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송길호

기자

이근면의 사람이야기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기업의 정치적 책임' 새 이정표 세울때
    '기업의 정치적 책임' 새 이정표 세울때
    송길호 기자 2021.05.06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2년 전 영국의 시장조사기업 입소스(ipsos)가 전 세계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직업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인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단 8%에 그쳐 최하위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실망감의 다른 표현이다.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니 성별, 지역, 계층 간 갈등은 더욱 골이 깊어지고 탈조선, N포, 욜로 같은 신조어들이 횡행하게 된다. 반도체, 스마트폰, 조선에서 세계 1위를 휩쓸고 방탄소년단, 기생충이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국민의 자랑거리가 되는 동안 우리 정치는 이념정치, 진영정치, 막말, 극한투쟁, 말바꾸기, 뻔뻔정치로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어 있다. 정치불신이 그저 정치에만 영향을 미치면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불신은 정치인이 만드는 법과 제도, 정부운영 기조에 대한 사회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른 사회적 신뢰의 약화는 사회적 비용증가로 이어져 기업의 경영활동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5년 단임 정부가 다수 국민의 반대와 전문가의 우려를 거슬러 무리하게 밀어붙인 각종 규칙이 정권이 바뀐 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기업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과감한 투자를 택하기보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막대한 잉여자금을 금고에 쌓아두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은 서서히 잠식되고 말 것이다. 결국 정치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도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은 기업의 반칙행위엔 엄격하지만 경제권력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보장한다. 스웨덴은 기업과 노조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내 유럽에서 가장 파업을 많이 하는 나라에서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탈바꿈했다. 어떤 모델이든 그 근저엔 정치권력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자리잡고 있다. ◇새로운 다양성을 이제 준비해야 한다우리 정치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갈라진 틈을 메우고 한국이 G3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정체되어 있는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적 질타가 쏟아질 때마다 혁신, 쇄신, 개혁을 표방하며 다양한 개선책을 내놨지만 극적인 변화는 잘 없었다.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기존 정치권의 시각과 경험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물갈이를 해봐야 여전히 짠물일 뿐이다. 강물이 바다와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은 강물에 풍부한 영양물질과 바다에 풍부한 플랑크톤이 어우러져 어족자원의 성장에 더없이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정치라는 바다에 기업의 시각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강물이 되어 기수역을 만들어야 산업현장에 꼭 필요한 제도와 법규가 도입되고 더욱 풍부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정치권에 뛰어들고 제3섹터의 학자, 전문가들이 이에 호응해 사회 전체적인 메아리가 될 때 정치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해충돌과 갈등을 더 폭넓게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이전까지의 음습한 정경유착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 과거의 정경유착이 링 아래에서 절차와 규칙을 외면한 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공생을 의미했다면 기업의 적극적인 정치관여는 링 위에서 규칙을 준수하면서 하나의 정치적 행위자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과거 오너들이 정치와 불가근불가원식 관계를 지향했다면 미래의 오너들은 더욱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시도해야 한다. 세계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준다면 우리 정치의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실력도 더 성장하지 않겠는가? 신뢰받는 정치가 실력 있는 기업을 키워내는 날을 기대해본다.◇ESG를 넘어 ESGP(Political)를 향하여이제 우리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 군사력은 세계 6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격과 세계적 외교무대에서의 대접은 그만 못하고 발언권 조차 약하며 상존하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 스스로의 운신의 폭을 가질만한 자강력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간 수많은 국제 이해를 담당하는 기구에서도 한국인의 진출은 미미하다. 세계의 흐름에 둔감해진 결과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위치를 어떻게 정립하자고 주장하는 지도자도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국제적 자강을 부르짖고 세계의 G1,G2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꿈을 가져야 우리의 내일이 ‘안전’하다. 결국 경제력의 기반은 기업으로부터 출발한다.세계 속 기업을 더 많이 키워내는 것은 곧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최근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 경영이 기업 경영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업의 자각과 책임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참으로 중요한 책임과 역할이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는 기업으로 영속되어야 하고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과 유지에 진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정치적 책임’에서도 새로운 이정표와 전범을 세워나갈 때다. 한국은 세계사의 불가능에 늘 도전하는 정신으로 자유화, 산업화, 민주화, 문화적 세계화를 이룩한 불굴의 민족이기에 더 큰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시대정신으로 보면 지금 기업의 책무와 소명은 우리를 세계 속으로 이끌어갈 기관차로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는 일이다.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일자리 사다리 만들 텐가, 1억씩 줄 텐가
    일자리 사다리 만들 텐가, 1억씩 줄 텐가
    안승찬 기자 2021.04.01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한때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주의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선 후 자유무역질서를 강요하는 것이 사다리를 걷어차 개발도상국이 올라서지 못하게 하는 행위라는 주장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사다리 걷어차기가 국가 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 안에서도 더 좋은 교육, 경제, 학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각종 사다리가 있다. 모든 자원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에 개인과 사회는 저마다 처한 환경과 역량에 근거해 노력과 경쟁을 하고 일부가 사다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누구든 처음부터 사회 각 부문의 꼭대기로 올라갈 수는 없다. 밑바닥부터 경험과 실력을 쌓고 사다리 한 칸씩 차근차근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 큰 것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교육받고 경험하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건강한 사회는 의지만 있다면 가급적 많은 이들이 얼마든지 경쟁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경쟁은 치열한데 사다리를 밟고 올라설 수 있도록 선택된 사람의 수가 너무 적으면 양극화는 심화한다. 높은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이 손쉽게 사다리 시스템을 무력화한다면 공정의 가치가 위협받고 사회 구성원 간 불신이 팽배해질 것이다. 일반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고 튼튼한 사다리 시스템이 자리 잡은 사회를 우리는 선진국이라 부른다.일자리, 취업 시장에도 사다리가 있다. 경기가 아무리 좋아도 모두가 선망하는 많은 급여, 좋은 복지를 제공하는 좋은 일자리는 늘 구직자 수보다 적다. 모든 일자리를 신의 직장으로 만드는 일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의 최선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에 들어갈 능력을 갖출 수 있게 기회를 가급적 평등하게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다양한 층위의 일자리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가정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졸업이 늦어지면 대기업 취업이 물 건너갔다는 말이 회자되고, 첫 직장이 중소기업이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있다. 일부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일자리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는 사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취업 시장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의 합의된 인식이다. 누구나 원한다면 일할 수 있고, 기회가 오면 더 좋은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사다리가 확충되어야 청년들의 좌절과 눈물을 닦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하지만 최근 대기업들의 수시채용으로 직원을 뽑는 추세는 일자리 사다리 확충이라는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공채가 불필요한 스펙 쌓기, 과도한 수험 열풍으로 사회적 낭비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평한 취업기회 보장이라는 측면에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수시채용이 보편화되면 동일한 조건 하에서 공정한 평가의 잣대로 직원을 선발하는 공채제도의 장점이 사라진다. 해외연수, 인턴경험, 실무경험 등이 갖춰지지 않으면 문턱을 넘기 힘든 수시채용 제도 하에서는 좋은 인턴 자리를 제안해 줄 수 있는 학교 선배의 존재가 취업의 성패를 가르는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고용환경의 유연성, 즉 취업, 퇴직, 전직이 자유롭지 않은 탓에 오히려 취업 기회는 박탈되고 기업 생산성과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신입사원을 대거 육성해 사회에 유용한 인력으로 공급하는 대기업 공채와 직원 육성제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학교와 기업, 학문과 실용, 질과 속도라는 격차와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 해온 것은 물론, 전문가 양성과 일자리 이동을 위한 사회적 교육시스템에 일정부분 기여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공채제도를 없앤다면 사회적 역할과 공정성의 문제가 오히려 더 후퇴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합리적 의사결정인지 대학과 국가 인재 양성시스템 간의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오히려 부모찬스를 쓸 수 없는 계층의 공정한 채용기회를 없애는 사다리 걷어차기 일 수도 있다.작년에도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기업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반과 경쟁력이 있을 때 우리에게 좋은 일자리는 많아진다. 정치경제 노동 사회적 환경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청년층 입장에서는 그들의 미래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다. 이들이 가난해지는 것을 어느 누가 바라겠는가. 어느 부모가 바라겠는가. 과연 일자리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청년들에게 기본소득 1억씩 줄 수 있는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우리 아이들을 빌어먹게 할 것인가, 벌어먹게 할 것인가. 고기를 잡아 줄 것인가 잡는 방법을 알려줄 것인가. 결국 사다리론의 중요한 부분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 공평한 분배가 아닌 기여 한 만큼의 보상을 바라는 추세에 적합한 사회시스템에 있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직장선택의 사다리 통로를 더 넓히는 데 사회적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전통적 의미의 정규직 일자리가 급속도로 ‘긱’ 일자리로 대체되고, 일자리에 국경과 시간의 장벽이 없어지는 시대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우리 20대, 30대들이 멸종당하지 않고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층위의 일자리들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보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좋은 사다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의지에 따라 당장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많은 기회, 더 공정한 기회가 모두에게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지금 이 시대, 이사회의 역할이 아닐까.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靑 일자리 상황판, 생산성 상황판으로 바꿔라
    靑 일자리 상황판, 생산성 상황판으로 바꿔라
    안승찬 기자 2021.03.04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라 더욱 혹독했던 겨울도 곧 지나가리라. 특히 올해는 잃었던일상과 멈춰버린 세상을 털어내고자 저마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도약의 새봄을 맞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할 듯하다. 코로나가 할퀴고 간 뒤 가까스로 남아 있는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가 동시에 러쉬(rush)하는 그야말로 ‘일자리 빅뱅’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대전의 시작이다.지금은 치열한 봄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하고 체력을 다져야 할 때다. 쇠 재두루미는 겨울을 나기 위해 해발 8000m 히말라야 산맥을 일년에 두 번 넘는다. 바람만이 넘는다는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선 체질을 바꾸고 힘을 비축한다. 철새도 생존을 위한 처절히 몸부림 치는데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비한 기본기와 플랜B를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미 OECD 37개국 중 36개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며 속도전과 조기 경제회복 작전이 한창이다. 우리는 이 경제전쟁 경기장에 마지막 주자로 입장했다. 채비가 늦어진 만큼 시간과 격차를 줄이기 위한 스퍼트가 절실하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답은 다시 ‘생산성’이다. 일자리에 생산성이 결여되면 생존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자동차 산업만 보아도 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삶의 공간이 되는 모빌리티 패러다임의 변화로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의 완성차 3사는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시장 점유율이 20%를 넘나들었지만 작년 기준으로는 15.6%로 줄었고 그 자리를 수입차들이 빠르게 메웠다. 문제는 해가 바뀌었지만 위기를 돌파할 동력이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이 원인이라고 특정하기 쉽지 않을 만큼 대내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친환경,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업계의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고 공유차의 확대로 전반적인 판매대수가 준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존폐의 기로에 서게 한 데에는 극심한 노사분규, 친노동 반기업적 규제환경에 따른 생산성 감소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르노그룹 호세 부회장이 부산공장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에는 생산성 악화에 대한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부산공장 제조원가가 스페인 공장의 2배이며 작년 기준 제조원가 점수가 전세계 르노 19개 공장 중 17위에 그쳤다는 부분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회사의 명운이 촌각을 다투는데도 노조는 “작년 한 해 적자로 직원을 사지로 모는 것은 직원을 단순 소모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쟁의권을 발동해서라도 막을 것이라 예고했다. 그게 과연 답일까. 경직된 고용환경, 대립적 노사관계가 불러온 생산성 악화는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HPV)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현대차 울산 공장의 대당 투입시간(HPV)가 26.8시간, 르노삼성이 20.86시간, GM군산이 59.31시간에 달했다. 미국의 GM포트웨인이 20.04시간, 스페인의 르노 바야돌리드가 16.24시간을 기록했다. 이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니 본사에서는 물량배정을 줄이고 그에 따라 이익이 줄어든다. 이익이 없어지면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노조는 파업에 들어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 생태계 자체가 고사할지 모른다. 2018년 기준 자동차산업에 직간적접으로 고용된 인원이 국내 총 산업계 고용인원의 7.1%에 해당하는 190만명에 달했다. 2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일자리가 달린 문제다.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었다. 고용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이라는 근원적 치유 없이 고용지표에만 매몰되면 헛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생각만큼 만들어지지 않자 정부는 90만개에 달하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저임금, 단기 일자리라도 만들어서 해결할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 경쟁력을 유지하고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도록 해 양질의 일자리를 지킬지 방향성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다시 논란이 점화된 ILO 협약 비준 또한 언젠가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지금이 적기인지는 의문이다. 해고자의 노사가입은 노사관계를 더욱 경직시킬 것이고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한 문제인데 이를 예방할 대안도 함께 마련되고 있는 것일까. 노동과 생산성은 국내문제가 아닌 국제문제다. 점점 더 가혹 해지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노사관계 불균형은 기업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킨다. 한쪽 날개만 가지고는 날 수 없다. 기업이 원하는 방향도 듣고, 다듬으며 다른 쪽 날개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루 살고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할 텐가. 기업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는 정치사회적 힘도 필요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 다는 것을 한마음으로 말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을 넘어 ‘이전백(이십대 전체가 백수)’으로 갈 수 있다. 그냥 두는 것은 책임의 방기 아닌가.생산성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 과감한 세제, 법률 지원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생산성 향상을 통한 국가경쟁력의 근본적 개선. 이것이 일자리 문제의 해답이다. 청와대에 걸린 일자리 상황판을 생산성 상황판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세상의 진보와 진화는 세상에 대한 체념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체념을 넘어설 때 도달할 수 있다. 이제 또 한 번의 시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강한 국가에 대한 꿈은 없는가. 더 이상 눈물 흘리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강북에 '제2, 제3의 판교' 세우자
    강북에 '제2, 제3의 판교' 세우자
    편집국 기자 2021.02.04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뉴딜 이야기가 한창이다.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는 기존의 경제구조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표방했다. 정책의 혜택을 받은 노동자 계층과 남동부 지역은 미국의 부흥을 이끌었고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때마침 두 달 여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는 잊혀진 사람들과 소외된 지역을 돌아보고 코로나 이후를 제대로 준비할 리더를 뽑을 좋은 기회다. 경제와 국가를 탄탄하게 할 지도자를 키워낼 수도 있다. 과연 이번 선거를 통해 서울은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 미래 먹거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서울의 소외된 지역, 잊혀진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서울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통칭 강북 말이다. 부동산 기사에선 ‘노도강과 그 주변’이라고도 불린다. 전선지중화율, 전철역,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수 등 수없이 많은 지표가 강남을 살기 좋은 곳이라고 웅변한다.사람들이 강남을 선망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돈과 정보, 권력이 머문다는 점 때문이다. 강남이 서울의 물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빨아들이는 동안 강북은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고, 그 후광은 경기남부를 따사롭게 비추고 수원, 성남, 용인을 살찌웠다.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부동산 가격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남에 삼성, 현대차 같은 전통적 대기업 본사들이 들어서고, 네이버, NC, 카카오 등 유수의 IT기업들이 판교를 밝히는 동안 강북은 정체되었다. 경기북부는 접경지대라는 마이너스 요인까지 떠안아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외면 받았다. 이 심각한 불균형과 그에 따른 격차는 무수한 사회적 비용을 양산한다. 불균형을 완화하고 부족한 곳을 메우려면 젊은이들이 서울의 북쪽에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새벽별 보며 강남으로, 판교로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써야 할 돈과 시간, 열정을 아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노원, 도봉, 강북, 고양, 파주, 의정부, 남양주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청년들이 모여들고, 청년들이 모여야 아이디어와 자본이 들어온다. 마침 단군 이래 가장 우수한 교육을 받은 사회 초년생들을 대거 공급할 주요 대학들이 대부분 강북에 있다. 서대문, 성북, 동대문 등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이 근처에서 취업을 하고 신혼집을 얻어 뿌리 내리고 살다보면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침체되어 가던 동네에 활력이 깃들게 된다. 젊은이의 도시 판교도 2005년 시작된 그 구상이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1990년대만 해도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논밭이 가득했던 곳이 지금은 거대한 일자리 타운이 되었다. 경기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1259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상시로 일하는 노동자 수만 6만5000명정도 된다. 입주기업의 약 93%가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문화콘텐츠기술(CT) 등 첨단업종인데 한 해 매출만 107조2000억원에 달한다. 같은 해 경상북도 전체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107조였으니, 14만평짜리 단지 하나가 한 개 도와 맞먹는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생된 일자리까지 생각한다면 가히 10만 일자리 도시로 재탄생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64%가 20·30대다. 전체의 64%는 분당, 광주·용인, 과천·의왕·수원, 서울 한강이남 등 4개 지역에 거주한다고 한다. 성공한 산업단지 하나가 수 만명의 젊은이를 인근 지역으로 불러모으는 것이다. 주거 환경 또한 천당 밑에 분당을 뛰어 넘었다. 서울 북쪽에 제2, 제3의 판교가 자리잡으려면 기업이 강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주거환경이 달라진다. 기업유치는 지자체 장의 의지와 노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새로운 서울시장은 서울 북부지역을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마스터플랜, 서울형 뉴딜 계획을 구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좋은 기업이 자리 잡고, 좋은 인재가 들어오려면 교통, 주거, 교육, 문화 등 삶을 구성하는 전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 청년 일자리는 새로운 드림시티와 뉴딜시티에서 용트림을 시작할 것이다. 22세기형 최첨단 계획도시를 꿈꿔본다면 어떨까. 일자리는 물론, 일과 가정과 삶과 여가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우스 팜과 리사이클로 도시 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도 꿈 꿀 수도 있다. 자연친화적이면서 탄소중립적이고 쾌적하고 에코화된(모든 도로를 지하화 하는 것도 가능) 하나의 스마트 시티를 만든다면 전 세계에 도시와 도시의 운영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경쟁력 있는 수출 상품이 생기는 것이다. AI형 도시 ‘뉴판교’가 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상징적 의미로 강북지역에 뉴판교의 꿈을 꾸면 10만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울이 동북아의 허브를 지나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다. 남에는 판교, 북에는 강북의 뉴판교로 더욱 멋진 서울, 새로운 서울의 꿈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 넓은 서울, 더 큰 서울.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미래의 서울 아니겠는가. 서울시장은 전국 광역 지자체장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중앙정부의 간섭을 가장 덜 받으면서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더군다나 분단 시대엔 서울 북쪽이 대립의 최전선이었지만 통일 이후엔 이곳이 대륙진출의 배후기지가 될 것이다. 한강 하구를 통해 바다를, 인천 공항을 통해 하늘을, 대륙철도를 통해 육지를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최적의 입지가 서울 북부, 경기 북부 지역이다. 이런 파격적 발상을 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시장을 뽑는다면 서울과 서울시민에겐 분명 이전과 차원이 다른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이다. 청년의 도시 서울,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를 위한 ‘서울형 뉴딜’을 꿈꾸어 본다.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세계로 청년 일자리를 신축하자
    세계로 청년 일자리를 신축하자
    편집국 기자 2021.01.07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청년 일자리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고용동향 데이터가 발표됐다. 코로나 한파의 영향도 있겠지만 청년에겐 유독 매섭다. 지난해 11월 20대 취업자 수가 약 20만명 감소하며 전 연령에서 가장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였다. 청년층 실업률이 IMF 이후 최고치를 갱신했다고 하니 참담하다. 20대 인구는 680만명인데 취업자 수는 360만명이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 현실이 된 셈이다. 노인 일자리만큼 중요한 것이 청년 일자리다. 미국의 ‘트윅스터(twixter)’가 그랬고 일본의 ‘캥거루족’이 그랬듯 이는 부모 세대와 사회전반에 걸친 부담으로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청년은 국가의 내일을 책임질 세대인데 이대로 방치되어야 할까. 이 시국에 사회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도 사회의 책임 아니던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모든 경제 정책의 기본은 일자리다. 성장이던 복지던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일자리가 첩경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사회 전체의 활력과 성장동력이 급격히 꺼지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이 정교하고 촘촘한 복지제도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운영해 왔지만 결국 이러한 복지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도 사람들을 스스로 일해서 사회의 발전에 동참하도록 하는데 맞춰져 있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일자리 문제는 참 어렵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집권하면 제일 먼저 내세우는 게 취업난 해소고 가장 질타를 많이 받는 문제 역시 일자리다. 해외로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 취업 기회를 엿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대통령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더 넓은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라는 취지의 이야기였지만 장기화한 실업난에 피로도와 초조함이 깊어진 젊은 세대에게는 공감능력 떨어지는 기성세대의 헛발질로 보였을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보편화하고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계의 수준이 급속도로 올라가는 오늘날 어쩌면 일자리 문제를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어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에 대한 인식이 심각한 한국은 문제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할 곳이 있어도 젊은 세대가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정부가 대기업에게 좋은 일자리를 강제로 만들라고 팔을 비틀 수도,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읍소할 수도 없다. 일자리의 차이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와 자기 만족도도 다양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목표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떤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먼저 도출한 후에 방법론을 따져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한 채 무턱대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고 팔을 걷어붙이면 몇 달 일하다 사라지는 ‘알바’ 자리만 양산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좋은 일자리는 변화하는 방향의 연장선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가공성 중심 제조업의 4차산업화나 소프트웨어, 금융서비스 등과 같은 자리. 또 IT보다 훨씬 시장이 큰 의료 바이오 시장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식이다. 문제는 세계 경쟁력이다. 환경과 인식, 법과 제도, 근로의욕과 성취의식, 사회적 자본의 축적 여부, 통합과 협동을 원활하게 하는 대화, 조정, 수용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글로벌 기준과 흐름의 환경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둘째, 미래 한국의 방향과 수준에 적극적인 적응력을 갖춰야 한다. 셋째, 국가 차원의 필요 인재양성 등 생존을 위한 대비성이 필요하다. 넷째, 고부가가치의 정신자산을 축척 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개인의 시장가치를 끌어올리고, 국가적으로도 이롭다. 과거 한국사회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시장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쓸 상품이 아닌 세계인이 쓰는 상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이 그 역할을 해왔고 IT, 바이오가 최근 여기에 합세했다. 최근 문화산업이 새로운 일자리의 보고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나 아직은 섣부르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영화 한 편이 아니라 할리우드처럼 소위 ‘대박’ 영화를 지속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줘야 문화산업계에도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 질 것이다. 매년 나오는 고용관련 지표는 암울하기만 하다. “어차피 취직 안 된다”며 구직을 포기한 20대들도 23개월째 늘고 있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20대 후반(25~29세) 인구가 올해도 5만명 가까이 늘어나지만 신규 일자리 수요는 여전히 어둡다.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난관에 봉착하는 것이다. 가장 힘 있고 창의력과 진취적 기상이 높은 2030세대의 열정을 사장해선 안 된다.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기성세대의 역할이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이들은 청년들이다. 지금부터라도 20, 30대의 일자리를 가장 우선시하는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많아질 때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자연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지 모른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우리 사회의 지혜를 모을 때다. 청년의 자각과 꿈은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 길은 세계로 향하는 ‘눈과 정신’이다.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기업들, 더 크게 말하라
    기업들, 더 크게 말하라
    편집국 기자 2020.12.03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 일자리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 쇼크가 본격화한 지난 2분기 일자리 증가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제조업 일자리는 3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일자리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2030 일자리가 16만4000개 사라지는 동안 노인 일자리는 22만5000개 늘어났다. 노인의 일자리는 앞으로 더욱 견고해질 전망이다.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올해 74만개에서 내년엔 80만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코로나 경제블록으로 제조업 리쇼어링에 대한 강한 공감대가 형성된 글로벌 동향과는 온도차가 상당해 보인다. 좋은 일자리는 누가 만들까. 왜 실종되고 있을까. 설상가상 고졸 실업계의 취업률도 최악을 기록하며 ‘일자리 사다리’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 덕에 대학 진학이 강요되는 게 현실이다. 자연스레 대학의 구조조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흡사 도미노 현상이다. 제조업은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52시간’은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근로자의 임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노동환경이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 또한 심대해지고 있다. 아울러 ‘공정(?)경제 3법’ 입법이 논의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재계도 뜻을 모아 다방면으로 부작용에 대해 설득했지만 여당은 어떻게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국민의힘마저 원칙적 찬성 입장을 내비치자 막다른 골목에 몰린 형국이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속수무책이다. 개별 사안과 쟁점에 대한 단기적 대응은 대응대로 하되, 정치권력의 일방통행에 힘 한번 못써보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서 고민해볼 때다. 이 지형과 구조를 그대로 두고 예측 가능한 기업경영과 국가경제의 발전을 말하기 어렵다. 정치지형의 변동에 따라 늘 요동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경제계의 안이한 대응이다. 국가의 방향은 보통 다수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결정되고 이는 정책과 법률로 구체화 된다. 이러한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시민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직접 제도를 만들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에 투신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재계는 미온적이다.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이나 법안이 도입되려 할 때마다 ‘반기업, 친노동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국민들에게 이러한 목소리가 얼마나 잘 전달 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법과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당선과 집권에 도움이 되는 쪽에 더욱 기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 기업이 정치권력과 불가근불가원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정치권력도 국민의 눈치를 보고 국민도 권력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려 하는 세상이다. 그 추세를 읽지 못한 채 급격히 변하는 권력지형, 여론지형을 바꾸기 위해 과연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했는가.물론 기업들이 운신의 폭을 좁게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음으로 양으로 수혜를 누렸던 기업들에 대한 이른바 ‘원죄’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이 시기의 국내 기업이나 초기 수출기업들이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한 방식이 부당하거나 올바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이다. 이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기업은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시장이 심판자인 셈이다. 종전의 과오는 반성을 통해 과감히 떨쳐내고 세계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일이다. 그러려면 균형 잡인 기업인의 시각이 필요하다. 거창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기 전에 ‘기업의 본질’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영리추구와 구성원의 미래 성장이라는 기업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업은 국가의 중요한 기간요소다. 결코 작은 구성 단위가 아니다. 이제라도 기업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소엔 정치권과 거리를 둔 채 관심도 없다가 새로운 규제를 들고 나올 때 부랴부랴 대응하면 이미 늦다. 로비의 수준을 넘어 더 많은 접촉과 인적 교류가 필요하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라면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정책 지원과 후원에서부터 직접 참여까지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도 정치권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다만 과거와의 단절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국민들도 기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이들의 목소리를 재계의 이익을 위한 일방적인 주장, 부당한 경제력 남용, 지배구조를 위한 전횡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옳지 않은 것은 판단기준과 시스템을 바로잡아 개선해야지, 벼랑 끝으로 몰아 세워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기업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기업이 책임을 가지고 추진하고 투자할 때 늘 수 있다. 기업이 앞장서고 사회가 응원하고 정부가 문제를 사전에 제거해주는 3박자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세력이 되고 사회를 향해 응집된 목소리를 일관되게 발신했을 때만이 여론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참여는 음습한 정경유착과는 결이 다르다고 믿는다. 재계가 규범과 도덕적 한계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당하게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경제계도 정치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공식적 의사결정의 장에 들어올 때다.기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국가와 국민의 양식이 되고 세계로 향하는 첨병이기에 바른 성장과 기여는 우리에게 더 큰 과실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더욱이 기업의 결실과 열매는 마지막 한 톨까지 이 땅에 남겨 놓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코 개인이 가지고 떠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말이다.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노인일자리, 고용이 아닌 복지다
    노인일자리, 고용이 아닌 복지다
    편집국 기자 2020.11.05
    한국 노인들이 가난하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비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를 기록했다. 2위 미국이 23.1%, 3위 이스라엘이 19.9%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노인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가늠할 수 있다. 젊었을 땐 그나마 몸에 힘이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나이 들어 가난한 것은 사람을 무척 우울하고 지치게 만든다. 높은 노인빈곤율은 높은 노인자살률과 깊이 연동돼 있다. 65세 이상의 자살률 역시 OECD가입국 중 압도적 1위다. 기대수명은 날로 늘어가는데 고용은 불안정하고 모아둔 돈은 없는 노인들이 이토록 많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다. 지속적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이 노인빈곤 문제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 수 없다.가난한 노인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존엄한 노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돈이 있어야 한다. 노후를 대비해 자산과 소득을 축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으나 여전히 모아둔 돈 없이 노년층에 접어든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 늘어나는 기대수명에 따른 정년 연장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을 통해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정년이 지난 후에라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기 때문이다.일각에서는 노인일자리가 늘어난 만큼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문제 제기도 있다. 노인들이 은퇴를 늦게 하고 새로운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마치 젊은이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선진국에선 기계로 대체했을 때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일자리를 없애지 않고 노인들을 고용함으로써 노인들이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문제는 고용시장의 논리가 아닌 복지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노인 일자리가 몇 개 더 는다고 젊은이의 고용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노인의 고질적인 가난과 이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우울증, 자살과 같은 병리적 현상들을 해결할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지향하고 노인들은 주민센터 민원 안내, 키오스크 사용 안내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일자리를 맡는 방식으로 고용시장을 이원화하면 어떨까. 단순 반복 노동에 젊고 패기 있는 인재들이 고용안정성만을 바라보며 목을 매는 것은 그 개인에게도 손해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다. 젊은이들은 어렵지만 잠재력을 최대한 키울 수 있는 직종에 집중하고 노인들은 남은 여생을 소일할 수 있는 직종을 맡을 수 있다면 노인 빈곤 문제도 해결하고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도 키울 수 있다.진보든 보수든 정권을 잡으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일자리 문제다.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은 둔화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복지도 하고 개발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일자리가 곧 복지라고도 한다. 노인 복지 역시 그들이 일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쩌면 더 많은 노인 일자리가 우리 사회를 더 젊고 활력 있게 만들지 모른다. 지혜를 모아볼 때다.원활한 고용을 위한 국가적 정책이 시급하다. 노인과 장년의 일자리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실질적 대책일 뿐 아니라 노인복지 재원의 효용을 증진시키는 도덕적, 경제적 편익이 있으며 이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이익으로 나타나게 된다. 첫째, 순차적 정년연장이 시급하다. 직종과 업무 성격에 따라 세분하면서 축적된 기능과 숙련, 학습의 난이도 그리고 노동생산성 중심으로 정년연장을 진행해야 한다. 둘째, 노인 일자리를 위한 산업 훈련 교육이 체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 조차 힘든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이제까지 국가에 의무를 다한 국민에 대한 직무 유기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생존권을 보호해주고 적합한 일자리에 맞는 장년 재교육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셋째, 국가지원이 필요한 노인 계층에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복지재원의 단순 소모가 아닌 생산적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매칭그랜트 같은 제도를 사용하여 일하는 자에게 먼저 복지혜택을 부가해야 한다. 넷째, 일할 수 없는 병약 계층에는 오히려 인권적 생존권적 복지를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 재원의 선택과 집중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이다. 이를 위해 효율적이고 낭비 없는 복지 재원 전달 시스템을 공고히 다져져야 함은 물론이다. 각종 사업의 시행과정에서의 누수와 낭비는 필요악이 아니라 척결 되어야 할 부패와 무능, 무사안일의 결과이고, 이는 국민 부담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각 부처와 기관별로 분산되고 흩어져 있는 기능의 협력 조율 기능 또한 시급하다. 필요하다면 여성과 청소년을 위한 여성가족부처럼 노인지원과 활용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노인지원청’을 만들어서라도 국가적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노인층의 권익을 위한 정치적 공간 확대도 필수적이다. 노인정책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견해에 대한 응원과 지원은 노인 스스로의 몫이며 스스로 목소리도 넓혀 나가야 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노인 폄훼와 박탈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은 평생 국민의 의무를 다한 이들이다. 누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있는가.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일자리 지도가 달라진다
    일자리 지도가 달라진다
    편집국 기자 2020.10.08
    로봇이 제공하는 안락한 삶에 안주하다 결국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았기고, 더 나아가 삶 자체를 빼앗기는 공포스러운 미래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키오스크들만이 즐비한 맥도날드가 슬쩍 두려운 장소가 됐다. 몇 번을 도전해 보아도 무표정한 키오스크는 ‘처음으로 돌아가라’고만 한다. 무엇이 잘못 됐는지는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직원의 도움 없이는 주문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키오스크 포비아’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식음료점, 은행, 병원, 편의점까지 무인시스템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미 현실에선 기계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키오스크의 도입은 코로나19로 완성되었다.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서든, 대면이라는 행위가 주는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서든, 소비자는 비대면(언택트) 구매 경험에 점점 익숙해진다. 업주들은 한달에 단돈 20만원으로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키오스크 덕에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일까.지난 5월 제조업 대표기업인 현대차 시가총액을 카카오가 제치며 화제가 됐다. 7일 기준으로 현대차의 시가총액이 38조7800억원으로 7위,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33조5500억원으로 9위에 머무르며 제조업 대표주 현대차가 간신히 체면은 지키고 있다. 카카오의 질주가 주목받은 이유는 새로운 강자의 탄생이라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창립 15년이 된 카카오는 말 그대로 ‘국민 메신저’이다. 최근 핀테크나 모빌리티 콘텐츠 등의 사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 매출은 주로 국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비즈보드 기반 광고사업이다. 반면 현대차는 44년 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현대차와 관련된 수많은 협력업체의 경제 파급효과와 규모, 일자리가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산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세상은 물건이나 금전을 넘어 편안함, 행복감, 만족감 같은 무형의 부가가치에도 그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GDP나 실질적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과는 무관해 보이는 시장의 평가는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일자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기존의 일자리는 더 빨리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는 더 빨리 생겨나고 있다. 키오스크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일자리가 생겼고 반도체와 자동차의 뒤를 잇는 플랫폼 산업생태계도 성장하고 있다. 일자리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자연스레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도 긱경제(임시직경제)에 깊이 적응한듯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과연 양질의 일자리인가하는 점이다. 새로 생겨가는 일자리가 또다른 단순 일자리로 채워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새로운 산업은 현대차나 삼성전자가 만들어내는 규모만큼의 일자리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테슬라와 견줄만한 혁신 기술기업, 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견줄 수 있는 플랫폼 기업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준비된 인재’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이 먼저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 기술을 만드는 것은 인재다.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양질의 교육이라는 점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인재를 양성하고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세계의 공장이 될 수도 있고, 세계의 은행이 될 수도 있고, 세계의 연구소도 될 수 있다. AI 인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면 전 세계의 AI 기업들이 대한민국으로 모일 것이다. 만들어내고 싶은 일자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손에 달렸다. 일자리 지형도가 바뀐 만큼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기업들은 인재가 없다며 세계로 눈을 돌린다. 인재 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매년 배출되는 약 67만명의 대학졸업생들은 예상 취업률이 50%도 채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일자리 미스매칭 때문이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와 학교 교육과의 차이가 있다 보니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눈을 낮추거나 기업에게 스펙을 낮추라고 요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자리의 변화와 함께 양극화 또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양극단의 어디쯤 자리 잡게 해야 할까.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교육시켜야 할까. 이런 질문은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교육이 바뀌어야 일자리의 질도 바뀐다. 교육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대학의 실질적 자율화와 미래 인재 육성형 학과정원조정, ‘국비양성과정’ 확대를 통해 국가 차원의 인재 양성이 시급히 우선되어야 할 숙제다. 동시에 기업에 대한 토대도 공고히 해야 한다. 세계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규제개혁, 기업육성 여건 재구축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 중점 산업을 지원하고, 나아가 근본적인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의무도 자각해야 한다. 지금의 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시급한 정책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혁신 기술기업 시대에서도 인재 양성은 좋은 일자리를 위한 기본이자 지름길이다. 이는 기업 생존의 터전이기도 하다.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의 선택이 내 아이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100년의 미래가 달려 있다.
  • [이근면의 사람이야기]황금알 거위, 잡을 것인가 키울 것인가
    황금알 거위, 잡을 것인가 키울 것인가
    안승찬 기자 2020.09.10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가난한 농부에게 어느 날 찾아든 거위가 황금으로 된 알을 낳자, 농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더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농부는 거위를 죽이고 만다.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이 이야기가 그저 우화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더 많이 길러 낼 생각은 않고, 거위의 배를 갈르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선 기업과 부자들이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다. 작년 한해동안 기업들이 낸 법인세는 72조2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상위 1%의 법인이 전체 세금의 78.4%를 부담했다. 소득세는 총 89조1000억원을 걷었는데 상위 1%가 41.6%를 부담했다. 1%의 기업과 1%의 부자들이 거의 100조에 가까운 세금을 내고 있었다는 뜻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많아지면 나라의 곳간은 풍성해지고 국민 개개인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황금알 낳는 거위를 더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득주도 성장과 같은 정부 정책으로 기업의 부담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부담은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고,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선순환을 더디게 만든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더해져 기업의 대내외적 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실정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 최고 세율이 22%에서 25%로 높이졌고, 소득세 최고세율은 4년 만에 38%에서 45%까지 치솟았다. 거위가 배불리 먹고 충분히 쉬어야 황금알을 낳을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알만 많이 낳으라고 쥐어짜는 형국이다. 이런 정책엔 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다. 이 욕망이 합리성과 합법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욕망은 죄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고 싶은 개인, 또 성장하려는 기업이 사회 전체를 살찌우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어야 기업가 정신이 고양된다. 기업가 정신이 온 사회에 꿈틀거릴 때, 당근마켓, 왓챠, 요기요, 배달의민족처럼 작지만 강한 벤처가 태어나고 제2의 카카오, 네이버를 꿈꾸며 땀을 흘리게 된다. 치열한 경쟁과 혁신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이 삼성, 하이닉스, LG와 같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부단한 경쟁, 부의 창출, 축적에 대한 열망보다 부의 평등한 재분배에만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다. 부자와 기업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옥죄는 정부의 조세정책은 이런 인식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자식이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이어가는 선택을 불로소득으로 호의호식 하는 것으로 보고 시샘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일군 기업에 애착을 갖고 이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시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려는 의지로 볼 것인가. 내 자식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을 제공하려는 부모의 노력을 교육의 평등성을 해치는 행위로 볼 것인가, 아니면 80%의 국민을 먹여 살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우는 행위로 볼 것인가. 같은 현상을 보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를 버는 룩셈부르크가 될 수도 있고, 나라경제의 근간이 무너져 정확한 경제규모조차 산출하기 어려운 북한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나라를 롤모델로 삼을 것인가. 부자와 기업에게 세금 폭탄을 터뜨려 배를 가르면 당장 속은 시원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뒤엔 책임이 따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으면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 살텐가. 배를 가른 이후의 결과를 감당할 자신은 있는가. 고용 없는 성장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일회성 일자리가 아닌 건실한 기업이 만들어내는 좋은 일자리다. 그냥 일자리가 말고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좋은 일자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세계무대를 향한 집요한 지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무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에 대한 경시,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만들어내는 각종 규제 속에서 우리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도 상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 움직임은 더 강해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데에 마음을 보태고 다 같이 응원하는 일이다. 그래야 길이 열린다. 기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의 증진을 어떻게 보는지, 그 부를 증진시키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만들어진다. 거위가 많아진다는 건 내 아이가 더 좋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약속과 같다. 거위의 배를 가를 일이 아니라 거위 팬클럽과 팬덤이 필요한 때다.우리의 생각과 인식이 아이들의 좋은 일자리를 약속한다. 그래야 규제를 막고, 기업인을 응원하고, 기업을 세계로 당당히 뛰쳐나가게 하고, 우리의 의식주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고, 배려심 많은 따뜻한 이웃이 많아지는 길이다. 내 자식, 내 자손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많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 내는 좋은 기업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최고의 복지는 결국 일자리가 아닐까. 오늘이란 역사를 쓰며 누구나 다 같이 민초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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