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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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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

  • [위대한 생각]①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①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김무연 기자 2021.02.24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인더스토리’(INDUSTORY)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5강 ‘바다’(海) 1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한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우리는 모두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 임규태 박사는 강연의 시작을 존 F. 케네디의 말로 시작했다. 바다를 이용하면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으며 어떤 물건이라도 실어 나를 수 있다. 임 박사는 바다는 세계를 연결하는 문명의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해양산업을 장악하는 것은 전 세계의 패권을 쥐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더스토리 시즌3 ‘바다’ 편이 산업의 역사를 넘어 역사의 패권을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페니키아와 페니키아 식민지의 위치◇ 페니키아, 모든 해양 산업의 원류페니키아는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전 539년까지 현재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 지역에 자리 잡았던 소국으로 기록돼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현재 레바논인들의 직계조상이라 여겨지지만 인종적 구성은 아직까지 논쟁의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어디서 흘러들어왔고 이후 어떻게 퍼졌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임 박사는 페니키아의 역사적 유래는 중요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페니키아인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이다. 페니키아인이 인류 해상 문명과 산업에 미친 영향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니키아는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남쪽의 이집트 문명을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전파했다. 그 과정에서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까지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상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페니키아인들은 해양산업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선박을 만들고(건조), 이 선박을 이용해 바다로 나갔으며(항해), 새로운 땅에 도착해 물건을 사고팔았고(무역), 이 돈을 굴려 부를 축적(금융)했다. 그렇게 불린 자금으로 다시 배를 만드는 해양산업의 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또한 페니키아 문자는 그리스 문자에 영향을 줬고, 그리스 문자는 라틴 문자로 바뀌어 현재 알파벳의 원형이 됐다. 알파벳의 기원페니키아인은 고대 주력 선박이던 ‘갤리선’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돛과 노젓기를 병행하는 갤리선은 초기에는 돛의 역할이 컸지만, 전함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아지며 노젓기가 강화됐다. 지중해 국가들은 노를 젓기 위한 수많은 노예가 필요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정복전쟁을 수행했다. 페니키아인은 키루스 대제에 의해 페르시아에 복속돼 페르시아와 그리스 연합군이 맞붙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비록 그리스에 패하기는 했으나 페르시아 해군의 전력강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사후 제국이 사분오열된 틈을 타 로마가 지중해의 신흥 강자로 부상한다.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카르타고와 세 번의 전쟁을 치른다. 로마와 카르타고와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 불리는데, 이 포에니는 라틴어로 ‘페니키아인’을 가리킨다. 즉 로마는 카르타고를 페니키아인의 후예로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현재 튀니지 지역에 해당하는 카르타고와 한니발이 주둔했던 스페인은 모두 페니키아가 개척한 식민지였다. 페니키아는 멸망한 이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임 박사는 “바다에 관련된 모든 산업에는 페니키아인의 DNA가 들어 있다”라면서 “페니키아인은 인류의 해양 역사를 만들었고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류는 페니키아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바이킹◇ 바이킹, 이슬람, 베네치아 공화국… 끊임없이 변하는 해양 패권카르타고를 누르고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로마는 5현제 시기 이후 군인 황제 집권기를 거치며 급속히 쇠퇴했다. 306년 즉위한 콘스탄틴 대제는 그동안 탄압받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결국 로마는 동과 서로 갈라졌고, 이후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등으로 멸망하고 만다. 이후 서유럽은 기독교 중심의 중세시대가 시작됐다. 기독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탐욕’은 죄악시 됐고 이에 따라 부를 불리는 무역과 금융업도 쇠퇴해 갔다. 무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해양산업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틈을 타 바다에서 힘을 불린 새로운 강자 ‘바이킹’이 등장했다. 국가 단위가 아니라 소규모 부락 단위로 움직이던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정착한 뒤 유럽 내륙은 물론 영국까지 진출했다. 그들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이미지로 알려진 것과 달리 탁월한 항해 기술을 지녔고, 내부 문제는 무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했다. 바이킹의 이런 전통은 훗날 영국 의회제도에도 영향을 준다. 임 박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이킹의 이미지는 바이킹에 침략 당했던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라면서 “그들은 통합된 정치체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무정부주의 성향이 강했고, 이런 독특한 사고는 현대 북유럽 국가들이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가브리엘의 계시를 받는 무함마드.바이킹이 북에서 서유럽을 압박했다면 남쪽으로는 이슬람 세력이 준동했다. 621년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이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곧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은 중동,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슬람 제국은 상인이었던 무함마드의 영향을 받아 경제적으로도 매우 융성했으며, 동과 서를 잇는 중개 무역을 완벽히 장악했다. 지중해의 패권도 이슬람 제국의 몫이었다.적으로 둘러싸인 서유럽은 결국 십자군 전쟁이란 강수를 뒀다. 이 과정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이 큰 성장을 거둔다. 4차 십자군 원정에서 십자군을 레반트 지역까지 이송하는 계약을 체결했던 베네치아는 정작 십자군이 이를 지불할 돈이 없자, 이들을 지원 대상이었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보내 약탈을 시켜 빚을 갚도록 했다. 베네치아는 4차 십자군 원정에 따른 이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은 물론 무역을 방해했던 동로마 제국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지중해의 패자로 급부상했다. 베네치아는 유럽의 무역은 물론 금융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임 박사는 “4차 십자군 전쟁 직후 베네치아에서 근대적 은행의 효시인 방코(Banco)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흑사병 창궐 당시를 묘사한 피테르 브뢰헬 죽음의 승리◇ “육두구를 찾아라” 대서양 개척에 나선 서유럽1346년 유럽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곧 대륙 전체를 강타했다. 치사율이 50%가 넘는 이 질병의 대유행으로 유럽 인구 3분의 1이 줄었다. 문제는 당시 흑사병의 치료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해 창궐했다는 점이다. 흑사병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가운데 영국의 한 의사가 향료인 ‘육두구’가 흑사병을 막아준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유럽 각 국은 육두구 확보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육두구 산지로 알려진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을 오스만 제국이 철저히 막고 있다는 사실. 결국 유럽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육두구 산지를 찾는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 구형론’에 기반 해 서쪽으로 항해를 하더라도 동쪽의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의 지원을 받은 그는 인도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신대륙을 발견했다.포르투갈의 페르디난드 마젤란 탐험대는 스페인에서 출발해 남아메리카를 거쳐 필리핀에 도착한 뒤 아프리카 희망봉을 찍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옴으로써 세계 일주를 완성했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바스쿠 다가마가 개척한 인도 항로그보다 몇 해 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도달하는 ‘인도 항로’를 개발했다. 1511년 포르투갈 선원들이 인도 항로를 이용해 육두구의 산지였던 말레이시아 말라카를 발견했다. 이때부터 유럽 각국은 지중해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무역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됐다.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맞선 것은 영국·네덜란드(영란) 연합군이었다. 결국 영국-스페인 해전에서 영란 연합군이 승리함에 따라 동남아시아 향료 무역 주도권이 반(反) 가톨릭의 양 국가로 넘어갔다.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육두구 무역권을 일임했다. 네덜란드도 2년 뒤 동인도 회사를 세우며 이를 뒤따랐다. 두 나라의 동인도회사는 합병을 논의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지만 1623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향신료 제도라 불리던 말라카 제도에서 영국 상인들을 습격해 살해한 암보이나 학살 사건으로 등을 돌렸다. 말라카 제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영국은 인도로 눈을 돌려 후추 재배에 박차를 가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야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국을 몰아낸 네덜란드는 1641년 포르투갈령 말라카를 공격해 무력으로 장악했고, 근처 나무를 베어내면서 육두구 공급을 철저하게 통제하려 했다. 임 박사는 “암보이나 학살사건과 포르투갈령 무력장악은 인간의 탐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탐욕의 끝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②루브르박물관 살린 ‘창조적 대안’
    ②루브르박물관 살린 ‘창조적 대안’
    윤정훈 기자 2021.02.20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윤정훈 기자]1789년 7월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루브르궁(현재 루브르박물관)의 운명을 바꿨다. 시민군은 1793년 당시 왕과 왕비였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세우고 처형한다.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왕의 별궁으로 사용하던 루브르궁 파괴로 이어졌다. 이를 막은 것은 제3신분 대표자에 의해 생겨난 국민의회다.(자료=강사 제공)국민의회는 루브르를 왕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가 이용하는 박물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분노한 시민군과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협상학의 꽃인 ‘창조적 대안’을 활용한 역사적 사례다.협상전문가인 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는 “프랑스혁명 당시 시민군과 국민의회는 루브르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했다”며 “당시 시민군은 궁을 불태우고 창문을 깨고 오물을 투척하며 분노를 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 변호사는 “국민의회는 역사적 유물은 후손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며 “시민군을 설득하기 위한 묘안으로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했다.루브르박물관(사진=언스플래시)국민의회의 창조적 대안이 없었다면 루브르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미술관으로 쓰자는 아이디어 덕택에 루브르는 지켜졌다. 이는 협상 양측의 욕구를 모두 만족 시킨 사례다. 이처럼 협상은 창조적 대안을 개발함으로써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에 창조적 대안을 협상학의 꽃이라 부른다.류 변호사는 “한국 사람은 협상을 전쟁이라 생각하고 상대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며 “이런 협상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파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루브르 협상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회가 시민군의 핵심 욕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류 변호사는 “창조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표면에 드러난 요구(Position)보다 이면에 근원적인 욕구(Interest)를 알아야 한다”며 “창조적 대안은 이 욕구의 교집합 영역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군의 요구는 루브르를 불태우고 부수는 것이었고, 국민의회는 이를 지키는 것이었다”며 “요구 차원에서는 합의가 될 수 없었지만, 욕구 차원에서는 루브르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프랑드혁명 당시 루브르궁을 놓고 시민군과 국민의회의 대립 현황(자료=강사 제공)창조적 대안은 비즈니스에서도 활용된다. 스타트업의 스톡옵션이 대표적 사례다. 스타트업은 핵심인재를 끌어와야 하지만 당장 사용할 카드가 없다. 이에 미래 특정시점에 특정 가격으로 주식을 살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을 활용한다.류 변호사는 “스톡옵션을 통해 회사는 당장 주식을 주지 않고,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며 “임직원은 지금 열심히 하면 미래에 대박이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톡옵션은 창조적 대안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실무 협상을 할 때 상대방과 부딪치기 전에 나와 상대방이 양보해서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창조적 대안이 없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며 “성숙한 협상가의 자세로 창조적 대안을 고민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3강 ‘적을 만들지 않는 협상법’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 [위대한 생각]①당신의 몸값을 높여주는 '협상기술 7'
    ①당신의 몸값을 높여주는 '협상기술 7'
    윤정훈 기자 2021.02.17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승자의 협상법협상력은 비즈니스의 성공과 직결된다. 우리는 매일같이 협상을 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협상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다. 그동안 본능과 경험에 의존해온 협상을 체계적인 원칙과 실전 사례로 접근해 나도 상대방도 승자가 될 수 있는 승자의 협상법을 전략적 협상가의 견지에서 분석한다.☆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한국과 홍콩의 글로벌 기업과 로펌에서 풍부한 협상경험을 쌓고 하버드로스쿨 협상 프로그램을 이수한 협상전문가다. 현재 법무법인 율본 기업전담팀을 이끌고 있으며, 비즈니스 협상전략그룹의 수석전문가로 기업과 정부에 협상 컨설팅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는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 바이블’이 있다.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3강 ‘적을 만들지 않는 협상법’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윤정훈 기자]협상 전문가인 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는 이데일리 경제인문학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세 번째 주제로 ‘적을 만들지 않는 협상법’을 선정했다. 류 변호사는 “연봉협상은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접하는 협상의 키워드”라며 “노련하고 정보가 많은 인사담당자와 성공적인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와 대안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연봉협상이 어려운 이유인사담당자와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 사이 협상력의 차이는 정보의 양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정보가 적은 이직 준비자는 정보와 경험이 풍부한 인사담당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류 변호사는 “협상은 철저한 정보력 싸움”이라며 “회사는 연봉협상 전에 이직자의 연봉과 관련한 구체적인 과거, 현재, 미래의 정보를 전부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직을 하는 사람은 회사와 관련해 뚜렷한 정보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최근에는 블라인드 등을 통해 기업 정보를 얻는데, 실질적으로 공신력 있는 정보를 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덧붙였다.그는 인사담당자의 연봉협상 준비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성공적인 협상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인사담당자는 △1단계 정보 확보 △2단계 객관적 기준점 제시 △3단계 앵커링 이펙트(Anchoring Effect·닻 내림 효과) 활용 등을 통해 연봉협상을 진행한다.인사담당자의 단골 멘트는 이렇다. “역량적인 부분은 공감하지만, 내부 기준이 있어서 A씨의 희망연봉을 맞춰 드리기 어렵습니다. 내부 임직원과 형평성을 고려해 00만원의 연봉을 제안드립니다.”류 변호사는 “인사담당자는 내부 기준을 언급하며 상대방을 압박한다”며 “형평성과 역량에 대한 공감 등 상대방의 감성까지 건드리면서 이직 준비자가 더 치고 들어가기 쉽지 않게 만든다”고 했다.결정적으로 인사담당자는 이직 준비자의 희망연봉보다 낮은 수준을 제시하고, 이를 앵커링 이펙트로 활용한다. 앵커링 이펙트는 배가 닻을 내리면 닻을 내린 곳에 정박하듯이 처음에 인상적인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돼 상대방의 판단에 왜곡이나 편파적인 현상을 미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류 변호사는 “인사담당자는 정보확보 이후 기준점을 제시하며 심리적인 압박을 한다”면서 “이후 앵커링 이펙트를 통해 상대방의 멘탈을 흔들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끈다”고 했다.인사담당자의 연봉협상 진행 3단계(사진=강사 제공)◇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알아야 할 7가지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류 변호사는 7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류 변호사가 제시한 조언은 △철저한 사전준비 △과감한 첫 제안 △연봉 외에 복지·인센티브 등 확인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기 △설득 자료 확보 △서두르지 않기 △대안을 가질 것 등이다.류 변호사는 “협상은 실제 테이블에 앉기 전에 많은 경우에 있어서 답이 정해진다”며 “연봉협상 테이블에 나가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결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류 변호사는 기본적인 기업 정보와 매출 현황, 내부 분위기 등을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류 변호사는 “회사가 인원은 늘리고 있는지 줄이고 있는지, 회사의 직급별 연봉은 얼마인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며 “더불어 인사 담당자의 성격이나 최종의사결정권자의 성향 등에 대해 알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그는 첫 제안에 절대 겸손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류 변호사는 “생각보다 연봉협상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마지노선을 제시한다”며 “마지노선을 이야기하면 이후에는 깎일 일만 남게 된다”고 언급했다.그는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거절과 반박을 예상해서 10~20% 높게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실패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3강 ‘적을 만들지 않는 협상법’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단순 연봉 숫자에만 매몰되는 것도 좋지 않은 협상법이다. 류 변호사는 숫자 외에 회사를 통해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을지, 회사의 근무환경은 어떤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변호사는 “연봉 외에 복지환경, 해외 파견 기회, 스톡옵션이나 인센티브 등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나 조건 등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회사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화법을 익히고, 객관적인 자료 등을 준비하는 것도 연봉협상에 도움이 된다. 류 변호사는 “회사에서 내 연봉을 올려주면 어떤 측면에서 이득이 되는지 고려해서 정중하게 말하라”고 했다. 이어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해 실무담당자가 최종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라”며 “실무담당자도 이에 대해 납득하면 협의점을 찾기 쉬워진다”고 했다.끝으로 서두르지 않고, 대안을 준비해서 협상에 임하라고 했다. 류 변호사는 “협상은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두고 가족과 지인 등과 같이 고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류 변호사는 “대안을 확보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협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대안이 없고, 이 회사가 아니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협상을 잘할 수 없다.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방위비 500% 인상” 한국을 곤란하게 만든 트럼프 협상법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협상에 능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앵커링 이펙트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1조원 수준이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대뜸 500% 인상한 6조원이 돼야 한다고 언급한다. 매년 2~25% 인상해왔던 방위비 인상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높인 것이다.류 변호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한국 정부는 장난인지, 진위인지 당황하기 시작했다”며 “생각보다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압박하면서 방위비 분담은 기존의 2~25%가 아닌 2~500%가 기준점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앵커링 이펙트를 활용해서 협상의 범위를 대폭 늘린 사례”라며 “나와 상대방이 처음 제시하는 것이 기준점이 되고, 이는 양쪽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이 협상은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현재 신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체제에서 10% 내외 수준으로 합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강사 제공)◇‘57%→86%’ 1년 만에 세금납부율을 올린 영국 국세청영국 국세청은 2008년 세금을 제때 내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고민했다. 당시 57%만 세금을 제시간에 내고, 43%는 기한을 넘겼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영국 국세청은 세금 고지서에 들어가는 문구를 바꾸는 조치를 했다. 이듬해 납부율은 86%로 전년 대비 29%p 높아졌다. 당시 세금고지서에는 ‘영국 국민 10명 중 9명은 세금을 제때 납부하고 있습니다’라는 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에도 소개됐던 사회적 기준(Social Evidence)을 활용한 다수 집단 설득방법론의 사례다.류 변호사는 “영국 국세청은 준거추종성향을 이용한 문구를 통해 납부율을 1년 만에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며 “사람들은 자신이 포함돼 있는 집단, 포함되고 싶어하는 준거 집단에서 절대다수의 행동 패턴을 따라하려고 든다. 이를 준거추종성향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직장이나 조직에서 다수를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준거추종성향은 오류회피성향과 자기 긍정성으로 이어진다”며 “나는 이 집단에서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아니고,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행동한다”고 덧붙였다.이같이 준거추종성향과 오류회피성향, 자기 긍정성을 활용하는 방법은 마케팅과 정치 캠페인 등에 자주 사용된다.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류 변호사는 “흔히 상대방을 설득할 때 부정적 프레임으로 접근하는데, 상대방은 금세 피로감을 느끼고 멀리하고 싶어한다”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
  • [위대한 생각]②권력에 취한 원소…'관도대전'서 조조에 대패
    ②권력에 취한 원소…'관도대전'서 조조에 대패
    유현욱 기자 2021.02.13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유현욱 기자]관도대전(200년)은 적벽대전(208년), 이릉대전(221년)과 함께 중국 삼국시대의 3대 전쟁 중 하나다. 관도는 지금의 허난성 정저우시 중무현 일대다. 주요 전장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전투나 전쟁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백년전쟁(1337~1453년)은 영국이 프랑스를 전장으로 삼고 여러 차례 휴전과 속전을 반복하면서 지어진 명칭이다. 길고 긴 기간에 포인트를 준 셈이다. 칼을 맞댄 주체에 주목하기도 한다. 장미 문장을 쓰는 두 왕실 집안 간 싸움인 장미전쟁이 그런 사례로 사뭇 문학적인 작명이다.(그래픽=강사 제공)명명(이름짓기)은 정치적 부산물이다. 국력의 차이, 승부의 결과에 따라 강한 쪽, 이긴 쪽 입맛대로 후대에 전해질 소지가 있다. 여러 변수에도 고대전투는 전장 이름을 따르는 것이 관례다. 적벽대전(후베이성 자위현의 북동, 양쯔강 남안), 이릉대전(이릉성)도 마찬가지다.관도대전은 시기적으로 삼국시대 3대 전쟁 가운데 가장 빠르다. 적벽대전이 삼국정립을 만들었고 이릉대전이 촉의 멸망을 재촉했다면 관도대전은 승상 조조가 하북을 점령하고 가장 큰 세력으로 부상케 한 싸움이다. 한때 지역 패권을 거머쥐었던 원소는 패배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 병사하고 아들들 간 ‘왕자의 난’이 벌어지더니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이 같은 극적 결과를 낳은 관도대전은 공손찬을 무찌르고 기세가 등등해진 원소가 다소 성급히 조조에 전투를 걸어오면서 시작한다. 200년 조조를 암살하려다 발각된 유비가 원소 진영으로 도망쳐오자 ‘이때구나!’ 생각한 것이다. 참모인 전풍, 저수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강행했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전투로 힘이 빠진 병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원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하지만 원소는 거듭된 승리에 스스로를 과신했다. 전풍의 반대를 물리치고 병력을 내려 보낸다”고 했다.하북 지역을 평정한 원소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자 조조는 관도에 절반도 안 되는 병력을 보내 응전한다. 최 교수는 “원소는 (조조의 계략에 빠져) 백마전투, 연진전투에서 패하고 맹장 안량, 문추를 잃었다”면서 “조조가 농성에 들어가면서 계절은 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보급상에도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장기전은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원정군에 불리하다. 이런 와중에 허유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원소를 떠나 조조에게 투항하는 일이 발생한다. 조조는 허유의 조언에 따라 원소의 식량창고를 급습해 불태워버린다. 원소군이 조조군의 본진과 식량창고에 군대를 나눠 보내는 사이 조조는 이를 각개 격파한다. 패배를 직감한 장합과 고람 두 장수마저 조조 편에 붙어버리면서 오합지졸 신세가 된 원소군은 대패하고 만다. ‘삼국지’를 기록한 진수는 “초나라 항우는 범증의 계략을 듣지 않아 왕업을 잃었는데, 원소가 전풍을 죽인 것은 항우의 실책보다 더한 것”이라고 적었다. 이처럼 관도대전은 지도자가 권력에 취해 주변으로부터 귀를 닫으면 오게 되는 말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워-스트래티지’ 8강 ‘삼국대전과 전략적 순간들 상(上)’ 편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 [위대한 생각]①후한말 무정부 시대, '위·촉·오' 삼국 낳았다
    ①후한말 무정부 시대, '위·촉·오' 삼국 낳았다
    유현욱 기자 2021.02.10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워-스트래티지(WarStrategy)전쟁은 무기의 질, 병력의 수보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전략과 작전을 바탕으로 전투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페르시아 전쟁 등 인류사의 향배를 결정지은 수많은 전쟁과 이에 얽힌 전략적 사유를 통해 개인과 국가의 행위를 이해하는 폭을 넓힌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중앙대에서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육군 및 해군 발전자문위원. ‘전쟁과 미술’ 발간. ‘현대군사명저를 찾아’, ‘군사고전 다시읽기’, ‘역사속의 군사전략’ 등 기고 중.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워-스트래티지’ 8강 ‘삼국대전과 전략적 순간들 상(上)’ 편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유현욱 기자]“속지 말자 화장발, 잊지 말자 조명발.” 역사에도 이런 분칠이 있다면, 중국의 삼국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 나관중(1330~1400년)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를 필두로 만화, 드라마, 영화, 게임 등 2·3·4차 창작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매번 서두를 장식하는 ‘도원결의’(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밭에서 형제의 의리를 맺음)조차 허구라니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극적 이야기에 더 열광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집콕’(집에 콕 머무는 생활)족(族)이 늘면서 넷플릭스로 95부작 삼국지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이들이 생겼고, 이에 질세라 출판사들도 재개정 판을 내놓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문학동네는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을, 창비는 ‘소설가 황석영이 옮긴 삼국지’를 잇달아 재출간했다.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위대한 생각 : 워-스트래티지’ 여덟 번째 강연의 주제 역시 ‘삼국대전과 전략적 순간들’로 정해졌다. 등장인물이 많고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고려해 상·하로 나눠 풀어본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삼국지연의는 팩트(사실)에 픽션(상상으로 꾸민 이야기)을 더한 팩션”이라며 “보다 정확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진수(233~297년)의 ‘삼국지’, 배송지(372~451년)의 ‘삼국지주’, 사마광의 ‘자치통감’(1084년) 등 정사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진수의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총 65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삼국(위·촉·오)시대의 개막최 교수는 삼국시대를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 184년부터 전국이 통일된 280년까지로 규정했다. 위나라(220~265년), 촉나라(221~263년), 오나라(222~280년) 세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기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위나라가 세워진 220년을 삼국시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후한의 영제(167~189년), 헌제(189~220년)가 집권하던 때를 포함한 이유는 삼국의 형성과정에서도 여러 의미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 교수는 “얼핏 지도를 보면 위, 촉, 오 삼국의 영토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서 “당시 인구밀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위에 살았다. 촉이나 오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국력(힘)의 주요 척도 중 하나로 꼽는 오늘날과 달리, 과거에는 머릿수가 더 중요했다. 국제관계학에서도 인구의 증감이 국력(군사력)의 증감과 유의미한 상관관계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 다시 말해 “오와 촉의 힘을 합쳐도 위에 열세였다. 현격한 국력 차가 존재했다”는 것이다.(자료=강사 제공)◇ 손견, 조조, 유비…군웅할거이런 삼국을 세우는 데 기틀을 닦은 건 손견(155~191년), 조조(155~220년), 유비(161~223년)이다. 손견과 조조는 동갑내기이며 유비는 이들보다 여섯 살 아래다. 최 교수는 “손견은 강동 양주에서 대대로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라며 “20대 초반에 황건적의 난에서 큰 역할을 해 장사태수, 요즘 군수 정도의 벼슬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오정후’라는 작위를 받았으며 190년에 ‘반(反) 동탁연합’이 낙양을 공격할 때에도 동참했다.조조는 환관 조등의 양자인 조숭의 아들이다. 184년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수도수비대의 관직)로 임명돼 반란군 진압에서 공을 세웠다. 반 동탁연합의 기수로서 전국적 명망을 떨쳤다. 유비는 변변찮은 지방 출신으로 노식 선생 문하에서 수학했다. 유비는 황건적의 난 때 조조·손견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약이 미미했다. 이후 사형인 공손찬에 의탁하는 처지가 된다. 최 교수는 “명문가 자제인 손견과 조조는 20대 초반에 주목을 받았으나, 유비는 멍석을 만들어다 팔아야 할 정도로 미천한 집에서 나고 자랐다”며 “유비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세워 손견, 조조와 경쟁했는지는 삼국지를 읽는 좋은 포인트”라고 권했다. ◇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혼란을 겪다세 사람의 운명이 처음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다. 삼국지의 출발점이다. 한말 외척과 환관의 정쟁이 끊이질 않았고 백성들은 벼슬아치의 가렴주구로 허덕이고 있었다. ‘창천이사 황천당림 세재갑자 천하대길’(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고 누런 하늘이 일어나 갑자년에 천하가 흥할 것이다) 태평도의 구호로, 오행설에 따라 푸른 하늘은 한나라를 뜻하며 누런 하늘은 새 나라를 의미한다. 장각의 태평도가 중심이 된 농민봉기에서 황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이유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처럼 저항의 상징을 내세운 효시 격이다. 황건적의 난은 난세에 영웅의 등장을 예고하며 막을 내렸지만 황실 외척과 10명의 환관이 대립한 ‘십상시의 난’, ‘동탄의 권력 장악’으로 이어지며 혼란은 계속됐다. 동탁이 영제를 폐위한 뒤 헌제를 즉위시키고 태후를 살해하는 등 악행을 저지르자 반 동탁연합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동탁은 협공을 피해 황실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한다. 최 교수는 “어린 황제가 독재자의 꼭두각시가 돼 버리면서 중앙권력이 지방권력을 통제할 수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아나키) 상태였다”면서 “이에 전국의 군웅들이 할거했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현상타파 세력의 등장”이라고 설명했다.◇ 원소·원술 대립구도에 제후들 이합집산 거듭중앙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힘이 있는 자가 곧 법이자 정의가 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최 교수는 아나키적 상황에서 형식상 황제인 헌제의 거취를 놓고 두 차례 전략적 순간을 맞이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발해태수 원소, 기주자사 한복 등은 새로운 황제를 모시자고 주장한 반면 남양태수 원술, 서주자사 도겸 등은 반역 세력을 처단해 정통성을 회복하는 데 만족하자고 반박했다. 원소와 원술 형제 사이에 대립 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이는 현대 정당정치에서 온건파, 급진파 간의 노선 차이에 견줄 수 있겠다.맹주인 두 사람을 사이에 놓고 제후들끼리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원소의 책사 저수는 기·청·유·병 4주를 평정한 뒤 장안의 황제를 맞이하고 낙양의 종묘를 부활시키라는 대전략을 제시했다. 이에 맞서 원술 측은 공손찬, 도겸, 손견 등과 손잡은 채 조조를 쳤으나 패퇴하고 만다. 최 교수는 “원술이 초반 구도를 잘 잡았지만, 몇 번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주도권을 상실했다”고 했다.오히려 조조는 동에 서주, 남에 원술과 손견, 서에 동탁(후에 이각·각사) 등 적으로 둘러싸여 경우에 따라 존립이 어려울 수 있었지만 난관을 극복해낸다. 192년 청주의 황건적 잔당을 토벌해 자신의 군대에 편입시키더니 193년 가족의 원수인 도겸이 있는 서주를 공격한다. 그러나 복수심에 눈이 먼 듯 조조는 대학살을 자행하고 마는데 이는 두고두고 그의 잔혹함을 묘사하는 흑역사가 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조는 서서히 세력을 키워나간다.195년 헌제가 낙양으로 도망치는 유랑 생활 중에 그의 신변을 두고 또다시 역사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정당성 확보를 위해 헌제를 품으라는 저수의 간언을 원소는 귀찮은 일로 치부하며 무시했다. 이에 반해 조조는 반대를 무릅쓰고 헌제를 옹립한다. 천자를 모시고 제후를 호령하려는 의도였다.(협천자영제후·挾天子領諸侯)최 교수는 “명목상의 통치권자이긴 하나 한나라의 황제를 품는다는 건 자신의 행위에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는 일”이라며 “정치가 무력이나 칼로 이뤄지는 것 같지만 말발(명분)도 서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결단으로 조조의 영향력은 한층 커진다. 정국의 핵심은 ‘원소-원술’에서 ‘원소-조조’로 변화한다.이후 조조는 원소와 결전에서 승리하며 화북 지역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는다. 조조로부터 달아나 형주에 와 있던 유비. 그가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군사(군대의 우두머리)로 맞아들이면서 정세는 다시 요동친다. 최 교수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융중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음 시간을 기대해 달라”고 이날 강의를 끝맺었다.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워-스트래티지’ 8강 ‘삼국대전과 전략적 순간들 상(上)’ 편을 강의하고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는 사실에 기반한 허구다. (사진=김태형 기자)◇‘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②'테슬라' 머스크도 주목한 '철도의 가치'
    ②'테슬라' 머스크도 주목한 '철도의 가치'
    김무연 기자 2021.02.05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 현대사회의 교통수단으로서 기차의 위상은 자동차와 비행기에 비해 낮다.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열차 출발 시간에 맞출 필요도 없고, 역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장거리 이동에 기차는 비행기의 속도를 넘을 수 없다. 교통수단별 수송거리 변화기차의 위상은 특정 교통수단이 매일 한 사람에게 얼마의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가를 측정한 교통수단별 1인당 이동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는 20세기 들어서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1900년 즈음 자동차의 1인당 이동거리는 0.5㎞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100㎞까지 늘어났다. 1930년 중반에 도입된 비행기의 1인당 이동거리는 2000년엔 10㎞ 수준으로 늘었다. 두 탈 것 모두 도입 이후 1인당 이동거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기차는 하락세다. 기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5㎞ 수준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탔다. 2000년 기차의 1인당 수송거리는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임규태 박사는 “2000년 이후 KTX 등 고속철의 등장으로 기차의 사정이 나아졌지만 자동차와 비행기 사이에 끼인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하지만 최근 기차의 위상이 다시 높아지면서 미래의 탈것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임 박사는 말한다. 특히 환경문제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임을 고려하면 기차는 최적의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승객 1명을 1㎞ 운송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기차가 자동차나 비행기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단순히 연료비가 적게 드는 것 뿐 아니라 한 사람을 이동시킬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의미다.하이퍼루프비행기보다 느리다는 기차의 속도 문제를 혁신적으로 향상시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그 실마리는 1847년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이 발명한 ‘대기순환 철도’이다. 대기순환 철도는 열차 밑에 진공 파이프를 설치하고 파이프 양 끝단의 공기압 차이로 추진력을 얻는 무공해 이동 수단이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지만, 기술적 한계와 조지 스티븐슨의 견제 때문에 사장됐다.2013년 일론 머스크는 ‘하이퍼루프’라는 신개념의 초고속 철도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하이퍼루프는 브루넬의 ‘대기순환 철도’와 같이 공기압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뿌리를 공유한다. 하이퍼루프는 완전히 밀폐된 터널(튜브)을 낮은 기압 상태로 만든 뒤 그 열차를 이동시키는 개념이다. 공기 저항이 적어 음속에 가까운 시속 1000㎞ 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다. 현재 하이퍼루프는 테슬라,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의 주도 하에 개발되고 있다. 임 박사는 하이퍼루프가 상용화만 되면 친환경, 초고속 이동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철도는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도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인 이동 수단”이라며 “세상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혁하는데 철도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4강 ‘철도’(鐵道) 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한다.(사진=김태형 기자)
  • [위대한 생각]①1·2차 대전···역사의 고비마다 '철도'가 있었다
    ①1·2차 대전···역사의 고비마다 '철도'가 있었다
    김무연 기자 2021.02.03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인더스토리’(INDUSTORY)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4강 ‘철도’(鐵道) 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한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 “인류 문명에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철도는 역사적 사건마다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임규태 박사는 강조했다. 인류는 철도의 발명으로 육로를 통한 교통·물류 산업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그 뿐 아니라 철도는 역사적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했다.호엔잘츠부르크 성의 라이스추크.◇철도의 미래를 결정한 ‘스티븐슨과 브루넬의 대결’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호엔잘츠부르크 성에는 ‘라이스추크’라는 장비가 운용중이다. 라이스추크는 레일 위의 네모난 상자를 케이블로 끌어올리는 일종의 승강기로, 산꼭대기에 위치한 성으로 물자와 인력을 수송하는데 쓰인다. 1504년 운행을 시작한 이 장비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레일 이동수단으로, 철도의 원형으로도 알려져 있다.산꼭대기나 광산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되던 레일 이동수단이 ‘철도’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는 증기기관의 발명이다. 1705년 토마스 뉴커먼이 증기기관을 고안해 냈고 제임스 와트가 열 손실을 최소화해 증기기관의 효율을 높이면서 본격적인 증기기관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 새로운 동력원은 제조업 뿐 아니라 ‘탈 것’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스티븐슨과 브루넬1804년 영국의 발명가 리처드 트레비식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고압 증기 기차를 발명했다. 트레비식의 기관차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발명품이란 의의가 더 컸다. 증기기관차를 상용화한 인물은 조지 스티븐슨이다. 당시 영국에서 철도를 국가적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기본 모델이 될 수 있는 증기기관차를 공모했는데, 조지 스티븐슨의 기차가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기차의 시대가 열렸다.다만 조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는 운영상 어려움이 많았다. 속도를 높이면 안정성이 떨어졌고 특히 커브를 돌 때 탈선의 위험이 컸다. 이를 보완한 것이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의 ‘광궤 열차’다. 브루넬은 궤도 폭을 스티븐슨의 1435㎜보다 넓힌 2140㎜로 운영했다. 선로 폭이 넓어지면서 열차 주행의 안정성은 높아졌고 탈선 위험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기술적으론 브루넬의 압승이었다.궤도 폭이 다른 두 개의 선로가 운영되며 환승 구간에선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영국 정부 내부에선 스티븐슨과 부르넬의 궤도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 격한 논쟁이 붙었다. ‘궤도 전쟁’의 시작이다. 기술적으론 브루넬의 광궤가 우위에 있었지만 증기기관차 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스티븐슨의 1435㎜ 선로가 우여곡절 끝에 1846년 ‘표준궤’로 채택됐다. 현재도 대부분의 국가는 1435㎜를 표준궤로 사용하고 있다.브루넬의 광궤 열차.궤도 전쟁에 쏠린 대중적 관심은 영국의 철도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스티븐슨과 브루넬의 갈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철도 관련 산업에 자금이 몰리는 ‘철도 버블’이 발생했다. 영국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철도 산업을 융성할 기회를 잡는다.미국에서도 남북전쟁을 거치며 철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링컨 대통령은 물자 보급을 위해 철도 건설을 촉진하는 철도법을 통과시켰다. 결국 남북전쟁은 물류의 거점인 철도역을 선점하는 철도 쟁탈전의 양상을 띠게 된다. 철도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동부와 서부가 철도로 이어진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의 전 국토는 철도로 빽빽이 연결된다. 국토가 넓은 미국의 특성상 철도회사와 철도역마다 기준 시간대가 달랐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1883년 미국은 현재의 표준시 제도를 채택한다.독일의 3B 정책과 영국의 3C 정책(그래픽=문승용 기자)◇ 철도서 시작해 철도로 끝난 1차 세계대전1893년 독일 제 2제국은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를 철로로 잇는 3B 정책을 수립한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던 독일은 철로를 이용해 중동과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당시 중동에선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언제든 유전이 나올 수 있는 유력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석유 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한 독일로서는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지역이었다.문제는 중동·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인 국가가 독일만이 아니었단 점이다. 영국은 이집트 카이로와 인도 콜카타(구 캘커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잇는 3C 정책을 수립해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지배하고자 했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영국과 공동 경영하던 프랑스도 독일의 진출을 마뜩찮아 했다.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또한 독일의 행보를 예의주시했다.결국 독일의 3B 정책에 불만을 품은 영국·프랑스·러시아, 이른 바 삼국협상과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제국으로 구성된 삼국동맹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임 박사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을 두고 여러 학설이 제기되지만, 독일의 3B 정책과 영국의 3C 정책 충돌이 도화선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짚었다.봉인열차를 타고 러시아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레닌.1차 세계대전이 소모적인 참호전으로 번지면서 어느 쪽도 승리를 확정짓지 못하는 수렁에 빠진다. 당시 스위스에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이 망명해 있었다. 레닌은 전쟁으로 어수선한 러시아에 돌아가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싶었지만 러시아로 돌아가려면 적대국 독일을 지나가야 하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독일은 레닌을 귀국시켜 삼국협상의 한축인 러시아 제국을 혁명으로 붕괴시키는 전략을 세운다. 이를 위해 독일은 레닌이 탑승한 열차는 여권 검사를 하지 않고, 승객의 승하차도 금지하는 ‘봉인열차’ 상태로 독일 영토를 통과시켜주겠다는 밀약을 맺는다. 1917년 레닌을 태운 봉인열차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독일의 바람대로 레닌은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켰고 제정 러시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권을 잡은 레닌은 약속대로 1차 세계대전에서 발을 빼겠다고 선언했다. ‘레닌의 봉인열차’는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1차 세계대전 종식이 머지않았음을 암시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러시아 제국 붕괴로 독일의 승리가 목전에 있는 듯 했지만 막판 미국의 참전으로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이 났다. 경인선 부설 현장. 일본과 미국 국기가 걸려있다.◇ 철도를 이용한 일본 제국주의 확장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아시아 최초로 일본에 근대식 정부가 수립되었다. 메이지 정권 창출에 공헌한 세력 간에 갈등이 커지면서 조선을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힘을 받기 시작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물론 중국으로부터 각종 이권을 빼앗았다. 하지만 조선을 교두보 삼아 태평양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와 손을 잡고 일본에 외교적 압력을 가했고, 결국 일본은 요동반도를 다시 중국에 반납해야했다.러시아는 일본을 압박한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었고 조선에서의 영향력도 강화했다.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감행했다. 고종의 신병을 확보한 러시아는 일본과 경인선 철도를 두고 갈등을 빚게 된다. 일본이 경인선을 1435㎜ 표준궤를 선택하자 조선에 영향력을 키우려고 했던 러시아가 자국에서 사용하는 1520㎜의 광궤를 주장한 것이다. 결국 경인선 철도는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의 주장이 관철됐다. 임 박사는 “어느 방식으로 철도를 깔기 시작하느냐에 따라 해당 국가에 대한 지배력이 결정된다”라면서 “조선에서 벌어진 ‘궤도 전쟁’은 동아시아 힘의 균형에 영향을 끼친 복잡한 이슈였다”고 말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철도 궤도 문제로 충돌한 일본과 러시아는 결국 조선 땅에서 일전을 벌이게 된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의 지배권을 공고히 했다. 일본은 포츠머스 회담을 통해 러시아가 얻어낸 만주 철도 부설권을 빼앗아왔다. 1906년 일본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세워 남만주 철도(만철)을 부설하기 시작했고 관동총독부를 세워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다.1929년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로 만철의 경영이 악화하자 일제는 본격적으로 대륙 침공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1931년 일본 관동군은 류탸오후에 위치한 남만주 철도를 폭파시키는 자작극을 벌인다. 일본이 이 사건을 중국군 소행으로 몰아붙이면서 ‘만주사변’이 발발하게 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설립한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37년 제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인 중일전쟁이 벌어진다.임 박사는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은 단순히 철도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것이 아니었다”며 “철도를 깐 뒤 철도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군사를 투입했고 해당 지역을 사실상 지배했다. 철도 부설권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위대한 생각]②현대 도로의 대명사, 아스팔트의 앞날은
    ②현대 도로의 대명사, 아스팔트의 앞날은
    김무연 기자 2021.01.29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 아스팔트는 현대 도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도로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인류가 길을 사용한지는 수천 년이 넘었지만 아스팔트가 도로의 지배자가 된 것은 불과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아스팔트는 어떻게 길의 필수 요소가 되었을까. 그리고 아스팔트의 지배적 위치는 이후에도 유지될 것인가.아스팔트 도로(사진=연합뉴스)아스팔트는 검은색의 점성을 가진 액체나 반고체 상태로 남아있는 석유 화합물이다. 유전이 있는 지대에는 석기 시대부터 아스팔트를 사용한 유물이 발굴된다. 성경에도 아스팔트가 등장한다. 노아는 방주의 방수 도료로 아스팔트를 사용했고 바벨탑의 벽돌 사이에도 아스팔트를 발랐다는 구절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아스팔트는 열에 녹고 접착성이 강한데다 방수가 뛰어난 특징이 있어 건축자재로서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는 사진 기술의 발현에도 기여했다. 1826년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아스팔트가 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성질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해 인류 최초의 사진 ‘르 그라의 집 창문에서 본 조망’을 탄생시켰다.아스팔트의 운명이 바뀐 것은 자동차의 발명 때문이다. 1801년 영국의 발명가 리처드 트레비식은 증기기관을 마차에 장착해 세계 최초로 증기관차를 발명했다. 트레비식의 자동차가 인기를 끌면서 영국과 유럽의 수송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귀족을 위시한 부유층이 증기자동차를 보유하기 시작했고 증기기관을 이용한 버스 등 대중교통도 등장했다. 문제는 도로였다. 당시 도로는 돌, 벽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표면이 고르지 못했다. 증기자동차는 마차보다 속도가 빨랐을 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을 탑재했기 때문에 무게도 상당했다. 증기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다니다 보니 운전자가 떨어지거나 자동차가 전복하는 등 안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평평하고 충격 흡수가 잘되는 아스팔트가 새로운 도로 포장재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1830년대부터 영국 런던의 도심부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 역시 1835년 아스팔트 포장을 했다. 미국은 1876년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인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아스팔트로 바꿨다. 1920년대에 포드사의 ‘모델 T’가 등장하면서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는 중산층이라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대중적인 탈 것이 됐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 수요에 비해 도로를 깔 천연 아스팔트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바로 석유 산업이었다. 때마침 석유를 원료로 하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석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잔유물이 바로 아스팔트이다. 결국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까는데 필요한 양의 아스팔트를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하게 됐던 것이다. 석유로부터 얻어진 아스팔트는 현재 지구상의 포장도로 대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임규태 박사는 “현재 도로포장에 사용되는 아스팔트는 원유를 가공해 천연가스, 휘발유, 경유, 등유 등 가치 높은 성분을 상품화하고 남은 찌꺼기이다”라면서 “그동안 석유회사들은 석유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를 도로포장재로 판매하며 막대한 이득을 올려 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얻어진 아스팔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아스팔트의 시대도 위기를 맞고 있다. 아스팔트 소재 자체의 열 흡수율이 높아서 도심의 기온을 높이는 ‘열섬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전 세계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될수록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는 셈이다. 여기에 석유 화합물의 특성상 자동차 바퀴와 마찰로 다양한 유해물질이 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임 박사는 “도로의 미래는 ‘친환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미 도로를 증착하는데 필요한 열과 압력을 기존보다 줄인 도로도 등장하고 있다”라며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앞으로도 길은 계속 발전하고 확장될 것”이라면서 강의를 끝마쳤다.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3강 ‘길’(道) 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한다.(사진=김태형 기자)
  • [위대한 생각]①인류의 흥망성쇠 가른 ‘길’…굴곡의 역사
    ①인류의 흥망성쇠 가른 ‘길’…굴곡의 역사
    김무연 기자 2021.01.27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인더스토리’(INDUSTORY)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3강 ‘길’(道) 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한다.(사진=김태형 기자)[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 “길은 인류 문명에 핏줄과 같은 존재다.” 임규태 박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인더스토리’ 시즌3 교통·물류 편의 세 번째 주제인 ‘길’(道)을 이처럼 정의했다. 국가와 민족의 문화·경제 전파는 물론 전쟁에 따른 흥망성쇠까지 길을 빼고는 역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한 제국들은 도로를 정비해 통치를 공고히 했고 제국의 도전자들은 기존에 없던 길을 찾아내 역사를 바꿨다.◇ 페르시아 왕도에서 실크로드까지…‘길’을 활용한 대제국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길은 고대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로 가는 길이다. 피라미드를 건설하려면 대량의 석재가 필요했지만 피라미드 근처에는 그만한 돌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결국 피라미드와 멀리 떨어진 채석장에서 돌을 다듬어 조달해야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돌로 덮인 포장도로를 건설해 고중량의 벽돌을 대량으로 옮길 수 있었다.페르시아 왕도페르시아 제국의 번영도 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기원전 500년께 키루스 2세는 메디아와 리디아를 정복해 아프리카와 터키, 인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키루스 2세에 이어 즉위한 캄비세스 2세가 조기 사망하자 내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를 진압해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수도인 수사와 정복지인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를 잇는 ‘페르시아 왕도’를 건설했다. 페르시아 왕도는 동서양 문명을 최초로 연결한 길이었다. 정복지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융합을 지향했던 페르시아의 통치 방식과 맞물려 페르시아 왕도는 단순히 지역과 지역을 이을 뿐 아니라 동서양 문화의 만남에 큰 역할을 한다.기원전 138년 중국 한나라의 장건은 동서양을 잇는 길을 찾아냈다. 당시 한나라는 북방 흉노족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무제는 장건을 사신으로 파견,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대월지와 동맹을 체결하도록 했다. 장건은 흉노에게 잡혔다 탈출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결국 대월지에 도착한다. 비록 장건은 대월지와 동맹을 맺는데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투르크 족이 개척한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을 중국까지 잇는 업적을 이뤘다. 장건이 개척한 길은 다시 서쪽의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페르시아 왕도와 이어졌고, 무역상들은 이 길을 따라 동서양을 오가며 물물교환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길을 따라 유럽에 수입된 중국의 비단이 로마의 귀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아피아 가도를 만드는 모습◇길과 전쟁…전략적 수단으로서 길 고대 로마는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길을 건설했다. 기원전 312년 로마 감찰관이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1차 삼니움 전쟁이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도로의 부재에 따른 물자 부족으로 판단한다. 그는 삼니움과 두 번째 전쟁을 치르기 위해 로마부터 이탈리아 남동쪽 해안 지역을 관통하는 ‘아피아 가도’를 건설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온 연유이다. 로마인들은 먼저 땅을 판 뒤 돌을 깔고 시멘트로 포장한 다음 그 위에 편평한 돌을 얹어 마감하는 방식으로 도로를 건설했다. 도로는 가운데가 볼록한 곡면으로 만들었고 옆으로는 수로를 내 배수를 원활하게 했다. 임 박사는 “아피아 가도는 사실상 현대 도로의 원형”이라고 평가했다.알프스 산맥을 넘는 한니발때로는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임 박사는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경로를 선택하면 적보다 전략적인 우위에 올라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장군이다. 지중해 패권을 두고 로마와 다투던 카르타고는 한니발에게 로마를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당시 스페인에 주둔하던 한니발은 지중해를 건너 곧바로 로마를 치는 대신 알프스 산맥을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지중해를 건너게 되면 지중해 연안의 친 로마 성향인 남부 갈리아 족과 로마의 협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결국 한니발은 코끼리를 앞세우고 겨울의 알프스를 넘기로 한다. 한니발은 알프스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로마에 반감이 있던 북부 갈리아 족과 동맹을 맺는데 성공한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던 로마는 ‘칸나이 전투’에서 무방비 상태로 대패하고 멸망 직전의 위기까지 몰린다. 훗날 나폴레옹 역시 대포를 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에 주둔한 오스트리아군에 대승을 거둔다.아르덴 고원 숲을 통과하는 독일군길은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짓기도 했다. 1933년 정권을 잡은 아돌프 히틀러는 폴란드와 노르웨이, 덴마크를 침공한 뒤 숙적 프랑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프랑스도 독일의 침공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사실. 프랑스는 독일과 국경선이 맞닿은 남부에는 마지노선을 구축했고, 북부 대서양에 인접한 벨기에를 통한 독일 침공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고 방비했다.그러나 이러한 프랑스의 대비는 독일의 천재적인 전략가 에리히 폰 만슈타인에 의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는 룩셈부르크 일대의 ‘아르덴 고원’을 통과하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제시했다. 아르덴 고원은 대규모 삼림지대라 병력 이동이 어려워 프랑스 뿐 아니라 독일군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다. 이 작전을 제안한 만슈타인은 타지로 전배되었지만, 히틀러가 이 작전을 극적으로 승인한다. 에르빈 롬멜의 기갑부대를 앞세운 독일군은 아르덴 고원을 통과하는 ‘전격전’을 감행했고 프랑스는 6주 만에 독일에 항복한다.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수세에 몰린 독일군은 아르덴 고원을 이용해 최후의 반격에 나섰다. 이 전투가 1944년 겨울 아르덴 고원 일대에서 벌어진 ‘벌지 전투’이다. 이번에는 연합군이 이미 알려진 독일군의 아르덴 고원 침투를 허용하지 않았다. 연합군이 미국의 대규모 물량 투입으로 버티자 독일은 대부분의 전투력을 소비하고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오리건 트레일◇ 오리건 트레일과 루트66, 미국 통합의 밑거름길은 영토 확장과 국가 통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대규모 영토 확장의 계기가 됐던 서부개척, 경제 부흥에 이바지한 골드러시, 자동차를 이용한 동서 간 횡단 모두 ‘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할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동부 13개 주의 연합체에 불과했다. 당시 미국 중부와 서부는 프랑스, 스페인 등의 식민지였다. 갓 독립한 미국은 인디언과 싸우면서 외세를 몰아내며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서부 해안 진출을 가로막은 결정적인 것은 로키 산맥이었다. 당시 로키 산맥 인근에는 짐승의 모피를 파는 사냥꾼들만 일부 생활하고 있었다.1811년부터 오리건으로 넘어가는 길이 본격적으로 개척되기 시작했고, 1836년 바틀슨과 비드웰 두 가족이 마차로 로키 산맥을 넘는 경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이 길이 알려지자 미국인들은 로키 산맥을 넘어 본격적으로 서부 이주를 시작했다. 서부 이주의 신호탄이 된 ‘오리건 트레일’이다. 이 길이 뚫리며 미국은 동서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다. 1844년 오리건 트레일에서 남쪽으로 갈라지는 ‘캘리포니아 트레일’이 개척됐다. 임 박사는 “1848년 일어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는 캘리포니아 트레일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길이 개척되면서 1860년 미국의 영토는 서부 오리건 주와 캘리포니아 주까지 확장됐다. 새로운 길은 미국의 영토 확장과 경제 부흥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루트66포드의 ‘모델 T’ 보급으로 자동차가 대중화한 1926년, 미국은 중부 시카고와 서부 LA를 잇는 3945km 길이의 국도 ‘루트 66’을 완공했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자동차로 이동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동서 간의 인적·물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루트 66 인근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 세인트루이스, 오클라호마 시티 등 도시들도 부흥했다. 그러나 루트 66은 1956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 전 구간을 고속도로로 잇는 ‘인터스테이트’ 계획을 추진하면서 몰락했다.아직도 루트 66은 미국인에게 ‘어머니의 길’이라고 불리며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루트 66에 대한 미국인의 향수를 투영한 애니메이션이 픽사가 제작한 ‘카’다. 카는 고속도로 건설로 발길이 끊긴 루트 66 인근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임 박사는 미국의 변화상을 예로 들며 “길은 단지 지역을 잇는 것 뿐 아니라 생활, 문화, 경제 모든 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Ⅲ’ 3강 ‘길’(道) 편을 강의하고 있다. ‘인더스토리’는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로 시즌3에서는 교통·물류산업을 집중 조명한다.(사진=김태형 기자)◇‘위대한 생각’은…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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