다. 지적장애 범죄피해자의 지원을 위한 신탁, 후견인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성년후견제도 지원 신탁,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별수요신탁 등 신탁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궁무진하다.이런 장점 때문에 노후에도 안전하면서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재산관리 수단으로 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미리 자신의 재산을 신탁하면서 재산 관리 처분 방법에 대해 지시를 해두면, 이후 판단능력이 떨어진 뒤에도 그 뜻대로 자신의 재산이 관리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배광열((裵光烈)변호사는△변시 3회 △사단법인 온율
  • [삶, 사람 그리고 법률]실체진실과 과거의 재구성
    실체진실과 과거의 재구성
    이성기 기자 2019.11.16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한정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탐욕스런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모두 다 우리를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을 상대로 한 사기극과 그 와중에서의 `꾼`들 사이의 복잡한 음모를 다룬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주인공 최창혁이 한 대사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혈기왕성하던 청년 검사 시절 극장에서 처음 보았고,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밤늦도록 잠을 청하지 못하던 어느 밤에 이 영화를 우연히 다시 보았다. 매일같이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만나던 필자로서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자신을 최창혁의 대사 중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다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참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주는 충격이 있었다. 검사, 판사,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들이 하는 일은 대개 과거와 관련된 일이다. 몇날 며칠 밤을 새워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하고 변론을 해도 그 대상은 이미 과거에 일어나버린 일에 대한 것이다. 물론 변호사의 경우 기업이나 정부기관에 법적 자문을 제공하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지 법조인들의 일상 대화를 보면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드물고 과거의 사건, 과거의 사례, 과거에 좋았던 시절 등을 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도 법조계에서는 도제식 훈련이 효과가 커서 이런 대화가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은 늘 남는다. 과거에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에 대한 진실은 오직 신과 사건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법조인들은 과거로 인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증거로써 과거를 복원해 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절차를 지키게 하고 있는데 그게 흔히 말하는 `적법절차`이다. 법조인들, 특히 검사들은 과거를 완벽히 복원해 내는 것을 `실체 진실의 발견`이라고 부른다. 필자도 검사 시절 실체진실의 발견을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었다. 예전에 어느 후배 초임 검사가 수습시절에 혐의를 부인하는 절도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혐의자의 주장만으로도 절도죄가 아니라도 장물취득죄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형법상 절도죄(6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보다 장물취득죄(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가 법에서 정하고 있는 형량이 더 높다. 당시 궁금한 마음에 후배 검사에게 `더 중한 장물취득죄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굳이 더 법정형이 가벼운 절도 혐의를 밝히려고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고 얘기를 해보자, 그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이 아닌 거 같아서요” 오래 전이긴 하지만 예전에 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개봉하자마자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서 본 이유는, 처음에 영화 제목을 보고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밝힌 결과가 과거의 완벽한 복원, 즉 `실체진실의 발견`이 아니라, 혹시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과거의 재구성`이면 어쩌나, 누군가가 만든 `과거의 재구성`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 한구석 생각을 영화 제목이 살며시 들여다보고 있을 줄이야. 이런 생각은 법조인이라면 직역을 불문하고 마음 한 편에 늘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검사 시절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변호사로서 형사사건 변호를 할 때에도 맡은 역할을 떠나서 과거가 잘못 재구성되지 않기를 제일 먼저 바라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진실이 현재에 완벽하게 재복원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찾을 수 있도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잠시 돌아서서 커피 한잔 마시는 동안에도 마음이 분주하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중년들에게 남겼다고 전해지는 9가지 교훈 중에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 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는 내용이 있다. 셰익스피어도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과거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비단 법조인들만이 아니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만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지금 현재와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아깝지만, 어쩌랴 법조인의 일이라는 것이 그러한 것을. 깊어가는 가을, 셰익스피어가 남긴 또 다른 교훈에 위로를 받는다.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한정화(韓廷和)변호사는△사법연수원 29기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법무부 감찰담당관실(부장) △창원지검 밀양지청장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수원지검 공안부장 △법무법인(유) 광장(Lee & Ko)
  • [삶, 사람 그리고 법률]'기도 세리머니' 손흥민, 법률상 책임 있을까
    '기도 세리머니' 손흥민, 법률상 책임 있을까
    이성기 기자 2019.11.09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법무법인 충정 김시주 변호사] 평소에 특별히 스포츠 경기에 별 관심이 없는 터라 야구나 축구 경기를 굳이 찾아 보지 않는 편이다. 며칠 전 아침 포털사이트 `많이 본 뉴스`란에 `라커룸에서도 고개 숙인채 울고 있었다, 큰 충격 받은 SON`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떤 내용인지 살펴 보았더니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에버틴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미드필더인 안드레 고메스의 공을 빼앗기 위해 백태클을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메스가 토트넘의 세르주 오리에와 부딪혀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되자, 손흥민 선수가 큰 충격을 받아 라커룸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었다. 대학 시절 형법 시간에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위법성 조각사유란 법조문상의 범죄 요건(이른바 구성요건)은 충족되나, 그 행위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정당 방위나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위법성 조각사유이다. 형법 교과서에 언급되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흔한 예로 권투 경기가 있는데, 선수 상호 간에 폭행과 상해 행위가 있지만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권투 경기가 스포츠로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한다거나 또는 `피해자의 승낙`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기 중 발생하는 상해, 폭행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형사상 처벌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가해 선수의 민사상 책임까지 면책되는 것일까. 또 권투 같은 격투 경기는 원래부터 상호 간 폭행을 전제로 하니 그렇다 쳐도, 축구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 대한 폭행은 경기 규정상 용납되지 않는데 반칙행위로 선수가 다쳤다면 최소한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어 혹시나 이런 사례가 있을까 판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운동 경기 중 부상에 따른 손해배상 여부가 쟁점이 된 판결을 두 건이나 찾을 수 있었다. 판례의 사실관계는 아래와 같다.1. 농구경기 중 사고(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1다66849 판결)A가 친구인 B 등과 야외 농구장에서 반 코트만 사용해 경기를 하던 중,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뛰어올라 공을 잡고 내려오다 A 등 뒤에 서 있던 B의 입 부위를 오른쪽 어깨 부위로 충격해 B의 앞니가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입음2. 축구경기 중 사고(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7다203596 판결)골키퍼를 맡은 A가 골문 앞에서 공을 쳐내기 위해 다이빙 점프를 하고 착지하다가 상대팀 공격수인 B와 충돌, B가 목척수 손상 등의 상해를 입음두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비슷한 판단을 하였는데 요지는 아래와 같다.“운동 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경기자 등이 다칠 수도 있으므로, 경기 규칙을 준수하면서 다른 경기자 등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신의칙상 주의 의무인 `안전배려 의무`가 있다. 그런데 권투나 태권도 등 상대선수에 대한 가격이 주로 이루어지는 형태의 운동 경기나 다수의 선수들이 한 영역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승부를 이끌어 내는 축구나 농구 같은 형태의 운동 경기는 신체접촉에 수반되는 경기 자체에 내재된 부상 위험이 있고, 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운동 경기에 참가한 자가 앞서 본 주의 의무를 다하였는지는 해당 경기의 종류와 위험성, 당시 경기진행 상황, 관련 당사자들의 경기규칙의 준수 여부, 위반한 경기규칙이 있는 경우 규칙의 성질과 위반 정도, 부상의 부위와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되 그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이에 따라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에서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농구와 축구 같은 신체적 접촉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경기 중 발생한 사고의 경우 부상 위험이 있고 그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부상이 발생했다면 현실적으로 가해 상대방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손흥민 선수가 고메스 선수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큰 부상을 당한 고메스 선수의 신체적·심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손흥민 선수 역시 상대 선수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부디 두 선수 모두 빠른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김시주 변호사는△사법연수원 32기△2006년 변호사 개업(법무법인(유한) 충정)
  • [삶, 사람 그리고 법률]주희는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주희는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이성기 기자 2019.11.02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법무법인(유) 지평 마상미 변호사] “주희는 일년 전 이맘때 이혼했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양육권은 전 남편에게 갔다. 전 남편과 그의 가족은 약속을 어기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아 주희는 가정법원에 면접교섭 이행명령을 신청한 상태였다. 시청역 근처 우동집에 앉아서 주희는 그 이야기를 천천히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다시 보고야 말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윤희는 물만 들이켰다.”(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82쪽, 문학동네)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 모음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단편 `지나가는 밤`은 자매인 윤희와 주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희가 왜 이혼했는지, 왜 아이의 양육권이 전 남편에게도 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주희의 경제적 형편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혼 소송은 당사자에게 매우 힘들다. 함께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소송까지 하면서 이혼을 하는 것인데, 그 고통의 시간을 복기하게 하고, 때로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렇게 힘들게 이혼 소송을 하고 나서도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다시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중 가장 곤란한 것이 주희 사례처럼 상대방이 면접교섭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이다. 판결문에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얼마 동안 면접교섭을 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면접교섭 날이 되어 집 앞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해도 `돌아가라, 보여줄 수 없다`고 하여 울면서 돌아간 엄마가 있었다. 소설 속 주희도 아이를 보여달라고 시가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모진 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이 면접교섭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면접교섭 이행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면 가정법원은 `면접교섭을 이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면, 가정법원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여주지 않으면, 일단 달리 방법이 없다. 인터넷에서 `감치`(일정기간 구금하는 것)도 가능한 것처럼 소개되어 있는 경우를 보았는데, 현행 가사소송법 규정상 감치는 불가능하다.2017년 6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이 과태료 부과 제재를 받고도 30일 이내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30일 이내에서 감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가사소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는 아직도 계류 중이고, 양육자를 감치하는 경우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도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일단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후의 방법으로 양육자 변경심판 청구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면접교섭권 이행 의무를 불이행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곧바로 양육자 변경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육자 변경은 면접교섭권 불이행에 대한 제재수단이 아니고, 오로지 아이의 복리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에서 양육자로 지정된 A는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다가 아예 일본으로 이주하고는, “일본에 살아서 법원이 정한 대로 따르기 불가능하니 면접 방식과 횟수 등을 바꿔 달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자 남편은 “A가 부당하게 면접교섭을 막고 있다”며 친권자와 양육자를 본인으로 변경해 달라고 반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A가 애초에 남편이 아이를 못 만나게 하려는 의도로 일본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면서도 아이의 양육자는 계속 A로 유지했다. 다만 법원은 `A가 계속해서 면접교섭에 비협조적일 경우 이는 아이의 정서안정과 원만한 인격발달을 방해하게 되므로, 추후 남편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상대방이 면접교섭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위반 행위 시마다 위약벌을 물리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1일당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루어진 후, 면접교섭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었다. 양육자가 면접교섭에 협조하지 않는 이유는 이혼 과정에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더욱 증폭된 것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면접교섭권이 아이의 권리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양육권 소송 중 간혹 `아이를 한 명씩 나누어 양육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윤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사실 이 대목을 언급하고 싶어 굳이 최은영 작가님을 소환했다.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 지라도.”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97쪽, 문학동네)☞마상미 변호사는△이화여대 법대 △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지평 소송 그룹 및 건설·부동산팀 소속
  • [삶, 사람 그리고 법률]세금! 거둘 때는 한 번에…돌려줄 때는 두 번에
    세금! 거둘 때는 한 번에…돌려줄 때는 두 번에
    박일경 기자 2019.10.26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법무법인(유) 화우 전완규 변호사] 3년 전에 지인이 서울 시내 모 세무서로부터 3억원이 찍힌 종합소득세 고지서를 받았다. 지인은 잘못 부과된 종합소득세라고 하소연하면서 법적 절차를 취했다. 그 당시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던 지인은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 종합소득세를 모두 납부했다. 그 분쟁이 올해 4월 지인의 승소로 끝났다. 지인은 드디어 대출을 다 갚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인은 세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세금을 세무서와 구청 두 곳으로부터 나누어 환급 받기, 세무서와 구청 간의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 환급가산금의 잘못된 계산 등등이 지인을 힘들게 했다.이 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세금을 한 번에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두 번에 나눠서 돌려받는 환급 절차였다. 지인은 자신이 모든 세금을 낸 곳은 세무서인데 왜 세무서에 낸 세금 일부를 구청으로부터 따로 돌려받아야 하는 지를 납득할 수 없었다.우선 세무서·구청 2곳으로부터 세금을 돌려받는 이유를 설명하면, 지인이 받은 종합소득세 고지서에는 국세의 10%에 해당하는 지방소득세가 포함돼 있다. 국세는 세무서를 통해 국가에 귀속되며 지방소득세는 세무서를 통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구청에 귀속되므로, 국가와 구청은 자신들에게 귀속된 세금만 돌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와 같은 법과 제도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은 이 같은 방법으로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금을 내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소득세를 하나의 세금으로 생각하면서 세금을 내므로, 세금을 낸 곳으로부터 세금을 그대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소득세가 국세(국가 귀속분), 지방세(지자체 귀속분)로 구분돼 있다는 사실은 세금 전문가나 세금 관련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있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설령 보통 사람이 소득세가 국가·지자체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세무서가 잘못 징수한 세금을 돌려주는 일은 하나의 세금이 국세와 지방세로 구성돼 있다는 점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당연히 “세금을 직접 받은 세무서(정확히 표현하면 국가)가 먼저 모든 세금을 돌려주고, 세무서가 지자체로부터 다시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불만이 제기될 것이고 이러한 불만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세금을 거둘 때는 한 곳에서 한 번에 거두고, 세금을 돌려 줄 때는 여러 곳에서 여러 번 나눠 돌려주는 건 전형적인 과세행정 편의주의라는 문제 제기 또한 있을 수 있는데, 이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적어도 이런 문제 제기는 상식적인 선에서는 맞다고 본다.어찌되었든 지인은 우여곡절 끝에 올해 5월 중순께 세무서로부터 국세를, 6월 중순엔 구청으로부터 지방세를 각각 환급받음으로써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종합소득세 분쟁을 마무리했다. 지인은 과세행정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게 됐다.올해 국정감사에서 국세 과오납 환급금이 2016년 4조6543억원에서 2018년 7조4337억원으로 60% 가량 급증했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잘못 받은 세금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세금 역시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대부분 국세에는 지방세가 포함돼 있으므로(예를 들면 법인이 납부하는 법인세에도 개인이 납부하는 종합소득세와 마찬가지로 지방소득세가 포함돼 있다) 지자체도 세금을 돌려주는 일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세금을 환급 받는 국민이 겪게 되는 불편의 증가가 예상된다.세금은 국가·지자체를 운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최근 국가·지자체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복지가 강조되는 시대에는 재원 마련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국민은 세금을 내는 대신 국가·지자체로부터 도로, 공원 등과 같은 공공재의 혜택을 받고 있는 까닭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 원리 관점에서 국민은 국가·지자체의 고객이라고 볼 수 있다.국가·지자체는 세금을 돌려 줄 때 소비자인 국민(납세자)의 입장에서 현재와 같은 환급 절차가 타당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일반 기업이 고객에게 물건을 판매하면서 받은 대가를 현재와 같은 세금 환급 절차처럼 고객에게 불편을 주는 방법으로 돌려준다면 그 기업의 장래는 어두울 것이다.국가·지자체가 세금을 거둘 때보다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세금을 돌려준다면 국민이 세금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세금을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는 그 어떤 조세시스템보다도 효율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는 조세 행정은 작은 것부터, 국민들이 피부로 와 닿는 분야부터 진행돼야 한다.☞전완규(全完圭) 변호사는△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유) 화우 조세부그룹장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조세협회(IFA Korea) 발전이사 △한국지방세연구원 법령해석지원센터 자문위원
  • [삶, 사람 그리고 법률]누군지도 모르는 변호사가 내 노후를?
    누군지도 모르는 변호사가 내 노후를?
    이성기 기자 2019.10.19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B씨는 요즘 답답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머니를 돌보는데 들어가는 비용 지출을 위해 어머니 계좌에 있던 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형제들은 B씨를 어머니의 재산에 손을 댄 못된 딸로 몰아가면서 법원에 성년후견 개시 청구를 했다. B씨는 20여년간 어머니를 모셔온 것은 자신인데, 명절 때조차 제대로 얼굴을 비친 적이 없던 다른 형제들이 어머니에 대한 후견청구를 한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지만 법원도 자신의 효심을 인정하고, 본인을 후견인으로 선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법원의 후견개시심판 과정은 B씨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다른 형제들은 별다른 소득도, 직업도 없는 B씨가 어머님께 빌붙어 생활한 것이지 어머니를 돌본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모욕감을 느낀 B씨는 다른 형제들의 불효막심함을 법원에 낱낱이 밝혔다. 그러자 법원은 변호사 T를 후견인으로 선임했다.B씨는 평생 어머니를 모셔온 자신을 배제하고 생면부지인 변호사를 후견인으로 선임한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나, 후견인이 어머니의 상황을 살펴보면 B씨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는 실낱 같은 믿음을 가졌다.그러나 B씨의 그런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T는 B씨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B씨가 가져간 어머니 돈을 당장 돌려놓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B씨가 채용한 요양보호사도 해고하고 새로 요양보호사를 선임했다. 새로 선임한 요양보호사는 후견인하고만 얘기하겠다며 B씨와는 아무런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변호사 T의 입장은 이렇다. 재산상황을 조사해보니 어머니와 동거하는 딸 B씨가 어머니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는 뻔뻔하게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신에게 증여한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잘 돌보는 것도 아니다. 요양보호사는 타성에 젖어 업무를 태만히 하고 있었고, 후견인의 모니터링에 비협조적이었다. 어머니는 쇼파에 앉아 무의미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 T가 보기에 현재 어머니의 생활환경은 열악하다 못해 위험했고 즉시 개입이 필요했다.B씨에게 가져간 돈을 돌려놓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기존 요양보호사는 해고했으며 직접 면접을 봐 새로 요양보호사를 채용했다. 새로운 요양보호사가 나타나자 B씨는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요양보호사에게 매일 전화를 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며 요양보호사를 괴롭혔다. 결국 T는 요양보호사에게 후견인하고만 얘기하고 직접 응대하지 말라고 지도하였으며, B씨에게도 요양보호사에게 민원이 있으면 자신에게 알릴 것을 통지했다.제3자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 신상을 둘러싸고 친족들 사이에 극심한 다툼이 있거나, 피후견인을 돌볼 가족이 없는 경우 주로 선임된다. 법원은 재산 분쟁이 극심하거나, 그 규모가 큰 경우에는 변호사·법무사와 같은 법률전문가를, 신상에 대한 다툼이 극심하거나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회복지사를 각 선임하는 편이다. 돌볼 사람이 없는 무연고자들에 대해서는 공공후견사업을 통해 자원봉사조로 활동하는 공공후견인을 선임하고 있다.제3자가 후견인으로 선임된 경우, 사례와 같이 피후견인의 가족들과 후견인이 대립하는 일이 많다. 양자가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법원이 가족들을 배제하고 제3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한 것은 국가가 강제로 가족관계를 끊어낸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받아들인다.그에 반해 전문가 후견인들로서는 가족들이 피후견인을 위해서라는 명목아래 제기하는 각종 민원들을 듣고 있으면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제3자 후견인은 피후견인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가족들에 비해서 객관적으로 피후견인의 이익만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 전문직의 경우 그 전문성을 피후견인의 돌봄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 가족들의 분쟁에서 피후견인을 분리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 가족들에 비해 부정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적다는 점 등이 장점이다. 실제 제3자가 후견인으로 선임되면, 그 전보다 피후견인의 복리가 증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우 전체 후견인의 약 75%가 제3자 후견인이다. 문제는 내가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해졌을 때 생면부지의 변호사나 사회복지사가 나를 돌봐주길 희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제3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하는 것이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성년후견제도의 원칙에 비추어 본인을 위한 최선이라고 하긴 어렵다. 오히려 제3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 또는 차악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결국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해질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임의후견, 신탁, 기타 여러 제도들을 이용해 미리 법적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배광열((裵光烈)변호사는△변시 3회 △사단법인 온율
  • [삶, 사람 그리고 법률] 별이 빛나는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이성기 기자 2019.10.12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 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한정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엄마, 큰일 났어요. 폭탄을 팔고 있어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집 앞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허겁지겁 집에 들어오며 다급하게 아내에게 외쳤다. 아내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데 근처 마트 앞에 배달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고, 오토바이 배달박스 한편에는 마트 이름이, 다른 한편에는 `폭탄 세일`이라고 써져 있었다고 한다. 이걸 본 아이가 조심조심 오토바이로 다가가 박스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떨리는 마음에 폭탄이 있는지는 확인을 못하고 겁이 난 나머지 집으로 뛰어왔다는 것이다. 호기심 많던 아이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어 별자리에 관심을 가지자, 필자도 얼마 전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만큼이나 읽기 힘든 책이었으나, 힘겹게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아빠로부터 우주에 관한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아빠와 함께 별에 관한 상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그저 같이 별자리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일을 하다보면 이런 이치를 잊고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디 법조인의 경우만이 아니라 세상 이치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이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법조인들은 일의 속성상 매사 자신이 판단하고 설명을 하려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먼저 잘 들어야지`하고 마음을 먹고서도 어느새 먼저 설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오래 전 일이다. 검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지방의 어느 검찰청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곳에는 검찰, 법원,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 모두가 다 아는 유명한 한 여인이 있었다. 초로의 남루한 행색의 그 여인은 매일 검찰청과 법원 주위를 맴돌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과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외치곤 했다. 검찰청과 법원 창문 바로 밑에서 온종일 큰 소리로 욕설을 해대는 곤혹스러운 날들도 많았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불리며 직원들에게는 기피 1호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당시는 검찰청에 지금과 같은 출입통제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검사실 밖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검사를 만나겠다는 그 여인을 직원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느냐며 제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경찰이 검찰청, 법원 주변에서 매일 소란을 피우던 그 여인을 경범죄처벌법상 소란 행위로 즉결심판에 회부해 구류가 선고되자, 여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했는데 다짜고짜 자신의 재판을 담당하는 공판검사를 만나겠다고 검찰청으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사. 필자가 바로 그 검사였다.잠시 당황했지만 빨리 결정을 내려야했다. `내가 담당하는 사건의 피고인인 이상 이 여인이 나를 못 만날 이유가 없다. 얘기를 해보고 정말 정신이 이상한 것이라면 재판부에 설명을 하자`고 마음을 먹고, 검사실 소파에서 마주앉았다. 솔직히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결심은 곧 후회로 바뀌었다. 당시 격무로 잠잘 시간도 부족한 때였는데, 벌써 1시간째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오늘 원래 하려던 일은 포기한다. 대신 이 사람이 하고 싶은 얘기를 끝까지 한번 들어보자.`끈기를 갖고 계속 듣고 있으니 어느 순간 순간 그 여인은 정상적인 사람처럼 말하곤 했다. 힘겹게 알아낸 사연은 대략 이랬다. 자신은 예전에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사기를 당해 고소를 하게 되었고, 여러 고소 사건 와중에 자신이 무고죄로 감옥살이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너무 억울해 그 당시의 판사, 검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여인은 헤어질 무렵 온전해 보이는 얼굴로 “지금까지 자기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준 사람은 처음”이라며 고맙다고 연신 인사까지 하는 게 아닌가.힘든 날이었지만 보람과 감동이 있었다. 그 여인은 그 후 일주일 간 검찰청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다시 예전 상태로 되돌아갔고 청사 입구에서 마주친 필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순간이나마 그 여인이 마지막에 보여준 진심어린 표정은 쉽사리 잊을 수가 없다.아이 덕분에 읽게 된 책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드넓은 우주 공간 속의 `창백한 푸른 점`(a pale blue dot)이라고 표현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이 말이 생각나며 마음이 한없이 헛헛해지고 겸허해진다. 칼 세이건은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종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고 얘기하고 있다.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둔 채 인류를 위해 먼 우주로 떠나야 하는 남자 주인공 쿠퍼는 떠나지 말라며 우는 딸 머피를 달래며 이렇게 말한다. “네 엄마가 했던 말이 있는데 그땐 잘 이해를 못했어. 엄마가 말하길, 부모는 아이들의 추억이 되기 위해 사는 거야. 지금은 무슨 의미로 말한 건지 알 것 같아. 너도 부모가 되고 나면 훗날 네 아이들의 추억이 될 거야.”우주 한 구석의 어느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우리는 훗날 누구에게 어떤 추억과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가을인가 보다. 필자 같은 아재가 밤하늘의 별을 이야기하다니. ☞한정화(韓廷和)변호사는△사법연수원 29기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법무부 감찰담당관실(부장) △창원지검 밀양지청장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수원지검 공안부장 △법무법인(유) 광장(Lee &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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