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생활부

최은영

기자

신동민의 인생영업

  • [신동민의 인생영업]코로나19와 야구장 담장
    코로나19와 야구장 담장
    최은영 기자 2020.05.21
    [신동민 주한글로벌기업 대표자협회 회장·‘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 코로나19는 우리의 많은 것을 바꿔 놨다.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한국은 공포의 단계에서 벗어나 작은 희망의 불씨가 보이고 있다. 아직 온전히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어 다행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인데 여러 방면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수많은 관중이 열광하던 각종 스포츠 경기장의 모습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코로나 사태로 연기를 거듭하던 프로야구 개막전이 지난 어린이날에 지각 개막 했다.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위해서 무관중 개막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개막전의 함성은 없었고 마치 연습경기 같은 조용한 진행이었다. 그나마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관심이 되었다. 한국에서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이후 무관중 경기를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0년 전통의 미국 메이저리그도 역사적으로 단 한차례 무관중 경기를 치렀다. 관중들의 응원과 함성으로 유지되는 프로야구에서 무관중 경기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코로나 사태 하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무관중 프로야구 개막을 통해서 새로운 점들이 부각되었다. 한국 프로야구는 관중 수만 보면 염려스러운 상황이었다. 2017년 840만을 정점으로 2018년 807만, 2019년에 728만으로 관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올해 무관중 개막전의 시청자는 216만 명으로 집계됐으니, 전체 시즌동안 야구장을 직접 찾은 관중의 1/4 이상이 하루에 TV나 온라인으로 경기를 시청한 셈이다.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다보니 온라인 관람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다. 프로스포츠에서 경기장을 찾는 관중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제는 경기장의 관중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스포츠 콘텐츠를 즐기는 다수의 소비자들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무관중 경기 상황에서 인터넷 통신 업체들이 안방 시청자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 TV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가 경기모습을 찍고 중계자의 입담으로 운영되던 전통적인 방식의 중계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되었다. 국내 인터넷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보면 그 다양성에 깜짝 놀라게 된다. 포지션별 영상, 홈 밀착영상, 투구 타격 분석 화면, 치어리더 직캠, 경기장 줌인 화면, 5경기 실시간 동시시청 그리고 라이브 채팅 등 현존하는 모든 기술이 총 망라 되어있다. 주요장면 다시 보기 정도는 구식이 되어 버렸다. 이런 다양한 중계방식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수많은 방송 서비스에서 제공한다. 국내 거의 모든 매체가 인터넷 야구 중계에 총력전을 다하고, 더불어 올해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Twitch)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중계권을 사들여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트위치는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의 자회사로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온라인 중계는 인터넷게임에도 영향을 미쳐 작년대비 야구 게임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로 프로스포츠 업계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촬영 방식이나 중계방식에서 전 세계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기술은 이전에도 꾸준히 개발되고 시도되었지만, 항상 부수적인 기능으로만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프로스포츠는 경기장의 함성과 열띤 응원으로 각인되어 있다. 각 구단에서도 내장하는 관중들에게는 많은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TV나 온라인 시청자들에게는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로 변화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런 기술적인 시도와는 별도로 또 다른 측면도 볼 수 있다. 코리안 스타인 류현진이나 메이저리그에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의 게임을 보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거나 밤을 샌 기억들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는 개막하지 않았다. 아울러 야구 보느라 밤샐 일도 없어졌다. 반면에 미국 스포츠 전문 방송국 ESPN이 한국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했다. 미국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ESPN을 틀어 놓고 그들에게는 생소한 한국 프로야구를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이름의 약자는 NC)의 야구팬들은 한국의 NC 다이노스 팀의 NC가 주의 명칭과 같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팀인 양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뜻하지 않게 한국 프로야구가 국제화되고, 각 구단들은 계획에도 없던 국제 홍보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한국 사람만 유럽의 프리미어 리그와 미국 메이저리그를 보기위해서 밤잠을 설치는 게 아니다. 한국 리그의 규모는 작지만 경기운영이나 온라인 중계방식 그리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충분히 가치 있는 노하우로 축적되고 있다.변화는 갑자기 나타난다. 에너지가 축적되는 동안은 잠잠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임계점에 도달하면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그 순간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변화는 급격하게 온다고 생각을 한다. 코로나 사태가 와서 이런 모든 변화가 나타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초고속 통신망, 5G 등 야구 중계에 필요한 엄청난 기술을 축적해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보유한 모든 기술을 마음껏 적용해볼 절호의 기회이다. 프로야구의 영상기술은 프로축구에 사용해도 좋겠지만, 영역을 바꿔서 원격 의료에 사용해보면 어떨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영상과 정보의 전달이라는 원리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환자의 정보를 다양한 각도에서 정밀하게 전달하면 원격의료의 기본은 모두 충족되는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보듯이 직관(직접관람)하는 열성팬이외에 수백 배의 온라인 관중도 있다. 2019년 하루 최대 관중수는 11만 5500명이었다. 2020년 무관중 개막식의 시청자는 216만명이었다. 20배가 넘는 프로야구 팬들이 경기장 밖에서 프로야구를 즐겼다. 진료는 병원에서만 받아야 한다는 것은 직관만 진정한 야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의료뿐만 아니라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야 할 때가 되었다. 모든 영역의 물리적인 울타리를 넘어설 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우연히 코로나 사태로 집안에 갇혀 있으면서 어떤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하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변화와 혁신은 울타리 너머에 있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코로나가 바꿀 대학의 미래
    코로나가 바꿀 대학의 미래
    최은영 기자 2020.04.16
    [신동민 주한글로벌기업 대표자협회 회장·‘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 2020년을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만든 코로나19 사태가 사회 곳곳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현미경으로도 파악하기 어려운 정말 작은 존재인데 지구를 호령하던 인간을 엄청난 시련에 빠뜨리고 있다. 인간은 지식의 축적과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이 지구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왔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교육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실현했다. 특히 산업사회에서는 사회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 우리가 교육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기치못한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수백 년을 이어온 정규 교육이 대혼란에 빠졌다. 서로 대면을 할 수가 없으니 지식의 전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행이도 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온라인 강의라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실 온라인 강의가 새로울 것도 전혀 없다. 현재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은 인터넷강의로 입시 공부를 했고, 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형식이다. 막상 온라인 개강을 하고 보니 교육의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에게서 문제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에 너무나 익숙한 소비자인데, 정작 온라인 교육을 해야 하는 교수들에게는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필자도 온라인 강의 전환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국적 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온라인 회의 같은 환경에 익숙하지만 막상 작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학생들의 반응이 어떤 지도 모른 채 혼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마치 벽을 보며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한 두주 강의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전체 학기를 온라인 강의를 해야 한다는 공지에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교수들뿐만 아니라 학교당국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수업의 기준, 기술적인 문제등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곤란한 교수들 입장과 달리 학생들의 입장을 보면 그들은 불만이 한 가득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인터넷 유명강사들의 화려한 언변과 흥미 유발 그리고 훌륭한 영상기술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순수 아마추어 교수들이 녹화한 강의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소비자는 프로인데 공급자는 아마추어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고 강의의 질을 개선해달라고 거칠게 요구를 하고 있다. 원격강의로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사진=연합뉴스)학생들은 엄청난 경쟁을 거치고 대학 입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본인의 전공에 따라 수강할 과목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주어진 교과과정 중에 한정된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강의실에서 교수와 대면을 해서 수강을 하는 구조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온라인 수업은 강의를 학교 강의실에서 개방된 시장으로 끌어냈다. 우리학교 전공강의와 타학교 전공강의와 비교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다른 학교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는 없겠지만 온라인상에 엄청나게 많은 컨텐츠와 비교를 할 수 있게 됐다. 교육 소비자의 선택 영역이 급변했다. 세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공개수업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보면 전세계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세계적인 수업을 들을 수 있다. 2011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온라인으로 3개의 강좌를 열면서 온라인 공개수업(MOOC)가 시작됐는데, 각 강좌당 약 십만명이 수강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2018년말 전세계 900여개의 대학에서 1만1400개의 공개수업 강의가 등록되어 있고 사용자가 무려 100만명에 달한다. 사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강의는 온라인으로 모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2015년 한국형 무크(K-MOOC)를 소개하면서 온라인으로 누구나, 어디서나 원하는 강좌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정부산하 기관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한국형 무크를 온라인 무료 공개 강좌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50만명의 회원수에 100만건 이상의 수강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같이 온라인 강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온라인 교육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하기 보다는 보충적인 방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관점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때를 기다릴 때가 아니라 교육의 미래와 학교의 미래를 생각해 보아야 될 시점이 되었다. 기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고 교육의 소비자는 이미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학은 무료 교육기관이 아니다. 학생의 부모들이나 학생본인이 일을 해서 막대한 등록금을 지불한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좋은 학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기 원하고 대학의 졸업장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학생들은 어떤가. 그들은 소비자로서 대학교육에 기대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 그들은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번듯한 학교 건물과 넓은 캠퍼스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처럼 어떻게 하던지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 나가겠다던 기대도 혹독한 취업난으로 무디어졌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비싼 비용을 내고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가. 일부대학에서는 학생들의 감소로 정원을 채우기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이제는 모든 대학들이 학생들의 진학의욕 감소를 걱정해야 될 시점이다. 대학교육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 번듯한 대학 간판과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수업은 더 이상 소비자의 구매 욕구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변화를 엄청나게 촉진시킬 것이다. 현재 부모세대들이 바라보는 대학과 20대의 학생들이 바라보는 대학은 완전히 다른 것인지 모른다. 최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에서 실시한 온라인 강의 실태조사에서 ‘만족’ 혹은 ‘매우 만족’이 6.7%로 조사됐다. 외국에서는 온라인으로 개설되는 대학 수업에 가격을 매기고 통계를 보여줘 선택을 돕는다고 한다. 수업이 소비재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6.7% 만족도의 소비재는 전혀 판매가 불량한 함량 미달의 제품이다. 단기간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앞으로 교육 현장은 코로나 사태 전과 후로 구분될 것이다. 미래의 교육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들은 차라리 유튜브 동영상을 보겠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재택 영업은 안 되나요
    재택 영업은 안 되나요
    최은영 기자 2020.03.19
    [신동민 주한글로벌기업 대표자협회 회장·‘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 지구가 혼란에 빠져 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미국으로 번지는 대유행 속에 전례 없는 사태를 겪고 있다. 모든 경제지표가 요동치고, 사람들의 생활형태도 완전히 바뀌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서 긴 줄을 서야 하고, 발 디딜 틈 없던 대형쇼핑몰이나 유통매장은 찾는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안전에 관한 본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하고 외출을 기피하면서 온라인 쇼핑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일부 온라인 업체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벌어진 후 생필품 거래가 2배 이상 폭증했다고 한다. 특히 신선식품 및 가공식품의 거래량은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다. 반면 백화점과 할인점 등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현재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황이 지속될 경우 변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업 직종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전망을 한다. 온라인이 발달하고 인공지능(AI)을 통한 정보의 공유와 추천이 활성화되면 영업이 점차 축소, 소멸될 것이라는 예측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타당한 주장으로 들리고, 실제 일부에서는 영업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업을 대면(對面) 영업 위주로 본 근시안적 판단이고, 영업이라는 의미를 잘못 규정한 오류가 있다. 이런 오류는 왜곡된 시각을 만들고,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심어 놓았다. 영업의 중요성을 고려해본다면 이런 오류와 고정관념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된다. 국어사전에는 ‘영업’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라고 적혀 있다. 영어사전에서 ‘세일즈(Sales)’는 ‘물건 또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모든 활동(The activities involved in selling goods or services)’이라고 정의돼 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영업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광의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거래의 증가로 영업활동은 축소되고 영업 인력도 줄어들 것이라는 가정자체는 잘못된 것이다. 온라인의 증가로 대면영업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영업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영업이라는 개념을 협의로 또는 왜곡된 의미로 여기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영업이 선호되고 전망 있는 직종이 되어야 만 우수한 인재가 몰리고, 투자의 여지가 생겨난다. 중국의 왕홍(網紅·유명 크리에이터)이라는 단어가 최근 많이 알려지고 있다. 왕홍은 왕뤄홍런(網絡紅人)을 줄인 단어로 인터넷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인기를 얻은 사람들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왕홍이 중국의 시장을 이끌어가는 유통의 주역이 되고 있고, 최근 왕홍 경제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전자상거래에서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왕홍이 참여하는 시장 규모는 이미 1000억위안(약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홍은 2010년도 초반 중국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생겨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2014년 이후 모바일 이용자와 소셜 플랫폼의 증가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왕홍들은 인터넷에서 그들의 인기를 이용하여 제품을 광고하거나 직접 제품을 판매하여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다. 실제 1998년생 왕홍인 장다이는 중국판 SNS 웨이보 팔로워가 584만 명에 이르는 인터넷 스타이고, 중국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오픈마켓 타오바오에 상점을 열어 6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왕홍들이 속속 등장을 하고 있다. 이들이 SNS나 1인 방송에 나와서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면 단시간에 수십만 개의 제품이 팔려 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회사들이 제품을 기획하고, 광고하고, 판매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과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제품을 유통시키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최근에는 국내 회사들도 중국에 진출을 할 때 왕홍을 통한 마케팅을 종종 활용한다. 국내 모 면세점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기 위해서 중국의 슈퍼 왕홍 중의 한 명과 협업해 서울에서 라이브 방송을 했다. 약 4시간동안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동시접속자 150만명, 누적접속자 1000만명 이상을 기록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홍보효과이다. 이들 왕홍은 인기를 기반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대중의 관심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마케터와 영업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마케팅 활동으로 구매자들이 소통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서 팬층을 확보한다. 명확한 타깃 그룹을 형성하는 셈이다. 또한 이들은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계층들로, 스마트폰을 통해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구매와 직접 연결시킨다. 이들은 떠오르는 신세대 마케터이자 영업인들이다. 이렇게 보면 영업이라는 방법은 변했을지 몰라도 기본 원리는 일치한다. 중국에서 왕홍의 숫자는 2018년도에 이미 210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을 관리 지원하는 회사도 65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현재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젊은 마케터, 영업인으로 온라인 시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왕홍은 해외 사례여서 현실감이 없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1인 셀럽 기업가들이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다. ‘셀럽’은 유명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셀러브리티(Celebrity)’를 한국식 발음으로 줄인 말이다. 이들은 포털사이트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파워 블로거이거나 많은 팔로워를 가진 SNS 사용자, 1인 방송진행자들이다. 셀럽들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고 마케팅 한다. 이들은 수익 구조를 확대하기 위해 본인의 쇼핑몰에서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질은 고객과 신뢰를 어떻게 쌓고 고객과 어떻게 소통하는가이다. 이런 기본은 고대부터 변함없는 비즈니스의 근본이다. 우리가 발전하려면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이나 SNS에 빠져 지낸다고 탓 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있는 곳이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들이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사회나 정부가 할 일이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는 이제 젊은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업에서 찾아야 한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데이터로 살리는 영업
    데이터로 살리는 영업
    최은영 기자 2020.02.20
    [신동민 주한글로벌기업 대표자협회 회장·‘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새해 들어 경제상황이 쉽지 않다. 올해 1분기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도 아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거나 소비재 비즈니스를 하는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잠시 지나가는 현상일까. 위기는 항상 찾아온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2008년 미국 발(發) 경제위기도 겪어봤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듯이 위기이후 다시 탄력을 받고 성장한 경험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이 나타난다. 과거와 같은 급격한 경제위기는 아니지만 어려운 환경아래서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거대 유통업체가 대규모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에만 1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고 한계에 다다르면서, 매장 700곳 중 30%인 200여 곳을 폐점하는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전국의 요지에 매장을 가지고 있고 막강한 브랜드, 제품의 대량매입을 통한 가격 경쟁력, 축적된 마케팅 능력 등 장점은 수도 없이 많다. 그렇지만 비즈니스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온라인의 급성장이라는 추세를 피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절대적이다. 통계로 보면 온라인 매출이 전체 유통 채널 매출에서 40%나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원인을 온라인에서 보는 것도 합리적일 것이다. 온라인 쇼핑은 즉시성, 편의성을 중시하는 소비문화와 인터넷 모바일 기술발달로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빠른 배송, 상품추천, 간편 결제, 편리한 애플리케이션(앱) 등이 구매형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조사 통계를 보면 상품추천, 간편 결제 등이 급격한 매출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온라인 매장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바로 고객 데이터에 있다. 고객의 데이터를 가공해서 고객에게 편리성으로 돌려주면 고객은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 이런 사용빈도의 증가는 데이터를 더 풍성하게 해준다. 경쟁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막강한 지배력을 가졌던 대형 유통업체들도 어려움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데 소상공인들은 어떤 상황일까. 말하지 않아도 쉽게 예측이 된다. 개인 사업자 중심의 소매점은 1980년대 초 85%의 비중에서 40%이하로 떨어졌다. 대형업체들이 과감히 투자를 하고 있는 동안 소상공인들은 10년, 20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는 방법으로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비즈니스에서 무엇이 있어야 현재와 같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지난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실리콘 밸리의 ‘팔란티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를 다녀온 적이 있다. 팔란티어는 빅데이터 분야 대표 유니콘 기업(10억 달러 이상 기업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스타트업)인 데이터 분석 서비스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가 유명해진 계기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은거지를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이다. 실제 미국 정보기관들이 사이버 테러와 스파이 활동을 잡기 위해서 팔란티어의 빅데이터 기술을 사용하고, 최근 이란의 핵무기 개발 활동 감시에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팔란티어는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민간 기업에도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이 모은 설문 조사, 각종 엑셀 데이터, 홈페이지 열람 기록, 신용카드 기록 등을 모두 데이터로 통합해 고객의 목적별로 분석하고 상관관계를 파악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용한 영업기회를 영업 담당자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영업에 고객 행동 패턴과 시장에서 일반적인 고객 행동을 기반으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기회를 알려주어 추가 판매 기회를 극대화한다. 이런 형태의 데이터 분석 응용기술을 통해서 거대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영역을 가리지 않고 데이터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이런 기술들이 영업에 적용되고 있다. 기업에서 이런 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의 격차가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예전부터 우리는 영업을 경험에 의존해왔다. 소상공인들은 단골이라는 형태로 기억속의 데이터를 관리해왔다. 아주 한정된 지역에서는 기억에 의존하는 단골의 개념이 잘 작동해왔다. 유능한 영업사원들도 본인만의 데이터를 수첩에 빼곡히 기록하고, 경험이라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데이터를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성공했다. 그런데 비즈니스의 원리는 같지만 이제는 방법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사람의 메모나 기억력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이 나온 것이다. 암산을 하다가, 주판을 이용하고, 전자계산기와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도구를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된다. 이제는 비즈니스의 규모와 상관없이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이 향후 비즈니스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정부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각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주요 지원 사업들은 긴급자금지원, 인건비 지원, 카드수수료 조정, 세금부담완화 등 경제적 지원과 가맹본부와 가맹점간의 불공정 행위 방지 등 경영부분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원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살려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보면 단기적이고 대증적(對症的)인 처방이다. 소상공인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새로운 트렌드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론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신히 버티다가 업주만 바뀌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단기 자금 지원보다는 경영기법, 마케팅, 업종관련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경쟁력을 키우는데 훨씬 중요하다. 아울러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데이터를 활용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꼭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기업지원과 바우처 등을 통해서도 방법은 충분히 있다. 소상공인들이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자신들의 업체에서 데이터를 수집·관리·분석·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경쟁력 확보에 더 도움이 된다. 이런 근본적인 지원이 새로운 경영환경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영업'은 왜 가르치지 않는가
    '영업'은 왜 가르치지 않는가
    최은영 기자 2020.01.23
    [신동민 주한글로벌기업 대표자협회 회장·‘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정신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돌아서니 금방 새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운 직원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훌륭한 인력을 채용하고 적합한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의 성장과 영속성의 핵심이다. 그만큼 중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인력채용 과정에선 심각한 자원 불균형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직종에 따라서 훌륭한 후보자가 넘치는가 하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될 성 부른 인재가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새롭게 떠오르는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바이오 연구영역 등에서 수급 불균형은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가장 많은 인력이 있고, 일반적인 직종인 영업직에 좋은 인재를 구하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이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정작 영업 인력은 채용하기가 어려울까. 시장에서 영업직 인력은 풍부하지만 정작 영업을 제대로 교육받고 체계적으로 경험을 쌓은 사람은 정말 찾기 어렵다. 영업직의 중간 관리자 정도를 채용하자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나 마찬가지로 타고난 자질로 훌륭한 성과를 내는 인재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인력들은 개인적인 성과로는 빛을 낼지 몰라도 관리자가 되면 타고난 자질뿐만 아니라 많은 추가적인 능력을 요구받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영업은 주로 도제식(徒弟式)으로 선배들에게 배우거나, 신입사원 시절 영업직군에 배치받았을 때 기초적인 영업 교육 정도 받은 것으로 평생 동안 업을 유지한다. 비즈니스 환경은 매일매일 변하는데 영업은 그냥 어쩌다 배운 실력으로 영업이라는 고도의 전문 업무를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영업은 그냥 열심히 하면 성공하는 영역이 아니다. 영업은 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공존하는 영역이다. 영업인이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과학기술의 산물이고, 영업인이 관리하는 고객과의 접점은 철학과 심리학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영업직원은 회사를 대표하고,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적절한 상품을 제안하면서 설득하는 고도의 업무를 한다. 이런 고도의 복잡성을 요구하는 업을 그냥 감에 의존하거나 열심히 해서 헤쳐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다.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의 40%가 자기 전공과는 다른 직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한다. 구직자들이 원하지 않는 직종 중에 영업직이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대학 졸업생 중에서 원하는 직종을 조사해보면 경영학과 출신조차도 대부분 재무, 인사, 마케팅 직종을 선호하고, 영업은 항상 순위에서 밀린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 월등히 많은 수요가 있는 직종은 영업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에는 본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직종이 있겠지만, 외국계 기업의 경우에는 한국법인이 지사 역할을 하므로 대부분이 영업직군이다. 심지어 전체 인력의 70~80%가 영업직으로 이루어진 회사도 많다. 그런데 막상 인재를 구하다 보면 체계적으로 교육된 영업 인력은 찾기가 어렵다. 놀라운 점은 우리나라 대학마다 가장 많은 인원이 졸업하는 경영학과 출신들도 영업을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영업을 왜 우리는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왜 수요가 한정된 회계, 재무, 마케팅, 인사 등만 열심히 가르치는 걸까. 대학이 순수학문의 전당인가, 실무형 사회인을 양성하는 곳인가에 대한 논쟁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졸업생 중에 엄청난 비율의 인력이 영업이라는 직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은 영업이라는 것에 대해서 배워본 적이 없다. 회사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직종에 이렇게 체계적인 교육 없이 무방비로 투입되는 영역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영업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적으로 영업이라는 영역을 낮게 보는 편견과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인정받기 어려운 풍토 때문이다. 이제는 영업을 제대로 가르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수출규모를 자랑하고, 국가 경제에서 수출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나라이다. 결국 우리가 생산한 것을 외국에 판매해야만 나라의 경제가 유지가 된다. 그렇다면 판매하는 주체인 영업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한때 무역학과에서 해외 무역을 전공한 많은 인력을 배출했다. 물론 무역학과가 영업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많은 학교에서 무역학과는 다른 학과와 통폐합되었다. 그 만큼 전문가가 배출될 기회가 축소되었다. 그렇다면 국가 수입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 영업인들의 교육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되짚어 볼 시점이 되었다. 아직도 1억 달러 국가수출을 달성하던 과거의 열정, 자신감, 의지를 강조하는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영업인력 양성을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한다. 대표적으로 IBM 같은 회사는 영업인력 양성을 위해서 꼬박 1년이라는 기간을 전문 영업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에 투자한다. 또 다른 글로벌 기업의 예를 보면 ‘영업 리더 프로그램(Commercial Leadership Program)’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고급 영업 관리자 양성을 위해서 다양한 영역에서 순환적으로 교육과 경험을 시킨다. 무려 2년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영업 관리자로 투입한다. 훌륭한 영업인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어지는 것이다. 이제 전문적인 영업 교육을 할 시점이다. 영업학과처럼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나 최소한의 필수 과정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이공대 출신의 많은 인력이 영업 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영업은 전공을 불문하고 누구나 하는 삶의 기본 영역이다.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가게들이 있고, 음식점들이 있다. 그들의 본질은 무언가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직간접적으로 영업직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교환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기본적인 활동인 영업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영업을 제대로 가르치는 노력이 경제발전의 또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집중의 힘
    집중의 힘
    최은영 기자 2019.12.19
    [신동민 머크 생명공학 R&A 컨트리헤드·‘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2019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연말 약속을 부지런히 챙기다 보면 금방 크리스마스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게 된다. 송년 자리에선 어김없이 ‘올해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뭘 했는지도 모르게 한 해가 가버렸다’ 식의 아쉬움 섞인 말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가 이내 해가 바뀌면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안타깝지만 2020년 12월에도 비슷한 푸념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사실 이런 아쉬움은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도 비슷하게 겪는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왜 이런 뻔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 걸까.전쟁이론 중에 란체스터의 법칙(Lanchester’s Law)이 있다. 영국의 항공공학 엔지니어인 프레데릭 윌리엄 란체스터(F.W. Lanchester)가 1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을 분석한 결과로 1914년 발표한 수리모델 이론이다. 이론은 뜻밖에 간단하다. 전력상의 차이가 있는 양측이 전투를 벌이면 원래 전력 차이의 제곱만큼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 란체스터 법칙의 기본이론이다. 예를 들면 전투기 5대와 3대가 공중전을 벌이면 5대인 쪽이 승리하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동일하게 피해를 입는다면 5대인 쪽은 3대를 잃고, 3대인 쪽은 모두 잃는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전투기가 5대인 쪽에서는 1대를 잃고 4대가 살아남고, 상대는 3대가 전멸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무기의 성능이나 전투력이 같다는 전제하에 A와 B의 전력이 5대 3이라면 전투 시 실제 전력 비율은 25대 9가 된다. 전력이 낮은 쪽이 수치적인 전력을 넘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계산이다.이 법칙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중요한 전략으로 이용되었으며,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에 경영이론으로 많이 응용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경쟁자보다 효율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업전략 이론이 된 것이다. 투자이외에도 시장 세분화 전략에서 많이 응용된다. 선정한 타깃에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는 쪽이 승리한다는 이론적 기반이 된다. 시장점유율이 2위인 기업이 1위인 기업을 따라잡으려면 두 배가 아니라 두 배의 제곱의 힘이 필요하다. 3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실제로는 9배의 힘이 필요하다. 사실 간단한 이론 같지만 이를 무시하고 경쟁에 뛰어 들었다가 사라진 기업은 셀 수 없이 많다. 란체스터 법칙에 의하면 약자는 절대로 전쟁에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기록된 수많은 전쟁은 약자가 전쟁에서 이겨서 역사책에 쓰인 것이 아닌가.란체스터 법칙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강자와 약자가 동일한 장소, 동일한 무기와 동일한 방법으로 정면대결 할 경우에 반드시 강자가 승리한다는 가정이다. 법칙이 시사하는 바는 강자와 약자는 서로 다른 전략을 가지고 전투에 임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강자는 강자대로 약자는 약자대로 각자의 전략이 있어야 승리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란체스터 법칙이 말하는 기본 가정을 넘어서 약자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집중전략이다. 군세력이 열세라고 하더라도 집중을 해서 힘을 증폭시킨다면 우위의 전력을 가질 수 있다.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이 있는 기업이 아니라면, 강자와의 전력 차이가 가장 작은 부분을 선택하고 여기에 자원을 집중해 수적 열세를 이겨내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어록을 자주 접한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함선이 있었지만 적은 10배가 넘는 133척을 갖고 있었다. 그를 보좌한 장군들조차도 승산이 없다고 전투를 말렸다. 정신력으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닌데 누가 보아도 무모한 결단이었다. 그렇지만 이순신 장군은 란체스터 법칙을 가장 잘 이용한 전략을 구사했다. 동일한 장소가 아닌 좁은 해협에 적을 유인해 집중 공격을 가하여 격파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객관적인 전력을 뒤집고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집중이라는 전략을 사용했다. 집중을 이용해서 전력의 열세를 뒤집는 것이다. 회사에서 영업 관련 회의를 하다 보면 정말 열심히 뛰는 것 같은데 실적이 잘 나오지 않는 직원들이 있다. 이런 경우 조금만 깊이 있게 상황을 보면 원인이 보인다. 그들이 열성적으로 쫓아다니는 고객 리스트에는 경쟁사가 오랫동안 활발하게 거래를 해왔고 집중적으로 관리를 해온 경우가 많다. 잠재고객을 선정할 때에는 예산이 얼마인지, 누가 최종 결정을 할 것인지 등등 영업 관련 중요사항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파악해야 하고 더불어 경쟁자의 전력을 철저히 분석을 해야 한다. 규모가 큰 고객이라고 해서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반드시 실패하는 원인이 된다. 영업직원 뿐만 아니라 회사의 전략도 같은 경우이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무조건 시장점유율 1위의 경쟁사와 직접 경쟁하는 것은 패배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경쟁뿐만 아니라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겠다고 시도하는 회사의 전략이 성공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전력을 집중할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지극한 단순한 원리이지만 우리는 종종 이를 잊고 과도한 자신감을 무기로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한다. 우리가 연말에 후회하게 되는 이유도 간단하다. 내가 가진 전력 즉 시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 과대평가를 하면서 한 해를 시작한다. 의지에 가득차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분산시킨다. 우리의 이런 성급함과 무모함은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후회의 결과로 돌아온다. 정말 중요한 것 한두 가지라도 집중했다면 평온한 마음으로 연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꼭 하고 싶은 것을 세 가지만 정하자. 그 중에서 한 가지라도 정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해에 한 가지를 제대로 이루면 10년이면 가장 소중한 10가지를 이룰 수 있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다양성의 힘, 앨런 튜링
    다양성의 힘, 앨런 튜링
    최은영 기자 2019.11.21
    [신동민 머크 생명공학 R&A 컨트리헤드·‘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 전쟁을 2년 단축시키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년)이다. 튜링은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돌아와 연구를 하고 있었다.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정부암호학교에서 독일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는데 성공한다. 에니그마 암호해독은 2차 대전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전쟁 종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차 대전 발발 후 영국은 독일 잠수함에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해 영국과 중립국의 선박 1124척이 격침당할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독일은 유보트(U-boat) 잠수함을 이용해 대서양 해역을 완전히 제압했다. 영국은 해상항로가 막혀 물자부족으로 점차 패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특히 정보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영국은 독일의 암호화체계를 푸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독일의 에니그마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로 해독이 어려웠다.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에니그마는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성되어 사람의 연산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타자기처럼 생긴 에니그마는 전달할 문자를 타이핑하면 암화화 되고, 다시 암호화된 문자를 타이핑하면 일반 문자로 볼 수 있는 구조였다. 2200만개의 배열을 매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마저도 24시간마다 새롭게 생성되는 난공불락의 암호 생성기였다. 침몰하는 독일 잠수함에서 암호화 기계 에니그마를 입수하기는 했지만, 매일 바뀌는 배열로 기계 자체를 획득한 걸로는 암호 해독에 무용지물이었다. 영국은 암호해독 없이는 대서양에서 꼼짝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마침내 영국은 독일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면서 유보트의 예상위치, 진로, 목적지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고, 독일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했다. 어쩌면 암호해독 하나가 전쟁의 운명을 갈랐다고 볼 수 있다.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게 된 영국은 가짜 암호를 만들어 흘리면서 독일군을 교란했고, 마침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실시하면서 2차 대전은 종말을 맞게 된다. 사실 독일은 암호해독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은 스파이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에니그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은 자신들의 암호가 해독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튜링은 암호화 과정을 역 추적하는 봄베(Bombe)를 개량하고, 암호해독용 콜로서스(Colossus) 컴퓨터와 같은 기계를 개발하면서 독일의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24시간마다 변경돼 해독이 어려웠던 독일군의 암호를 5시간 내에 해독할 수 있었다. 튜링은 현대의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개념을 수립했다. 최근 AI 사용이 활성화하면서 그의 업적이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비운의 삶을 살다가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심지어 군사비밀이라는 이유로 그의 존재조차 기록에 남겨지지 않았다. 천재수학자 튜닝의 이야기는 2015년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로 세상에 알려졌다. 또 올해 영국의 50파운드 지폐의 인물로 선정되면서 60년도 더 지난 후에 기술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영국은 기존의 방법으로는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할 수 없었다. 기존의 암호해독은 주로 언어학자들이 담당 했지만 튜링은 수학자였고, 인간이 하는 속도보다 빠른 기계를 개발해서 암호를 해독하려고 했다. 기존의 암호해독가들은 이러한 튜링의 시도를 마땅치 않아 했다. 정신 나간 시도로 보았던 것이다. 만일 영국이 기존의 방법으로 독일의 에니그마를 계속 해석하려고 했다면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시장은 엄청난 변화 속에 있다. 기존의 잘 나가던 기업들이 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휘청거리고, 한편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급성장하는 기업도 나타난다. 과감한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결국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사람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 앨런 튜링(배네딕터 컴버배치 분)이 독일군 암호 ‘에니그마’ 해독을 위한 장치를 고안하고 있다.(사진=‘이미테이션 게임’ 캡처)튜링은 학창시절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지력을 보였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였다. 그는 너저분한 외모에 말을 더듬고, 남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자폐성향도 갖고 있었다. 영국군의 암호해독방법 개발 시에도 군대내의 규칙은 모두 무시했고,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우리 조직은 이런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자문을 해보아야 한다. 평범하고 동료들과 관계가 좋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좋은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면 조직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입사하고 비슷한 학교, 나이에 유사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로 조직이 채워져 있다면 결코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이 없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글로벌 기업들이 다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성은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남녀 차별을 해소하는 정도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기업들은 다양성&포용성 최고 임원(Chief of Diversity & Inclusion)를 두고 경영지표(KPI)로 관리할 정도로 집중을 하고 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즉 혁신과 매출 증대라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이 7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인종, 연력, 성별 등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혁신성은 19%나 높고 매출도 9% 컸다고 한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다양성을 확보한 기업들의 수익이 43%나 더 높았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과거 교육을 통해서 단일 민족 같은 순혈주의를 교육받았다. 심지어 이질적인 것에 적대감을 품기도 한다. 학연, 지연, 혈연과 심지어 나이, 취미, 정치적 성향까지도 분류하여 동질적인 그룹과 끈끈한 연대감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연대감 뒤에는 갈등, 혐오, 차별이 동반된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판단하는데 번번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튜링 같은 인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조직이 성공하는 것은 증명되고 있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정당한 목적
    정당한 목적
    최은영 기자 2019.10.24
    [신동민 머크 생명공학 R&A 컨트리헤드·‘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베트남 전쟁이후 조용하던 세계는 지구촌 반대편에서 들려온 뜻밖의 전쟁 뉴스로 소란스러워졌다. 남미에서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한다는 소식에 뉴스를 듣던 사람들은 영국이 왜 남미에서 전쟁을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무력으로 침공하면서 남대서양의 최남단에서 포클랜드 전쟁(Falklands War)이 일어났다. 포클랜드는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점령을 했으나, 1833년부터는 영국령으로 영국 이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포클랜드는 전라남도만한 면적에 78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제도였다. 항상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황무지로 3000여명이 거주하는 외딴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외딴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군부출신의 독재자였던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Leopoldo Galtieri) 대통령은 물가폭등, 경제 불황과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국내 상황이 아주 어려운 상태에 처해있었다. 국내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포클랜드를 침공하는 도발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포클랜드는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병력은 겨우 100여명에 불과 했고,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명분을 내세우며 공격해서 점령하기에는 너무 쉬운 대상이었다. 한편 영국은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였고, 2차 대전 이후 군사력도 현저히 쇠퇴한 상태였다. 막상 아르헨티나가 군사적으로 침공을 하자 영국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가장 큰 문제는 포클랜드 제도가 영국으로부터 1만3000㎞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영국군의 전력은 주요 항공모함도 모두 퇴역한 상태였고, 남은 전력이라고는 경(輕)항공모함 2대뿐이었다. 경항공모함은 수직이착륙기인 해리어 전투기만 운용할 수 있었고, 전투함이나 보급선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영국은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에 내어줄 경우 전 세계에 있는 다른 영국령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울뿐더러 쇠락해가는 영국의 국력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발에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포클랜드에서 영국군의 굴욕적인 항복 장면을 언론을 통해서 보면서 영국인들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하기로 국민과 의회를 설득하고, 긴급히 편성한 전력을 남미 포클랜드로 파병하게 된다. 영국은 막상 전쟁을 선포했으나 영국에서 포클랜드 제도까지 병력을 이동하는 데에만 3주 이상이 소요됐다. 영국이 실속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작은 섬을 지키기 위해 본격적인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아르헨티나군은 영국의 전격적인 참전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남미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지리적으로 포클랜드에 가까운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에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항공모함에 최첨단 전투기와 미사일까지 보유한 아르헨티나군은 영국군에게 맥을 추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해군, 공군이 무너지자 영국은 본격적인 상륙작전을 벌인다. 사실 영국본토에서 온 병력은 1개 여단 규모 밖에 되지 않았고, 험준한 지형과 혹독한 날씨 탓에 상륙작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포클랜드의 수도격인 포트스탠리(Port Stanley)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4500명의 영국군이 진격을 했으나, 아르헨티나군은 1만명 이상이 방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군은 1만3000㎞를 달려온 영국군에게 전쟁 개시 74일 만에 모두 항복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군의 객관적인 전력은 영국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영국은 부족한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여객선인 퀸엘리자베스2를 징발하여 병력을 수송하고, 대형 컨테이너선을 개조해서 헬리콥터를 운송할 정도였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항공모함을 보유할 정도로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항공모함도, 최신식 전투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헬리콥터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할 정도로 영국은 국가의 자존심 건 전쟁을 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참전한 군인들이 왜 전쟁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들은 훈련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버려진 불모지와 다름없는 포클랜드를 왜 점령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비가 올 때는 전투기가 이륙하지 않을 정도로 안이한 상태였다. 영국군이 상륙해서 스탠리에 진격을 하자 총 한번 제대로 쏘지 않고 항복을 했다. 군함 17척, 항공기 100여대만을 무기력하게 잃었을 뿐이다. 발생 포로는 1만 명이나 됐다. 아르헨티나 독재자의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전쟁과 영국의 국가 자존심을 건 전쟁의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포클랜드 전쟁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가 ‘어떤 무기와 얼마나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느냐’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아르헨티나 갈티에리 대통령은 포클랜드 전쟁 패배 후 항복을 하고 나서도 승전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언론을 조작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표팀이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다른 나라로부터 전쟁에 패배한 사실을 접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다. 결국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갈티에리 독재정권은 붕괴되었다. 모든 조직은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목적 자체에 집중하다가 목적의 정당성이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간과한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수익만 추구하는 목적으로는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수익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기업의 수익 극대화를 넘어선 대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수익은 목적 달성을 위한 과정에서 발행하는 결과물일 뿐이다. 과연 우리 조직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의 각기 다른 전쟁의 목적은 포클랜드 전쟁의 승패를 갈라놓았다.
  • [신동민의 인생영업]강자와 싸우는 법
    강자와 싸우는 법
    최은영 기자 2019.09.19
    [신동민 머크 생명공학 R&A 컨트리헤드·‘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베트남은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1964~1975년)으로 기억된다. 한국군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총 32만 명의 병력 규모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5000명 가까이 전사하거나 실종됐고 7000여 명이 부상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우리가 알고 있는 베트남 전쟁 이전에 베트남은 외세와 기나긴 전쟁을 치러왔다. 베트남은 1858년부터 1945년까지 거의 10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항복하면서 인도차이나(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의 식민 지배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베트남은 기대했던 해방보다는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의 진출로 또 다시 식민통치를 받았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독립이 되는 듯 했으나, 다시 한 번 프랑스의 지배시도로 식민통치를 받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재진출에 저항하면서 1946년 12월 이후 전국적인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바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년)이라고 불리는 베트남의 대불 전쟁이다. 베트민(Vietminh·베트남독립동맹회)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게릴라전으로 기나긴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가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 3~5월)였다. 프랑스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대규모 작전을 계획한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서쪽(160km) 라오스 국경에 위치한 조그마한 부락이었는데, 라오스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산악으로 둘러싸인 계곡 지역이었다. 베트남 특유의 게릴라전에 전쟁이 장기화하며 곤욕을 치르던 프랑스는 베트민 군을 디엔비엔푸 지역으로 끌어낸 뒤 결정타를 가해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프랑스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화력과 물자를 총동원했다. 심지어 그들은 물자 공급을 위해서 활주로와 요새를 건설하고, 엄청난 병력을 배치했다. 작은 협곡에 1만3000명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압도적인 전력을 배치해서 베트민 군을 일시에 소탕하려고 했다. 베트남의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 베트민 군 사령관 보구 엔 지압(Vo Nguyen Giap, 1911∼2013) 장군은 프랑스 군의 이런 작전을 간파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지역이 전략적으로 우세하다고 판단하고 베트민을 유인해서 소탕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베트민은 유인을 당하는 척 적을 속였다. 프랑스가 항공기로 무기와 군수물자를 엄청나게 준비하는 동안 베트민은 주변 산악에 무기와 군수물자를 쌓았다. 프랑스 군이 항공기로 운송하는 것과 베트민이 길도 없는 산악지역에 물자를 준비하는 것은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베트민은 프랑스 군의 정찰을 피해서 울창한 밀림의 산악지역에 전쟁 물자를 쌓아가고 있었다. 산악에 도로가 없으니 모든 물자를 인력과 자전거에 의지해서 옮겼다. 먹을 양식, 탄약, 대포를 산악으로 이동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대포를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포는 가능한 한 모두 분해를 하고 밧줄로 몸에 묶어서 끌고 이동을 해서 200문을 디엔비엔푸 주변의 산악에 배치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인력으로 대포를 이동해서 고지에 배치를 한 것이다. 전쟁 물자를 수송하는데 25만 명이 동원되어 수백㎞ 거리를 이동하여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 것이다. 이중에서 절반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5만여 베트민 병사들은 그렇게 결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압 장군은 전투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호를 파고 무기를 이동하면서 그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1954년 3월 13일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계곡의 언덕에 집결한 곡사포, 박격포, 대공포, 무반동총 등이 계곡아래 프랑스 진지로 일제히 불을 뿜었고, 프랑스 군은 포가 어디서 날아오는지 구분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프랑스 군은 1만3000여명의 병사가 집결돼 있었으나 베트민이 200여문의 포를 배치했을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5만여 명의 베트민은 프랑스 병력의 3배가 넘는 규모였다. 최정예부대와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프랑스 군은 무참히 패배를 하게 된다.1954년 5월 7일 전쟁이 개시되고 55일 만에 프랑스 군은 모든 진지를 빼앗기고 항복했다. 이로 프랑스는 5000명이 전사를 하고 6300명이 포로가 되었다. 결국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완전히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된다.프랑스는 화력과 물자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완패를 했다. 그들은 비행기 한 대 없고, 개인화기로만 무장한 베트민이 진지의 방어벽을 뚫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베트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더구나 밀림에 숨겨진 200문의 포와 대공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프랑스 군의 전술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지만, 밀림속의 베트민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오만한 자신감과 맹목적인 과거의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트민 승리의 중심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평범함 베트남인들과 지도자인 지압 장군이 있었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세계 최강국들인 프랑스, 미국, 중국을 물리치고 오늘의 베트남이 있게 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3불(三不) 전략은 대불전쟁에서 분명히 보여주었다. 3불 전략은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고,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으며,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경쟁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전략으로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프랑스는 적인 베트민을 파악하는데 철저히 실패했고, 베트민은 프랑스의 전략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고, 불리한 지형에 포를 배치함으로써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적이 유인하는 것을 오히려 공격의 기회로 만들었다. 지압 장군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고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조직에 분명한 전략과 얼마나 많은 지압 장군 같은 전략가와 행동하는 구성원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물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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