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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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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겸의 일본in

  • [김보겸의 일본in]물이 피보다 진할 수 있다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30주년이 돼서야 밝혀진 출생의 비밀이라니. 봉미선과 신영식의 아들인 줄 알았던 짱구가 사실은 산부인과 실수로 닌자마을의 제갈진구와 뒤바뀌었다는 것. 지난 4일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짱구는 마음 속 동물을 소환하는 동물소환술을 자꾸 쓰다 보면 동물이 되어 버리는 닌자마을로 납치당한다. 짱구 잠옷을 입고 있는 고릴라에게 신형만은 말한다. “고릴라건 친자식이 아니건 상관 없어. 앞으로도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싶다.” (사진=극장판 짱구는 못말려)웃긴 데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짱구가 고릴라가 되어 버린 줄로만 알았던 신영식은 “네가 고릴라건 친자식이 아니건 전부 상관없다. 난 앞으로도 짱구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싶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냥 짱구 잠옷을 입은 고릴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도 글썽이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료타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7년 동안 키워 온 자식이 사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을 만드는 건 혈연이냐, 시간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동진 평론가는 “가족은 본성이 아니라 역사”라며 “역사가 되려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시간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핏줄이 이어져서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란 것도 끊임없이 학습하고 노력해야 의미가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이 엄마가 되어 줄 때도 있다. 애니메이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에서 마키아가 그랬다. 늙지 않는 요르프족을 메자테 군대가 공격할 때 이를 피해 몸을 숨기다가 숲에서 인간 아기를 줍는다. 마키아는 아기에게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엄마처럼 키운다. 피로 얽힌 사이는 당연히 아니다.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은 마키아도 아리엘처럼 고아라는 사실에 느낀 동질감 하나 때문이다. B코마치 센터 호시노 아이. 가족을 만들고 싶어 16살에 쌍둥이 엄마가 됐다.(사진=최애의 아이)혈연이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가족을 만든다는 건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에서도 드러난다. 중소 기획사 걸그룹 B코마치 센터인 호시노 아이는 “보육원 출신이라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면서 쌍둥이를 갖게 되지만, 작중 아직 등장하지 않은 쌍둥이 아버지가 아이의 죽음에 관여했다. 스토커에게 아이의 집 주소를 노출해 살해 사건으로 이어지면서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루비와 아쿠아를 가족처럼 키운 건 B코마치 소속사인 이치고 기획이다. 가족을 만드는 건 혈연보다는 관계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짱구가 지구의 배꼽을 지키기 위해 마음으로 불러낸 동물은 유리처럼 호랑이도, 맹구처럼 트리케라톱스도 아닌 흰둥이가 아니었던가. “흰둥이도 우리 가족이에요. 신흰둥이란 말이에요!”라는 짱구와 “친자식이 아니어도, 고릴라여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짱구 아빠네 가족이 5월 가정의 달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보겸 기자 2023.05.29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30주년이 돼서야 밝혀진 출생의 비밀이라니. 봉미선과 신영식의 아들인 줄 알았던 짱구가 사실은 산부인과 실수로 닌자마을의 제갈진구와 뒤바뀌었다는 것. 지난 4일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짱구는 마음 속 동물을 소환하는 동물소환술을 자꾸 쓰다 보면 동물이 되어 버리는 닌자마을로 납치당한다. 짱구 잠옷을 입고 있는 고릴라에게 신형만은 말한다. “고릴라건 친자식이 아니건 상관 없어. 앞으로도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싶다.” (사진=극장판 짱구는 못말려)웃긴 데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짱구가 고릴라가 되어 버린 줄로만 알았던 신영식은 “네가 고릴라건 친자식이 아니건 전부 상관없다. 난 앞으로도 짱구 너와 함께 울고 웃고 싶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냥 짱구 잠옷을 입은 고릴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도 글썽이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료타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7년 동안 키워 온 자식이 사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을 만드는 건 혈연이냐, 시간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동진 평론가는 “가족은 본성이 아니라 역사”라며 “역사가 되려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시간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핏줄이 이어져서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란 것도 끊임없이 학습하고 노력해야 의미가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이 엄마가 되어 줄 때도 있다. 애니메이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에서 마키아가 그랬다. 늙지 않는 요르프족을 메자테 군대가 공격할 때 이를 피해 몸을 숨기다가 숲에서 인간 아기를 줍는다. 마키아는 아기에게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엄마처럼 키운다. 피로 얽힌 사이는 당연히 아니다.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은 마키아도 아리엘처럼 고아라는 사실에 느낀 동질감 하나 때문이다. B코마치 센터 호시노 아이. 가족을 만들고 싶어 16살에 쌍둥이 엄마가 됐다.(사진=최애의 아이)혈연이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가족을 만든다는 건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에서도 드러난다. 중소 기획사 걸그룹 B코마치 센터인 호시노 아이는 “보육원 출신이라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면서 쌍둥이를 갖게 되지만, 작중 아직 등장하지 않은 쌍둥이 아버지가 아이의 죽음에 관여했다. 스토커에게 아이의 집 주소를 노출해 살해 사건으로 이어지면서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루비와 아쿠아를 가족처럼 키운 건 B코마치 소속사인 이치고 기획이다. 가족을 만드는 건 혈연보다는 관계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짱구가 지구의 배꼽을 지키기 위해 마음으로 불러낸 동물은 유리처럼 호랑이도, 맹구처럼 트리케라톱스도 아닌 흰둥이가 아니었던가. “흰둥이도 우리 가족이에요. 신흰둥이란 말이에요!”라는 짱구와 “친자식이 아니어도, 고릴라여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짱구 아빠네 가족이 5월 가정의 달 끝자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왜 이리 주가 싼지 설명좀" 칼 빼든 日거래소 [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저평가된 상장 기업들에 왜 이리 주가가 싼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계획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도쿄증권거래소 얘기다. 일본증시는 재미없기로 유명하다. 최근 50년 중에 일본주식이 제일 싼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풀려 전 세계 증시가 자고 일어나면 치솟을 때에도 일본 대표지수인 닛케이225 지수는 1989년 12월 기록(3만8915.87)에 아직도 못 미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30일 도쿄증권거래소 폐장을 알리는 종을 치고 있다.(사진=AFP)◇칼 빼든 도쿄증권거래소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는 우량상장사가 모인 프라임마켓과 스탠다드 시장에 상장한 3300개사에 주가 수준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발표하라고 요청했다. 주요 타깃은 일본 상장사 중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왜 PBR이 1배에 못 미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응책을 발표해야 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구체적 방안이나 형식은 기업 판단에 맡길 계획이다. 단 계획을 발표하지 않아도 페널티는 없다. PBR은 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상장된 주식을 사고팔 때 지금 주가가 싼지 비싼지 판단하는 대표적 지수다. PBR이 1배가 안 된다는 건 이론상으로 회사를 접고 순자산을 주주들한테 나눠주는 것이 더 낫다고 시장이 평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장할 자격이 없는 회사라는 의미이다. 페널티가 없어 다소 무딘 칼날처럼 보이지만 나름 작년부터 갈고닦은 방침이다. 지난해 12월28일 도쿄증권거래소는 시장재편 회의를 열고 침체하는 상장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PBR을 어떻게 개선을 촉구할 것인지 논의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PBR을 개선하지 않는 기업은 상장 시장에서 강등되거나 토픽스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 중에는 대장주들도 포함돼 있다. 도요타자동차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미쓰비시상사 등 업계 대표선수들도 PBR 1배를 밑도는 게 일본 증시의 현주소다. 일본 거래소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이유도 여기 있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나을 정도의 기업이 일본 증시에 너무 많다는 판단이다. 일본증시 상장사 가운데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은 절반에 달한다. 주요 기업들을 모아놓고 봐도 그렇다. 2022년 7월 기준 토픽스500를 구성하는 기업 중 PBR이 1배가 안 되는 종목은 43%에 달했다. 미국 S&P500 5%, 유로스톡600 24%보다 훨씬 높다. 도쿄증권거래소 전광판 앞에 한 시민이 서 있다.(사진=AFP)◇왜 거래소가 시장가격에 개입하나 세계 증권거래소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주가는 시장이 결정하는 건데, 거래소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가격기능을 맡기기에는 기업들이 너무 안 움직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물론 있어 왔다. 기관투자자와 기업이 대화를 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본효율을 개선시키면 ROE와 PBR이 올라간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주주총회만 가 봐도 자본배치를 효율화하라는 기관투자자 요구와 “경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며 방어하는 사측이 팽팽하게 맞선다. 닛케이는 “이런 현실 속에선 도쿄증권거래소 강제력이 중요해진다”고 짚었다. 낮은 PBR을 방치하는 건 결국 투자자 외면으로 이어진다는 위기의식이 거래소로 하여금 총대를 메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회사들이 기업가치와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은 결국 일본 증시에서 영영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시장 원리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액션을 취한 건 이 때문이다. 거래소는 해외로부터 투자자금 유치해 기업 성장을 촉진시켜야 할 의무가 있어서다. 변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소극적이고 경직적인 조직 운영을 일삼는 ‘일본전통회사(Japanese Traditional Company)’의 조롱적 표현인 ‘JTC’의 큰형님 격인 다이닛폰인쇄(DNP)가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2월 ROE를 10%로 높여 PBR 1배 이상을 목표로 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10년간 PBR 1배를 넘긴 적 없던 큰형님의 포부에 시장도 화답했다. 작년 연말 0.6배였던 PBR은 이 같은 발표에 0.9배까지 올랐다. 지지리도 안 올랐던 일본 증시, 욕 먹을 감수 하고 PBR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한 도쿄증권거래소의 노력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김보겸 기자 2023.04.03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저평가된 상장 기업들에 왜 이리 주가가 싼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계획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도쿄증권거래소 얘기다. 일본증시는 재미없기로 유명하다. 최근 50년 중에 일본주식이 제일 싼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풀려 전 세계 증시가 자고 일어나면 치솟을 때에도 일본 대표지수인 닛케이225 지수는 1989년 12월 기록(3만8915.87)에 아직도 못 미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30일 도쿄증권거래소 폐장을 알리는 종을 치고 있다.(사진=AFP)◇칼 빼든 도쿄증권거래소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는 우량상장사가 모인 프라임마켓과 스탠다드 시장에 상장한 3300개사에 주가 수준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발표하라고 요청했다. 주요 타깃은 일본 상장사 중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왜 PBR이 1배에 못 미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응책을 발표해야 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구체적 방안이나 형식은 기업 판단에 맡길 계획이다. 단 계획을 발표하지 않아도 페널티는 없다. PBR은 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상장된 주식을 사고팔 때 지금 주가가 싼지 비싼지 판단하는 대표적 지수다. PBR이 1배가 안 된다는 건 이론상으로 회사를 접고 순자산을 주주들한테 나눠주는 것이 더 낫다고 시장이 평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장할 자격이 없는 회사라는 의미이다. 페널티가 없어 다소 무딘 칼날처럼 보이지만 나름 작년부터 갈고닦은 방침이다. 지난해 12월28일 도쿄증권거래소는 시장재편 회의를 열고 침체하는 상장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PBR을 어떻게 개선을 촉구할 것인지 논의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PBR을 개선하지 않는 기업은 상장 시장에서 강등되거나 토픽스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들 중에는 대장주들도 포함돼 있다. 도요타자동차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미쓰비시상사 등 업계 대표선수들도 PBR 1배를 밑도는 게 일본 증시의 현주소다. 일본 거래소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이유도 여기 있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나을 정도의 기업이 일본 증시에 너무 많다는 판단이다. 일본증시 상장사 가운데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은 절반에 달한다. 주요 기업들을 모아놓고 봐도 그렇다. 2022년 7월 기준 토픽스500를 구성하는 기업 중 PBR이 1배가 안 되는 종목은 43%에 달했다. 미국 S&P500 5%, 유로스톡600 24%보다 훨씬 높다. 도쿄증권거래소 전광판 앞에 한 시민이 서 있다.(사진=AFP)◇왜 거래소가 시장가격에 개입하나 세계 증권거래소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주가는 시장이 결정하는 건데, 거래소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가격기능을 맡기기에는 기업들이 너무 안 움직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물론 있어 왔다. 기관투자자와 기업이 대화를 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본효율을 개선시키면 ROE와 PBR이 올라간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주주총회만 가 봐도 자본배치를 효율화하라는 기관투자자 요구와 “경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며 방어하는 사측이 팽팽하게 맞선다. 닛케이는 “이런 현실 속에선 도쿄증권거래소 강제력이 중요해진다”고 짚었다. 낮은 PBR을 방치하는 건 결국 투자자 외면으로 이어진다는 위기의식이 거래소로 하여금 총대를 메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회사들이 기업가치와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은 결국 일본 증시에서 영영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시장 원리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액션을 취한 건 이 때문이다. 거래소는 해외로부터 투자자금 유치해 기업 성장을 촉진시켜야 할 의무가 있어서다. 변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소극적이고 경직적인 조직 운영을 일삼는 ‘일본전통회사(Japanese Traditional Company)’의 조롱적 표현인 ‘JTC’의 큰형님 격인 다이닛폰인쇄(DNP)가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2월 ROE를 10%로 높여 PBR 1배 이상을 목표로 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10년간 PBR 1배를 넘긴 적 없던 큰형님의 포부에 시장도 화답했다. 작년 연말 0.6배였던 PBR은 이 같은 발표에 0.9배까지 올랐다. 지지리도 안 올랐던 일본 증시, 욕 먹을 감수 하고 PBR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한 도쿄증권거래소의 노력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 이른 개화가 야속…'벚꽃 멸종' 우려하는 日[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에선 이미 벚꽃놀이가 한창이다. 이미 2주 전인 3월14일 도쿄 벚꽃이 피기 시작했기 때문. 2020년과 2021년에 이어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빠른 개화다. 그런데도 일본은 빨리 핀 벚꽃이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억눌린 벚꽃 나들이 수요가 폭발하면서 경제효과도 6조원을 훌쩍 넘는다는데 말이다. 점점 빨라지는 벚꽃 개화 시기를 두고 일본 미디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벚꽃이 언제 필 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면 꽃놀이로 인한 경제효과는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지난 19일 시민들이 도쿄 벚꽃나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FP)◇빨리 피는 벚꽃…4월이면 이파리만 남아일본 벚꽃 개화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꽃이 피기 시작해 만발하기까지는 약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3월 말 개화해 4월 입학 시즌에 만개했다면 최근에는 3월 중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4월로 접어들 무렵에는 이미 꽃이 지고 어린잎이 난 벚나무로 탈바꿈하고 있다. 벚꽃이 피면 상인들 웃음꽃도 피게 마련이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학 이론경제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올해 벚꽃으로 인한 경제효과는 약 6158억엔(약 6조1243억원)으로 작년 대비 3배 뛰었다. 지난 2020년 3982억엔이던 경제효과는 2021년 1582억엔으로 쪼그라들었다. 2022년에는 소폭 회복했지만 2016억엔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6500억엔에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올 들어 마스크 해제 등 방역조치가 대폭 완화되면서 내년에는 코로나19 이전을 웃도는 경제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한때 일본인들의 일상이던 봄날 벚꽃놀이가 정상화된 영향이다. 웨더뉴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벚꽃놀이를 간다고 답한 사람들은 2021년 20%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들어 53%로 늘었다. 벚꽃놀이 예산 역시 1인당 약 6900엔으로 작년보다 80% 넘게 올랐다. 벚꽃의 나라답게 관심도도 상당하다. 야후 데이터솔루션에 따르면 작년 ‘벚꽃’을 검색한 사람은 3월 480만명, 4월 458만명에 달했다. 매달 100만명 넘는 이들이 웹사이트에 벚꽃을 검색할 정도로 일본에서의 벚꽃놀이가 일년 내내 기다리는 빅 이벤트다. 반면 ‘단풍’을 검색한 사람은 10월 183만명, 11월 295만명으로 벚꽃에 못 미쳤다. 이른 개화는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26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나무에 벚꽃이 피어 있다.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른 개화다.(사진=연합뉴스)◇벚꽃에 진심인 일본인…개화시기 예측 정확도가 생명예측하기 어려워진 벚꽃 개화 시기에 우려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정도로 벚꽃에 진심인 일본인들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야 경제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개화 시기를 정확히 읽지 못하면 벚꽃놀이를 오려는 여행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진다”며 “국내 여행자나 일본에 방문하는 이들의 소비 의욕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벚꽃 개화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교토시 시마즈 비즈니스 시스템에서는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한다. 대량의 기상 데이터를 학습시킨 예측 모델을 만들면서다. 집단지성도 활용된다. 웨더뉴스는 ‘마이 벚꽃’ 서비스로 전국의 이용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벚꽃 사진을 제보받고 있다. 기상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지역의 특성을 파악해 개화를 코앞에 둔 지역의 시기를 조정하는 데 쏠쏠한 도움을 받는다고. 성동구는 개나리 축제를 일주일 앞당기면서 “기후 온난화 영향”이라고 못 박았다.(사진=독자 제공)AI든 집단지성을 동원하든, 빨리 핀 벚꽃이 주는 근본적인 고민은 남는다. 점점 빨라지는 개화 시기는 지구 온난화가 주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내달 4일부터 9일까지 여의도 윤중로에서도 벚꽃축제를 한다는데, 이미 이 기사를 쓰고 있는 26일 벚꽃이 활짝 피었다.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른 개화라고 한다. 여의도 벚꽃축제 시기가 의아함을 낳긴 했다. 최근 기자의 주된 출입처인 증권사와 운용사가 위치한 여의도를 겉옷 없이 걸어다닐 정도로 따뜻한 터라 4월이면 너무 늦지 않을까 싶었다. 설마가 역시였다. 실제 축제 시작보다 2주 가까이 빨리 피면서다. 서울 성동구 역시 이달 30일 예정인 2023 응봉산 개나리축제 일정을 일주일 전인 23일로 앞당겼다. 변경 사유로는 ‘기후 온난화 영향’이라는 점을 못박았다. 스즈메의 문단속.(사진=스즈메의 문단속)◇‘스즈메의 문단속’에 나타나는 우려…벚꽃축제, 영화 속 풍경 될라최근 한국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정확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인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가 겹쳐 보이는 탓이다. 이들 영화에선 혜성이 떨어져 한 마을을 흔적만 남기고 없애 버린다든가, 지구 온난화로 매일매일 비가 내리다 결국 잠겨 버린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감독의 재난 3부작으로 묶이는 이번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도 극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호평받고 있다. 치밀한 묘사에 이유가 있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 2020년 최원석 전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의 아름다운 풍경이 언제 닥칠지 모를 재해에 바뀌어 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영화에 기억을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머지않아 일본에서 벚꽃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는 과장이 아니다. 시마즈 비즈니스 시스템의 AI의 관측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멈추지 않을 경우 2100년에는 가고시마현이나 미야자키현 등 일부 지역에서 벚꽃이 피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도쿄와 여의도의 벚꽃 축제 역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될지 모른다.
    김보겸 기자 2023.03.27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에선 이미 벚꽃놀이가 한창이다. 이미 2주 전인 3월14일 도쿄 벚꽃이 피기 시작했기 때문. 2020년과 2021년에 이어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빠른 개화다. 그런데도 일본은 빨리 핀 벚꽃이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억눌린 벚꽃 나들이 수요가 폭발하면서 경제효과도 6조원을 훌쩍 넘는다는데 말이다. 점점 빨라지는 벚꽃 개화 시기를 두고 일본 미디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벚꽃이 언제 필 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면 꽃놀이로 인한 경제효과는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지난 19일 시민들이 도쿄 벚꽃나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FP)◇빨리 피는 벚꽃…4월이면 이파리만 남아일본 벚꽃 개화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꽃이 피기 시작해 만발하기까지는 약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3월 말 개화해 4월 입학 시즌에 만개했다면 최근에는 3월 중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4월로 접어들 무렵에는 이미 꽃이 지고 어린잎이 난 벚나무로 탈바꿈하고 있다. 벚꽃이 피면 상인들 웃음꽃도 피게 마련이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학 이론경제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올해 벚꽃으로 인한 경제효과는 약 6158억엔(약 6조1243억원)으로 작년 대비 3배 뛰었다. 지난 2020년 3982억엔이던 경제효과는 2021년 1582억엔으로 쪼그라들었다. 2022년에는 소폭 회복했지만 2016억엔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6500억엔에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올 들어 마스크 해제 등 방역조치가 대폭 완화되면서 내년에는 코로나19 이전을 웃도는 경제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한때 일본인들의 일상이던 봄날 벚꽃놀이가 정상화된 영향이다. 웨더뉴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벚꽃놀이를 간다고 답한 사람들은 2021년 20%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들어 53%로 늘었다. 벚꽃놀이 예산 역시 1인당 약 6900엔으로 작년보다 80% 넘게 올랐다. 벚꽃의 나라답게 관심도도 상당하다. 야후 데이터솔루션에 따르면 작년 ‘벚꽃’을 검색한 사람은 3월 480만명, 4월 458만명에 달했다. 매달 100만명 넘는 이들이 웹사이트에 벚꽃을 검색할 정도로 일본에서의 벚꽃놀이가 일년 내내 기다리는 빅 이벤트다. 반면 ‘단풍’을 검색한 사람은 10월 183만명, 11월 295만명으로 벚꽃에 못 미쳤다. 이른 개화는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26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나무에 벚꽃이 피어 있다.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른 개화다.(사진=연합뉴스)◇벚꽃에 진심인 일본인…개화시기 예측 정확도가 생명예측하기 어려워진 벚꽃 개화 시기에 우려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정도로 벚꽃에 진심인 일본인들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야 경제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야모토 교수는 “개화 시기를 정확히 읽지 못하면 벚꽃놀이를 오려는 여행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진다”며 “국내 여행자나 일본에 방문하는 이들의 소비 의욕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벚꽃 개화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교토시 시마즈 비즈니스 시스템에서는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한다. 대량의 기상 데이터를 학습시킨 예측 모델을 만들면서다. 집단지성도 활용된다. 웨더뉴스는 ‘마이 벚꽃’ 서비스로 전국의 이용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벚꽃 사진을 제보받고 있다. 기상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지역의 특성을 파악해 개화를 코앞에 둔 지역의 시기를 조정하는 데 쏠쏠한 도움을 받는다고. 성동구는 개나리 축제를 일주일 앞당기면서 “기후 온난화 영향”이라고 못 박았다.(사진=독자 제공)AI든 집단지성을 동원하든, 빨리 핀 벚꽃이 주는 근본적인 고민은 남는다. 점점 빨라지는 개화 시기는 지구 온난화가 주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내달 4일부터 9일까지 여의도 윤중로에서도 벚꽃축제를 한다는데, 이미 이 기사를 쓰고 있는 26일 벚꽃이 활짝 피었다.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른 개화라고 한다. 여의도 벚꽃축제 시기가 의아함을 낳긴 했다. 최근 기자의 주된 출입처인 증권사와 운용사가 위치한 여의도를 겉옷 없이 걸어다닐 정도로 따뜻한 터라 4월이면 너무 늦지 않을까 싶었다. 설마가 역시였다. 실제 축제 시작보다 2주 가까이 빨리 피면서다. 서울 성동구 역시 이달 30일 예정인 2023 응봉산 개나리축제 일정을 일주일 전인 23일로 앞당겼다. 변경 사유로는 ‘기후 온난화 영향’이라는 점을 못박았다. 스즈메의 문단속.(사진=스즈메의 문단속)◇‘스즈메의 문단속’에 나타나는 우려…벚꽃축제, 영화 속 풍경 될라최근 한국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정확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인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가 겹쳐 보이는 탓이다. 이들 영화에선 혜성이 떨어져 한 마을을 흔적만 남기고 없애 버린다든가, 지구 온난화로 매일매일 비가 내리다 결국 잠겨 버린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감독의 재난 3부작으로 묶이는 이번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도 극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호평받고 있다. 치밀한 묘사에 이유가 있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 2020년 최원석 전 조선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의 아름다운 풍경이 언제 닥칠지 모를 재해에 바뀌어 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영화에 기억을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머지않아 일본에서 벚꽃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는 과장이 아니다. 시마즈 비즈니스 시스템의 AI의 관측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멈추지 않을 경우 2100년에는 가고시마현이나 미야자키현 등 일부 지역에서 벚꽃이 피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도쿄와 여의도의 벚꽃 축제 역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될지 모른다.
  • 태국 BL물, '넥스트 K팝' 되나[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었다. BL(Boys Love·남성 동성애) 종주국 일본에서 영감 받은 태국 BL물이 일본 열도에서 질주한다. 도쿄에 위치한 타워레코드 시부야점 2층 카페는 사랑에 빠진 두 남학생 이야기를 다룬 태국 드라마 ‘보이프렌즈(2gether the series)’를 테마로 하고 있다. 방문객은 모두 여성. 카페를 찾은 한 여성 팬은 “태국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며 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고.태국 BL 드라마 ‘보이프렌즈’.(사진=보이프렌즈)태국 게이 드라마가 차세대 K팝이 될 수 있다고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전망했다. BL 종주국 일본의 스토리라인과 K팝의 성공요인을 합친 게 지금의 태국 BL물이라는 설명이다. BL 혹은 ‘야오이(야마나시(やまなし)·오치나시(おちなし)·이미나시(いみなし)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갈등·결말·의미가 없는 남성 간 로맨스물, Y시리즈라고도 함)’로 불리는 게이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몰이다. 유튜브를 타고 태국 밖에서도 팬들을 양산하는 중이다. 일본이 그 중에서도 주요 소비시장이다.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태국에 중독됐다’는 뜻의 ‘타이 누마(태국 늪)’ 키워드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태국 관광청은 일본 오사카에서 국제무역박람회에서 ‘태국 BL’ 부스를 설치하고 콘텐츠를 홍보했는데, 이 때 확보한 외국인 투자 자금은 자그마치 3억6000만바트. 약 136억6560만원어치다. 화려한 역수입인 셈이다. BL물은 애초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일본 만화의 스토리라인이 원조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서 태국을 연구하는 이시카와는 “BL물에서는 질투심을 느끼게 할 여자주인공이 없다”며 “성소수자 여성들도 로맨스물을 통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며 일본에서의 BL물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물론 직관적인 반응도 있다. “잘생긴 남자 두 명이 같이 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가 눈호강(타카바야시 오토하·20)”이라는 평가처럼.무엇보다 태국 BL이 ‘넥스트 K팝’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태국 BL물 제작자들이 꽃미남 스타일의 K팝 스타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BL물로 파생되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팬미팅을 여는 등 팬서비스를 활용하는 K팝 비즈니스 모델도 공격적으로 가져다 쓴다. 태국 탐마삿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의 푸윈 연구원은 “태국 BL은 일본과 한국 재료가 섞인 멜팅 팟”이라고 빗댔다. 태국 BL 드라마 ‘보이프렌즈’.(사진=보이프렌즈)게이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태국 BL물 팬 중 20% 이상이 게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이 메카로 통하는 방콕의 명성에도 불구, 여전히 태국 내 게이 차별을 다루는 스토리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등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다. 푸윈 교수는 “요새 들어서야 공공장소에서 대형 광고에 BL 커플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고 짚었다. 태국 BL물 제작자들이 마냥 이 현상을 반기는 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BL은 태국의 소프트파워 잠재력을 보여주는 분야이지만, 정부가 홍보할 때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실제 태국에선 아직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동성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결합법을 승인하긴 했지만, 법적으로 결혼한 커플과 완전히 같은 권리를 주는 건 아니다. 지난 2007년에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BL물을 일시적으로 금지한 전례도 있다. BL물이 더 양지화할 경우 또다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태국에 BL물은 있지만 게이 권리는 없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김보겸 기자 2023.03.13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었다. BL(Boys Love·남성 동성애) 종주국 일본에서 영감 받은 태국 BL물이 일본 열도에서 질주한다. 도쿄에 위치한 타워레코드 시부야점 2층 카페는 사랑에 빠진 두 남학생 이야기를 다룬 태국 드라마 ‘보이프렌즈(2gether the series)’를 테마로 하고 있다. 방문객은 모두 여성. 카페를 찾은 한 여성 팬은 “태국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며 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고.태국 BL 드라마 ‘보이프렌즈’.(사진=보이프렌즈)태국 게이 드라마가 차세대 K팝이 될 수 있다고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전망했다. BL 종주국 일본의 스토리라인과 K팝의 성공요인을 합친 게 지금의 태국 BL물이라는 설명이다. BL 혹은 ‘야오이(야마나시(やまなし)·오치나시(おちなし)·이미나시(いみなし)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갈등·결말·의미가 없는 남성 간 로맨스물, Y시리즈라고도 함)’로 불리는 게이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몰이다. 유튜브를 타고 태국 밖에서도 팬들을 양산하는 중이다. 일본이 그 중에서도 주요 소비시장이다.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태국에 중독됐다’는 뜻의 ‘타이 누마(태국 늪)’ 키워드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태국 관광청은 일본 오사카에서 국제무역박람회에서 ‘태국 BL’ 부스를 설치하고 콘텐츠를 홍보했는데, 이 때 확보한 외국인 투자 자금은 자그마치 3억6000만바트. 약 136억6560만원어치다. 화려한 역수입인 셈이다. BL물은 애초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일본 만화의 스토리라인이 원조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서 태국을 연구하는 이시카와는 “BL물에서는 질투심을 느끼게 할 여자주인공이 없다”며 “성소수자 여성들도 로맨스물을 통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며 일본에서의 BL물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물론 직관적인 반응도 있다. “잘생긴 남자 두 명이 같이 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가 눈호강(타카바야시 오토하·20)”이라는 평가처럼.무엇보다 태국 BL이 ‘넥스트 K팝’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태국 BL물 제작자들이 꽃미남 스타일의 K팝 스타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BL물로 파생되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팬미팅을 여는 등 팬서비스를 활용하는 K팝 비즈니스 모델도 공격적으로 가져다 쓴다. 태국 탐마삿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의 푸윈 연구원은 “태국 BL은 일본과 한국 재료가 섞인 멜팅 팟”이라고 빗댔다. 태국 BL 드라마 ‘보이프렌즈’.(사진=보이프렌즈)게이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태국 BL물 팬 중 20% 이상이 게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이 메카로 통하는 방콕의 명성에도 불구, 여전히 태국 내 게이 차별을 다루는 스토리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등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다. 푸윈 교수는 “요새 들어서야 공공장소에서 대형 광고에 BL 커플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고 짚었다. 태국 BL물 제작자들이 마냥 이 현상을 반기는 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BL은 태국의 소프트파워 잠재력을 보여주는 분야이지만, 정부가 홍보할 때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실제 태국에선 아직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동성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결합법을 승인하긴 했지만, 법적으로 결혼한 커플과 완전히 같은 권리를 주는 건 아니다. 지난 2007년에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BL물을 일시적으로 금지한 전례도 있다. BL물이 더 양지화할 경우 또다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태국에 BL물은 있지만 게이 권리는 없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 [김보겸의 일본in]태어나지도 않은 서태웅을 기다리는 이유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90년대 소년만화 3대장 ‘슬램덩크’의 극장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인기다. 일본에서 지지리도 인기 없던 농구를 단숨에 부흥시킨 주역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농구팬들의 심장도 뛰었다. 기간 한정 팝업스토어를 찾는 슬램덩크 팬들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국경도 넘나든다. 실제 배경이 된 일본 가나가와현이 아닌 부산에서조차 기어코 닮은꼴을 찾아내 ‘성지순례’를 떠나는 팬심이란.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00만 관객을 돌파한 1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슬램덩크 홍보물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연합뉴스)누군가는 한탄한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상남자 스타일 만화주인공은 요새 왜 없느냐!” 또 다른 누군가는 반박한다. “그 당시에도 없었다!” “서태웅 같은 남자는 태어난 적도 없다!”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도 인기다. 1999년 “당신과의 첫 키스는 담배 맛”이라며 첫사랑을 노래한 일본의 ‘국민 여동생’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곡 ‘퍼스트 러브’와 20년 후 발표한 ‘하츠코이(첫사랑)(2018)’을 모티브로 한다. 누군가가 분석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가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다시 멜로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쏠린다고. 성공한 멜로 드라마 영화에는 공통적인 필살기가 있다고. 바로 남자 주인공의 여자 주인공 ‘업기’ 장면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사진=넷플릭스)누군가는 의문을 가진다. 과연 일상에서 ‘업기’ 사례가 흔할까. 일본 스트리밍 서비스 KKBOX에선 한 이용자는 열두 명이 모인 음악 관계자 모임에서 업거나 업힌 경험이 있었던 참석자는 단 두 명이었다고 회고한다. “학교 다닐 때 다리를 접지른 여학생을 보건실에 데려다 줄 때”라고 답한 남성 1명. “영화 ‘남은 인생 10년(2022)’을 본 뒤 남자친구에게 업어달라고 졸랐을 때”라고 답한 여성 1명.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성공 요인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첫사랑의 아쉬움’이라고들 분석하던데, 정작 일상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 필살기인 건 왜일까. 태어난 적도 없었던 서태웅 같은 남자를 기다리고 이제 불혹을 앞둔 ‘국민 여동생’의 데뷔곡이 차트를 역주행하는 건 원래 없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은 아닐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사진=미드나잇 인 파리)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 에서 주인공 길에게 황금시대는 1920년대 파리였다. 겪어 본 적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던 길은 그토록 바라던 시간여행을 하지만 정작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 벨 에포크를 그린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산다는 폴 고갱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한다. “벨 에포크는 바로 지금”이라는 우디 앨런의 12년 전 메시지를 최근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열풍을 통해 다시 보는 듯하다. 마치 처음 본 것마냥.
    김보겸 기자 2023.02.27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90년대 소년만화 3대장 ‘슬램덩크’의 극장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인기다. 일본에서 지지리도 인기 없던 농구를 단숨에 부흥시킨 주역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농구팬들의 심장도 뛰었다. 기간 한정 팝업스토어를 찾는 슬램덩크 팬들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국경도 넘나든다. 실제 배경이 된 일본 가나가와현이 아닌 부산에서조차 기어코 닮은꼴을 찾아내 ‘성지순례’를 떠나는 팬심이란.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00만 관객을 돌파한 16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슬램덩크 홍보물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연합뉴스)누군가는 한탄한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상남자 스타일 만화주인공은 요새 왜 없느냐!” 또 다른 누군가는 반박한다. “그 당시에도 없었다!” “서태웅 같은 남자는 태어난 적도 없다!”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도 인기다. 1999년 “당신과의 첫 키스는 담배 맛”이라며 첫사랑을 노래한 일본의 ‘국민 여동생’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곡 ‘퍼스트 러브’와 20년 후 발표한 ‘하츠코이(첫사랑)(2018)’을 모티브로 한다. 누군가가 분석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가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다시 멜로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쏠린다고. 성공한 멜로 드라마 영화에는 공통적인 필살기가 있다고. 바로 남자 주인공의 여자 주인공 ‘업기’ 장면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사진=넷플릭스)누군가는 의문을 가진다. 과연 일상에서 ‘업기’ 사례가 흔할까. 일본 스트리밍 서비스 KKBOX에선 한 이용자는 열두 명이 모인 음악 관계자 모임에서 업거나 업힌 경험이 있었던 참석자는 단 두 명이었다고 회고한다. “학교 다닐 때 다리를 접지른 여학생을 보건실에 데려다 줄 때”라고 답한 남성 1명. “영화 ‘남은 인생 10년(2022)’을 본 뒤 남자친구에게 업어달라고 졸랐을 때”라고 답한 여성 1명.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성공 요인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첫사랑의 아쉬움’이라고들 분석하던데, 정작 일상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 필살기인 건 왜일까. 태어난 적도 없었던 서태웅 같은 남자를 기다리고 이제 불혹을 앞둔 ‘국민 여동생’의 데뷔곡이 차트를 역주행하는 건 원래 없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은 아닐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사진=미드나잇 인 파리)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 에서 주인공 길에게 황금시대는 1920년대 파리였다. 겪어 본 적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던 길은 그토록 바라던 시간여행을 하지만 정작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 벨 에포크를 그린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산다는 폴 고갱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한다. “벨 에포크는 바로 지금”이라는 우디 앨런의 12년 전 메시지를 최근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열풍을 통해 다시 보는 듯하다. 마치 처음 본 것마냥.
  • "전기료만 100만원"...요금 인상에 日 '덜덜'[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 전역이 덜덜 떨고 있다. 10년 만의 최강 추위가 찾아왔는데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가 날아든 탓이다. 안 그래도 경기가 팍팍해 지갑을 닫고 있는 일본 소비자들 심리가 한층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쿄전력 송전탑의 모습.(사진=AFP)지난 1월 하순 일본에는 평년 기온을 밑도는 혹한이 이어졌다. 시베리아 상공에서 영하 50도를 밑도는 찬 공기가 일본 전역을 덮치면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추운 지역인 홋카이도에 사는 A씨는 지난달 20일 전기요금 10만엔이 찍힌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작년만 해도 한겨울에 6만엔 수준이었지만 66% 넘게 오른 것이다. 그는 “전기요금이 오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덜 추운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바현에 사는 B씨는 도쿄전력 청구서 받아들고 눈을 의심했다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에 전했다. 작년보다 2만엔 이상 오른 4만4725엔 이 나온 것이다. 2월에 내는 1월 검침분은 작년보다 3만엔 오른 6만7181엔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폭염이나 혹한 때도 전기요금이 4만엔을 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20일 일본 홋카이도에 사는 한 트위터 이용자가 받아든 1월 전기요금 고지서에 10만엔 이상이 찍혀 있다.(사진=트위터)적자에 빠진 일본 전력회사들이 전기요금을 올린 탓이다. 지난 2016년부터 일본 전력회사들은 전기요금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전력거래 자유화를 실시하고 있다. 3개월 평균 연료가격을 산출해 1킬로와트시(kWh)당 연료비 조정 단가를 낸 뒤, 2개월 후 전기요금에 반영시키는 식이다. 그 중 일부는 정부에 요금 인상안을 신청한 뒤 정부가 승인할 때 인상 폭과 시기가 결정된다. 일본 역시 원유나 LNG 등 화력발전 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 전기요금도 올리게 함으로써 전력회사가 효율적으로 경영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닛케이는 “에너지 가격이 쌀 때는 전력회사가 이익을 쌓아두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 국면에서는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부담이 커진다”고 전했다. 일본 전력회사들은 올해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라 정부에 전력요금 인상을 요구했다. 대형 전력사 10곳 중 7곳이 경제산업성에 요구한 인상 정도는 평균 28.45%다.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다. 실제 도쿄전력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연결최종손익이 6509억엔으로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8억엔 흑자를 낸 것과도 대조된다.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낮아진 간사이전력 역시 올해 3월 연결최종손익 450억엔 적자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안 그래도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와중 전기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일본 총무성은 도쿄 23개 구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작년 동월 대비 4.3% 올랐다고 밝혔다. 상승률로 치면 41년만에 최고치다.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이 각각 39.7%, 24.6% 오르는 등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일본 정부는 부담을 덜기 위해 지원책을 내놨다. 가정용 전기요금 1kWh당 7엔을 할인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 가을까지로 한정돼 있다. 10년만 한파가 닥친 일본에서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소비자가 더더욱 지갑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김보겸 기자 2023.02.06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 전역이 덜덜 떨고 있다. 10년 만의 최강 추위가 찾아왔는데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가 날아든 탓이다. 안 그래도 경기가 팍팍해 지갑을 닫고 있는 일본 소비자들 심리가 한층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쿄전력 송전탑의 모습.(사진=AFP)지난 1월 하순 일본에는 평년 기온을 밑도는 혹한이 이어졌다. 시베리아 상공에서 영하 50도를 밑도는 찬 공기가 일본 전역을 덮치면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추운 지역인 홋카이도에 사는 A씨는 지난달 20일 전기요금 10만엔이 찍힌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작년만 해도 한겨울에 6만엔 수준이었지만 66% 넘게 오른 것이다. 그는 “전기요금이 오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덜 추운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바현에 사는 B씨는 도쿄전력 청구서 받아들고 눈을 의심했다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에 전했다. 작년보다 2만엔 이상 오른 4만4725엔 이 나온 것이다. 2월에 내는 1월 검침분은 작년보다 3만엔 오른 6만7181엔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폭염이나 혹한 때도 전기요금이 4만엔을 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20일 일본 홋카이도에 사는 한 트위터 이용자가 받아든 1월 전기요금 고지서에 10만엔 이상이 찍혀 있다.(사진=트위터)적자에 빠진 일본 전력회사들이 전기요금을 올린 탓이다. 지난 2016년부터 일본 전력회사들은 전기요금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전력거래 자유화를 실시하고 있다. 3개월 평균 연료가격을 산출해 1킬로와트시(kWh)당 연료비 조정 단가를 낸 뒤, 2개월 후 전기요금에 반영시키는 식이다. 그 중 일부는 정부에 요금 인상안을 신청한 뒤 정부가 승인할 때 인상 폭과 시기가 결정된다. 일본 역시 원유나 LNG 등 화력발전 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 전기요금도 올리게 함으로써 전력회사가 효율적으로 경영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닛케이는 “에너지 가격이 쌀 때는 전력회사가 이익을 쌓아두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 국면에서는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부담이 커진다”고 전했다. 일본 전력회사들은 올해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라 정부에 전력요금 인상을 요구했다. 대형 전력사 10곳 중 7곳이 경제산업성에 요구한 인상 정도는 평균 28.45%다.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다. 실제 도쿄전력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연결최종손익이 6509억엔으로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8억엔 흑자를 낸 것과도 대조된다.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낮아진 간사이전력 역시 올해 3월 연결최종손익 450억엔 적자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안 그래도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와중 전기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일본 총무성은 도쿄 23개 구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작년 동월 대비 4.3% 올랐다고 밝혔다. 상승률로 치면 41년만에 최고치다.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이 각각 39.7%, 24.6% 오르는 등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일본 정부는 부담을 덜기 위해 지원책을 내놨다. 가정용 전기요금 1kWh당 7엔을 할인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 가을까지로 한정돼 있다. 10년만 한파가 닥친 일본에서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소비자가 더더욱 지갑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 거짓말이 중앙은행 미덕? 구로다에만 인색한 이유는[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중앙은행 총재의 미덕은 거짓말이라고들 한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이 외교 기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쓴 ‘건설적인 모호함(constructive ambiguity)’은 중앙은행에서도 여러 번 사용됐다. 지난해 10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직설적이지 않고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점은 중앙은행원의 미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건설적 모호함’을 사용하며 20세기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인정받는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왼쪽). 지난 1971년 중국 베이징에서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최근 ‘중앙은행 총재다운 미덕’으로 주목받는 인물은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시장은 거짓말로 받아들여 거꾸로 해석하고 있어서다. 지난 18일 구로다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10년물 국채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는 국채수익률곡선(YCC)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르면 3월 회의 때 YCC를 포기할 것으로 본다. 심지어는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는 4월 이후 YCC 폐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수장이 계속 유지한다고 못 박았는데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을 0.5%로 올리면서 “완화 축소는 아니다”는 구로다 설명에도 일본 언론들은 입을 모아 “사실상 금리 인상”이라고 해석했다. 구로다 총재가 양치기 소년을 자처한 측면도 있다. 과거 “장기금리 한도 인상은 금리 인상”이라며 신중하던 그가 “금리 인상이 아니라 완화정책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정반대 설명을 한 탓. 이 때문에 격한 반응도 나온다. 한 일본은행 원로 관계자는 “국민을 바보 취급한 설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사진=AFP)◇“일본은행, 거짓말 고집하다 경제 위험 놓쳐”왜 시장은 구로다 총재의 ‘거짓말’에 엄격할까. 아무리 경제는 심리라 하더라도, 일본은행이 의도한 효과(2% 인플레 달성)가 안 나타나면 적절하게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밀어붙여 비용만 엄청나게 키워 버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일본은행이 10년간 초완화 정책을 폈지만 의도했던 투자 및 소비진작 효과에선 낙제 평가를 받았다. 시장에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것 말고도 구로다 총재의 거짓말은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심리를 압박해 경제를 움직이려는 정책 당국자들에게 약간의 거짓말은 따르기 마련”이라면서도 “정책당국이 거짓말을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계속 고집한다면 당국자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고 짚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경제가 처한 진정한 위험을 일본은행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일본 경제는 늘어난 채무로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완화 효과를 믿고 싶은 일본은행이 부작용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앙은행 신뢰 차원에서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 일본은행이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장기채권 금리 상한을 0.5%로 유지하기 위해 지난달 일본은행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6%를 채권 매입에 투입했다. 이 속도로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를 계속 사들이면 일본은행 지분이 올해 중순에는 60%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토호루 사사키 JP모건 외환 스트래티지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한 것이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불분명하다”며 “YCC를 오래 유지할수록 이 수렁에서 벗어날 방법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쁜 엔저’로 인한 자본 유출도 골칫거리다. 재무성도 이례적으로 엔 매수·달러 매도에 동참하고 있다. 재무성 고위관계자는 일본은행에 “구로다 총재가 언제까지 고집을 부릴 것이냐”라며 물밑에서 완화정책 수정을 요구해 왔다고 닛케이는 전했다.P. S. 사실 중앙은행의 모호함이 미덕이 아니게 된 건 이미 25년 전 예고된 일일지 모른다. 지난 1998년 일본은행 내부 임원으로 구성된 ‘원탁회의’를 없애고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을 논의하고 의사를 결정하기로 했다. 논의된 사항은 한 달 안에 공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더는 한 나라의 금융정책이 국경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에서다. 중앙은행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실현하려면 시장 참가자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효율적인 작동 방식이라는 사실, 비단 일본에만 유효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김보겸 기자 2023.01.25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중앙은행 총재의 미덕은 거짓말이라고들 한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이 외교 기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쓴 ‘건설적인 모호함(constructive ambiguity)’은 중앙은행에서도 여러 번 사용됐다. 지난해 10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직설적이지 않고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점은 중앙은행원의 미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건설적 모호함’을 사용하며 20세기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인정받는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왼쪽). 지난 1971년 중국 베이징에서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최근 ‘중앙은행 총재다운 미덕’으로 주목받는 인물은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시장은 거짓말로 받아들여 거꾸로 해석하고 있어서다. 지난 18일 구로다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10년물 국채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는 국채수익률곡선(YCC)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르면 3월 회의 때 YCC를 포기할 것으로 본다. 심지어는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는 4월 이후 YCC 폐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수장이 계속 유지한다고 못 박았는데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을 0.5%로 올리면서 “완화 축소는 아니다”는 구로다 설명에도 일본 언론들은 입을 모아 “사실상 금리 인상”이라고 해석했다. 구로다 총재가 양치기 소년을 자처한 측면도 있다. 과거 “장기금리 한도 인상은 금리 인상”이라며 신중하던 그가 “금리 인상이 아니라 완화정책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정반대 설명을 한 탓. 이 때문에 격한 반응도 나온다. 한 일본은행 원로 관계자는 “국민을 바보 취급한 설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사진=AFP)◇“일본은행, 거짓말 고집하다 경제 위험 놓쳐”왜 시장은 구로다 총재의 ‘거짓말’에 엄격할까. 아무리 경제는 심리라 하더라도, 일본은행이 의도한 효과(2% 인플레 달성)가 안 나타나면 적절하게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밀어붙여 비용만 엄청나게 키워 버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일본은행이 10년간 초완화 정책을 폈지만 의도했던 투자 및 소비진작 효과에선 낙제 평가를 받았다. 시장에서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것 말고도 구로다 총재의 거짓말은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심리를 압박해 경제를 움직이려는 정책 당국자들에게 약간의 거짓말은 따르기 마련”이라면서도 “정책당국이 거짓말을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계속 고집한다면 당국자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고 짚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경제가 처한 진정한 위험을 일본은행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일본 경제는 늘어난 채무로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완화 효과를 믿고 싶은 일본은행이 부작용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앙은행 신뢰 차원에서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 일본은행이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장기채권 금리 상한을 0.5%로 유지하기 위해 지난달 일본은행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6%를 채권 매입에 투입했다. 이 속도로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를 계속 사들이면 일본은행 지분이 올해 중순에는 60%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토호루 사사키 JP모건 외환 스트래티지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한 것이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불분명하다”며 “YCC를 오래 유지할수록 이 수렁에서 벗어날 방법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쁜 엔저’로 인한 자본 유출도 골칫거리다. 재무성도 이례적으로 엔 매수·달러 매도에 동참하고 있다. 재무성 고위관계자는 일본은행에 “구로다 총재가 언제까지 고집을 부릴 것이냐”라며 물밑에서 완화정책 수정을 요구해 왔다고 닛케이는 전했다.P. S. 사실 중앙은행의 모호함이 미덕이 아니게 된 건 이미 25년 전 예고된 일일지 모른다. 지난 1998년 일본은행 내부 임원으로 구성된 ‘원탁회의’를 없애고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을 논의하고 의사를 결정하기로 했다. 논의된 사항은 한 달 안에 공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더는 한 나라의 금융정책이 국경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에서다. 중앙은행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실현하려면 시장 참가자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효율적인 작동 방식이라는 사실, 비단 일본에만 유효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구로다, YCC 포기할수도"…증권가 세 가지 시나리오[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은행이 오는 17~18일 금융정책 결정회의를 앞둔 가운데 증권가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 가운데에는 일본은행이 2016년부터 유지해 오던 국채수익률곡선(YCC) 정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중앙은행 독립성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모습.(사진=AFP)첫 번째 시나리오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YCC 정책을 추가로 수정하는 상황이다. 일본은행이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을 더 확대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달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을 기존 0.25%에서 0.5%로 올렸지만, 이번 회의에서 상한을 0.75%로, 높게는 1.00%로 더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전망의 근거가 된 건 지난달 일본은행이 상한을 올렸는데도 튀어오른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다. 지난 13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0.545%까지 올랐다. 일본은행이 설정한 0.5% 상한을 넘어선 것이다. 장기금리 적정 수준이 현재보다 높다고 보는 시장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 매도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다. 바클레이즈의 에비하라 신지는 “일본은행이 갑자기 정책을 변경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일본은행이 추가로 정책 수정에 나설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됐다”고 짚었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20일 국채 10년물 금리 변동 폭을 0.25%에서 0.5%로 상향하면서 금리가 오른 모습.(사진=SBI증권)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하기 위한 일본은행의 출혈도 컸다. 이날 일본은행은 장기금리를 0.5%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국채 10년물을 5조엔(약 48조5975억원)어치 사들였다. 하루 매입 금액으로는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은행이 이번 주 다시 10년물 금리 한도를 올려서 채권을 대규모로 사들여야 한다는 부담을 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기사키 고이치 모건스탠리 MUFG증권 매크로 스트래티지스트는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3.5%인 점을 고려하면 정상적인 조건에서 일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58% 안팎에서 형성될 것”이라며 이 같이 설명했다. 일본은행이 YCC 정책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수익률 목표를 방어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지난달 사들인 장기채 매입 금액은 306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는 규모다. FT는 “시장에서는 일본이 20년간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위해 실시해 온 초완화적 정책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YCC를 도입한 구로다 총재가 오는 4월 퇴임을 앞둔 만큼, 이번 주 회의가 결자해지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이다. 무라시마 기이치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총재가 4월부터 더 자유롭게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이전 총재가 중대사를 매듭짓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현상유지다. 노무라증권과 UBS증권이 내놓은 전망이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실시한 정책 변경의 여파를 시장이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는 관망할 것이란 관측이다. 마쓰자와 나카 노무라증권 매크로 스트래티지스트는 “일본은행이 YCC를 공식적으로 끝내려면 2% 인플레가 지속가능한 시점에 도달해야 하며, 그건 마이너스 금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라며 “이번 주 회의까지 이 모든 논리를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마지막 시나리오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비록 지난 10일 일본 도쿄 소비자물가가 4%대를 찍으며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것일 뿐 임금 상승이나 경기 회복 등 선순환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실제 식용유와 가스 가격이 작년보다 30% 넘게 오른 반면, 노동자 실질임금은 3.8% 줄었다.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금융완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일본은행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10년물 국채 금리 상한을 다시 올리는 것은 경기 둔화를 일으킬 수 있어 상식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김보겸 기자 2023.01.16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은행이 오는 17~18일 금융정책 결정회의를 앞둔 가운데 증권가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 가운데에는 일본은행이 2016년부터 유지해 오던 국채수익률곡선(YCC) 정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중앙은행 독립성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모습.(사진=AFP)첫 번째 시나리오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YCC 정책을 추가로 수정하는 상황이다. 일본은행이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을 더 확대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달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을 기존 0.25%에서 0.5%로 올렸지만, 이번 회의에서 상한을 0.75%로, 높게는 1.00%로 더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전망의 근거가 된 건 지난달 일본은행이 상한을 올렸는데도 튀어오른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다. 지난 13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0.545%까지 올랐다. 일본은행이 설정한 0.5% 상한을 넘어선 것이다. 장기금리 적정 수준이 현재보다 높다고 보는 시장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 매도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다. 바클레이즈의 에비하라 신지는 “일본은행이 갑자기 정책을 변경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일본은행이 추가로 정책 수정에 나설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됐다”고 짚었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20일 국채 10년물 금리 변동 폭을 0.25%에서 0.5%로 상향하면서 금리가 오른 모습.(사진=SBI증권)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하기 위한 일본은행의 출혈도 컸다. 이날 일본은행은 장기금리를 0.5%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국채 10년물을 5조엔(약 48조5975억원)어치 사들였다. 하루 매입 금액으로는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은행이 이번 주 다시 10년물 금리 한도를 올려서 채권을 대규모로 사들여야 한다는 부담을 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기사키 고이치 모건스탠리 MUFG증권 매크로 스트래티지스트는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3.5%인 점을 고려하면 정상적인 조건에서 일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58% 안팎에서 형성될 것”이라며 이 같이 설명했다. 일본은행이 YCC 정책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수익률 목표를 방어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지난달 사들인 장기채 매입 금액은 306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는 규모다. FT는 “시장에서는 일본이 20년간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위해 실시해 온 초완화적 정책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YCC를 도입한 구로다 총재가 오는 4월 퇴임을 앞둔 만큼, 이번 주 회의가 결자해지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이다. 무라시마 기이치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총재가 4월부터 더 자유롭게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이전 총재가 중대사를 매듭짓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현상유지다. 노무라증권과 UBS증권이 내놓은 전망이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실시한 정책 변경의 여파를 시장이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는 관망할 것이란 관측이다. 마쓰자와 나카 노무라증권 매크로 스트래티지스트는 “일본은행이 YCC를 공식적으로 끝내려면 2% 인플레가 지속가능한 시점에 도달해야 하며, 그건 마이너스 금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라며 “이번 주 회의까지 이 모든 논리를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마지막 시나리오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비록 지난 10일 일본 도쿄 소비자물가가 4%대를 찍으며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것일 뿐 임금 상승이나 경기 회복 등 선순환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실제 식용유와 가스 가격이 작년보다 30% 넘게 오른 반면, 노동자 실질임금은 3.8% 줄었다.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금융완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일본은행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10년물 국채 금리 상한을 다시 올리는 것은 경기 둔화를 일으킬 수 있어 상식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 日 괴롭혀온 '나쁜 엔저', 터널 끝 보이나[김보겸의 일본in]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역대급 엔저(엔화가치 하락)’에 언젠가 오르길 기다려온 엔화 투자자들이 반길 만한 소식이 들려온다.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151엔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올 들어 엔화 가치는 강세를 띠며 130엔대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일본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물론 “아직도 엔화는 너무 싸다”는 평가도 있지만 앞으로도 엔화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있다. 수입물가와 수출물가 차이다.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AFP)일본 경제는 작년 특히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줄줄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가운데 일본은행만 나홀로 금융완화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엔저가 지속된 탓이다. 원래대로라면 수출기업에는 호재가 됐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변수가 등장했다. 작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주로 밀을 생산하는 농업대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 통로인 흑해를 러시아 함대가 가로막은 탓에 수출이 막혀 버린 것. 이 때문에 곡물과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결국 수입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일본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냈다. 무려 16개월 동안.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무역적자는 11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인 2조274억엔을 기록했다. 악순환이 반복됐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팔고 달러는 사들였다. 2022년 들어 급격하게 엔화 가치가 떨어진 건 일차적으로 미·일 금리차 확대 때문이지만, 매달 무역적자 수치가 발표되면서 ‘엔 매도·달러 매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엔화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급 저점을 찍었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151엔을 찍은 엔화가 현재 130엔대 언저리로 가치가 절상했다.(사진=인베스팅닷컴)하지만 이런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모리타 쿄헤이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올해 하반기에는 나쁜 엔저가 들리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근거로는 수입물가 와 수출물가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22년 들어 30%포인트에 달했던 두 물가지표 차는 지난해 11월 13%포인트로 줄었다. 수입물가가 28.2% 오를 때 수출물가가 15.1% 상승하면서다. 수출입 물가 상승률 차이가 좁혀질수록 수출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역대급 엔저도 끝날 수 있다는 게 모리타의 설명이다. 수출기업들이 탄력을 받으면 무역수지가 개선되면서 엔화 매수 수요도 살아날 것이고,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금리인상을 중단하면 엔화가치 절상이 더 속도를 낼 가능성도 커진다는 기대다. 물론 수년간 이어져 온 엔저 현상이 단박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엔화 가치 상승은 무역적자 개선을 전제로 하는데 ‘J커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악화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값싼 일본 수출품의 가격 매력도가 커지면서 무역수지가 개선되는데, 과연 올해 세계 경제가 일본 수출품이 싸다는 이유로 많이 사들일 정도로 좋아질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카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교역조건도 제한적으로만 개선될 여지가 높아 연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시장은 급격한 엔고보다는 서서히 엔화가 절상되는 흐름을 전망하는 분위기다.
    김보겸 기자 2023.01.09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역대급 엔저(엔화가치 하락)’에 언젠가 오르길 기다려온 엔화 투자자들이 반길 만한 소식이 들려온다.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151엔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올 들어 엔화 가치는 강세를 띠며 130엔대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일본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물론 “아직도 엔화는 너무 싸다”는 평가도 있지만 앞으로도 엔화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있다. 수입물가와 수출물가 차이다.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AFP)일본 경제는 작년 특히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줄줄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가운데 일본은행만 나홀로 금융완화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엔저가 지속된 탓이다. 원래대로라면 수출기업에는 호재가 됐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변수가 등장했다. 작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주로 밀을 생산하는 농업대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 통로인 흑해를 러시아 함대가 가로막은 탓에 수출이 막혀 버린 것. 이 때문에 곡물과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결국 수입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일본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냈다. 무려 16개월 동안.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무역적자는 11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인 2조274억엔을 기록했다. 악순환이 반복됐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팔고 달러는 사들였다. 2022년 들어 급격하게 엔화 가치가 떨어진 건 일차적으로 미·일 금리차 확대 때문이지만, 매달 무역적자 수치가 발표되면서 ‘엔 매도·달러 매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엔화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급 저점을 찍었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151엔을 찍은 엔화가 현재 130엔대 언저리로 가치가 절상했다.(사진=인베스팅닷컴)하지만 이런 ‘나쁜 엔저’에도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모리타 쿄헤이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올해 하반기에는 나쁜 엔저가 들리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근거로는 수입물가 와 수출물가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22년 들어 30%포인트에 달했던 두 물가지표 차는 지난해 11월 13%포인트로 줄었다. 수입물가가 28.2% 오를 때 수출물가가 15.1% 상승하면서다. 수출입 물가 상승률 차이가 좁혀질수록 수출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역대급 엔저도 끝날 수 있다는 게 모리타의 설명이다. 수출기업들이 탄력을 받으면 무역수지가 개선되면서 엔화 매수 수요도 살아날 것이고,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금리인상을 중단하면 엔화가치 절상이 더 속도를 낼 가능성도 커진다는 기대다. 물론 수년간 이어져 온 엔저 현상이 단박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엔화 가치 상승은 무역적자 개선을 전제로 하는데 ‘J커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악화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값싼 일본 수출품의 가격 매력도가 커지면서 무역수지가 개선되는데, 과연 올해 세계 경제가 일본 수출품이 싸다는 이유로 많이 사들일 정도로 좋아질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카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교역조건도 제한적으로만 개선될 여지가 높아 연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시장은 급격한 엔고보다는 서서히 엔화가 절상되는 흐름을 전망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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