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생활부

김영환

기자

딴소리

  • [딴소리]조희연의 자사고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교육감 직선제 도입 후 최초의 3선 서울시교육감이 된 조희연 교육감은 고교 선배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 폐지론자다. 최근 자사고와 외국어고 등에 올해에만 120억원에 달하는 ‘사회통합전형 미충원 보전금’을 주지 않아 또 구설에 올랐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017년 청와대 앞에서 자사고·외고 등 폐지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지난 2019년 그는 본인의 모교인 서울 중앙고에 대해 자사고 취소를 결정했다가 법원의 반대로 발목잡혔다. 과거 “양반제도 폐지를 양반 출신이 주장할 때 더 설득력 있고 힘을 갖게 된다”던 조 교육감의 인식을 고려하면 왜 모교의 자사고 취소를 강행했는지 어렴풋이 이해된다.다만 당시 중앙고를 빼고도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한대부고 등 모든 학교가 승소했다. 교육청이 임의대로 평가 기준을 바꿔놓고 뒤늦게 소급적용한 게 법원에선 위법하다고 봤다. 이 소송에서 2억원에 가까운 혈세를 써놓고도 조 교육감은 “사법(부)의 보수화 때문”이라고 했다.이제 자사고 문제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받은 상태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통과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의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2. 다른 근원적 질문을 던져본다. 조 교육감 스스로도 인정한 ‘내로남불’이다. 자사고와 외교 모두 불평등이라면서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조 교육감의 두 아들들은 모두 외고 출신이다.그는 지난 2021년 6월29일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열린 제301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에서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애들(자녀들)은 외고에 보낸 걸 (남들은) ‘내로남불’이라고 하는데, 인정한다”라고 했다.보다 먼저 논란이 됐던 이가 18대 서울시교육감인 곽노현 전 교육감이다. 그도 외고 폐지를 주장했지만 역시 아들은 외고를 나왔다. 당시 곽 전 교육감이 해명했던 “아들이 외고에 가고 싶어 했다”는 말은 믿고는 싶었다. 그러나 곽 전 교육감은 그저 시작일뿐이었다. 남의 자식은 자사고, 특목고에 보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제 자식들은 특목고에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의 정책이 본인들에게는 교육지대계에 흠뻑 취한 ‘로맨스’겠지만 십수년째 반복되는 제 자식 챙기기를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넌덜머리나는 ‘불륜’일뿐이다.3. 문재인 정부 시절 법적으로 자사고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자녀들을 각종 자사고와 특목고에 입학시켜 단물을 맛봤다.서울 중앙고등학교(사진=연합뉴스)전직 교육부 장관으로 외고 폐지 정책을 추진해 온 김진표 국회의장의 딸이 외고를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지냈던 황희 전 장관의 딸도 자사고를 거쳐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중기벤처부 장관이던 권칠승 전 장관의 딸도 국제고를 졸업했다. 일일이 적자면 기사가 넘칠 정도로 해당 사례는 수두룩하다.지난 대선전을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동학 최고위원으로부터 관련 지적이 나왔을 만큼 민주당의 해당 정책은 위선적이다. 이 위원은 “특수목적고를 없애자면서 자녀들은 과학고, 외고에 보냈다”라며 “위선과 내로남불의 표상이 됐다”고 비판했다.문재인 정부 시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태는 민주당이 진행해온 교육 정책에 국민들이 얼마나 큰 반감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4.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는 한영외고 출신으로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을 거쳐 의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물론 조씨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교수이던 두 부모의 ‘스펙 적립’ 기여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을 들끓게 만들었다.특히 장영표 단국대 교수가 조 전 수석의 딸을 논문 제1저자로 올려 주고, 조 전 장관은 장 교수의 아들에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인턴십 확인서를 준 이른바 ‘스펙 품앗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교수 사회가 상부상조로 자녀들에게 만들어줄 스펙을, 제 기량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수험생이 얼마나 될까.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능 줄세우기로는 창의성 높은 인재를 뽑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렇다고 제 자식들에게만 특혜를 주려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교육 정책이 얼마나 범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 전 대통령의 취임사는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전술했던 인사들로부터 모두 부정당했다. 기회를 불평등하게 주었고, 과정도 불공정했다. 결과는 따로 말할 것도 없다.조희연 교육감이 3선 서울시교육감이 됐지만 단일화를 하지 못했던 보수 진영 조전혁, 박선영, 조영달 후보의 득표수 합계가 더 많았다. 전국적으로도 2018년 14곳을 싹쓸이했던 진보 진영은 2022년에는 5곳을 보수 진영에 넘겼다. 국민의 선택을 새길 필요가 있다.
    김영환 기자 2022.12.18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교육감 직선제 도입 후 최초의 3선 서울시교육감이 된 조희연 교육감은 고교 선배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 폐지론자다. 최근 자사고와 외국어고 등에 올해에만 120억원에 달하는 ‘사회통합전형 미충원 보전금’을 주지 않아 또 구설에 올랐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017년 청와대 앞에서 자사고·외고 등 폐지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지난 2019년 그는 본인의 모교인 서울 중앙고에 대해 자사고 취소를 결정했다가 법원의 반대로 발목잡혔다. 과거 “양반제도 폐지를 양반 출신이 주장할 때 더 설득력 있고 힘을 갖게 된다”던 조 교육감의 인식을 고려하면 왜 모교의 자사고 취소를 강행했는지 어렴풋이 이해된다.다만 당시 중앙고를 빼고도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한대부고 등 모든 학교가 승소했다. 교육청이 임의대로 평가 기준을 바꿔놓고 뒤늦게 소급적용한 게 법원에선 위법하다고 봤다. 이 소송에서 2억원에 가까운 혈세를 써놓고도 조 교육감은 “사법(부)의 보수화 때문”이라고 했다.이제 자사고 문제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받은 상태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통과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의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2. 다른 근원적 질문을 던져본다. 조 교육감 스스로도 인정한 ‘내로남불’이다. 자사고와 외교 모두 불평등이라면서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조 교육감의 두 아들들은 모두 외고 출신이다.그는 지난 2021년 6월29일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열린 제301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에서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애들(자녀들)은 외고에 보낸 걸 (남들은) ‘내로남불’이라고 하는데, 인정한다”라고 했다.보다 먼저 논란이 됐던 이가 18대 서울시교육감인 곽노현 전 교육감이다. 그도 외고 폐지를 주장했지만 역시 아들은 외고를 나왔다. 당시 곽 전 교육감이 해명했던 “아들이 외고에 가고 싶어 했다”는 말은 믿고는 싶었다. 그러나 곽 전 교육감은 그저 시작일뿐이었다. 남의 자식은 자사고, 특목고에 보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제 자식들은 특목고에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의 정책이 본인들에게는 교육지대계에 흠뻑 취한 ‘로맨스’겠지만 십수년째 반복되는 제 자식 챙기기를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넌덜머리나는 ‘불륜’일뿐이다.3. 문재인 정부 시절 법적으로 자사고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자녀들을 각종 자사고와 특목고에 입학시켜 단물을 맛봤다.서울 중앙고등학교(사진=연합뉴스)전직 교육부 장관으로 외고 폐지 정책을 추진해 온 김진표 국회의장의 딸이 외고를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지냈던 황희 전 장관의 딸도 자사고를 거쳐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중기벤처부 장관이던 권칠승 전 장관의 딸도 국제고를 졸업했다. 일일이 적자면 기사가 넘칠 정도로 해당 사례는 수두룩하다.지난 대선전을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동학 최고위원으로부터 관련 지적이 나왔을 만큼 민주당의 해당 정책은 위선적이다. 이 위원은 “특수목적고를 없애자면서 자녀들은 과학고, 외고에 보냈다”라며 “위선과 내로남불의 표상이 됐다”고 비판했다.문재인 정부 시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태는 민주당이 진행해온 교육 정책에 국민들이 얼마나 큰 반감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4.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는 한영외고 출신으로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을 거쳐 의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물론 조씨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교수이던 두 부모의 ‘스펙 적립’ 기여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을 들끓게 만들었다.특히 장영표 단국대 교수가 조 전 수석의 딸을 논문 제1저자로 올려 주고, 조 전 장관은 장 교수의 아들에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인턴십 확인서를 준 이른바 ‘스펙 품앗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교수 사회가 상부상조로 자녀들에게 만들어줄 스펙을, 제 기량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수험생이 얼마나 될까.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능 줄세우기로는 창의성 높은 인재를 뽑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렇다고 제 자식들에게만 특혜를 주려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교육 정책이 얼마나 범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 전 대통령의 취임사는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전술했던 인사들로부터 모두 부정당했다. 기회를 불평등하게 주었고, 과정도 불공정했다. 결과는 따로 말할 것도 없다.조희연 교육감이 3선 서울시교육감이 됐지만 단일화를 하지 못했던 보수 진영 조전혁, 박선영, 조영달 후보의 득표수 합계가 더 많았다. 전국적으로도 2018년 14곳을 싹쓸이했던 진보 진영은 2022년에는 5곳을 보수 진영에 넘겼다. 국민의 선택을 새길 필요가 있다.
  • [딴소리]쓰레빠의 예의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슬리퍼는 뒤축을 없애 신고 벗기 편하게 만든 신발이다. 발에 걸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없어 발등을 지나는 끈으로 고정한다. 14세기 팬터풀이라는 이름의 원형이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슬리퍼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는 ‘쓰레빠’라는 일본식 발음도 친숙하다.한국에서는 1920년대 들어서면서 요릿집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방에서 방을 지나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때 간편했다. 슬리퍼 대비 신고벗기 어려운 구두나 운동화를 대신해 가벼운 목적의 왕래를 도왔다. 현재도 신발을 벗어야 하는 업장에서 흔히 제공된다.1980~9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신발 주머니라는 것을 들고 다녔다. 실내화를 넣는 가방이다. 물론 슬리퍼와 같은 형태가 허락된 것은 아니었고 운동화 모양의 실내화를 갈아신도록 했다.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실내는 신을 벗고 들어서는 곳이다. 여전히 외출용 신발을 신고 실내 생활을 하는 서양식 문화와 커다란 차이다. 실내화로서의 슬리퍼가 한국인에게 널리 쓰이는 이유다.뮬 신발을 신고 있는 모델(사진=반스)2. 뮬은 슬리퍼의 한 종류다. 고대 로마어 ‘mulleus calceus’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고대 로마의 법관들이 신었던 신발을 칭하지만 같은 모양이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14세기 무렵 베네치아에서 뮬이 크게 유행했다. 고급 신발을 신고 외출할 때 덧대는 신발로 활용됐다.뒤축이 없다는 점은 슬리퍼와 같지만 앞코는 마감이 돼 있다. 앞에서만 본다면 슬리퍼를 신었는지 일반 신발을 신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나마 슬리퍼에 비해 격식을 갖춘 모양새다.몇 해 전 뮬이 여성들을 중심으로 유행했을 때 지금은 이직을 했지만 당시 신입축에 속하던 후배 기자가 국회에 뮬을 신고 와서 우리끼리 화제가 됐었다. 출입처에 슬리퍼를 신고온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게 동기였던 당시 야당 반장의 강변이었다. 꼰대 자랑 마시라고 농담조로 낄낄대며 넘어갔다.3. 그러고 말 줄 알았던 슬리퍼 공방이 ‘기자의 예의’에서 ‘영부인의 예의’로까지 넘어갔다. 너무 하찮은 것들로 싸우고 있어 이걸 뉴스랍시고 다뤄야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촌극이라는 인식을 지우기 어렵다.기자 출신인 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대통령이 얘기할 때 팔짱이야 낄 수 있겠지만, 슬리퍼를 신고 온 건 뭐라 해야 할까”라며 “‘드레스 코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건 너무 무례한 것 아니냐. 대통령이 아니라 남대문 지게꾼과 만나도 슬리퍼를 신고 나갈 수는 없다”고 거론했다.이를 받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행 국민의힘 비대위원도 “제가 대변인 시절에도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인터뷰를 할 경우 모든 출입기자들이 넥타이도 갖추고 양복 입고 정식으로 의관을 갖추고 대했다”고 했다.이 같은 지적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당원들 사이에서 ‘꼬투리 잡기’로 이어졌다. 한 민주당원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난 김건희 여사 사진을 들어 “MBC 기자는 대통령실에서 파는 실내화 신고 있으면 예의가 없고, 김건희는 타국주석과의 만남에 ‘쓰레빠(슬리퍼)’ 신고 다리 꼬고 접대해도 되는 이 멋진 나라”라고 비꼬았다.4. 차담이 이뤄진 청와대 상춘재는 원래 슬리퍼를 착용하는 장소다. 김 여사는 물론, 윤 대통령과 푹 주석 모두 슬리퍼를 착용했다. 실내에서는 밖에서 신는 신발을 차단하는 우리 문화를 고려하면 오히려 실외용 신발을 신는 것이 더 예의가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차담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그렇다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이뤄진 실내에서 MBC 기자가 착용한 슬리퍼는 예의가 없는 행동인가. 그 기자가 뮬을 신어 발의 앞코를 구두나, 운동화 따위인 것처럼 위장했다면 예의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군예식령 제11조는 ‘군인은 실내에서는 탈모, 실외에서는 착모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학 강의실에서 모자를 써도 되는지 여부는 해묵은 예의 논쟁 주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서양 복색의 예의다. 조선시대 남성 예의의 표상인 ‘갓’을, 임금 앞에서 벗는 장면을 상상이나 해봤는가.예의는 늘 상대적이다. 기자가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는 휴일 출근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정장을 입지 않은 적이 없다. 기자 초창기 시절 스포츠·연예부 때는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다녔다. 그 때도 잔디밭 그라운드에 하이힐을 신고오는 사람들을 두고는 뒷말이 많았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을 4:1로 잡아낸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는 슬리퍼를 신고 그라운드에서 펠레의 안녕을 기원하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기자나 영부인의 ‘슬리퍼’ 따위에서나 예의를 찾지 말자.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도 못 지키는 스스로부터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김영환 기자 2022.12.11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슬리퍼는 뒤축을 없애 신고 벗기 편하게 만든 신발이다. 발에 걸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없어 발등을 지나는 끈으로 고정한다. 14세기 팬터풀이라는 이름의 원형이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슬리퍼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는 ‘쓰레빠’라는 일본식 발음도 친숙하다.한국에서는 1920년대 들어서면서 요릿집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방에서 방을 지나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때 간편했다. 슬리퍼 대비 신고벗기 어려운 구두나 운동화를 대신해 가벼운 목적의 왕래를 도왔다. 현재도 신발을 벗어야 하는 업장에서 흔히 제공된다.1980~9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신발 주머니라는 것을 들고 다녔다. 실내화를 넣는 가방이다. 물론 슬리퍼와 같은 형태가 허락된 것은 아니었고 운동화 모양의 실내화를 갈아신도록 했다.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실내는 신을 벗고 들어서는 곳이다. 여전히 외출용 신발을 신고 실내 생활을 하는 서양식 문화와 커다란 차이다. 실내화로서의 슬리퍼가 한국인에게 널리 쓰이는 이유다.뮬 신발을 신고 있는 모델(사진=반스)2. 뮬은 슬리퍼의 한 종류다. 고대 로마어 ‘mulleus calceus’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고대 로마의 법관들이 신었던 신발을 칭하지만 같은 모양이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14세기 무렵 베네치아에서 뮬이 크게 유행했다. 고급 신발을 신고 외출할 때 덧대는 신발로 활용됐다.뒤축이 없다는 점은 슬리퍼와 같지만 앞코는 마감이 돼 있다. 앞에서만 본다면 슬리퍼를 신었는지 일반 신발을 신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나마 슬리퍼에 비해 격식을 갖춘 모양새다.몇 해 전 뮬이 여성들을 중심으로 유행했을 때 지금은 이직을 했지만 당시 신입축에 속하던 후배 기자가 국회에 뮬을 신고 와서 우리끼리 화제가 됐었다. 출입처에 슬리퍼를 신고온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게 동기였던 당시 야당 반장의 강변이었다. 꼰대 자랑 마시라고 농담조로 낄낄대며 넘어갔다.3. 그러고 말 줄 알았던 슬리퍼 공방이 ‘기자의 예의’에서 ‘영부인의 예의’로까지 넘어갔다. 너무 하찮은 것들로 싸우고 있어 이걸 뉴스랍시고 다뤄야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촌극이라는 인식을 지우기 어렵다.기자 출신인 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대통령이 얘기할 때 팔짱이야 낄 수 있겠지만, 슬리퍼를 신고 온 건 뭐라 해야 할까”라며 “‘드레스 코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건 너무 무례한 것 아니냐. 대통령이 아니라 남대문 지게꾼과 만나도 슬리퍼를 신고 나갈 수는 없다”고 거론했다.이를 받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행 국민의힘 비대위원도 “제가 대변인 시절에도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인터뷰를 할 경우 모든 출입기자들이 넥타이도 갖추고 양복 입고 정식으로 의관을 갖추고 대했다”고 했다.이 같은 지적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당원들 사이에서 ‘꼬투리 잡기’로 이어졌다. 한 민주당원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난 김건희 여사 사진을 들어 “MBC 기자는 대통령실에서 파는 실내화 신고 있으면 예의가 없고, 김건희는 타국주석과의 만남에 ‘쓰레빠(슬리퍼)’ 신고 다리 꼬고 접대해도 되는 이 멋진 나라”라고 비꼬았다.4. 차담이 이뤄진 청와대 상춘재는 원래 슬리퍼를 착용하는 장소다. 김 여사는 물론, 윤 대통령과 푹 주석 모두 슬리퍼를 착용했다. 실내에서는 밖에서 신는 신발을 차단하는 우리 문화를 고려하면 오히려 실외용 신발을 신는 것이 더 예의가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차담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그렇다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이뤄진 실내에서 MBC 기자가 착용한 슬리퍼는 예의가 없는 행동인가. 그 기자가 뮬을 신어 발의 앞코를 구두나, 운동화 따위인 것처럼 위장했다면 예의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군예식령 제11조는 ‘군인은 실내에서는 탈모, 실외에서는 착모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학 강의실에서 모자를 써도 되는지 여부는 해묵은 예의 논쟁 주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서양 복색의 예의다. 조선시대 남성 예의의 표상인 ‘갓’을, 임금 앞에서 벗는 장면을 상상이나 해봤는가.예의는 늘 상대적이다. 기자가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는 휴일 출근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정장을 입지 않은 적이 없다. 기자 초창기 시절 스포츠·연예부 때는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다녔다. 그 때도 잔디밭 그라운드에 하이힐을 신고오는 사람들을 두고는 뒷말이 많았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을 4:1로 잡아낸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는 슬리퍼를 신고 그라운드에서 펠레의 안녕을 기원하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기자나 영부인의 ‘슬리퍼’ 따위에서나 예의를 찾지 말자.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도 못 지키는 스스로부터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 전범기로서의 욱일기 [딴소리]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울릉도는 아름답지만 멀리 있는 섬이다. 살면서 한 번 가보았는데 배 타는 것에 취미가 없는지라 꽤 견디기 힘들었다. 포항에서 3시간 넘는 뱃길을 꼬박 졸며 갔던 기억이 있다.섬에는 기가 막힌 물회집이 있다. 여태 먹어본 물회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공항 건설이 한창인 울릉도에 하늘길이 열리면 재방문 의사가 있는데, 이 집 물회의 맛이 큰 이유다.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9년 2020 도쿄 하계올림픽대회 및 하계패럴림픽대회에서의 욱일기 경기장 내 반입 금지금지 조치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그 물회집에서 몇몇 독도 전문가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울릉도에서 선연하게 보이는 섬, 맑은 날이었는데도 오며가는 길에 거친 파도로 인한 멀미가 고생시켰던 섬, 독도 이야기는 평소 갖고 있던 생각과 많이 달랐다.조선시대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던 독도의 자료는 기실 큰 필요가 없단 거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시 미국의 미진한 태도 때문에 ‘법’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우리가 딱히 유리할 게 없다고. 어차피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는 우리가 하고 있어서 그냥 조용히 우리가 갖고 있으면 된다는 게 요지였다.2. 욱일기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공식기다. 욱일은 아침해가 떠오른다는 의미다. 영어로 욱일기를 ‘Rising Sun Flag’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 일본 제국 시기에 군기로도 쓰였다.기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 유신을 지나 1870년 무렵부터 일본 해군에서 처음 활용됐다. 제국주의의 맛을 본 일본이 대륙 침략의 야욕을 내뿜던 시기다.‘철십자’를 단 독일 군복(사진=독일 연방군 SNS)일본으로부터 강제 점령기를 당했던 우리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문양이다. 이 때문인지 욱일기는 일제시대를 다룰 때 일제의 상징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근 진행 중인 2022 카타르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행사에도 자주 응원도구로 사용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욱일기 사용을 FIFA나 IOC 등에 제소하곤 한다. 특히 지난해 열렸던 2020 도쿄 올림픽에는 욱일기에 맞서 ‘이순신 현수막’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3. 지난 10월에는 국회에서 때아닌 욱일기 논쟁이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동해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일본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해 욱일기와 태극기 함께 휘날리며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이 나중에 역사적으로 어떤 일의 단초가 될지 알 수 없다”고 거론하면서다. 이를 놓고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일본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이나 인천항 등에 입항한 전적을 들었다. 요컨대 욱일기 문제를 여야 정쟁화 삼지 말란 경고다.2007년 9월 인천항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연습함대 카시마함 위에서 자위대 장병들이 인천해역방어사령관(준장 김용환)에게 경례하고 있다.(사진=박대출 의원 페이스북)실제 1998년과 2008년 부산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일본 자위대 함정이 참석하면서 욱일기를 게양했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욱일기 논란이 거세진 것은 요근래의 일이다.월드컵에서 FIFA는 욱일기 사용을 자제시킨다. 그러나 욱일기라서가 아니다. FIFA는 욱일기에 비하면 그다지 논란이 되지 않는 한반도기도 막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독도는 우리땅’ 세리머니를 펼친 박종우는 IOC로부터 동메달을 박탈받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사실 욱일기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기 시작한 건 이 즈음부터다. ‘독도 세리머니’는 막으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욱일기 응원은 가능하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랐다.4. 아쉬운 것은 이 같은 문제 의식이 한반도 내에만 갇혀 있단 사실이다. 우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욱일기 응원이 제지됐다고 즐거워하지만 외신에는 Rising Sun Flag를 언급하는 기사를 찾기 어렵다. 우리와 비슷하게 일제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중국도 욱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일각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금기시된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일장기가 하켄크로이츠에 대응되고 욱일기는 독일군의 상징인 철십자와 유사하다는 것이다.물론 꼭 맞는 비유는 아니다. 현재의 독일 국기조차 치워버렸던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다르게 일본은 제국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에 미적거린 사회다. 그렇더라도 애매모호한 개념의 ‘전범기’ 같은 우리만의 적개심으로 욱일기를 다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 여야가 정쟁으로 비화시키는 것도 소모적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독일 국기를 빼앗아 치우고 있다.실제 욱일기가 일본 우경화의 상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세계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폴란드에게 있어 전범 독일의 군대를 상징하는 ‘철십자’는 우리에게 있어 욱일기와 유사한 대상이다. 우리에게 철십자는 어떤 의미인가. 아니 인지조차 하고 있는가.
    김영환 기자 2022.12.04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울릉도는 아름답지만 멀리 있는 섬이다. 살면서 한 번 가보았는데 배 타는 것에 취미가 없는지라 꽤 견디기 힘들었다. 포항에서 3시간 넘는 뱃길을 꼬박 졸며 갔던 기억이 있다.섬에는 기가 막힌 물회집이 있다. 여태 먹어본 물회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공항 건설이 한창인 울릉도에 하늘길이 열리면 재방문 의사가 있는데, 이 집 물회의 맛이 큰 이유다.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9년 2020 도쿄 하계올림픽대회 및 하계패럴림픽대회에서의 욱일기 경기장 내 반입 금지금지 조치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그 물회집에서 몇몇 독도 전문가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울릉도에서 선연하게 보이는 섬, 맑은 날이었는데도 오며가는 길에 거친 파도로 인한 멀미가 고생시켰던 섬, 독도 이야기는 평소 갖고 있던 생각과 많이 달랐다.조선시대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던 독도의 자료는 기실 큰 필요가 없단 거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시 미국의 미진한 태도 때문에 ‘법’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우리가 딱히 유리할 게 없다고. 어차피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는 우리가 하고 있어서 그냥 조용히 우리가 갖고 있으면 된다는 게 요지였다.2. 욱일기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공식기다. 욱일은 아침해가 떠오른다는 의미다. 영어로 욱일기를 ‘Rising Sun Flag’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 일본 제국 시기에 군기로도 쓰였다.기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 유신을 지나 1870년 무렵부터 일본 해군에서 처음 활용됐다. 제국주의의 맛을 본 일본이 대륙 침략의 야욕을 내뿜던 시기다.‘철십자’를 단 독일 군복(사진=독일 연방군 SNS)일본으로부터 강제 점령기를 당했던 우리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문양이다. 이 때문인지 욱일기는 일제시대를 다룰 때 일제의 상징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근 진행 중인 2022 카타르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행사에도 자주 응원도구로 사용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욱일기 사용을 FIFA나 IOC 등에 제소하곤 한다. 특히 지난해 열렸던 2020 도쿄 올림픽에는 욱일기에 맞서 ‘이순신 현수막’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3. 지난 10월에는 국회에서 때아닌 욱일기 논쟁이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동해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일본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해 욱일기와 태극기 함께 휘날리며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이 나중에 역사적으로 어떤 일의 단초가 될지 알 수 없다”고 거론하면서다. 이를 놓고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일본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부산항이나 인천항 등에 입항한 전적을 들었다. 요컨대 욱일기 문제를 여야 정쟁화 삼지 말란 경고다.2007년 9월 인천항에 입항한 일본 해상자위대 연습함대 카시마함 위에서 자위대 장병들이 인천해역방어사령관(준장 김용환)에게 경례하고 있다.(사진=박대출 의원 페이스북)실제 1998년과 2008년 부산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일본 자위대 함정이 참석하면서 욱일기를 게양했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욱일기 논란이 거세진 것은 요근래의 일이다.월드컵에서 FIFA는 욱일기 사용을 자제시킨다. 그러나 욱일기라서가 아니다. FIFA는 욱일기에 비하면 그다지 논란이 되지 않는 한반도기도 막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독도는 우리땅’ 세리머니를 펼친 박종우는 IOC로부터 동메달을 박탈받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사실 욱일기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기 시작한 건 이 즈음부터다. ‘독도 세리머니’는 막으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욱일기 응원은 가능하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랐다.4. 아쉬운 것은 이 같은 문제 의식이 한반도 내에만 갇혀 있단 사실이다. 우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욱일기 응원이 제지됐다고 즐거워하지만 외신에는 Rising Sun Flag를 언급하는 기사를 찾기 어렵다. 우리와 비슷하게 일제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중국도 욱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일각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금기시된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일장기가 하켄크로이츠에 대응되고 욱일기는 독일군의 상징인 철십자와 유사하다는 것이다.물론 꼭 맞는 비유는 아니다. 현재의 독일 국기조차 치워버렸던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다르게 일본은 제국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에 미적거린 사회다. 그렇더라도 애매모호한 개념의 ‘전범기’ 같은 우리만의 적개심으로 욱일기를 다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 여야가 정쟁으로 비화시키는 것도 소모적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독일 국기를 빼앗아 치우고 있다.실제 욱일기가 일본 우경화의 상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세계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폴란드에게 있어 전범 독일의 군대를 상징하는 ‘철십자’는 우리에게 있어 욱일기와 유사한 대상이다. 우리에게 철십자는 어떤 의미인가. 아니 인지조차 하고 있는가.
  • [딴소리]축구가 인권에 앞서선 안된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프랑스의 변호사 겸 축구 행정가 쥘 리메는 국제축구연맹(FIFA) 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월드컵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초창기 FIFA 월드컵의 우승컵인 ‘쥘 리메 컵’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해 3월 아이슬란드와의 FIFA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J조 1차전 경기에 앞서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인권 신장을 촉구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로이터)1928년 쥘 리메가 국제적인 축구 대회를 개최하고자 이를 추진한 데서부터 FIFA 월드컵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이야 세계 각국이 서로 월드컵을 개최하려 하고,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시만 해도 찬밥 신세였다.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우루과이가 개최 의사를 드러냈다. 축구 실력도 괜찮은데 마침 우루과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할 만한 대회로 월드컵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 남미 끝자락에 위치한 우루과이를 가려면 대서양을 건너가야 했다.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유럽 상당수 국가들이 월드컵에 불참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쥘 리메는 사비를 털어 각국 정부를 설득해 첫 월드컵의 개최를 성공시켰다.2. 쥘 리메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소 다르다. 그는 아직까지도 FIFA 회장으로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이다. 전세계 최고의 단일 종목 스포츠 대회가 된 월드컵을 만들고 자리잡는 데 공을 세웠으니 추앙 받아야 마땅했으나 그러지 못했다.첫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쥘 리메는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축구를 가장 중심적 가치로 뒀다. 그것도 일부 대륙에 치우친 국제 축구 대회가 아닌 전세계가 참여하는 대회를 목표로 했다. 한국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뒤 실력이 떨어지는 대륙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지금은 한국이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뒤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두둔했다고 한다.쥘 리메는 1956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됐으나 수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나치식 경례로 논란을 빚었던 영향으로 알려졌다. 쥘 리메는 2004년에서야 FIFA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다.3. 특히 1934년 두 번째 월드컵은 여전히 최악의 대회로 남아있다. 개최지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자신의 선전장으로 월드컵을 이용해 먹은 때문에 쥘 리메는 파시스트로도 오해를 받아야 했다.무솔리니는 경기에 배정된 심판을 따로 만난 정황이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8강전을 맡았던 스위스 주심은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스위스 축구협회로부터 정직을 받았다. 무솔리니는 자국 선수들에게는 우승에 실패하면 사형이라고 협박도 일삼았다.2회 월드컵은 초대 대회와는 다르게 중계에도 신경을 썼다. 라디오 중계를 통해 9개국이 월드컵 경기를 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리는 바는 달랐다. 무솔리니는 전파에 파시즘 선전을 집어넣었던 것이다.이탈리아 국민에 대한 통제도 뒤따랐다. 당시 무솔리니가 만든 응원구호가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솔리니가 파시즘 선전을 위해 월드컵을 정치적 무대로 만든 흑역사다.이 역사를 떠올리면 FIFA가 왜 그토록 스포츠와 정치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는지 일견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경기장 밖에서 이 같은 FIFA의 결정이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4. 월드컵으로 FIFA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막상 대회를 개최한 개최국은 적자에 직면한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총 14차례 대회 중 개최국이 수익을 낸 경우는 러시아 월드컵뿐이었다.지난 2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의 경기에서 독일 선수들이 무지개 완장을 금지한 FIFA에 항의하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번 대회 유치를 위해 약 300조원을 쏟아부은 카타르의 적자는 자명해보인다. 반대로 FIFA는 다시 수입 최대치를 경신했다. 카타르 월드컵과 관련해 FIFA의 수익은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카타르는 이번 대회 개최를 위해 사막 한복판에 축구장 7개를 만들면서 공항,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도 힘을 기울였다. 인구 32만명의 카타르는 건설을 위해 전세계 각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였는데 폭염으로 이들 중 1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자의 70%는 원인조차 모른다.이역만리 외국의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외로운 넋을 기리기 위해 몇몇 유럽 국가 주장들이 착용하려던 무지개 완장에 FIFA는 ‘옐로우 카드’를 주겠다며 막아섰다. 성 정체성이나 인종, 문화, 국적 등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겠다는 목소리에조차 재갈을 물리겠다는 건, 정치의 뒤에 숨어 돈잔치나 벌이겠다는 FIFA다.
    김영환 기자 2022.11.27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프랑스의 변호사 겸 축구 행정가 쥘 리메는 국제축구연맹(FIFA) 3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월드컵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초창기 FIFA 월드컵의 우승컵인 ‘쥘 리메 컵’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해 3월 아이슬란드와의 FIFA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J조 1차전 경기에 앞서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인권 신장을 촉구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로이터)1928년 쥘 리메가 국제적인 축구 대회를 개최하고자 이를 추진한 데서부터 FIFA 월드컵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이야 세계 각국이 서로 월드컵을 개최하려 하고,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시만 해도 찬밥 신세였다.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우루과이가 개최 의사를 드러냈다. 축구 실력도 괜찮은데 마침 우루과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할 만한 대회로 월드컵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유럽 대륙에서 남미 끝자락에 위치한 우루과이를 가려면 대서양을 건너가야 했다.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유럽 상당수 국가들이 월드컵에 불참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쥘 리메는 사비를 털어 각국 정부를 설득해 첫 월드컵의 개최를 성공시켰다.2. 쥘 리메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소 다르다. 그는 아직까지도 FIFA 회장으로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이다. 전세계 최고의 단일 종목 스포츠 대회가 된 월드컵을 만들고 자리잡는 데 공을 세웠으니 추앙 받아야 마땅했으나 그러지 못했다.첫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쥘 리메는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축구를 가장 중심적 가치로 뒀다. 그것도 일부 대륙에 치우친 국제 축구 대회가 아닌 전세계가 참여하는 대회를 목표로 했다. 한국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뒤 실력이 떨어지는 대륙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지금은 한국이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뒤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두둔했다고 한다.쥘 리메는 1956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됐으나 수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나치식 경례로 논란을 빚었던 영향으로 알려졌다. 쥘 리메는 2004년에서야 FIFA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다.3. 특히 1934년 두 번째 월드컵은 여전히 최악의 대회로 남아있다. 개최지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자신의 선전장으로 월드컵을 이용해 먹은 때문에 쥘 리메는 파시스트로도 오해를 받아야 했다.무솔리니는 경기에 배정된 심판을 따로 만난 정황이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8강전을 맡았던 스위스 주심은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스위스 축구협회로부터 정직을 받았다. 무솔리니는 자국 선수들에게는 우승에 실패하면 사형이라고 협박도 일삼았다.2회 월드컵은 초대 대회와는 다르게 중계에도 신경을 썼다. 라디오 중계를 통해 9개국이 월드컵 경기를 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리는 바는 달랐다. 무솔리니는 전파에 파시즘 선전을 집어넣었던 것이다.이탈리아 국민에 대한 통제도 뒤따랐다. 당시 무솔리니가 만든 응원구호가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솔리니가 파시즘 선전을 위해 월드컵을 정치적 무대로 만든 흑역사다.이 역사를 떠올리면 FIFA가 왜 그토록 스포츠와 정치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는지 일견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경기장 밖에서 이 같은 FIFA의 결정이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4. 월드컵으로 FIFA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막상 대회를 개최한 개최국은 적자에 직면한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총 14차례 대회 중 개최국이 수익을 낸 경우는 러시아 월드컵뿐이었다.지난 2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의 경기에서 독일 선수들이 무지개 완장을 금지한 FIFA에 항의하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번 대회 유치를 위해 약 300조원을 쏟아부은 카타르의 적자는 자명해보인다. 반대로 FIFA는 다시 수입 최대치를 경신했다. 카타르 월드컵과 관련해 FIFA의 수익은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카타르는 이번 대회 개최를 위해 사막 한복판에 축구장 7개를 만들면서 공항,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도 힘을 기울였다. 인구 32만명의 카타르는 건설을 위해 전세계 각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였는데 폭염으로 이들 중 1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자의 70%는 원인조차 모른다.이역만리 외국의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외로운 넋을 기리기 위해 몇몇 유럽 국가 주장들이 착용하려던 무지개 완장에 FIFA는 ‘옐로우 카드’를 주겠다며 막아섰다. 성 정체성이나 인종, 문화, 국적 등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겠다는 목소리에조차 재갈을 물리겠다는 건, 정치의 뒤에 숨어 돈잔치나 벌이겠다는 FIFA다.
  • [딴소리]빈 살만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지난 2003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 첼시FC를 인수했던 이는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러시아 최대의 정유기업이자 세계 4대 정유 기업이었던 시브네프티의 회장이 팀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축구팬들은 설레었다. 러시아에서 약 10위 정도의 재벌이었고, 전세계에서도 100위권의 부호가 팀에 얼마나 투자를 할지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 그가 첼시FC를 인수한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첼시FC는 유럽 축구 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명문 클럽으로 거듭났다.뒤를 이어 EPL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맨체스터 시티FC(맨시티)의 만수르다. 만수르는 한국에서도 ‘부호’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쓰였을 만큼 세계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에 속한다.로만은 한 때 220억 달러까지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거론된 재산은 112억 달러(15조원) 가량이다. 만수르의 개인 재산은 390억 달러(52조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그가 관리하는 가문의 재산은 1000조원께로 추정된다.2. 이번엔 빈 살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가자 지난해 10월 같은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FC를 인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뉴캐슬의 서포터들은 홈경기장으로 몰려와 마음껏 기쁨을 만끽했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환담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그의 이름은 무함마드이고 빈 살만은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빈 살만으로 더욱 알려졌다. 부호의 대명사 만수르보다 10배 더 재산이 많다고 한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별명이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인 남자다. 로만과 만수르를 거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EPL도 ‘돈’으로 성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졸부’라는 인식으로 기존 축구팬들은 오일 머니의 유입을 꺼려했지만 맨시티는 이제 세계 정상급 클럽의 하나가 됐다.2조 달러, 우리 돈으로 2800조원을 갖고 있는 비공식 세계 최고 갑부 빈 살만의 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축구팬들의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3. 최근 방한한 빈 살만이 환대를 받는 것 역시 우리 경제에 빈 살만이 미칠 영향을 긍정해서일 것이다. 왕세자이지만 고령의 국왕을 생각하면 빈 살만은 사우디의 사실상 최대 권력이다.그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은 ‘네옴시티’, 지구 역사상 최대 도시 프로젝트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이 사막 위에 지었던 피라미드, 빈 살만이 네옴시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이 도시는 100% 친환경 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추구한다. 오일로 막대한 부를 벌여들였지만 이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다. 한-사우디 ‘수소동맹’과 같은 친환경 용어는 그래서 등장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한국의 기술력이 수출을 눈 앞에 두고 있다.사우디는 과거에도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우리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왔다. 사우디 왕가 역시 당시 한국 기업의 기술력에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들린다.4. 로만의 입지는 의외의 곳에서 흔들렸다. 지난 2월 24일에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감행했는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로만이 제재 대상이 됐다. 결국 로만은 지난 5월 첼시FC의 지분을 팔고 영향력을 잃었다.만수르와 빈 살만은 입장이 매우 다르다. 그들은 구단주 이전에 ‘부총리’, ‘총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로만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그러나 부와 권력을 모두 쥔 이면에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빈 살만은 손자병법과 윈스턴 처칠의 저작을 즐겨 읽는다. 결국 본인보다 27살이 많은 사촌형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왕세자에 책봉됐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할아버지가 내세운 유지였던 ‘형제세습’도 없던 일이 됐다.왕족 숙청도 감행했으니 더한 권력도 휘둘렀다. 2017년에는 레바논 총리를 납치해 사임을 협박하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저질렀다. 2018년에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도 의심받고 있다.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 개혁 행보 이면에는 필경 경계해야할 면모도 있는 것이다.
    김영환 기자 2022.11.2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지난 2003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 첼시FC를 인수했던 이는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러시아 최대의 정유기업이자 세계 4대 정유 기업이었던 시브네프티의 회장이 팀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축구팬들은 설레었다. 러시아에서 약 10위 정도의 재벌이었고, 전세계에서도 100위권의 부호가 팀에 얼마나 투자를 할지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실제 그가 첼시FC를 인수한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첼시FC는 유럽 축구 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명문 클럽으로 거듭났다.뒤를 이어 EPL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맨체스터 시티FC(맨시티)의 만수르다. 만수르는 한국에서도 ‘부호’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쓰였을 만큼 세계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에 속한다.로만은 한 때 220억 달러까지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거론된 재산은 112억 달러(15조원) 가량이다. 만수르의 개인 재산은 390억 달러(52조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그가 관리하는 가문의 재산은 1000조원께로 추정된다.2. 이번엔 빈 살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가자 지난해 10월 같은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FC를 인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뉴캐슬의 서포터들은 홈경기장으로 몰려와 마음껏 기쁨을 만끽했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환담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그의 이름은 무함마드이고 빈 살만은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빈 살만으로 더욱 알려졌다. 부호의 대명사 만수르보다 10배 더 재산이 많다고 한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별명이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인 남자다. 로만과 만수르를 거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EPL도 ‘돈’으로 성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졸부’라는 인식으로 기존 축구팬들은 오일 머니의 유입을 꺼려했지만 맨시티는 이제 세계 정상급 클럽의 하나가 됐다.2조 달러, 우리 돈으로 2800조원을 갖고 있는 비공식 세계 최고 갑부 빈 살만의 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축구팬들의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3. 최근 방한한 빈 살만이 환대를 받는 것 역시 우리 경제에 빈 살만이 미칠 영향을 긍정해서일 것이다. 왕세자이지만 고령의 국왕을 생각하면 빈 살만은 사우디의 사실상 최대 권력이다.그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은 ‘네옴시티’, 지구 역사상 최대 도시 프로젝트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이 사막 위에 지었던 피라미드, 빈 살만이 네옴시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이 도시는 100% 친환경 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추구한다. 오일로 막대한 부를 벌여들였지만 이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다. 한-사우디 ‘수소동맹’과 같은 친환경 용어는 그래서 등장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한국의 기술력이 수출을 눈 앞에 두고 있다.사우디는 과거에도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우리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왔다. 사우디 왕가 역시 당시 한국 기업의 기술력에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들린다.4. 로만의 입지는 의외의 곳에서 흔들렸다. 지난 2월 24일에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감행했는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로만이 제재 대상이 됐다. 결국 로만은 지난 5월 첼시FC의 지분을 팔고 영향력을 잃었다.만수르와 빈 살만은 입장이 매우 다르다. 그들은 구단주 이전에 ‘부총리’, ‘총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로만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그러나 부와 권력을 모두 쥔 이면에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빈 살만은 손자병법과 윈스턴 처칠의 저작을 즐겨 읽는다. 결국 본인보다 27살이 많은 사촌형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왕세자에 책봉됐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할아버지가 내세운 유지였던 ‘형제세습’도 없던 일이 됐다.왕족 숙청도 감행했으니 더한 권력도 휘둘렀다. 2017년에는 레바논 총리를 납치해 사임을 협박하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저질렀다. 2018년에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도 의심받고 있다.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는 등 개혁 행보 이면에는 필경 경계해야할 면모도 있는 것이다.
  • ‘공군 1호기’…무임탑승? 내돈내산! [딴소리]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는 2022년 1월부터 보잉 747-8B5(747-8i) 기종을 쓰고 있다. 소유자는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의 비행기를 대통령실이 장기간 ‘빌려’ 쓰는 형태다. 공군 1호기 탑승 좌석 수는 총 233석(전용석 2, 비즈니스 42, 이코노미 169)이다. 대통령 수행원들은 주로 비즈니스석을 쓰고 이코노미는 취재진에 배분된다. 공군 1호기(사진=이데일리DB)공군 1호기 탑승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언론사가 항공기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언론사가 자비를 부담한다. ‘회돈회산’(회사가 돈을 주고 회사가 산 것)이다. 지난 9월 5박7일 일정의 영국·미국·캐나다 3개국 해외 순방은 2699만원의 계산서가 청구됐다.더욱이 공군 1호기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준하는 비용을 받는다. 전술했듯 취재진이 사용하는 좌석은 이코노미 수준이다. 기내 서비스는 비즈니스 클래스가 제공되지만 비용 대비 좌석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대통령실은 순방지에서 손꼽히는 시설의 숙소를 섭외한다. 통신시설이 필요한 미디어센터를 마련하는 데도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든다. 모두 언론사에서 갹출해 부담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용을 더 걷고 1년 단위로 남는 차액에 대해서는 환급한다.2. 지난 9일 밤 지인들과 저녁자리를 갖다가 팀원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실에서 동남아 순방 기간 동안 MBC 출입기자에게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대해 탑승을 불허하겠다는 통보를 했다는 것이었다.대통령실은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출국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대통령은 해외 순방 시 공군 1호기인 전용기를 이용한다. 대통령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취재하는 출입기자단도 이 비행기에 동승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 대통령이 탑승 전 어떤 색깔의 넥타이를 맸는지조차 취재 대상이다.윤 대통령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11~16일 캄보디아 프놈펜과 인도네시아 발리 두 곳을 차례로 방문한다.3. “장관님, 이렇게 답변하실 거면 세금을 받지 마세요. 저희가 내는 세금으로 일하시는 거잖아요.”문재인 정부의 초대이자 우리나라 정부 39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조명균 전 장관 당시 통일부를 출입했다. 당시 출입기자 중 한 명은 늘 날카로운 질문으로 조 전 장관을 당혹케했다. 조 전 장관은 “세금을 받지 말라”는 다소 공격적인 언사에도 언론과의 간담회가 있을 때마다 대개 첫 질문자로 해당 기자를 지목했다. 기자가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고위공직자로서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을 존중한 것이다.세금으로 일하는 고정급적 연봉제 적용대상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월급을 받는 것은 당연히도 대통령이다. 2022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봉은 2억4455만7000원이다. 더 엄중하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4. 대통령 전용기를 탄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장점은 출입국 관리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수행원들이 길게 늘어서 출입국 심사를 받는 동안 대통령이 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광경이다. 취재 편의를 위한 특혜라 할 수 있다.달리 말하자면 이번 순방기간 동안 민항기를 선택한 언론사들은 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프놈펜에서 발리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들 취재진은 경유를 통해 빠듯한 일정을 맞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취재 자체를 불허한 것이 아니고 전용기 탑승만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사 타이틀 달았다고 받는 당연한 좌석은 아닌 것”이라고 했다.국민이 낸 세금으로 빌려 쓰고 있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특정 언론을 배제하겠다는 데서 권력을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느껴진다. 공군 1호기도, 윤 대통령이 구성한 정부도 2022년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임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 탑승 배제는 권력 오남용이다.엄연히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출입기자단 제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논의에서 벗어나므로 제도 자체를 존중함)이 있는데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를 결정한 것이 그 근거다. 취재 윤리를 벗어난 보도 행태가 발생한다면 이미 대통령실과 출입기자단은 해당 언론사에 적절한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서는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달라”고 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수많은 외신이 쏟아내고 있는 비판은 어떤 ‘중요한 국익’이 걸렸는지 묻고 싶다.
    김영환 기자 2022.11.12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는 2022년 1월부터 보잉 747-8B5(747-8i) 기종을 쓰고 있다. 소유자는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의 비행기를 대통령실이 장기간 ‘빌려’ 쓰는 형태다. 공군 1호기 탑승 좌석 수는 총 233석(전용석 2, 비즈니스 42, 이코노미 169)이다. 대통령 수행원들은 주로 비즈니스석을 쓰고 이코노미는 취재진에 배분된다. 공군 1호기(사진=이데일리DB)공군 1호기 탑승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언론사가 항공기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언론사가 자비를 부담한다. ‘회돈회산’(회사가 돈을 주고 회사가 산 것)이다. 지난 9월 5박7일 일정의 영국·미국·캐나다 3개국 해외 순방은 2699만원의 계산서가 청구됐다.더욱이 공군 1호기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준하는 비용을 받는다. 전술했듯 취재진이 사용하는 좌석은 이코노미 수준이다. 기내 서비스는 비즈니스 클래스가 제공되지만 비용 대비 좌석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대통령실은 순방지에서 손꼽히는 시설의 숙소를 섭외한다. 통신시설이 필요한 미디어센터를 마련하는 데도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든다. 모두 언론사에서 갹출해 부담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용을 더 걷고 1년 단위로 남는 차액에 대해서는 환급한다.2. 지난 9일 밤 지인들과 저녁자리를 갖다가 팀원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실에서 동남아 순방 기간 동안 MBC 출입기자에게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대해 탑승을 불허하겠다는 통보를 했다는 것이었다.대통령실은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출국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대통령은 해외 순방 시 공군 1호기인 전용기를 이용한다. 대통령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취재하는 출입기자단도 이 비행기에 동승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 대통령이 탑승 전 어떤 색깔의 넥타이를 맸는지조차 취재 대상이다.윤 대통령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11~16일 캄보디아 프놈펜과 인도네시아 발리 두 곳을 차례로 방문한다.3. “장관님, 이렇게 답변하실 거면 세금을 받지 마세요. 저희가 내는 세금으로 일하시는 거잖아요.”문재인 정부의 초대이자 우리나라 정부 39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조명균 전 장관 당시 통일부를 출입했다. 당시 출입기자 중 한 명은 늘 날카로운 질문으로 조 전 장관을 당혹케했다. 조 전 장관은 “세금을 받지 말라”는 다소 공격적인 언사에도 언론과의 간담회가 있을 때마다 대개 첫 질문자로 해당 기자를 지목했다. 기자가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고위공직자로서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을 존중한 것이다.세금으로 일하는 고정급적 연봉제 적용대상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월급을 받는 것은 당연히도 대통령이다. 2022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봉은 2억4455만7000원이다. 더 엄중하게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4. 대통령 전용기를 탄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장점은 출입국 관리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수행원들이 길게 늘어서 출입국 심사를 받는 동안 대통령이 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광경이다. 취재 편의를 위한 특혜라 할 수 있다.달리 말하자면 이번 순방기간 동안 민항기를 선택한 언론사들은 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프놈펜에서 발리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들 취재진은 경유를 통해 빠듯한 일정을 맞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취재 자체를 불허한 것이 아니고 전용기 탑승만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사 타이틀 달았다고 받는 당연한 좌석은 아닌 것”이라고 했다.국민이 낸 세금으로 빌려 쓰고 있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특정 언론을 배제하겠다는 데서 권력을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느껴진다. 공군 1호기도, 윤 대통령이 구성한 정부도 2022년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임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 탑승 배제는 권력 오남용이다.엄연히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출입기자단 제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논의에서 벗어나므로 제도 자체를 존중함)이 있는데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를 결정한 것이 그 근거다. 취재 윤리를 벗어난 보도 행태가 발생한다면 이미 대통령실과 출입기자단은 해당 언론사에 적절한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윤 대통령은 이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서는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달라”고 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수많은 외신이 쏟아내고 있는 비판은 어떤 ‘중요한 국익’이 걸렸는지 묻고 싶다.
  • [딴소리]과밀의 도시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처음 인파의 위력을 체감한 건 고교 시절 명동에서였다. 친구 몇몇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명동을 놀러갔는데 머리털 나고 가장 많은 인파를 목도했다. 불꽃축제 관람 후 귀가하는 시민들의 모습(사진=이데일리DB)친구들끼리 “야, 발만 들어도 앞으로 간다”면서 낄낄댔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공포보다는 유희거리였다. 사람이 넘실대는 거리는 그야말로 축제였고 볼거리였다.2002년 월드컵은 이 같은 감정이 정점을 찍게 된 경험이었다. 가장 짜릿한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을 학교 노천극장에서 봤는데, 경기도 워낙 재밌었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팔을 내뻗는 장관에는 그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사람이 붐비는 곳은 피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개최된 불꽃축제만은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사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간구였다.2. 당일 당직근무여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마포대교 상단에서 보자는 마음으로 불꽃축제 현장을 찾았다. 유명 축제답게 상대적으로 축제 현장에서 떨어진 마포대교도 인파로 붐볐다. 마포역 4번출구에서 강변북로 분기점까지 고작 485m를 가는데 1시간이 넘게 소요됐다.“아, 좀 무서운데.” 함께 간 동거인의 한 마디에 기분이 으스스해졌다. 마포대교 한 켠 인도의 이쪽은 강물이 넘실댔고, 저쪽은 차들이 질주했다. 돌아가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복잡하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전진할 요량에서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인간 흐름에 이동을 맡겨야했다.통행로가 좁은 이태원에서 느꼈을 공포는 더했을 것이다. 마포대교 위 강물과 도로는 대피의 공간이 될 수 없을지언정 시야는 확보할 수 있었다. 꽉 막힌 벽 사이에서 타인들에게 이동을 맡겨야 했던 무력감은 훨씬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3. ‘오시야’(押し屋). 한국에서는 ‘푸시맨’으로 불렸던 아르바이트는 일본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철 승객을 안으로 밀어넣어주는 일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집중된다.출근 시간이 빠듯한 승객과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운영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비롯됐던 현상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은 푸시맨이 사라졌다. 대신 무리한 탑승을 막는 ‘커트맨’이 생겼다.지난 불꽃축제 때도 이 같은 일을 도와줬던 운영요원들과 안전요원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재개된 행사였던 만큼 100만명 이상이 다녀갈 것이 관측됐고 주최 측은 18.5%가량 운영요원·안전요원을 증원했다. 불꽃축제에 투입된 안전관리 인원은 무려 5700명이었다.4. 서울의 과밀은 여전한 문제다. 수요 예측에 실패했던 9호선은 혼잡도가 지나치게 높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9호선의 혼잡도는 238%까지로 집계됐다. 이럴 경우 차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준치인 2500ppm을 훌쩍넘기게 된다. 서울시 측정기준 5000ppm으로 집계되기도 했다.최근 출근길에 무리한 탑승으로 후문이 고장난 버스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문이 덜렁덜렁 열려 있는데 승객도 많은 상태여서 꽤 위험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기사님이 운행 불가를 선언했다. 승객들 사이에서 볼멘 소리가 나왔다. 이유야 어찌됐든 출근길 방해를 받았으니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나, 한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그것이 안전불감증이었다. 지난 7월 광역버스를 대상으로 하는 입석 금지 제도가 부활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사고 위험 방지를 위해 광역버스의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및 입석 금지를 시행했으나 승객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이번 입석 금지제 부활은 버스업체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양상이 다르다.주체가 누가됐든 과밀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반갑다.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이다. 근자에 들어 유행하고 있는 ‘국평’(국민평수)이라는 말은, 과밀을 안일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자의식이 빚어낸 슬픈 풍경일지도 모른다.
    김영환 기자 2022.11.06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처음 인파의 위력을 체감한 건 고교 시절 명동에서였다. 친구 몇몇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명동을 놀러갔는데 머리털 나고 가장 많은 인파를 목도했다. 불꽃축제 관람 후 귀가하는 시민들의 모습(사진=이데일리DB)친구들끼리 “야, 발만 들어도 앞으로 간다”면서 낄낄댔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공포보다는 유희거리였다. 사람이 넘실대는 거리는 그야말로 축제였고 볼거리였다.2002년 월드컵은 이 같은 감정이 정점을 찍게 된 경험이었다. 가장 짜릿한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을 학교 노천극장에서 봤는데, 경기도 워낙 재밌었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팔을 내뻗는 장관에는 그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사람이 붐비는 곳은 피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개최된 불꽃축제만은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사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간구였다.2. 당일 당직근무여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마포대교 상단에서 보자는 마음으로 불꽃축제 현장을 찾았다. 유명 축제답게 상대적으로 축제 현장에서 떨어진 마포대교도 인파로 붐볐다. 마포역 4번출구에서 강변북로 분기점까지 고작 485m를 가는데 1시간이 넘게 소요됐다.“아, 좀 무서운데.” 함께 간 동거인의 한 마디에 기분이 으스스해졌다. 마포대교 한 켠 인도의 이쪽은 강물이 넘실댔고, 저쪽은 차들이 질주했다. 돌아가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복잡하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전진할 요량에서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인간 흐름에 이동을 맡겨야했다.통행로가 좁은 이태원에서 느꼈을 공포는 더했을 것이다. 마포대교 위 강물과 도로는 대피의 공간이 될 수 없을지언정 시야는 확보할 수 있었다. 꽉 막힌 벽 사이에서 타인들에게 이동을 맡겨야 했던 무력감은 훨씬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3. ‘오시야’(押し屋). 한국에서는 ‘푸시맨’으로 불렸던 아르바이트는 일본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철 승객을 안으로 밀어넣어주는 일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집중된다.출근 시간이 빠듯한 승객과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운영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비롯됐던 현상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은 푸시맨이 사라졌다. 대신 무리한 탑승을 막는 ‘커트맨’이 생겼다.지난 불꽃축제 때도 이 같은 일을 도와줬던 운영요원들과 안전요원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재개된 행사였던 만큼 100만명 이상이 다녀갈 것이 관측됐고 주최 측은 18.5%가량 운영요원·안전요원을 증원했다. 불꽃축제에 투입된 안전관리 인원은 무려 5700명이었다.4. 서울의 과밀은 여전한 문제다. 수요 예측에 실패했던 9호선은 혼잡도가 지나치게 높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9호선의 혼잡도는 238%까지로 집계됐다. 이럴 경우 차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준치인 2500ppm을 훌쩍넘기게 된다. 서울시 측정기준 5000ppm으로 집계되기도 했다.최근 출근길에 무리한 탑승으로 후문이 고장난 버스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문이 덜렁덜렁 열려 있는데 승객도 많은 상태여서 꽤 위험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기사님이 운행 불가를 선언했다. 승객들 사이에서 볼멘 소리가 나왔다. 이유야 어찌됐든 출근길 방해를 받았으니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나, 한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그것이 안전불감증이었다. 지난 7월 광역버스를 대상으로 하는 입석 금지 제도가 부활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사고 위험 방지를 위해 광역버스의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및 입석 금지를 시행했으나 승객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이번 입석 금지제 부활은 버스업체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양상이 다르다.주체가 누가됐든 과밀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반갑다.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이다. 근자에 들어 유행하고 있는 ‘국평’(국민평수)이라는 말은, 과밀을 안일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자의식이 빚어낸 슬픈 풍경일지도 모른다.
  • [딴소리]수박과 갈치, 그리고 민주당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수박은 대표적인 여름 제철 과일이다. 과육의 90% 가량이 수분일 만큼 대부분 물로 구성돼 있어 땀을 많이 흘린 여름에 섭취하기에 알맞다. 영어 이름에는 물(water)이 들어갈 정도다. 더울수록 당도가 높아져 여름에 제격이다.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특히 아꼈다. 그는 “수박을 맛봤다면, 천사들의 음식을 아는 것”이라는 헌사를 남겼다. 한반도에는 고려시대 전래됐다. 조선시대에도 귀하디 귀한 과일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5년 내시가 수라간에서 수박을 훔쳐먹었다가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갔다고 한다.인간이 수박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약 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45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수박을 재배해 디저트로 즐겼다. 파라오의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문자에 수박이 기록돼 있다.초록색 겉과 달리 속은 새빨간 색이어서 반전이 있다. 알맹이는 빼놓고 겉만 건드린다는 핀잔으로 ‘수박 겉핥기’라는 속담이 유명하다. 2. 어두컴컴한 밤에 화려한 조명으로 유혹하는 어종은 오징어뿐만 아니다. 심해어인 갈치도 이 같은 습성이 있어 불빛으로 유인해 끌어올린다. 물속에 서서 멸치를 사냥하는 갈치.(사진=김동식 KBS 수중촬영감독)때로는 ‘은갈치’로, 때로는 ‘먹갈치’로 불려 이종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종이다. 잡는 방법에 따라 인간이 직관적인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은갈치는 낚시로 채낚아 잡는다. 제주에서 흔하다. 반면 먹갈치는 그물로 건져올린다. 목포식이다. 표면이 은빛으로 반짝거리는데 핵산 염기 중 하나인 구아닌이다. 낚싯대로 한마리씩 건져올리면 몸에 상처가 없어 반짝이지만, 그물로 끌어올리면 이리저리 치이다가 상처가 난다. 은갈치가 먹갈치로 나뉘는 지점이다.조선시대에는 천대를 받았다. 기록이 많지 않다. 고등어처럼 불포화지방산을 듬뿍 갖고 있는데 그래서 산패가 빨랐다. 냉장시설이 부족했던 조선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운 생선이었다.더욱이 심해어여서 물 밖으로 나오면 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쉬이 죽었다. 안그래도 부패가 빠른데 수면 밖에서 살리기도 어렵다. 현대사회에서도 갈치를 회로 맛보는 건 산지에서나 가능한 수준이다.갈치는 먹잇감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산란기가 되면 육식성이 더 증폭돼 동족의 꼬리도 끊어 먹는다. 속담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가 여기서 나왔다.3. 때아닌 수박과 갈치가 여의도, 보다 정확히는 더불어민주당에 소환됐다. 겉과 속의 색깔이 다르고, 동족상잔을 한다는 점에서 자당 정치인을 비판하기 위해 활용됐다.지난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측이 이재명 의원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으로 비판하자 ‘수박’이라는 조롱이 쓰였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남쪽의 ‘빨갱이’를 ‘겉은 파란데 안은 빨갛다’며 수박에 빗댔다.논란이 심화되자 우상호 당시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수박’을 쓰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경고장까지 날렸다. 3~4개월여가 지난 뒤 새로운 분열의 언어로 갈치가 등장했다. 자기편까지 먹어치우는 식욕의 갈치, ‘제 식구 잡아먹는 갈치 정치인’과 호응됐다.그 사이 ‘대표’ 타이틀을 획득한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 패배 직후 주식 투자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전재수 의원이 이 대표를 겨냥해 ‘실망’을 피력하자 친이재명계 안민석 의원이 갈치를 꺼냈다. 뒤이어 조응천 의원은 “전 의원이 갈치라면 안 의원은 완전 대왕갈치”라고도 비꼬았다.안 의원은 지난 5월 대선 패배로 민주당이 야당이 되자 ‘슬기로운 야당 생활 십계명’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여기에도 ‘갈치정치 하지 말자’고 썼다.4. 과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수박의 기원을 찾았다. 수박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발현돼 지중해 국가를 지나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학설은 대체로 동의를 구했다.다만 남아프리카 유자 멜론과 서아프리카 에구시 멜론, 북동아프리카 코도판 멜론 등을 놓고 수박의 조상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 연구진이 최근에서야 코도판 멜론을 유전적 친부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코도판 멜론은 속살이 하얗다. 아프리카 일부 하얀 수박은 쓴 맛이 강하다. 코도판 멜론은 수박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쓴맛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떼냈고, 빨간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얻었다. 지구상의 수박은 하얗다가도 빨개진다. 진화의 산물이다. 겉이 파랗다고 속도 파래야 한다는 민주당의 빨간색 박해는 공당으로서의 유연함을 포기했다는 자인이다.코도판 멜론(사진=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갈치의 이름엔 공통점이 있다. ‘칼’이다. 우리말 고어에는 칼을 갈이라고 했다. 어원이 짐작된다.영어의 스캐버드(Scabbard fish), 커틀러스(Cutlass fish)는 칼집, 휜 검에서 따온 말이다. 일본에서는 큰칼 물고기란 뜻의 다치우오(タチうオ, 太刀魚), 중국에서는 띠 물고기란 의미의 다이유(帶魚)로 불렸다. 한국어에도 이명으로 ‘도어’(刀魚)와 ‘대어’(帶魚)가 있다.갈치는 뱀이나 장어따위처럼 기는 방식의 이동 방법을 쓰지 않는다. 해마처럼 서서 헤엄친다. 은빛 몸을 꼿꼿히 세워 유영하는 모습, 영락없는 검이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리바롤은 “정의의 칼에는 칼집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는 갈치에서 식탐만을 보지만 누군가에게 칼은 정의의 표상이기도 하다.
    김영환 기자 2022.10.23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수박은 대표적인 여름 제철 과일이다. 과육의 90% 가량이 수분일 만큼 대부분 물로 구성돼 있어 땀을 많이 흘린 여름에 섭취하기에 알맞다. 영어 이름에는 물(water)이 들어갈 정도다. 더울수록 당도가 높아져 여름에 제격이다.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특히 아꼈다. 그는 “수박을 맛봤다면, 천사들의 음식을 아는 것”이라는 헌사를 남겼다. 한반도에는 고려시대 전래됐다. 조선시대에도 귀하디 귀한 과일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5년 내시가 수라간에서 수박을 훔쳐먹었다가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갔다고 한다.인간이 수박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약 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45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수박을 재배해 디저트로 즐겼다. 파라오의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문자에 수박이 기록돼 있다.초록색 겉과 달리 속은 새빨간 색이어서 반전이 있다. 알맹이는 빼놓고 겉만 건드린다는 핀잔으로 ‘수박 겉핥기’라는 속담이 유명하다. 2. 어두컴컴한 밤에 화려한 조명으로 유혹하는 어종은 오징어뿐만 아니다. 심해어인 갈치도 이 같은 습성이 있어 불빛으로 유인해 끌어올린다. 물속에 서서 멸치를 사냥하는 갈치.(사진=김동식 KBS 수중촬영감독)때로는 ‘은갈치’로, 때로는 ‘먹갈치’로 불려 이종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종이다. 잡는 방법에 따라 인간이 직관적인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은갈치는 낚시로 채낚아 잡는다. 제주에서 흔하다. 반면 먹갈치는 그물로 건져올린다. 목포식이다. 표면이 은빛으로 반짝거리는데 핵산 염기 중 하나인 구아닌이다. 낚싯대로 한마리씩 건져올리면 몸에 상처가 없어 반짝이지만, 그물로 끌어올리면 이리저리 치이다가 상처가 난다. 은갈치가 먹갈치로 나뉘는 지점이다.조선시대에는 천대를 받았다. 기록이 많지 않다. 고등어처럼 불포화지방산을 듬뿍 갖고 있는데 그래서 산패가 빨랐다. 냉장시설이 부족했던 조선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운 생선이었다.더욱이 심해어여서 물 밖으로 나오면 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쉬이 죽었다. 안그래도 부패가 빠른데 수면 밖에서 살리기도 어렵다. 현대사회에서도 갈치를 회로 맛보는 건 산지에서나 가능한 수준이다.갈치는 먹잇감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산란기가 되면 육식성이 더 증폭돼 동족의 꼬리도 끊어 먹는다. 속담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가 여기서 나왔다.3. 때아닌 수박과 갈치가 여의도, 보다 정확히는 더불어민주당에 소환됐다. 겉과 속의 색깔이 다르고, 동족상잔을 한다는 점에서 자당 정치인을 비판하기 위해 활용됐다.지난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측이 이재명 의원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으로 비판하자 ‘수박’이라는 조롱이 쓰였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남쪽의 ‘빨갱이’를 ‘겉은 파란데 안은 빨갛다’며 수박에 빗댔다.논란이 심화되자 우상호 당시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수박’을 쓰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경고장까지 날렸다. 3~4개월여가 지난 뒤 새로운 분열의 언어로 갈치가 등장했다. 자기편까지 먹어치우는 식욕의 갈치, ‘제 식구 잡아먹는 갈치 정치인’과 호응됐다.그 사이 ‘대표’ 타이틀을 획득한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 패배 직후 주식 투자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전재수 의원이 이 대표를 겨냥해 ‘실망’을 피력하자 친이재명계 안민석 의원이 갈치를 꺼냈다. 뒤이어 조응천 의원은 “전 의원이 갈치라면 안 의원은 완전 대왕갈치”라고도 비꼬았다.안 의원은 지난 5월 대선 패배로 민주당이 야당이 되자 ‘슬기로운 야당 생활 십계명’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여기에도 ‘갈치정치 하지 말자’고 썼다.4. 과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수박의 기원을 찾았다. 수박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발현돼 지중해 국가를 지나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학설은 대체로 동의를 구했다.다만 남아프리카 유자 멜론과 서아프리카 에구시 멜론, 북동아프리카 코도판 멜론 등을 놓고 수박의 조상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 연구진이 최근에서야 코도판 멜론을 유전적 친부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코도판 멜론은 속살이 하얗다. 아프리카 일부 하얀 수박은 쓴 맛이 강하다. 코도판 멜론은 수박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쓴맛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떼냈고, 빨간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얻었다. 지구상의 수박은 하얗다가도 빨개진다. 진화의 산물이다. 겉이 파랗다고 속도 파래야 한다는 민주당의 빨간색 박해는 공당으로서의 유연함을 포기했다는 자인이다.코도판 멜론(사진=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갈치의 이름엔 공통점이 있다. ‘칼’이다. 우리말 고어에는 칼을 갈이라고 했다. 어원이 짐작된다.영어의 스캐버드(Scabbard fish), 커틀러스(Cutlass fish)는 칼집, 휜 검에서 따온 말이다. 일본에서는 큰칼 물고기란 뜻의 다치우오(タチうオ, 太刀魚), 중국에서는 띠 물고기란 의미의 다이유(帶魚)로 불렸다. 한국어에도 이명으로 ‘도어’(刀魚)와 ‘대어’(帶魚)가 있다.갈치는 뱀이나 장어따위처럼 기는 방식의 이동 방법을 쓰지 않는다. 해마처럼 서서 헤엄친다. 은빛 몸을 꼿꼿히 세워 유영하는 모습, 영락없는 검이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리바롤은 “정의의 칼에는 칼집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는 갈치에서 식탐만을 보지만 누군가에게 칼은 정의의 표상이기도 하다.
  • [딴소리]"韓은 안전한 국가…but driver"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경찰이 지난 12일부터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정지’ 위반 차량 단속에 나섰다. 앞서 지난 7월12일부터 시작된 3개월의 계도기간을 마치고 이날부터 단속을 시작한 것이다. 애초 계도기간은 1개월로 설정됐으나 현장에서 혼선이 감지되면서 계도기간이 늘었다.(사진=연합뉴스)경찰청에 따르면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정지 의무 단속 첫날에만 전국에서 총 135대가 적발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12일 새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직후 한 곳에서 1시간 가량 일시정지 의무를 지키지 않는 차량의 수를 세었을 때 76대가 확인됐다.([르포]우회전 `일단정지` 안 지키는 차 세보니…1시간에만 `76대`) 운 좋게 걸리지 않은 차량을 고려하면 아직도 우회전 시 일시정지 정착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시정지에 그치지 않고 신호가 바뀔 때까지 서 있는 차들이 많아 교통 흐름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도기간 우회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0명에서 22명으로 45% 감소했고 사고 자체도 4478건에서 3386건으로 24.4% 줄었다. 십수명의 사람이 목숨을 지켰는데 5~10분 늦어지는 게 대수랴.2.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치안에는 굉장히 후한 점수를 주지만 반대로 기함하는 대목이 운전문화다. “한국의 치안은 술에 취해 새벽에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지만 운전자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외국인들의 평가다. 특히 뼈아픈 대목은 ‘보행자들이 알아서 피해주길 기대하면서 운전한다’는 점이다.대한민국의 도로는 차가 우선이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사람이나 이륜차의 통행마저 금지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야 차가 도로의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횡단보도를 매개로 사람과 차가 공존해야 하는 일반도로에서 차의 권리는 보행자보다 후순위여야 한다.1997년 10년내 교통사고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비전 제로’(Vision Zero)의 기치를 들었던 스웨덴을 필두로 유럽은 도로의 주인을 보행자로 내세웠다.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정지는, 도로에서 차와 보행자가 만날 수밖에 없는 접점 ‘우회전’ 시 운전자의 책임을 더 무겁게 묻겠다는 의미다.3. 사실 이 정도의 조치도 차의 편의를 많이 봐준 편이다. 국내국제 규정인 ‘도로표지와 교통신호 협약’에서는 빨간불일 경우 무조건 진행을 막는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제외한 다른 대륙에서는 빨간불일 때 우회전을 포함한 모든 통행을 금지시킨다. 경찰청에서는 일시정지 이후 보행자가 없으면 통과가 가능하고 단속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대법원의 해석은 다르다. 적신호 시 주변을 살피고 우회전을 진행했더라고 하더라도 이를 신호위반으로 본다는 판례가 많다.(97도1835, 2009도8222 등)결국 일시정지 이후 우회전을 했다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원은 신호위반의 과실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운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4. 새로운 도로교통법으로 인해 운전자 간 마찰이 빚어지는 것이 이 대목이다. 보다 조심 운전을 지향하는 운전자는 보행자가 없더라도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변할 때까지 기다린다. 급한 볼일이 있는 뒤차 운전자는 보행자도 없는데 앞차가 진행을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이를 막기 위해서는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서부터 차례로 우회전 신호등을 더 보급해야 한다. 신호등 한 대당 설치 비용이 1000~1500만원선이라고 하니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겠지만, 안전을 위한 비용은 얼마든지 감수할 필요가 있다.비보호는 좌회전을 할 경우 많이 쓰이지만 원칙적으로 우회전도 보호받지 못하는 운행법이다. 오히려 파란 신호에서만 허가되는 좌회전보다 빨간불에서도 제한적으로 가능한 우회전이 운전자의 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는 38.9%로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다.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더욱더 강화돼도 모자람이 없다.
    김영환 기자 2022.10.16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경찰이 지난 12일부터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정지’ 위반 차량 단속에 나섰다. 앞서 지난 7월12일부터 시작된 3개월의 계도기간을 마치고 이날부터 단속을 시작한 것이다. 애초 계도기간은 1개월로 설정됐으나 현장에서 혼선이 감지되면서 계도기간이 늘었다.(사진=연합뉴스)경찰청에 따르면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정지 의무 단속 첫날에만 전국에서 총 135대가 적발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12일 새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직후 한 곳에서 1시간 가량 일시정지 의무를 지키지 않는 차량의 수를 세었을 때 76대가 확인됐다.([르포]우회전 `일단정지` 안 지키는 차 세보니…1시간에만 `76대`) 운 좋게 걸리지 않은 차량을 고려하면 아직도 우회전 시 일시정지 정착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시정지에 그치지 않고 신호가 바뀔 때까지 서 있는 차들이 많아 교통 흐름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도기간 우회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0명에서 22명으로 45% 감소했고 사고 자체도 4478건에서 3386건으로 24.4% 줄었다. 십수명의 사람이 목숨을 지켰는데 5~10분 늦어지는 게 대수랴.2.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치안에는 굉장히 후한 점수를 주지만 반대로 기함하는 대목이 운전문화다. “한국의 치안은 술에 취해 새벽에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지만 운전자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외국인들의 평가다. 특히 뼈아픈 대목은 ‘보행자들이 알아서 피해주길 기대하면서 운전한다’는 점이다.대한민국의 도로는 차가 우선이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물론 사람이나 이륜차의 통행마저 금지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야 차가 도로의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횡단보도를 매개로 사람과 차가 공존해야 하는 일반도로에서 차의 권리는 보행자보다 후순위여야 한다.1997년 10년내 교통사고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비전 제로’(Vision Zero)의 기치를 들었던 스웨덴을 필두로 유럽은 도로의 주인을 보행자로 내세웠다. 교차로 우회전 시 일시정지는, 도로에서 차와 보행자가 만날 수밖에 없는 접점 ‘우회전’ 시 운전자의 책임을 더 무겁게 묻겠다는 의미다.3. 사실 이 정도의 조치도 차의 편의를 많이 봐준 편이다. 국내국제 규정인 ‘도로표지와 교통신호 협약’에서는 빨간불일 경우 무조건 진행을 막는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제외한 다른 대륙에서는 빨간불일 때 우회전을 포함한 모든 통행을 금지시킨다. 경찰청에서는 일시정지 이후 보행자가 없으면 통과가 가능하고 단속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대법원의 해석은 다르다. 적신호 시 주변을 살피고 우회전을 진행했더라고 하더라도 이를 신호위반으로 본다는 판례가 많다.(97도1835, 2009도8222 등)결국 일시정지 이후 우회전을 했다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는 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원은 신호위반의 과실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운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4. 새로운 도로교통법으로 인해 운전자 간 마찰이 빚어지는 것이 이 대목이다. 보다 조심 운전을 지향하는 운전자는 보행자가 없더라도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변할 때까지 기다린다. 급한 볼일이 있는 뒤차 운전자는 보행자도 없는데 앞차가 진행을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이를 막기 위해서는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서부터 차례로 우회전 신호등을 더 보급해야 한다. 신호등 한 대당 설치 비용이 1000~1500만원선이라고 하니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겠지만, 안전을 위한 비용은 얼마든지 감수할 필요가 있다.비보호는 좌회전을 할 경우 많이 쓰이지만 원칙적으로 우회전도 보호받지 못하는 운행법이다. 오히려 파란 신호에서만 허가되는 좌회전보다 빨간불에서도 제한적으로 가능한 우회전이 운전자의 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는 38.9%로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다.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더욱더 강화돼도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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