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생활부

김무연

기자

위대한 생각

  • [위대한 생각]②‘소유와 경영 분리’ 논란은 왜 반복되는가
    ②‘소유와 경영 분리’ 논란은 왜 반복되는가
    김무연 기자 2020.11.23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인더스토리Ⅱ’ 주식 편을 강의하고 있다. 임 박사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는 해적이 주축이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라며 “그들 사이에선 소유의 개념이 없었다”고 말했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 독과점, 내부거래, 문어발식 확장, 비정규직 문제. 우리나라 기업은 다양한 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다. 기업을 소유한 오너가 경영을 주도하면서 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기업 자금이 오너 일가의 쌈짓돈으로 활용된다는 것이 비판의 주요 골자다.가족 기업, 1인 기업을 비롯해 수백, 수천 가지의 기업이 존재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주식회사’라는 하나의 소유 구조로 수렴된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설립되고 성장한 기업들을 주식회사라는 하나의 옷에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는 것이다. 임규태 박사는 현대 경제와 금융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유와 경영 문제의 근원을 주식회사의 탄생 배경으로 설명했다. 주식회사의 기원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이 회사의 창업자들은 사략선을 운영하던 해적들이다. 대중매체에서는 해적을 무식하고 과격하며 통제 불가능한 존재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조직 운영은 매우 민주적이었다고 임 박사는 말한다.선장, 전투원, 갑판 노동자, 항해사 등 해적선을 운영하는 인력은 배에 얽매인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하고 그에 합당한 배분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필요에 따라 해적선에 옮겨 탔다. 약탈이 끝나면 인종이나 나이에 상관 없이 정해진 지분에 따라 재물을 공정하게 분배했다. 해적선의 선장 또한 선원들의 투표로 뽑았다. 그만큼 민주적으로 운영됐다. 해적들은 소유의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 해적선은 자신이 기여한 만큼 배당을 받고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일터에 불과했다. 이런 해적들의 관념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까지 이어졌다. 동인도회사는 각자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만 존재할 뿐 누구도 회사를 소유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출자자인 네덜란드 국민들 역시 자신이 투자한 지분에 따른 배당에 만족했고, 주가가 오르면 매각해 목돈을 챙겼을 뿐 기업 소유와 경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현대의 기업 대부분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업들은 대규모 자금을 외부로부터 조달하기 위해 일반 투자자들의 돈을 모으고 주식을 교부하는 상장이나 기관이나 다른 기업에 새 주식을 발급하는 대가로 투자금을 받는 유상증자를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창업자는 소유권의 일부를 포기하는데, 이때 경영권에 대한 모호함이 발생한다. 주인이 없었던 동인도 회사와 달리 현대 기업 상당 수는 1인 또는 가족 기업에서 출발한 오너 기업이다. 동인도 회사 출자자들과 달리 오너들은 지분율에서 밀려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최근에는 안정적 지배구조를 확보한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를 제한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오너들이 반발하며 기업 경영 방식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다. 임 박사는 소유만 하고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애초에 가능한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반문하면서 기업의 소유와 경영 분리는 선악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나라밖 세상은 격변의 시기로, 우리 기업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저마다 다른 형태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우리는 기업 관련 논의의 대부분을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낭비하고 있다”라면서 “주식회사의 기원을 돌이켜보고 결론이 나지 않는 다툼으로 힘을 빼기보다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면서 강의를 마쳤다.
  • [위대한 생각]①해적부터 월스트리트까지…'주식의 탄생'
    ①해적부터 월스트리트까지…'주식의 탄생'
    김무연 기자 2020.11.23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인더스토리Ⅱ’ 주식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인더스토리’(INDUSTORY)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대항해시대 당시 지도[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올 하반기 국내 증권 시장은 여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동산 가격 규제 등으로 오갈 곳 없는 여유 자금들이 증시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주린이’(주식+어린이), 국내 소액 개인 투자자를 일컫는 ‘동학개미’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주식이란 주식회사에 자본을 대고 이에 따라 교부받는 증서다. 개인이나 단체는 특정 회사에 일정 금액을 투자해주고 그 대가로 주식을 받는다. 투자자는 정해진 기간마다 보유한 주식에 걸맞게 이득을 배당 받거나 주가가 오르면 이를 팔아 차익을 챙긴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거래하는 주식시장은 기업 경영 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좌우할 만큼 실물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그렇다면 주식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지위를 갖게 됐을까. 임규태 박사는 그 출발점을 중세 유럽의 흑사병에서 찾았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의 특효약이 육두구와 정향이라고 알려지자 유럽 각국은 이를 찾기 위해 대양으로 진출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이다.대항해시대에 무역을 통해 성장한 상인들과 해적 집단이 국가와 공생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동인도회사다. 임 박사는 “주식은 민간업자들이 모여 국가가 지원하는 거대 독점 기업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소유 체계가 필요해 생겨났다”며 “현대경제에서 주식 제도를 둘러싸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주식회사의 기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사략선들이 활약한 칼레 해전◇ 주식회사의 기원 ‘동인도 회사’1492년 이슬람 제국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수복한 이사벨 여왕은 ‘알람브라 법’을 공표한다. 해당 법의 골자는 이슬람 세력과 공생하던 유대인을 추방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유대인이 보유한 금융 자산 뿐아니라 무역업 기반까지 빼앗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터전을 잃은 유대 자본가와 조선 기술자들은 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가 위치한 플랑드르 지방으로 이주한다. 유대인의 자본과 해양 기술의 집합지가 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금융과 해양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항해 황금시대에 네덜란드 선박이 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설 정도였다.신구교간의 갈등이 심화하던 시기에 태생적으로 신교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네덜란드는 부에 비해 군사력이나 정치적 위상이 약했다. 가톨릭의 수호자를 천명한 신성로마제국이 해양 강국으로 키우던 스페인은 지속적으로 네덜란드를 압박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성공회를 만들어 가톨릭과 단절에 나선 영국과 손잡고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포루투갈 연합과 해전을 치른다.이 전쟁의 향배를 결정짓는 칼레 해전에서 영국의 승리에 큰 활약을 한 인물이 프랜시스 드레이크다. 원래 그는 해적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해적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평상시 노략질을 할 수 있는 특허를 내주는 국가 공인 해적 ‘사략선’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제도 덕분에 드레이크뿐 아니라 수많은 해적들이 영국-스페인 해전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1세는 그들의 활약을 인정해 해적과 상인들을 모은 회사를 세우고 이 회사에 무역 독점권을 부여한다. 이렇게 설립한 회사가 영국 동인도회사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영국 동인도회사는 영국 정부의 무역독점권 덕분에 동남아시아 무역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네덜란드 역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운다. 하지만 그 설립 방식은 전혀 달랐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왕실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반면 네덜란드는 무역선의 침몰, 해적의 약탈 등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해적과 상인들이 저마다 자본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설립했다. 설립 자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정부의 투자를 받았을 뿐 아니라 일반 네덜란드 국민들도 회사 설립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1602년 총 1143명이 650만 길더(약 1310억원)를 모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공식 출범했다. 당시 동인도 회사에 자본을 댄 해적, 상인, 일반 국민들은 투자를 했다는 증서인 ‘주식’을 받았다. 1609년에는 동인도 회사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최초의 주식 거래소가 암스테르담에 설립됐다. 17세기 중반 암스테르담 주식 거래소에는 주식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브로커와 딜러, 주식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파생상품이 이미 존재했다. 올리버 크롬웰◇ 영국, 산업사회의 리더로 부상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영국과 네덜란드는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해상 무역을 주도했다. 그러다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말루쿠 해협에 위치한 암보이나 섬에서 영국 상인 10여 명을 납치해 살해하는 ‘암보이나 학살 사건’을 일으키면서 양국의 관계는 틀어진다.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은 ‘항해조례’를 선포해 자국 기업을 키우고 네덜란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항해조례란 영국의 무역은 영국의 배, 즉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배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네덜란드는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크롬웰은 영국 동인도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 손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조너선 커피하우스영국 동인도 회사의 주식 거래가 이뤄진 곳은 런던 왕실 거래소가 아니라 그 옆에 위치한 ‘조너선 커피하우스’였다. 엘리자베스 1세가 주식 중개인들의 무례한 행위를 참지 못하고 주식 관련 거래를 금지한 탓이다. 조노선 커피하우스에서 소박하게 출발한 주식 거래는 향후 런던증권거래소로 이어지게 된다.초창기 영국 주식 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동인도회사 주식을 제외하면 거래할 만한 회사 주식이 적었던 탓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명과 이에 따른 산업혁명, 철도 물류의 발달로 상황은 급변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며 관련 주식도 넘쳐나기 시작했다.영국 정부는 기업법을 시행해 지금까지 허가제였던 기업 설립을 7인 이상이 모이면 누구나 회사를 차릴 수 있는 등록제로 바꾸면서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임 박사는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산업이 속속 등장하던 시점에 영국 정부는 7인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회사를 차릴 수 있도록 규제를 손봤다”면서 “산업 혁신과 맞물린 제도의 변화가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탄생시켰다”라고 강조했다.버튼우드 옆에서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들◇ 뉴욕은 어떻게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됐나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헨리 허드슨은 신대륙에서 한 강을 발견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훗날 ‘허드슨 강’이라고 불리는 이 강의 하구를 ‘뉴 암스테르담’으로 명명하고 식민지 개척을 시작한다. 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결과로 네덜란드는 육두구 산지인 룬섬 지배권을 얻는 대신 이 지역을 영국에 넘긴다. 이 지역을 넘겨받은 영국은 당시 해군 사령관 요크 공작 제임스 2세의 작위를 따 ‘뉴 요크’라 이름을 바꿨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이다.세계를 대표하는 금융 일번지 ‘월 스트리트’도 뉴욕 맨해튼 섬에 위치해 있다.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이주한 월룬(Walloon) 가문에서 따왔단 설도 있지만 1640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형 나무 목책(Wall)을 세운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초창기 월 스트리트는 주식 거래가 아닌 최초의 노예 거래소였다. 1711년 월 스트리트에 50명 정도의 노예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세우고 이곳에서 노예를 거래했다. 이후 월 스트리트에 주식 거래자들이 월 스트리트의 미국산 플라타너스 나무(버튼우드·Buttonwood) 옆에서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1792년 24명의 주식 거래자들이 모여 수수료를 0.25%로 제한하는 등 공정 거래 합의서인 ‘버튼우드 협정’를 체결했다. 버튼우드 협정은 미국의 역사뿐 아니라 금융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전신전화를 이용하는 뉴욕증권거래소.버튼우드 협정이 체결된 이듬해부터 주식 거래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톤틴’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에서 진행됐다. 1817년 뉴욕증권거래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주식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878년 당시로선 최신 기술이었던 전신전화 기술을 도입해 브로커와 딜러 간 거래를 돕는 혁신을 단행하면서 세계적인 증권 거래소로 급부상했다.증권 거래소의 혁신과 더불어 뉴욕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찰스 다우다. 그는 ‘월 스트리트 저널’을 만들어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소식을 전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통계학자 에드워드 데이비드 존스와 함께 다우 지수를 만들어 공정한 기업 가치와 주가 정보를 제공하는 선진 금융 제도를 도입했다.임 박사는 “1971년 등장한 나스닥은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다시 한 번 주식 거래의 혁신을 이뤘다”라면서 “뉴욕이 금융 일번지로서 현재의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혁신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이를 시장에 접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①中 금융 강국 도약 일등공신 ‘알리페이’
    ①中 금융 강국 도약 일등공신 ‘알리페이’
    이윤화 기자 2020.11.16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디지털 대전환산업 전방위적으로 디지털 기술 기반의 혁신이 일상화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는 우리 일상과 사회를 넘어 기업의 변혁을 더욱 가속화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대전환에서는 디지털이 어떻게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기업의 사업 전략에 영향을 주는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기업과 개인의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 체계, 변화관리 방안을 다룬다.☆ 김지현 IT전문가·강사·기업가 25년간 기업의 사업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 혁신을 추진해온 사업 전략가. 디지털 기술 관련 도서를 50여 권 집필한 저자이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중요성과 추진 방안에 대해 설파하는 강사. ABCDI(AI, Block chain, Cloud, Data, IoT)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전략 전문가. 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디지털 대전환’ 금융 편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윤화 기자] ‘위대한 생각 : 디지털 대전환’ 네 번째 강연의 주제는 금융 산업의 디지털 혁신이다. 금융은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DT) 과제가 시급한 산업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은 대내외적으로 중국, 미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디지털 금융 혁신’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는 코로나19 이후 국내 금융 산업이 놓인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존 오프라인 금융 서비스와 온라인 기반의 핀테크(FinTech) 비즈니스의 차이점, 오프라인 기반 금융사들이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강연했다. 핀테크는 Finance(금융)와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로, 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한 금융서비스 및 산업의 변화를 통칭한다.◇중국 제패한 ‘알리페이’ 롤모델로 성장하는 韓 핀테크 기업 중국은 과거 금융 분야에서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현재 ‘알리페이’와 ‘웨챗페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핀테크 시장에서 강국의 위치에 섰다. ‘중국의 거지조차 큐아르(QR)코드를 기반으로 구걸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핀테크 금융의 보편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리바바그룹이 개발한 온라인 금융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는 2004년 결제 솔루션으로 시작해 현재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중국 국민 생활 전반에 쓰이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알리페이는 대중교통부터 식당, 쇼핑몰 등 다양한 오프라인 현장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플랫폼 서비스 앱 대신 알리페이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쇼핑을 할 수 있는 편의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계부 관리부터 포인트, 청구서 관리도 한 번에 가능하다는 것도 매우 큰 장점이다. 가게 주인은 결제 대금 확인은 물론 고객 관리, 마케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알리페이 앱. (사진=강사 제공)반면, 한국은 기존 금융권을 대표하던 은행·카드사 역할을 핀테크 기업들이 대체하고 있다. 국내 대표 핀테크 기업으로는 ‘토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토스는 최근 2년 연속 한국 Z세대가 선호하는 앱 분야별 1위를 기록하는 등 핀테크 앱 중 가장 많은 월간이용자수(MAU)를 보유하고 있다. 토스는 20~30대 대학생부터 사회초년생들이 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2015년 공인인증서 없는 간편 송금 서비스로 시작해 40개가 넘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토스에 이어 카카오, 네이버 페이도 대표적인 핀테크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청구서 확인, 공과금 납부, 선물하기 기능 등 간편 결제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직간접적인 서비스로 일상생활에 안착했다.김 강사는 “토스는 전화번호 기반의 송금 서비스라는 기존 은행 앱보다 편리했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었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추가해 왔다. 아직은 알리페이 수준의 종합 플랫폼 영향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뱅크샐러드도 국내 주목받는 핀테크 기업이다.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재테크에 특화한 장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데, 개인 최적화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 개인의 금융 소득, 소비 내역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카드를 추천하고 어떤 금융 상품 투자가 좋은지 추천해준다. ◇수수료 NO…알리페이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알리페이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에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내던 금융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결제 과정의 단순화를 수단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무너뜨렸다.그동안의 결제 과정은 크게 4가지 단계로 나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신용카드로 물건을 샀다고 가정할 때 소비자와 점주 사이에는 단말기 업체, 전자결제대행업체(PG사), 신용카드 회사, 은행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신용카드 결제를 기피하는 것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때문이다. 또 결제 대금 역시 1~2개월 이후 정산받아야 한다는 단점도 발생한다.알리페이는 이러한 기존 금융 시스템의 불편사항을 간파하고 번거로운 결제 과정을 단순화했다. 알리페이 앱 자체를 신용카드인 동시에 은행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점주와 소비자 모두 ‘윈윈’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수수료가 없다는 것이다. 간혹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한해 결제 수수료를 받기는 하지만 그마저 1~2% 수준에 그치고, 중소상인들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그 대신 국민 전반이 사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택해 오프라인 결제 내역을 클라우드 데이터로 수집하고 정교한 마케팅 솔루션을 만들어 되판다. 단골 비중, 잠재 고객, 경쟁사 분석, 예상 매출액 등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 사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한 셈이다. 수수료는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가 기피할 대상이지만 마케팅 솔루션, 고객의 소비 데이터는 대기업부터 동네 가게 사장님들까지 누구나 원하는 비싼 상품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의 확산과 혁신에 유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김 강사는 “핀테크 기업이 금융 수수료가 아닌 마케팅 컨설팅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던 이유는 알리페이 앱 자체를 모든 결제 과정을 통합한 시스템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면서 “비즈니스 모델의 전이로 금융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②은행·카드사의 디지털 혁신 전략은
    ②은행·카드사의 디지털 혁신 전략은
    이윤화 기자 2020.11.16
    네이버페이 식탁 결제.[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윤화 기자] 기존의 오프라인 금융권이 디지털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지현 강사는 기존의 금융권이 신규 핀테크 기업들에 비해 부족한 지점과 국내 핀테크 시장의 경쟁구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카카오뱅크와 기존의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의 화면과 간단한 송금 서비스만 비교해 봐도 편의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카카오뱅크 앱 내에서는 송금받을 사람과의 채팅창에서 송금하기 버튼과 금액만 입력하고, 생체인식 및 비밀번호로의 간단한 인증절차만 거치면 된다. 시간상으로는 약 10초도 걸리지 않아서 이체가 완료된다. 반면, 은행 앱은 화면 구성 자체가 직관적이거나 간소화돼 있지 않다. 또 상대방의 이름, 계좌번호부터 시작해 입력해야 할 정보가 많고 인증절차가 카카오뱅크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에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김 강사는 “핀테크 기업들은 기존 금융권이 사용자에게 비대면 서비스의 편의성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단점을 파고들어 세력을 확장해 왔다”면서 “IT 기술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핀테크 기업이 앱 기반 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한 단계 앞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 기업 경쟁구도. (사진=강사 제공)알리페이를 중심으로 핀테크 생태계가 구축된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핀테크 시장 경쟁자는 3강(强) 구도로 나뉜다. 가장 먼저 인터넷·I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네이버·카카오·페이코와 같은 대기업들이 있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작은 스타트업인 토스·뱅크샐러드 등이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온·오프라인 커머스를 토대로 한 핀테크 서비스가 있다. 이커머스 분야에는 스마일페이(이베이코리아)·11페이(11번가), 쿠페이(쿠팡) 등이 있고, 오프라인 유통을 바탕으로 한 SSG닷컴(신세계그룹), L페이(롯데) 등으로 세분화된다. 다만, 핀테크 혁신 대신 스마트폰 등 기기를 기반으로 결제시스템을 운영하는 삼성·LG페이처럼 제조 기반 서비스는 논의에서 제외했다.여전히 온라인 결제 시장 규모가 오프라인 결제 시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드사나 은행 등 기존 금융권의 희망은 남아 있다. 핵심은 오프라인 기반의 사용자 경험과 온라인 기술을 결합해 혁신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간편 결제가 가져온 모바일 서비스의 편의성은 배달의민족, 스타벅스 사이렌오더, 카카오택시 등처럼 많은 기업과 관련 시장 성장을 가져왔다”면서 “이처럼 사용자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금융서비스가 어떤 것이 있는지 고민하고 핀테크 시장 내 기업들과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시장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알리페이가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뿐만 아니라 병원, 은행은 물론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쓸 수 있는 것처럼 오프라인 영역의 보편성, 확장성을 기본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라면서 “빅데이터 분석 관리 기술을 기반으로 배달, 택시호출 등 생활밀접형 서비스를 통합한 미래지향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디지털 대전환’ 금융 편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 [위대한 생각]②법·도로·달력…우리 곁의 ‘로마’
    ②법·도로·달력…우리 곁의 ‘로마’
    이성웅 기자 2020.11.09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성웅 기자] 강력한 로마군단을 기반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453년 비잔틴 제국 멸망으로 로마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현대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로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로마법이다. 로마법은 고대 로마의 소송, 채무, 상속, 재산 등에 대해 규정한 ‘12표법’에서 기원했다. 로마법은 로마 멸망 후에도 그 기틀이 이어져 18세기 말까지 유럽 전역의 사법제도로 이용됐다. 이 덕분에 독일 등 유럽 국가들 뿐 아니라 그 국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국가의 사법제도까지 로마법의 영향권에 있다. 영국은 로마법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지만, 영국과 북아메리카의 관습법은 상당부분 로마법에 의존한다. 독일, 프랑스 중심의 대륙법과 영미법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대한민국 사법제도 역시 로마법이 근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로마법을 편찬한 ‘로마법 대전’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로마의 도로다. 로마 제국엔 약 5만마일(약 8만㎞)에 달하는 포장도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유럽의 많은 도로는 고대 로마의 도로 위에 만들어졌다. 즉, 로마 제국이 형성해 놓은 교통망이 현재에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달력 역시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12개월짜리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고 한다. 로마의 사실상 1인 지배자였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만든 체계다. 달의 이름에서도 7월(July)는 율리우스에서, 8월(August)은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서 각각 따왔다.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대제국 시대 로마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로마는 아득히 멀다’고 얘기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로마는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며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로마제국의 요충지였고, 로마식 사고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적 삶까지도 로마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강연을 맺었다.
  • [위대한 생각]①외세의 침략이 키운 '최강 로마군단'
    ①외세의 침략이 키운 '최강 로마군단'
    이성웅 기자 2020.11.09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워-스트래티지(WarStrategy)전쟁은 무기의 질, 병력의 수보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전략과 작전을 바탕으로 전투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페르시아 전쟁 등 인류사의 향배를 결정지은 수많은 전쟁과 이에 얽힌 전략적 사유를 통해 개인과 국가의 행위를 이해하는 폭을 넓힌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중앙대에서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육군 및 해군 발전자문위원. ‘전쟁과 미술’ 발간. ‘현대군사명저를 찾아’, ‘군사고전 다시읽기’, ‘역사속의 군사전략’ 등 기고 중.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워-스트래티지’ 5강 ‘절대강자 로마군단의 비밀’ 편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성웅 기자] 기원전(BC) 323년 유럽 최초로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급사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가 세웠던 헬라 제국은 네 조각으로 쪼개진다. 알렉산더 대왕이 더 오래 살았다면 이탈리아 지역까지 정복했을까는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인들의 숙원인 페르시아 원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그리스 서쪽에 위치한 이탈리아 반도까지는 세력을 미치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이탈리아 지역을 통일한 로마는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이라크, 북쪽으로 라인강 지역, 남쪽으로 북아프리카까지 500만㎢에 달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렇다면 로마가 고대에서 중세까지 대제국을 영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위대한 생각’ ‘워-스트래티지’ 5강에서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로마군단이었다”고 운을 뗐다.◇위기를 기회로…군단 체제로 변화로마는 이탈리아 서쪽 테베레강 연안에 터를 잡은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했다. 강을 낀 지역이었지만, 국력이 강한 국가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의 저서 ‘영웅전’에서 로마인에 대해 “지성으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으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며,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선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로마인도 알고 있었다”고 서술했을 정도다.켈트족에 의해 침략당한 로마를 묘사한 근대화가 폴 자민의 작품실제로 로마는 BC 390년 켈트족이 침략했을 때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한지 불과 100여년만의 위기였다. 알리아 전투에서 참패한 로마는 카피톨리아 성전에서 7개월간 항전했지만, 그 기간 동안 켈트족은 로마인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살육했다. 켈트족은 황금 300㎏을 받고 나서야 로마에서 물러났다. 최 교수는 “켈트족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는 로마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며 “켈트족 침략 이전 분열됐던 로마 시민들은 전쟁 이후 대통합하고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로마의 대전략은 동맹을 강화하고 뛰어난 전투력의 군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로마는 주변 동맹국들과 실효성 있는 공동안보체제를 만든 직후 군대 체제 개편을 단행했다. 로마는 켈트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기동력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기존 그리스식 ‘팔랑크스’(Phalanx) 체제를 버리고 1명의 집정관이 2개의 군단을 거느리고 기병과 동맹군단을 배치하는 ‘레기온’(Legion) 체제를 채택했다. 2개 군단의 양 옆엔 비슷한 규모의 동맹군 ‘알라’(Ala)를, 각 동맹군의 옆엔 300명 규모의 기병대 ‘카발리’(Cavalry)를 배치했다. 로마군단의 핵심 전술 단위는 중대였다. 1개 군단이 약 5000명 규모로, 각 군단은 120명으로 구성된 보병중대 ‘마니플’(Maniple)로 채워진다. 단위 중대가 자율적·독립적으로 전술을 펼칠 수 있도록 편제를 짰다. 이 같은 로마군단의 편제는 현대의 군에서도 여전히 일부 사용하고 있다.로마군단 편제편제 변화뿐만 아니라 개별 전사의 전투력 양성도 군대 개편의 핵심 과제였다. 로마군은 30㎏ 완전군장 상태에서 18마일(약 29㎞)를 주파하는 훈련으로 기동력을 키웠다. 또 각종 토목기술을 배워 행군 중 주거지를 마련하도록 하는 등 어떤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는 부대로 양성했다.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도 중요시했다. 사소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중대의 백인대장이 채찍으로 처벌했다. 가장 큰 형벌은 ‘데시메이션’(Decimation)이었다. 데시메이션은 겁쟁이에게 내린 벌로, 전투에서 퇴각할 경우 부대원 중 무작위로 10분의 1을 뽑아 나머지 9할의 병사들이 때려죽이도록 하는 형벌이다. 최 교수는 “당시 로마군단은 어느 나라보다 전투력이 뛰어난 절대강자였다”며 “시민 전사였던 이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스스로 지키는 것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로마는 국가 차원에서 우수한 무장과 장비를 보급했다. 원래 로마군은 시민군이기 때문에 무장을 자체 수급하는 것이 당연시 됐지만, 무장을 통일하기 위해 국가에서 장비를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전 방위적 노력으로 얻어진 탁월한 전투력을 기반으로 로마는 켈트족 침략 이후 120년 만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게 된다. ◇세계 민주주의 기틀 된 로마 공화정로마의 또 다른 강점은 정치체제였다. 세계 민주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준 로마의 공화정은 켈트족 침략 이후 국민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평민 출신 호민관을 집정관에 배정한다는 ‘리키니우스법’이 통과된 것을 기념하는 ‘화합의 사원’(Temple of Concordia) 복원도.로마는 BC 509년 공화정 체제를 도입한 이후 귀족과 평민간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이어졌다. 로마 공화정은 이 뿌리 깊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원전 495년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호민관’을 설치했다. 평민이 실질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켈트족 침략 이후에는 평민의 정치 참여 기회가 더욱 확대됐다. 평민도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됐고, 평민 출신 호민관이 집정관에 오를 수 있었다. 또 평민회의의 결정이 입법으로 이어져 사실상 귀족과 평민 간 정치적 평등이 실현됐다. 평민의 정치 참여는 군대에도 적용됐다. 로마 군단을 지휘하는 집정관의 임기는 1년이었다. 이들은 ‘켄투리아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되었는데, 집정관이 지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장에서 목숨이 오갔기 때문에 군사적 역량이 가장 중요시됐다. 집정관을 뽑는 주체는 집정관의 지휘를 받는 백인대장들이었다. 또한 백인대장을 뽑는 것은 백인대장의 지휘를 받는 병사들이었다. 사실상 말단 병사들이 최고 지휘관인 집정관을 뽑는 셈이다. 이러한 민주적 제도 덕분에 로마에서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Quintus Fabius Maximus), 가이우스 줄리어스 시저(Gaius Julius Caesar) 등 유능한 지휘관을 계속 배출할 수 있었다.최 교수는 “로마는 전쟁을 계속했기 때문에 오히려 국민을 통합할 수 있었다”며 “전쟁을 수행하는 평민의 발언권이 확대됐고, 평민의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개방적 정치체제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가이우스 줄리어스 시저.◇원로원을 통한 통합의 대전략로마가 이탈리아 통일을 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적은 줄이고 친구는 늘리는 로마의 ‘로마화 전략’이 있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우호적인 국가에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고, 관계가 좋지 않은 국가에도 투표권을 제외한 시민권을 줬다. 동맹국에는 전쟁 발생 시 로마 군대의 자동 파견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한 전략적 거점지는 식민지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차등을 두었으며 동맹국들 사이에는 식민지나 병합지를 두어 동맹국끼리의 단합이나 독립적 활동을 막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마 동맹의 힘은 실로 강대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연패했지만,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동맹의 힘으로 20개 군단, 18만 명의 병력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니발의 군사는 겨우 2만5000명 정도였다. 이 같은 동맹 체제를 만들 수 있는 지혜는 300명의 원로들로부터 나왔다. 로마의 원로원은 전직관리나 집정관, 법무관들로 구성됐다. 이들이 국정에 조언하고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했다. 원로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구성원의 나이가 상당히 많고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의 평균나이인 54.9세보다 젊고 개방적으로 운영됐다. 최 교수는 “로마는 원로원 일당 지배체제였지만 폐쇄적이지 않았고 새로이 통합된 지역의 원로를 받아들일 정도로 개방적이었다”며 “이들은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할 시기에 지혜를 제공했고, 이는 로마의 대전략을 세우고 실현하는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로원에서 대전략 차원의 지침을 내리면 유능한 지휘관이 군대를 운영해 승리를 쟁취했으며, 이 지휘를 시민 전사들이 충실하게 수행했다”며 “명예와 헌신을 중시하는 시민적 기풍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태도가 상호작용하면서 로마를 대제국으로 이끌었다”고 덧붙였다.◇‘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②“오프라인만의 창의적인 디지털 혁신 고민하라”
    ②“오프라인만의 창의적인 디지털 혁신 고민하라”
    이윤화 기자 2020.11.02
    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디지털 대전환 : 유통’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윤화 기자]코로나19가 불러온 언택트 소비는 20년 만에 이커머스(전자상거래)를 유통업의 주연으로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쿠팡·이베이코리아·11번가 등 주요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은 작년 동월대비 16.9% 늘었다.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까지 급증해 온·오프라인 간 역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통산업의 무게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모든 오프라인 기업들이 온라인에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커머스의 성장에 이어 전반적인 쇼핑 및 커머스 산업의 패러다임으로 자리한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는 온·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보지만 결제는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다. 도미노 피자의 다양한 고객접점 확보 노력.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는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 중에서 빠르게 DT 혁신을 이룬 기업으로 ‘도미노 피자’, ‘나이키’, ‘월마트’ 등을 꼽았다. 피자 제조업체이자 전 세계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도미노 피자는 홈페이지 배달주문을 넘어 구글 어시스턴트와 제휴해 음성만으로 주문 배달이 가능하고, 기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 메시지 등 고객 입장에서 보다 간편한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심지어는 TV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거나 자동차 내에서도 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애니 웨어 애니 디바이스’(Any where any device) 전략으로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데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고객경험을 위한 나이키의 혁신.스포츠 의류 제조 유통업체인 나이키 역시 DT 혁신을 이어왔는데, 스마트폰 카메라로 정확한 사이즈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해 신어보지 않고도 앱 내에서 오프라인 매장처럼 쇼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아마존에 물류 공급을 중단하고 수수료 등의 비용을 효율화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고객 데이터를 쌓아나가고 있다.맥도날드는 지난해 3억달러(3403억5000만원) 규모에 인수한 이스라엘 인공지능(AI) 벤처 기업 ‘다이내믹 일드’의 기술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했다. 날씨와 시간 등의 요인에 따라 드라이브 스루 메뉴를 추천하고, 화면구성을 고객에게 맞춰 커스터마이징 하는 방식으로 직관적이지 않은 키오스크 시스템을 보완했다. 아마존에 의해 위기를 맞고 있는 월마트 역시 이스라엘 스타트업 플라이트렉스(Flytrex)의 드론을 사용해 식료품 및 가정용품을 고객에게 배송하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드론을 사용해 창고의 재고를 파악하는 실험도 지속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성공적인 DT 시도로는 GPS 시스템과 스마트폰 앱을 연동해 실시간 주문이 가능하게 만든 한국야쿠르트의 전동카트나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오프라인 유통기업만이 할 수 있는 디지털 혁신을 고민함과 동시에 새로운 이커머스 환경 변화에도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 신선식품은 ‘마켓컬리’, 전자기기는 ‘아마존’ 등 카테고리 별로 강점을 가진 싱글 채널에서 모든 영역의 쇼핑을 아우르는 멀티 혹은 옴니채널 시대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자사의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 ‘다이렉트 투 컨슈머’(Direct to Consumer·D2C)도 새로운 유통 흐름으로 등장했다. 국내 주얼리 브랜드인 제이에스티나는 ‘제이에스티나몰’ D2C를 통해 2년 만에 월 방문자가 100만 명·연간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김 강사는 “유통업계의 새로운 형태로 떠오른 O2O 서비스는 매장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기업들에게 강점이 있다”면서 “기존 리테일 기업들 입장에서는 O2O, 옴니채널, D2C 등 새로운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위대한 생각]①유통 생존 달린 DT…아마존·알리바바 1등 비결
    ①유통 생존 달린 DT…아마존·알리바바 1등 비결
    이윤화 기자 2020.11.02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디지털 대전환산업 전 방위적으로 디지털 기술 기반의 혁신이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는 우리 일상과 사회를 넘어 기업의 변혁을 더욱 가속화 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대전환에서는 디지털이 어떻게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기업의 사업 전략에 영향을 주는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기업과 개인의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 체계, 변화관리 방안을 다룬다.☆ 김지현 IT전문가·강사·기업가 25년간 기업의 사업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 혁신을 추진해온 사업 전략가. 디지털 기술 관련 도서를 50여권 집필한 저자이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중요성과 추진 방안에 대해 설파하는 강사. ABCDI(AI, Block chain, Cloud, Data, IoT)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전략 전문가. 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디지털 대전환 : 유통’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이윤화 기자]유통업은 디지털 바람이 가장 먼저 불어 닥친 산업 분야 중 하나다. 지난 20년 동안 인터넷 사이트를 기반으로 이커머스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쇼핑 생태계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IT전문가인 김지현 강사는 ‘위대한 생각 : 디지털 대전환’ 세 번째 순서로 유통업의 디지털 변화를 이야기했다. 이커머스 기업들의 성장 역량인 디지털 혁신을 알아보고, 반대로 위기에 놓인 대형마트·백화점 등 기존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또 전반적인 쇼핑 및 커머스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한 온·오프라인 연계(Online to Offline·O2O) 서비스 등 최근 유통업을 강타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에 대해 논했다. 우리가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과정은 20년 전과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거에는 백화점·마트·시장에 가서 물건을 구매했다면, 지금은 매장에서 사지 않고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 가격 비교를 해보고 상품과 관련한 다양한 리뷰도 찾아본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아이쇼핑 (eye shopping)을 즐기고 구매는 온라인을 통해 하는 것이다. 보통 매장 임대료 등 유지비용이 들지 않는 온라인 웹사이트의 가격이 오프라인 매장보다 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를 일컬어 ‘쇼루밍’(showrooming)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쇼루밍족이 많아짐과 동시에 책, 옷, 식품, 자동차, 고가의 가구와 명품, 집까지 온라인 쇼핑을 이용할 정도로 카테고리(상품군)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온·오프라인 시장 규모 분석. (자료=김지현 강사)◇이커머스 절대강자 ‘아마존’…고객 맞춤 쇼핑 혁신 월가(街) 펀드매니저 출신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1994년 설립한 아마존은 현재 전 세계 이커머스 업체들의 롤모델이 됐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해 상품군을 가리지 않고 판매하는 인터넷 종합 쇼핑몰로 변화했다. 아마존은 지난 8월 기준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며, 주식 시장에서 처음으로 2조 달러(약 2400조원)의 가치를 갖는 미국 기업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고속성장하고 있다. 아마존의 여러 성장 요인 중에서도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한 비용 절감’, ‘혁신적이고 다양한 고객 서비스 시스템 구축’은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아마존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 혁신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왔다. 아마존의 온라인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앱) 화면은 개개인의 소비 패턴과 취향이 반영돼 모두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5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 무인점포 ‘아마존 고’는 매장 내 수많은 카메라와 센서, 사용자의 동선 추적 시스템, 간편 결제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집약된 총아라고 할 수 있다.최근에는 ‘홀푸드 세일’이라는 미국 내 1위 신선식품 오프라인 업체를 인수했다. 신석식품, 간편식 등 식품군은 가장 구매 빈도가 높은 카테고리다. 김 강사는 “아마존은 신선식품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해 아마존 내 사용자 트래픽을 늘리고 데이터 수집을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온라인 기업이 오프라인 기업을 사들임으로써 구매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기존 온라인 사업의 단점도 보완하는 장점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유통업계는 여전히 DT 혁신이 미흡하다. 쿠팡·11번가·위메프 등 국내 이커머스 앱 화면만 봐도 가격, 상품정보 등의 양식이 제품마다 모두 제각각인데다가 사용자의 데이터와 무관한 상품도 함께 검색된다.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10년 전과 비교해 인테리어와 상품만 바뀌었지 쇼핑 환경의 혁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 강사는 “아마존의 가장 큰 경쟁력은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확한 수요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제조사와 협상해서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예측을 하고 생산을 하는 것은 제조업체 입장에서도 이득이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몰의 핵심 기술,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T 전문가인 김지현 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디지털 대전환 : 유통’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라이브 커머스 고속성장 ‘알리바바’, 오프라인은 ‘상생 전략’ 미국에 아마존이 있다면 중국에는 알리바바가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점유율 80%에 달하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매일 1억명 이상이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다. 알리바바그룹은 2021 회계연도 1분기(4~6월) 매출액 1537억5100만 위안(약 26조746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34%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라이브 커머스 부문과 리테일 커머스 등 핵심 커머스 총 매출이 1333억1800만 위안(22조902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0% 넘게 늘었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등 널리 보급된 간편 결제 수단과 함께 알리바바 타오바오와 텐센트 위챗 등에서 제공하는 커머스 발전이 주효했다. 알리바바 역시 온라인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유통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무인점포·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오프라인에 진출하고 있는 아마존과 달리 ‘링쇼통’이라는 개념을 들여왔다. 2017년 론칭한 링쇼통은 영세 마트를 대상으로 알리페이 결제 시스템 등을 지원해 그들의 오프라인 데이터를 공유하는 물류 프랜차이즈다. 무수히 많은 중국 내 기업과 소상공인을 한 번에 통합하기 어려운 탓에 기존의 상점과 상생하는 구조를 택했다. 김 강사는 “알리바바는 구멍가게, 중소상공인 등 DT 투자와 혁신이 불가능한 영세한 오프라인 업체들에게도 O2O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직접 오프라인 진출이 아닌 상생 솔루션을 통한 간접 진출로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수집과 고객 접점 확대 효과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바바도 아마존 고와 같이 선진적인 형태의 디지털 기술을 개발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험하고 있다. 가상현실(VR) 디바이스를 통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환경을 통합하고,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며 쇼핑 욕구를 더욱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국내 카카오커머스와 네이버도 최근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디지털 기술 혁신을 적용한 쇼핑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지만 아마존과 알리바바를 앞서는 수준은 아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유통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상품 리테일이나 인테리어 등에만 관심을 두던 오프라인 업체는 점점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없이 모든 영역에서 차별화한 경쟁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①채권, 역사를 움직인 권력의 무기
    ①채권, 역사를 움직인 권력의 무기
    김무연 기자 2020.10.26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Ⅱ’ 채권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영란은행[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위대한 생각’ 채권 편에서 임규태 박사는 채권이 역사적으로 권력의 도구로 활용돼 왔다고 강조했다. 국가 권력은 전쟁 채권을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켰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채권을 활용했다. 채권은 다른 금융 상품인 증권이나 화폐에 비해 눈에 띄지 않지만 경제 시스템과 권력을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에너지원이다.현대적 의미의 채권은 영란은행으로부터 출발했다. 초기에 금보관증을 발행하던 영란은행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워털루 전쟁으로 확보한 막대한 금 보유고를 바탕으로 금 본위제를 공식 선언한다. 영란은행은 풍부한 금보유고를 바탕으로 영국 정부에 사실상 무제한의 파운드를 공급했고, 영국정부는 은행 측에 차용증을 써줬는데 이것이 바로 국가 채권 ‘국채’다. 정부가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국채의 개념은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들인다’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채권 자체는 고정된 권리를 보장하지만, 채권 수익률은 시장 금리와 반비례로 연동한다. 따라서 은행은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채권 시장이 형성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각국의 전쟁 국채 모집 독려 포스터.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1차 세계 대전으로 채권시대 본격 개막금본위제는 ‘뱅크런’이란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화폐 보유자들이 동시에 중앙은행으로부터 금을 요구했을 때 그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은행은 물론 국가 경제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영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서 발권한 화폐를 식민지 개척과 식민지 전비로 소진하는 방식으로 파운드의 가치 하락을 막았다. 하지만 전쟁과 팽창에 의한 통화 시스템 유지가 장기간 지속하면서 유럽 전역과 전 세계가 전장으로 전락한다. 유럽 전역에 번지던 전화는 독일 제2제국이 탄생하면서 소강상태를 맞는다. 통일 전쟁과 보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제국 성립 후에는 천재적인 외교술을 발휘해 주변국과 전쟁을 철저히 억제하는 ‘비스마르크 시스템’을 고안한다. 비스마르크 시스템은 각국을 2중, 3중으로 동맹을 맺어 라이벌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한번 터지면 국가 간 전쟁이 대규모 동맹전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라 어느 국가도 쉽사리 전쟁을 시작하지 못했고 평화의 시대는 30년 이상 이어졌다. 하지만 1914년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울려 퍼진 총성으로 비스마르크 시스템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사라예보 사건으로 발발한 1차 세계 대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참호전’으로 발전한다. 전선에 참호를 파고 적군이 오길 기다리는 참호전은 일진일퇴의 공방만 거듭할 뿐 전쟁의 승패가 쉽게 갈리지 않았다. 여기에 독가스, 기관총 등 대량 살상무기가 도입되면서 인명피해도 커졌다. 무엇보다 전쟁 참전국이 감당해야 할 전비가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비 조달을 위해 유럽 각국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전쟁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채권은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거래에 한정됐지만 1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 채권의 판매 대상이 일반 국민으로 확장된 것이다. 전쟁 채권은 전비를 충당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각국 정부는 앞다퉈 전쟁 채권 판매에 몰두했다.베니토 무솔리니◇ 전쟁 채권으로 탄생한 파시스트 정권1차 세계 대전의 기운이 무르익던 시기는 사회주의 혁명가에게도 기회였다. 블라디미르 레닌을 포함한 유럽 혁명 지도자들은 전쟁이 벌어질 경우 사회주의 행동 강령을 다룬 1912년 바젤 선언을 선포한다. 전쟁이란 자본가와 봉건 왕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이므로 유럽 전역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그 틈을 타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쟁취하자는 것이 이 선언의 골자였다.그러나 바젤 선언은 외려 사회주의 세력을 양분시켰다. 일부 세력이 레닌에 반발하고 자국의 1차 세계 대전 전쟁 채권을 사들이는 데 적극 동참한 것. 이들 ‘조국방위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 베니토 무솔리니다. 젊은 시절 열혈 사회주의자였던 무솔리니는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사회주의에서 결별하고 이탈리아군으로 복역하면서 민족주의 의식을 싹 틔웠다.원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는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프랑스의 편에 서면서 승전국의 지위를 얻는다. 하지만 전후 협상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요구 사항이 철저히 무시되면서 이탈리아 국민들은 승전국으로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무솔리니는 이 점을 노렸다. 무솔리니는 로마 집정관 호위병들이 들고 다니던 ‘파스케스’에서 이름을 따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의미에서 ‘파시즘’을 주창했다. 라테란 협정무솔리니는 파시즘의 광풍을 등에 업고 ‘로마 진군’을 통해 무혈 쿠데타에 성공하고, 총리로 추대된다. 하지만 정치적 기반이 부족했던 무솔리니는 제1당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아체르노 법’이라는 독재법을 추진한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정당이 제2당이었던 이탈리아 인민당이다. 교황청의 지원을 받는 이탈리아 인민당이 무솔리니를 도운 까닭은 훗날 밝혀진다. 1929년 교황청과 무솔리니 정권은 ‘라테란 협정’을 체결한다. 라테란 협정은 △바티칸 시국의 완전한 독립 △이탈리아 통일 전쟁 보상금 7억 5000만 리라 지급 △연간 5%의 이율로 이탈리아 정부가 발행하는 장기 공채 10억 리라 지불 등의 조항이 담겼다. 결과적으로 경제적·정치적 독립이 절실했던 바티칸 시국의 상황이 파시스트 정권이 탄생하는 데 일조한 셈이다.미국이 일본과 구축한 채권 리사이클링 시스템◇ 미·중 무역 분쟁의 원인, 채권 리사이클링2차 세계 대전 막바지, 미국의 유럽 전장 참전 대가로 세계 각국은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는 브레턴우즈 체제에 합의했다. 이 협약으로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가 됐고 세계 경제 패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으로 막대한 전비를 지출하던 미국은 결국 금 태환 포기를 선언하고 브레턴 우즈 체제는 붕괴한다. 미국은 석유수출기구(OPEC)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기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약을 맺어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하지만 기축통화국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할수록 무역적자가 심화한다는 트리핀의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트리핀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채권 리사이클링’ 시스템을 고안했다. 미국은 1970~80년대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의 제품을 무제한 수입하는 방식으로 달러 발권을 했다.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로 확보한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사들였다. 미국은 이러한 채권 리사이클링으로 트리핀의 딜레마를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채권 리사이클링으로 미국은 쌍둥이 적자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재선을 위해 ‘레이거노믹스’라는 무리수를 둔 레이건 정부가 무역 적자뿐 아니라 막대한 재정 적자를 낸 것이다. 레이건 정부는 이 문제의 원인을 일본에 돌리고 엔화 절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결국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의 가치를 두 배 가까이 절상해야 했다. 플라자합의로 ‘엔고 현상’이 이어지자 일본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무너졌고, 잉여 자본은 부동산에 몰렸다. 결국 그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일본과 결별한 미국은 다시 새로운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하고 채권 리사이클링을 재가동했다. 미국은 중국의 제조업 설비 증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뿐 아니라 2001년에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중국의 값싼 상품이 유입되자 미국은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중국은 약속대로 넘쳐나는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사주었다. 하지만 일본의 몰락을 지켜본 중국은 언젠가는 시작될 미국의 압박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전략이 육로와 해로를 걸친 금융·물류·문화 경제 벨트를 구축하는 ‘일대일로’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주변국을 포섭한 방법 역시 ‘채권’이다. 중국은 경제가 어려운 국가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해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종용했다.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채권을 이용해 경제·안보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임 박사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최상위 목적은 경제 협력 블록 구축을 넘어 미국 일국 체제에 대항하는 ‘항미’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축통화 유지를 위한 채권 리사이클링 관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도, 중국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각자 대비해 오던 일이 현실화한 것뿐”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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