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부

송혜수

기자

쩝쩝박사

  • “애들 팔아 장사하냐는 악플도”… ‘돈쭐’ 난 파스타집 근황[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서울 마포구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의 모습. (사진=오 대표 제공)[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밥 한번 편하게 먹자!”서울 마포구의 한 파스타집 사장은 말했다. 가게 입구에는 VIP를 위한 안내문을 붙이고 VIP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명을 적었다.1.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2.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3. 매주 월요일은 쉬니까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4.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 번, 미소 한 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5.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이 가게의 VIP는 급식지원카드를 지닌 결식아동들이다. 급식지원카드는 보호자의 식사 제공이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만 18세 미만의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복지 카드다. 일반 식당과 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식사 단가는 한 끼 당 8000원이다.‘진짜 파스타’의 오인태(37) 대표는 지난 2019년 구청에 들렀다가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우연히 결식아동 관련 지원비 횡령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주자는 생각이 들어 가게에 VIP 제도를 만들었다.오 대표의 선한 아이디어는 온라인상에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가게에는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이른바 ‘돈쭐’ 손님들이 줄을 섰고 오 대표를 따라 VIP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는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언론에서도 오 대표의 아이디어가 소개됐다.그로부터 2년여간의 시간이 지났다.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오 대표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 대표에게서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진짜파스타’ 가게 입구. (사진=독자 제공, eco_simplelife_yuri)그는 제일 먼저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관공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라며 “소방공무원분들에게도 테이블 무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다만 “대부분 김영란법 때문에 3만 원 미만 금액에서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이 밖에 일부 연이 닿은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결식아동 돕는 것을 먼저 시작했으니 조금 자리 잡은 이후에 보호 종료 아이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게에 방문했는지를 묻자 오 대표는 “코로나19 전후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전에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찾아줬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일주일에 3~4팀 정도 오는 것 같다”라며 “전국에 선한 영향력 가게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분산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가게 앞에 붙어 있는 VIP 안내문 (사진=독자 제공, heewan93)선한 영향력 가게는 결식아동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다. 2019년 오 대표 가게를 시작으로 몇몇 가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전국의 3800여 개의 가게가 함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카페, 안경점, 학원, 세탁소, 병원 등 다양한 업종이 각기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돕고 있다.오 대표는 선한 영향력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두고 자신의 가게 첫 VIP 손님들 덕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뜻을 알린 뒤 처음으로 방문한 아이들이 경기권에서 왔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였는데 동생 둘을 데리고 왔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이어 “자신이 괜히 아이들에게 힘든 걸음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날 종일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데 이후 대전의 한 주점에서 전화가 왔다. 주점 사장은 ‘자신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주류업이라 구청에서 운영하는 결식아동 복지사업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라고 밝혔다.그는 “이때 생각보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더 많은 가게가 함께 아이들을 도와준다면 멀리 사는 아이들이 굳이 우리 가게를 찾기 위해 힘든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그렇게 오 대표를 시작으로 선한 영향력 가게는 곳곳에 하나둘 생겨났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며 “대전 주점 사장에게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단어 자체가 마음을 울려서 동참하는 가게를 모아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이름을 붙이고 단체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이 과정에서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는 “안 좋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심각하게는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가 있다”며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오 대표는 “어떤 이는 가게에 전화까지 하며 거침없는 욕설을 했다”며 “하도 시달려서 약까지 먹었다”고 말했다.또 아이들을 돕는 마음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도 없이 어른들끼리 와서 음식을 먹고 결식아동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거 있으면 너희 공짜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부모님이 아이들을 앞장세운 뒤 본인의 친구들을 전부 불러 식사를 하고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어려울 때 힘이 됐던 것은 가게를 다녀간 아이가 남긴 한 마디였다. 오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친구가 해당 방송 댓글을 공개적으로 남겨줬다. 댓글에는 ‘지난 1년 동안 가게에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식사했다. 감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그걸 보고 나니 남들이 욕하는 것들이 다 상관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를 조금 이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이후 약도 끊었다”고 말했다.가게가 큰 화제가 되면서 돈쭐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감사하게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원래 홍대 가성비 맛집으로 인지도가 있던 터라 사실상 매출이 크게 오르진 않았다”고 밝혔다.오 대표는 “가게 매출과 관련해서는 코로나 때 타격이 가장 심했는데 매출이 80~90%까지 떨어져 봤다”며 “최악으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일 때도 있었다. 지금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매출에 비하면 50% 정도는 깎여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사진=오 대표 제공)그는 어떤 업종이든 자영업은 늘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사단법인을 준비 중인 오 대표는 이렇게 되기까지 용기를 내고 가게를 방문해준 아이들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 덕에 생각지도 않던 일이 생겨났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는 것이다.그는 “사단법인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았는데 첫 번째 오해는 ‘정치하려고 한다’였고, 두 번째 오해는 ‘이름 좀 알려서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라며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고 이익을 편취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오 대표는 “국가에서 지정한 사단법인이 되려면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회비 없이 운영하고 싶었지만 2년째 승인이 안 났다”며 “결국 사단법인의 건실성 때문에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필요하니 정회원이 되실 분들은 연 10만 원을 내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회비를 내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끝으로 오 대표는 진짜 파스타가 ‘인생의 전환점’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사실 처음 창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였다”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결식아동을 돕기까지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짜 파스타는 인생의 전환점과 같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10원이든 100원이든 지금 당장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2.03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서울 마포구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의 모습. (사진=오 대표 제공)[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밥 한번 편하게 먹자!”서울 마포구의 한 파스타집 사장은 말했다. 가게 입구에는 VIP를 위한 안내문을 붙이고 VIP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명을 적었다.1.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2.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3. 매주 월요일은 쉬니까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4.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 번, 미소 한 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5.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이 가게의 VIP는 급식지원카드를 지닌 결식아동들이다. 급식지원카드는 보호자의 식사 제공이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만 18세 미만의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복지 카드다. 일반 식당과 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식사 단가는 한 끼 당 8000원이다.‘진짜 파스타’의 오인태(37) 대표는 지난 2019년 구청에 들렀다가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우연히 결식아동 관련 지원비 횡령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주자는 생각이 들어 가게에 VIP 제도를 만들었다.오 대표의 선한 아이디어는 온라인상에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가게에는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이른바 ‘돈쭐’ 손님들이 줄을 섰고 오 대표를 따라 VIP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는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언론에서도 오 대표의 아이디어가 소개됐다.그로부터 2년여간의 시간이 지났다.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오 대표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 대표에게서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진짜파스타’ 가게 입구. (사진=독자 제공, eco_simplelife_yuri)그는 제일 먼저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관공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라며 “소방공무원분들에게도 테이블 무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다만 “대부분 김영란법 때문에 3만 원 미만 금액에서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이 밖에 일부 연이 닿은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결식아동 돕는 것을 먼저 시작했으니 조금 자리 잡은 이후에 보호 종료 아이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게에 방문했는지를 묻자 오 대표는 “코로나19 전후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전에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찾아줬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일주일에 3~4팀 정도 오는 것 같다”라며 “전국에 선한 영향력 가게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분산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가게 앞에 붙어 있는 VIP 안내문 (사진=독자 제공, heewan93)선한 영향력 가게는 결식아동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다. 2019년 오 대표 가게를 시작으로 몇몇 가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전국의 3800여 개의 가게가 함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카페, 안경점, 학원, 세탁소, 병원 등 다양한 업종이 각기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돕고 있다.오 대표는 선한 영향력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두고 자신의 가게 첫 VIP 손님들 덕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뜻을 알린 뒤 처음으로 방문한 아이들이 경기권에서 왔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였는데 동생 둘을 데리고 왔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이어 “자신이 괜히 아이들에게 힘든 걸음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날 종일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데 이후 대전의 한 주점에서 전화가 왔다. 주점 사장은 ‘자신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주류업이라 구청에서 운영하는 결식아동 복지사업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라고 밝혔다.그는 “이때 생각보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더 많은 가게가 함께 아이들을 도와준다면 멀리 사는 아이들이 굳이 우리 가게를 찾기 위해 힘든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그렇게 오 대표를 시작으로 선한 영향력 가게는 곳곳에 하나둘 생겨났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며 “대전 주점 사장에게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단어 자체가 마음을 울려서 동참하는 가게를 모아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이름을 붙이고 단체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이 과정에서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는 “안 좋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심각하게는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가 있다”며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오 대표는 “어떤 이는 가게에 전화까지 하며 거침없는 욕설을 했다”며 “하도 시달려서 약까지 먹었다”고 말했다.또 아이들을 돕는 마음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도 없이 어른들끼리 와서 음식을 먹고 결식아동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거 있으면 너희 공짜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부모님이 아이들을 앞장세운 뒤 본인의 친구들을 전부 불러 식사를 하고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어려울 때 힘이 됐던 것은 가게를 다녀간 아이가 남긴 한 마디였다. 오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친구가 해당 방송 댓글을 공개적으로 남겨줬다. 댓글에는 ‘지난 1년 동안 가게에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식사했다. 감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그걸 보고 나니 남들이 욕하는 것들이 다 상관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를 조금 이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이후 약도 끊었다”고 말했다.가게가 큰 화제가 되면서 돈쭐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감사하게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원래 홍대 가성비 맛집으로 인지도가 있던 터라 사실상 매출이 크게 오르진 않았다”고 밝혔다.오 대표는 “가게 매출과 관련해서는 코로나 때 타격이 가장 심했는데 매출이 80~90%까지 떨어져 봤다”며 “최악으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일 때도 있었다. 지금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매출에 비하면 50% 정도는 깎여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사진=오 대표 제공)그는 어떤 업종이든 자영업은 늘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사단법인을 준비 중인 오 대표는 이렇게 되기까지 용기를 내고 가게를 방문해준 아이들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 덕에 생각지도 않던 일이 생겨났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는 것이다.그는 “사단법인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았는데 첫 번째 오해는 ‘정치하려고 한다’였고, 두 번째 오해는 ‘이름 좀 알려서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라며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고 이익을 편취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오 대표는 “국가에서 지정한 사단법인이 되려면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회비 없이 운영하고 싶었지만 2년째 승인이 안 났다”며 “결국 사단법인의 건실성 때문에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필요하니 정회원이 되실 분들은 연 10만 원을 내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회비를 내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끝으로 오 대표는 진짜 파스타가 ‘인생의 전환점’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사실 처음 창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였다”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결식아동을 돕기까지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짜 파스타는 인생의 전환점과 같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10원이든 100원이든 지금 당장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日에 더 많다, 독도는 우리땅인데” 젤라토 사장은 말했다[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한 젤라토 가게를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독도는 우리 땅”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땅,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독도. 이 당연한 사실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가장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 젤라토(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gelato) 가게가 있다. 이름은 ‘40240’. 독도의 우편번호를 그대로 가져와 가게 이름으로 지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일상에서 그렇게라도 독도를 떠올리길 바랐다. 이곳에선 독도 커피와 젤라토를 팔고 수익금 일부는 독도사랑운동본부에 후원한다고 한다.(사진=송혜수 기자)지난달 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후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16개 시·도 교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독도의 날을 맞이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앞서 소개한 젤라토 가게를 발견했다. 이곳 사장은 어쩌다 독도 관련 카페를 차리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주 메뉴가 젤라토인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가게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날 오후 방문한 가게에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 ‘오늘의 젤라토’라며 당일 선정한 젤라토 메뉴를 적어놓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게 앞에 적힌 ‘오늘의 젤라토’.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다고 강조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카페 곳곳에 깔끔하게 꾸며진 독도 관련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과 배지를 비롯해 책갈피, 스티커 등이 마련돼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종류의 독도 관련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Do you know 40240?’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인 김학재(61)씨는 편안한 미소로 가게를 소개했다.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막 4개월이 조금 넘었다는 김씨는 자신 있게 직접 만든 젤라토를 설명했다. 그날그날 메뉴가 바뀐다는 말에 오늘의 추천 메뉴를 묻자 김씨는 맛보기용 작은 스푼으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를 살짝 덜어 건넸다. 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여기에 독도 커피까지 더하니 2만8000원이 나왔다. 젤라토는 한 컵에 한 가지 맛만 담을 땐 5500원이며 한 컵에 두 가지 맛을 함께 담을 땐 6000원이다. 김씨는 주문과 동시에 젤라토를 먹기 좋게 담아 제공했다. 메뉴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꼭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먼저 맛본 젤라토는 김씨가 추천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다. 강릉 초당 순두부의 주재료인 백태콩이 들어간 이 젤라토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걸쭉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맛본 것은 유기농 우유 젤라토다. 먼저 맛본 순두부 백태콩과 비슷하게 고소한 맛이 났지만 식감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젤라토 위에 올라간 작은 아이스크림콘은 손님이 다른 맛도 즐길 수 있도록 살짝 덜어 올려주는 거라고 한다. (사진=송혜수 기자)세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쌀 젤라토다. 겉으로 보기엔 유기농 우유 젤라토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한입 먹어보니 쫀득하게 씹히는 밥알이 먹는 재미를 더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시나몬 향은 색다른 감칠맛을 줬다. 네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말차 맛이다. 텁텁하거나 떫지 않았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했다. 그 다음으로는 필라델피아 오레오 크림치즈 젤라토를 맛봤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차진 크림치즈에 바삭한 오레오가 더해지니 풍미가 일품이었다. 여섯 번째는 딸기 소르베 젤라토다. 소르베는 우유를 넣지 않은 것을 말한다. 딸기를 조려 얼린 듯 진하고 풍부한 딸기 향이 물씬 났다.마지막으로 백향과 소르베 젤라토를 맛봤다. 흔히 패션프루트라고 불리는 백향과는 백 가지 향을 가진 여신의 과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백향과의 오독오독 씹히는 씨와 새콤달콤한 과육이 소르베 젤라토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상큼하고 시원했다.사장은 제자 2명과 함께 젤라토 가게를 시작했다. 제자들은 젤라토 가게를 하기 전 ‘독도 커피’를 팔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사장 김씨는 제자 2명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 이화여자대에서 푸드 앤 컬처 아카데미(Food & Culture Academy) 산학협력을 운영했다는 김씨는 한국 최초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칼럼니스트 양성 전문 기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제자들은 2016년 먼저 ‘독도 커피’라는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제자들이 독도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역사 교육을 통해서다. 가게 곳곳에는 독도 관련 상품이 마련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대학생과 소외된 초중생을 연결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최했는데 제자들이 여기에 참여했다”며 “이때 제자들이 주최 측이 마련한 역사 교육을 받으며 독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그는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다케시마 관련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우리나라는 관련 상품이 얼마 없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며 “이후 제자들이 일상에서 독도를 알릴 방법을 고안하다가 ‘독도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러나 ‘독도 커피’ 판매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제자들이 독도 관련 상품을 만들어 독도 후원을 하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저 또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며 “처음엔 사무실을 얻어주는 등의 지원을 했는데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류해 젤라토 가게를 꾸리게 됐다”고 부연했다.그는 “커피만으로는 매출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에 ‘여름이 오니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결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대량 생산하는 일반 아이스크림은 맛을 차별화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젤라토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젤라토 가게를 준비하게 됐다”고 떠올렸다.(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맥주도 지역 맥주가 있듯이 젤라토 역시 그런 성격이 있다. 젤라토는 어떤 원재료를 어떻게,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가게 만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메뉴가 그날그날 달라지는 이유도 우리 가게 만의 특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들의 노력이 통한 걸까.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따금 김씨에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해온다고 한다. 김씨는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4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진정성이 느껴졌나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그는 단순 젤라토 가게인 줄만 알았던 손님들이 가게 내 독도 관련 상품을 보고 여러 질문을 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강치 인형 하나만으로도 독도에 대해 손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이를테면 “강치는 식육목 바다사자과의 해양포유류로 주로 한일 양국의 환동해권역에서 서식했다. 독도에 대규모로 군집해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독도 강치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세계 학계에는 일본바다사자, 일본강치로 등록돼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1994년 독도 강치의 멸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멸종의 원인은 일본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확인된 바 있다”며 “이런 이야기만 해도 손님들은 일상에서 일본과 독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영상=송혜수 기자)그는 “젤라토 위에 꽂아주는 장식지(‘40240’이 적혀 있다)에도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독도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예상외로 놀란 점은 많은 이들이 꽤 자세하게 독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김씨는 “전에 방문한 어떤 커플은 사이좋게 젤라토를 먹으면서 독도의 역사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초등생 아이와 함께 가게에 온 엄마는 가게에 있는 강치 인형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설명하더라”라고 전했다. (사진=송혜수 기자)끝으로 김씨는 카페 40240은 자신에게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라고 설명했다. 그의 다음 비전은 많은 이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청년들을 비롯해 경력 단절 주부, 그리고 은퇴한 노인까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젤라토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 기반을 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잘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프랜차이즈를 한다면 그분들 역시 다 같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손님들은 자연주의 철학으로 만든 젤라토를 드시고 즐겁고 건강하셨으면 한다. 또 후원하는 뜻있는 단체들이 잘 돼서 세상을 보다 이롭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1.19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한 젤라토 가게를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독도는 우리 땅”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땅,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독도. 이 당연한 사실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가장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 젤라토(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gelato) 가게가 있다. 이름은 ‘40240’. 독도의 우편번호를 그대로 가져와 가게 이름으로 지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일상에서 그렇게라도 독도를 떠올리길 바랐다. 이곳에선 독도 커피와 젤라토를 팔고 수익금 일부는 독도사랑운동본부에 후원한다고 한다.(사진=송혜수 기자)지난달 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후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16개 시·도 교총 등과 함께 공동으로 독도의 날을 선포했다.독도의 날을 맞이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앞서 소개한 젤라토 가게를 발견했다. 이곳 사장은 어쩌다 독도 관련 카페를 차리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주 메뉴가 젤라토인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지난 7일 서울 송파에 있는 가게를 직접 찾아가 봤다. 이날 오후 방문한 가게에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 ‘오늘의 젤라토’라며 당일 선정한 젤라토 메뉴를 적어놓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게 앞에 적힌 ‘오늘의 젤라토’.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를 사용한다고 강조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카페 곳곳에 깔끔하게 꾸며진 독도 관련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과 배지를 비롯해 책갈피, 스티커 등이 마련돼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여러 종류의 독도 관련 포스터에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Do you know 40240?’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인 김학재(61)씨는 편안한 미소로 가게를 소개했다.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막 4개월이 조금 넘었다는 김씨는 자신 있게 직접 만든 젤라토를 설명했다. 그날그날 메뉴가 바뀐다는 말에 오늘의 추천 메뉴를 묻자 김씨는 맛보기용 작은 스푼으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를 살짝 덜어 건넸다. 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젤라토는 총 7가지다. 여기에 독도 커피까지 더하니 2만8000원이 나왔다. 젤라토는 한 컵에 한 가지 맛만 담을 땐 5500원이며 한 컵에 두 가지 맛을 함께 담을 땐 6000원이다. 김씨는 주문과 동시에 젤라토를 먹기 좋게 담아 제공했다. 메뉴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꼭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먼저 맛본 젤라토는 김씨가 추천한 순두부 백태콩 젤라토다. 강릉 초당 순두부의 주재료인 백태콩이 들어간 이 젤라토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걸쭉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맛본 것은 유기농 우유 젤라토다. 먼저 맛본 순두부 백태콩과 비슷하게 고소한 맛이 났지만 식감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젤라토 위에 올라간 작은 아이스크림콘은 손님이 다른 맛도 즐길 수 있도록 살짝 덜어 올려주는 거라고 한다. (사진=송혜수 기자)세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쌀 젤라토다. 겉으로 보기엔 유기농 우유 젤라토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한입 먹어보니 쫀득하게 씹히는 밥알이 먹는 재미를 더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시나몬 향은 색다른 감칠맛을 줬다. 네 번째로 맛본 젤라토는 말차 맛이다. 텁텁하거나 떫지 않았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했다. 그 다음으로는 필라델피아 오레오 크림치즈 젤라토를 맛봤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차진 크림치즈에 바삭한 오레오가 더해지니 풍미가 일품이었다. 여섯 번째는 딸기 소르베 젤라토다. 소르베는 우유를 넣지 않은 것을 말한다. 딸기를 조려 얼린 듯 진하고 풍부한 딸기 향이 물씬 났다.마지막으로 백향과 소르베 젤라토를 맛봤다. 흔히 패션프루트라고 불리는 백향과는 백 가지 향을 가진 여신의 과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백향과의 오독오독 씹히는 씨와 새콤달콤한 과육이 소르베 젤라토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상큼하고 시원했다.사장은 제자 2명과 함께 젤라토 가게를 시작했다. 제자들은 젤라토 가게를 하기 전 ‘독도 커피’를 팔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사장 김씨는 제자 2명과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 이화여자대에서 푸드 앤 컬처 아카데미(Food & Culture Academy) 산학협력을 운영했다는 김씨는 한국 최초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칼럼니스트 양성 전문 기관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제자들은 2016년 먼저 ‘독도 커피’라는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제자들이 독도 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역사 교육을 통해서다. 가게 곳곳에는 독도 관련 상품이 마련돼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대학생과 소외된 초중생을 연결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최했는데 제자들이 여기에 참여했다”며 “이때 제자들이 주최 측이 마련한 역사 교육을 받으며 독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그는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다케시마 관련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우리나라는 관련 상품이 얼마 없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며 “이후 제자들이 일상에서 독도를 알릴 방법을 고안하다가 ‘독도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러나 ‘독도 커피’ 판매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제자들이 독도 관련 상품을 만들어 독도 후원을 하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저 또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며 “처음엔 사무실을 얻어주는 등의 지원을 했는데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류해 젤라토 가게를 꾸리게 됐다”고 부연했다.그는 “커피만으로는 매출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에 ‘여름이 오니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결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대량 생산하는 일반 아이스크림은 맛을 차별화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젤라토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젤라토 가게를 준비하게 됐다”고 떠올렸다.(사진=송혜수 기자)김씨는 “맥주도 지역 맥주가 있듯이 젤라토 역시 그런 성격이 있다. 젤라토는 어떤 원재료를 어떻게,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가게 만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메뉴가 그날그날 달라지는 이유도 우리 가게 만의 특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들의 노력이 통한 걸까.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따금 김씨에게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해온다고 한다. 김씨는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4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진정성이 느껴졌나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독도 강치 모양의 인형.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그는 단순 젤라토 가게인 줄만 알았던 손님들이 가게 내 독도 관련 상품을 보고 여러 질문을 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강치 인형 하나만으로도 독도에 대해 손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이를테면 “강치는 식육목 바다사자과의 해양포유류로 주로 한일 양국의 환동해권역에서 서식했다. 독도에 대규모로 군집해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독도 강치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세계 학계에는 일본바다사자, 일본강치로 등록돼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1994년 독도 강치의 멸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멸종의 원인은 일본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확인된 바 있다”며 “이런 이야기만 해도 손님들은 일상에서 일본과 독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영상=송혜수 기자)그는 “젤라토 위에 꽂아주는 장식지(‘40240’이 적혀 있다)에도 손님들이 한 번이라도 독도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예상외로 놀란 점은 많은 이들이 꽤 자세하게 독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김씨는 “전에 방문한 어떤 커플은 사이좋게 젤라토를 먹으면서 독도의 역사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초등생 아이와 함께 가게에 온 엄마는 가게에 있는 강치 인형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설명하더라”라고 전했다. (사진=송혜수 기자)끝으로 김씨는 카페 40240은 자신에게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라고 설명했다. 그의 다음 비전은 많은 이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청년들을 비롯해 경력 단절 주부, 그리고 은퇴한 노인까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젤라토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 기반을 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잘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프랜차이즈를 한다면 그분들 역시 다 같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손님들은 자연주의 철학으로 만든 젤라토를 드시고 즐겁고 건강하셨으면 한다. 또 후원하는 뜻있는 단체들이 잘 돼서 세상을 보다 이롭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5시간 동안 먹는 손님도”… 그 시절 고기뷔페, 지금은?[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고기 무한리필의 원조 ‘쎌빠’의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방문했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08년 7월 1일은 한 남성에게 있어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군 제대 후 10여 년 동안 외식 일을 배운 남성은 이날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그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뒤집어 부담 없는 가격에 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가게를 꾸몄다. 남성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고기를 주메뉴로 내세운 고기 뷔페는 당시 한식·양식으로 양분돼 있던 뷔페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같은 해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불경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기 뷔페의 성공을 도왔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가게 ‘쎌빠’의 모습. 전국 130여곳에 가맹점 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4곳 뿐이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게 경기 부천에 처음 문을 연 남성의 가게 ‘쎌빠’는 전국 130여 곳으로 퍼지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1인당 9900원을 내면 다양한 고기와 음식을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2010년에는 연매출 10억원을 기록하며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생 역전 성공신화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쎌빠를 벤치마킹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차츰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전국 곳곳에 자리했던 가맹점은 하나둘 사라져 현재 4곳만 남았다. 이를 두고 권태용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부회장은 무리한 시장경쟁이 위기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권 부회장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선두 브랜드를 따라잡기 위해선 가격을 낮추거나 사이드 음식을 더 주는 식으로 경쟁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무리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그는 “먼저 시장을 독점할 때는 원재료 물량도 많이 소화할 수 있었고, 대부분을 혼자 공급받으니 가격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라며 “비슷한 브랜드가 생기게 되면 재료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경쟁이 붙기 때문에 안정적이던 균형이 무너진다”라고 부연했다.이 밖에도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자료에 따르면 가맹본부의 무분별한 가맹점 계약과 준비되지 않은 프랜차이즈 창업, 영세성과 경영 능력의 부족 등이 시장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는 원인으로 꼽혔다.고기를 종류 별로 담았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다면 현재 남아 있는 쎌빠의 사정은 어떨까.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가 봤다. 부천에 위치한 본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날 점심에 방문한 가게에는 손님이 4팀 정도 있었다. 가격은 평일 기준 1인당 1만5900원이었다. 주말·공휴일에는 이보다 1000원을 더 받았고, 중·고등학생은 평일 1만4000원을 받았다.가격표 밑에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 인상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삼겹살 가격은 1만8851원(200g 기준)으로 1년 전보다 9.7% 올랐다.고기 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중년의 여성 사장은 자리에 불판과 물 등을 준비해주면서 “2시간의 이용 시간이 있지만, 만석일 때만 적용한다.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설명했다. 음식은 한눈에 봐도 수십 가지가 준비돼 있었다. 고기는 목살, 삼겹살, 갈매기살, 대패 불고기, 우삼겹, 소 토시살, 양념갈비, 매운 갈비, 소불고기 등이 있었다. 곁들여 먹는 쌈 채소의 종류도 다양했다. 먹기 좋게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신선했다.이 외에도 주먹밥, 김치볶음밥, 치킨, 떡볶이, 피자, 각종 튀김류 등이 있었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아이스크림, 푸딩 등도 마련돼 있었다. 다양한 가짓수에 놀라던 찰나 즉석 라면 조리기가 눈에 들어왔다. 부족한 게 없었다.(영상=송혜수 기자)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고기를 먼저 맛봤다. 양념이 안 된 고기는 그 자체로 고소한 맛이 났다. 씹을수록 육즙이 터져 나왔고 누린내도 없었다. 양념된 고기는 간이 세지 않아 물리지 않았다. 쌈 채소는 신선했다. 상추는 잎이 연하면서도 도톰했다. 배추 역시 무르지 않고 아삭했다. 살짝 느껴지는 단맛은 감칠맛을 더했다. 향긋한 부추무침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 고기와 잘 어울렸다. 이 밖에 다른 음식들은 사장의 손맛이 느껴졌다. 뷔페를 이용하다 보면 간혹 음식이 차갑게 식거나 딱딱하게 굳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방문한 가게의 음식들은 전부 온기가 가득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중년의 남성 사장은 가게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고 여성 사장은 가게 청결을 관리하며 빈 그릇을 치우는 등 손님들을 살피는 일을 한다. 다른 직원은 없었다. 이러한 부부에게 쎌빠는 ‘버팀목’이라고 했다.무역 관련 일을 하던 남성 사장은 2011년부터 쎌빠를 시작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던 그는 자신이 어느덧 11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그간의 순간을 회상했다.(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장사가 한참 잘되더니 서서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식자재 값이 많이 올라 제일 먼저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가게를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본사와도 연락을 안 하고 있다”며 “고기 등의 음식재료를 구하는 곳도 본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 주요 고기의 경우 기존 납품받던 업체 사장과 연이 닿아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고기와 곁들여 먹는 쌈 채소들. 깔끔하고 신선하다.(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최근에는 정육 관련 인터넷 플랫폼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직접 발품 팔아 이것저것 비교해보기도 한다”라며 “가게에서 취급하는 고기의 종류가 많아서 업체마다 비교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코로나19가 한참 유행하던 지난 2020년도를 짚었다. 사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없는 것도 물론 힘들었지만, 물류대란 등으로 가격이 폭등해 부르는 게 값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매달 500만~600만원씩 적자가 났다”라며 “정부 지원금으로 임대료를 내면서 가까스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암흑의 1년이 지나가 점차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즉석 라면 조리기도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요즘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주말에는 테이블이 만석이 될 정도”라며 “특정 국적의 사람들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정말 각 나라마다 방문하는 것 같다. 한 외국인 손님이 고향에 돌아가 입소문을 냈는지 어떤 날에는 또 다른 외국인 손님이 ‘맛있다는 소문 듣고 왔다’라고 말해주더라”라고 전했다.남성 사장은 외국인 손님 말고도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 역시 단체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는 “30명씩 단체로 방문하는 날에는 가게에 활기가 가득하다”며 웃어 보였다.후식으로 먹는 아이스크림. (영상=송혜수 기자)‘무한 리필이다 보니 가게를 다녀간 손님 중에 가장 많이 먹은 손님은 얼마나 먹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은 “300분(5시간) 동안 쉼없이 먹는 손님을 봤다”라며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면 그 자체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앞으로도 사장은 지금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쎌빠는 이제 우리 부부의 일상이고 삶의 전부”라며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참 많았는데 장사하는 동안 숱한 가게가 생겨나고 또 없어졌다. 우리 가게 역시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성실히 가게를 운영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1.05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고기 무한리필의 원조 ‘쎌빠’의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방문했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08년 7월 1일은 한 남성에게 있어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군 제대 후 10여 년 동안 외식 일을 배운 남성은 이날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그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뒤집어 부담 없는 가격에 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가게를 꾸몄다. 남성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고기를 주메뉴로 내세운 고기 뷔페는 당시 한식·양식으로 양분돼 있던 뷔페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같은 해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불경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기 뷔페의 성공을 도왔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가게 ‘쎌빠’의 모습. 전국 130여곳에 가맹점 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4곳 뿐이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게 경기 부천에 처음 문을 연 남성의 가게 ‘쎌빠’는 전국 130여 곳으로 퍼지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1인당 9900원을 내면 다양한 고기와 음식을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2010년에는 연매출 10억원을 기록하며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생 역전 성공신화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쎌빠를 벤치마킹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차츰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전국 곳곳에 자리했던 가맹점은 하나둘 사라져 현재 4곳만 남았다. 이를 두고 권태용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부회장은 무리한 시장경쟁이 위기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권 부회장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선두 브랜드를 따라잡기 위해선 가격을 낮추거나 사이드 음식을 더 주는 식으로 경쟁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무리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그는 “먼저 시장을 독점할 때는 원재료 물량도 많이 소화할 수 있었고, 대부분을 혼자 공급받으니 가격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라며 “비슷한 브랜드가 생기게 되면 재료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경쟁이 붙기 때문에 안정적이던 균형이 무너진다”라고 부연했다.이 밖에도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자료에 따르면 가맹본부의 무분별한 가맹점 계약과 준비되지 않은 프랜차이즈 창업, 영세성과 경영 능력의 부족 등이 시장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는 원인으로 꼽혔다.고기를 종류 별로 담았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다면 현재 남아 있는 쎌빠의 사정은 어떨까.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가 봤다. 부천에 위치한 본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날 점심에 방문한 가게에는 손님이 4팀 정도 있었다. 가격은 평일 기준 1인당 1만5900원이었다. 주말·공휴일에는 이보다 1000원을 더 받았고, 중·고등학생은 평일 1만4000원을 받았다.가격표 밑에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 인상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삼겹살 가격은 1만8851원(200g 기준)으로 1년 전보다 9.7% 올랐다.고기 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중년의 여성 사장은 자리에 불판과 물 등을 준비해주면서 “2시간의 이용 시간이 있지만, 만석일 때만 적용한다.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설명했다. 음식은 한눈에 봐도 수십 가지가 준비돼 있었다. 고기는 목살, 삼겹살, 갈매기살, 대패 불고기, 우삼겹, 소 토시살, 양념갈비, 매운 갈비, 소불고기 등이 있었다. 곁들여 먹는 쌈 채소의 종류도 다양했다. 먹기 좋게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신선했다.이 외에도 주먹밥, 김치볶음밥, 치킨, 떡볶이, 피자, 각종 튀김류 등이 있었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아이스크림, 푸딩 등도 마련돼 있었다. 다양한 가짓수에 놀라던 찰나 즉석 라면 조리기가 눈에 들어왔다. 부족한 게 없었다.(영상=송혜수 기자)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고기를 먼저 맛봤다. 양념이 안 된 고기는 그 자체로 고소한 맛이 났다. 씹을수록 육즙이 터져 나왔고 누린내도 없었다. 양념된 고기는 간이 세지 않아 물리지 않았다. 쌈 채소는 신선했다. 상추는 잎이 연하면서도 도톰했다. 배추 역시 무르지 않고 아삭했다. 살짝 느껴지는 단맛은 감칠맛을 더했다. 향긋한 부추무침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 고기와 잘 어울렸다. 이 밖에 다른 음식들은 사장의 손맛이 느껴졌다. 뷔페를 이용하다 보면 간혹 음식이 차갑게 식거나 딱딱하게 굳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방문한 가게의 음식들은 전부 온기가 가득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중년의 남성 사장은 가게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고 여성 사장은 가게 청결을 관리하며 빈 그릇을 치우는 등 손님들을 살피는 일을 한다. 다른 직원은 없었다. 이러한 부부에게 쎌빠는 ‘버팀목’이라고 했다.무역 관련 일을 하던 남성 사장은 2011년부터 쎌빠를 시작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던 그는 자신이 어느덧 11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그간의 순간을 회상했다.(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장사가 한참 잘되더니 서서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식자재 값이 많이 올라 제일 먼저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가게를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본사와도 연락을 안 하고 있다”며 “고기 등의 음식재료를 구하는 곳도 본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 주요 고기의 경우 기존 납품받던 업체 사장과 연이 닿아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고기와 곁들여 먹는 쌈 채소들. 깔끔하고 신선하다.(사진=송혜수 기자)사장은 “최근에는 정육 관련 인터넷 플랫폼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직접 발품 팔아 이것저것 비교해보기도 한다”라며 “가게에서 취급하는 고기의 종류가 많아서 업체마다 비교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코로나19가 한참 유행하던 지난 2020년도를 짚었다. 사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없는 것도 물론 힘들었지만, 물류대란 등으로 가격이 폭등해 부르는 게 값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매달 500만~600만원씩 적자가 났다”라며 “정부 지원금으로 임대료를 내면서 가까스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암흑의 1년이 지나가 점차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즉석 라면 조리기도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요즘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주말에는 테이블이 만석이 될 정도”라며 “특정 국적의 사람들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정말 각 나라마다 방문하는 것 같다. 한 외국인 손님이 고향에 돌아가 입소문을 냈는지 어떤 날에는 또 다른 외국인 손님이 ‘맛있다는 소문 듣고 왔다’라고 말해주더라”라고 전했다.남성 사장은 외국인 손님 말고도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 역시 단체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는 “30명씩 단체로 방문하는 날에는 가게에 활기가 가득하다”며 웃어 보였다.후식으로 먹는 아이스크림. (영상=송혜수 기자)‘무한 리필이다 보니 가게를 다녀간 손님 중에 가장 많이 먹은 손님은 얼마나 먹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은 “300분(5시간) 동안 쉼없이 먹는 손님을 봤다”라며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면 그 자체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앞으로도 사장은 지금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쎌빠는 이제 우리 부부의 일상이고 삶의 전부”라며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참 많았는데 장사하는 동안 숱한 가게가 생겨나고 또 없어졌다. 우리 가게 역시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성실히 가게를 운영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이게 아직도 있네? 민들레 영토, 들어는 보았는가[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4일 서울에 남아 있는 ‘민들레 영토’를 직접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어머니의 정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었다. 직원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유니폼을 입고 가게에 들어서는 모든 손님에게 웰컴 티를 건넸다. 그곳의 이름은 ‘민들레 영토’다. 줄여서 민토. 1994년 서울 신촌 연세대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종합문화공간이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민들레 영토를 생각해 냈다.서울 동대문구 인근 민들레 영토 외관. (사진=송혜수 기자)민들레 영토에서는 마시고 싶은 음료 등을 주문하고 자리를 이용하는 요즘 카페와 달리 3시간의 기본요금을 내면 다양한 음료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소정의 장소 사용료를 받고 음료 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인데, 이는 카페가 많이 없었던 당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민들레 영토를 찾는 이는 점차 늘었고 창업 10년 만에 일 평균 고객 1만 명을 기록했다.하지만 위기는 서서히 찾아왔다. 1997년 이화여자대 앞에 처음으로 들어선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일정 시간을 보장하는 민들레 영토만의 독자적인 강점이 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가게 입구에 비치된 토끼모양 장식 (사진=송혜수)이에 민들레 영토는 스터디룸을 만들거나 잡지를 비치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9년 민들레 영토의 모태가 된 신촌점이 문을 닫았고 서울에선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점만이 유일하게 남았다.기자는 지난 10월 8일 자 기사(‘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 편)의 댓글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해당 글에는 민들레 영토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가게 앞에는 이러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송혜수)요청대로 지난 14일 오후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민들레 영토 경희대점을 직접 찾았다. 가게는 주택을 개조한 듯 카페보다는 가정집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개 글이 보였다.글에는 ‘이곳은 도시 속 작은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의 음료와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독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세미나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 및 휴먼 이벤트 등을 통해 신(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열린 문화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내부로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 사장이 환하게 반겼다. 손님은 5팀 정도 있는 듯했다. 사장은 민들레 영토만의 이용 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1인당 이용금액은 5000원. 민토 간식과 음료가 포함된 금액이다.음료는 기본 음료(아메리카노와 각종 차, 탄산음료, 에이드 등)에 한해 무제한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민토 간식은 해쉬브라운 포테이토, 소시지구이, 토스트, 미니 와플, 컵라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단 컵라면은 500원의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2008년도 낙서. 사장이 직접 사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 그리고 미니 와플과 컵라면이다. 여기에 치즈 오븐 떡볶이(7000원)을 꼭 먹어보라는 한 방문객의 후기가 떠올라 해당 메뉴도 추가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곳곳에 손님들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2008년도 낙서였다. 내용에는 ‘입학 축하해 너의 꿈을 이루어봐 이루어진다!’ ‘너무 먼 당신 보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등이 담겼다.가게에 두고 간 손님의 편지. (사진=송혜수 기자)또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이 남긴 한 통의 편지였다. 가게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편지에는 ‘민들레 영토. 대학 신입생 때 대학로, 신촌 등 놀러 가는 데마다 보인 카페다. 이름도 예쁘고 외관도 귀여웠다. 그런데 다들 많이 가는 곳이라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민토가 안 보인다는 걸 느끼게 됐다.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가게 되지 않았다. 잊고 지내다 지난달 생일쯤 민토가 경희대점 하나만 남았다고 해 방문했다’라고 덧붙여 있었다.웰컴티. 일명 민토차라고 불린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제일 먼저 맛본 것은 웰컴 티였다. 일명 민토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사실 수국차다. 첫맛은 현미 보리차와 같이 고소했고 뒷맛은 깔끔했다. 특유의 천연 단맛과 박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입안에 향긋하게 남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곁들여 먹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마치 경양식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떡볶이 위에 올라간 치즈는 부드럽게 늘어났고 오동통한 떡은 쫄깃했다. 치즈와 떡을 함께 맛보니 묵직하고 다채로웠다. 맵지 않았고 적당히 입맛을 당기는 단맛이었다.치즈 오븐 떡볶이. 치즈가 부드럽게 늘어난다. (영상=송혜수 기자)미니 와플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의 준말) 그 자체였다. 약간의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있어 달콤했다. 이 밖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는 목을 축이기에 제격이었다. 특히 살구 에이드는 새콤달콤한 맛이 어릴 적 먹던 쥬시쿨과 비슷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중년의 여성 사장은 가게 문을 연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단골 대학생 손님들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10년 전에 일하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한가족이 됐다고 회상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는 “테이블마다 사연이 다 있다”라며 가게에서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같이 가게에 와서 공부하던 한 학생은 어느 날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해도 해도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여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사장은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엔 3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골똘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학생을 차마 내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가게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들. (사진=송혜수 기자)이어 “그 학생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가게를 나서면서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는데 편지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라며 “읽어보니 자신을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몰라줬고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자신도 그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말미엔 늦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사장은 당시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애잔했다며 비슷한 일화로 한 남성 손님이 가게 2층을 빌렸던 사연도 전했다. 그는 “어느 날 남성 손님이 찾아와 2층을 잠시 대관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 빌리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그렇게 남성 손님은 2층에서 ‘이별 이벤트’를 꾸몄다”라며 “연인을 데려와 그간 자신의 잘못들과 미안함을 고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사장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학생들이 꽃 선물을 하고 갔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많은 이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고 웃는 날이 더 많았다”라며 “그 덕에 지금까지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감사하다”라고 말했다.요즘 근황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으나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이 꾸준히 있어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방문하는 손님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주로 자주 오는 이들은 20대에서 30대가 많다고 했다.가게 2층 테라스. (사진=송혜수 기자)물론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게 아직도 있네”다. 사장은 “어떤 분들은 ‘이제 민들레 영토 말고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셔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럴 때마다 더욱 굳건히 민들레 영토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그는 “이제 민들레 영토는 나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며 “20년을 어떻게 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0.22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4일 서울에 남아 있는 ‘민들레 영토’를 직접 찾았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어머니의 정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었다. 직원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유니폼을 입고 가게에 들어서는 모든 손님에게 웰컴 티를 건넸다. 그곳의 이름은 ‘민들레 영토’다. 줄여서 민토. 1994년 서울 신촌 연세대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종합문화공간이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민들레 영토를 생각해 냈다.서울 동대문구 인근 민들레 영토 외관. (사진=송혜수 기자)민들레 영토에서는 마시고 싶은 음료 등을 주문하고 자리를 이용하는 요즘 카페와 달리 3시간의 기본요금을 내면 다양한 음료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소정의 장소 사용료를 받고 음료 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인데, 이는 카페가 많이 없었던 당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민들레 영토를 찾는 이는 점차 늘었고 창업 10년 만에 일 평균 고객 1만 명을 기록했다.하지만 위기는 서서히 찾아왔다. 1997년 이화여자대 앞에 처음으로 들어선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일정 시간을 보장하는 민들레 영토만의 독자적인 강점이 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가게 입구에 비치된 토끼모양 장식 (사진=송혜수)이에 민들레 영토는 스터디룸을 만들거나 잡지를 비치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9년 민들레 영토의 모태가 된 신촌점이 문을 닫았고 서울에선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점만이 유일하게 남았다.기자는 지난 10월 8일 자 기사(‘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 편)의 댓글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해당 글에는 민들레 영토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가게 앞에는 이러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송혜수)요청대로 지난 14일 오후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민들레 영토 경희대점을 직접 찾았다. 가게는 주택을 개조한 듯 카페보다는 가정집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개 글이 보였다.글에는 ‘이곳은 도시 속 작은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의 음료와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독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세미나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 및 휴먼 이벤트 등을 통해 신(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열린 문화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내부로 들어가니 중년의 남성 사장이 환하게 반겼다. 손님은 5팀 정도 있는 듯했다. 사장은 민들레 영토만의 이용 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설명에 따르면 1인당 이용금액은 5000원. 민토 간식과 음료가 포함된 금액이다.음료는 기본 음료(아메리카노와 각종 차, 탄산음료, 에이드 등)에 한해 무제한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민토 간식은 해쉬브라운 포테이토, 소시지구이, 토스트, 미니 와플, 컵라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단 컵라면은 500원의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2008년도 낙서. 사장이 직접 사진 찍어 간직하고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날 주문한 메뉴는 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 그리고 미니 와플과 컵라면이다. 여기에 치즈 오븐 떡볶이(7000원)을 꼭 먹어보라는 한 방문객의 후기가 떠올라 해당 메뉴도 추가했다. 2층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곳곳에 손님들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2008년도 낙서였다. 내용에는 ‘입학 축하해 너의 꿈을 이루어봐 이루어진다!’ ‘너무 먼 당신 보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등이 담겼다.가게에 두고 간 손님의 편지. (사진=송혜수 기자)또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이 남긴 한 통의 편지였다. 가게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편지에는 ‘민들레 영토. 대학 신입생 때 대학로, 신촌 등 놀러 가는 데마다 보인 카페다. 이름도 예쁘고 외관도 귀여웠다. 그런데 다들 많이 가는 곳이라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민토가 안 보인다는 걸 느끼게 됐다.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가게 되지 않았다. 잊고 지내다 지난달 생일쯤 민토가 경희대점 하나만 남았다고 해 방문했다’라고 덧붙여 있었다.웰컴티. 일명 민토차라고 불린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제일 먼저 맛본 것은 웰컴 티였다. 일명 민토차라고 불리는 이 차는 사실 수국차다. 첫맛은 현미 보리차와 같이 고소했고 뒷맛은 깔끔했다. 특유의 천연 단맛과 박하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입안에 향긋하게 남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곁들여 먹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마치 경양식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떡볶이 위에 올라간 치즈는 부드럽게 늘어났고 오동통한 떡은 쫄깃했다. 치즈와 떡을 함께 맛보니 묵직하고 다채로웠다. 맵지 않았고 적당히 입맛을 당기는 단맛이었다.치즈 오븐 떡볶이. 치즈가 부드럽게 늘어난다. (영상=송혜수 기자)미니 와플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의 준말) 그 자체였다. 약간의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있어 달콤했다. 이 밖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살구 에이드는 목을 축이기에 제격이었다. 특히 살구 에이드는 새콤달콤한 맛이 어릴 적 먹던 쥬시쿨과 비슷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중년의 여성 사장은 가게 문을 연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단골 대학생 손님들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10년 전에 일하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한가족이 됐다고 회상했다.(사진=송혜수 기자)그는 “테이블마다 사연이 다 있다”라며 가게에서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같이 가게에 와서 공부하던 한 학생은 어느 날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해도 해도 안 된다며 하소연하는 손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여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사장은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엔 3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골똘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학생을 차마 내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가게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들. (사진=송혜수 기자)이어 “그 학생은 늦은 밤이 돼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가게를 나서면서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는데 편지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라며 “읽어보니 자신을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었으나 그의 마음을 몰라줬고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자신도 그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말미엔 늦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적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사장은 당시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애잔했다며 비슷한 일화로 한 남성 손님이 가게 2층을 빌렸던 사연도 전했다. 그는 “어느 날 남성 손님이 찾아와 2층을 잠시 대관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 빌리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그렇게 남성 손님은 2층에서 ‘이별 이벤트’를 꾸몄다”라며 “연인을 데려와 그간 자신의 잘못들과 미안함을 고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사장은 어느 날 손님으로 온 학생들이 꽃 선물을 하고 갔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 밖에도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많은 이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고 웃는 날이 더 많았다”라며 “그 덕에 지금까지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감사하다”라고 말했다.요즘 근황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으나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이 꾸준히 있어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방문하는 손님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주로 자주 오는 이들은 20대에서 30대가 많다고 했다.가게 2층 테라스. (사진=송혜수 기자)물론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게 아직도 있네”다. 사장은 “어떤 분들은 ‘이제 민들레 영토 말고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셔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그럴 때마다 더욱 굳건히 민들레 영토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그는 “이제 민들레 영토는 나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며 “20년을 어떻게 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달 28일 경기도 부천에 남아 있는 캔모아 가게를 직접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그네 의자와 무한 리필 생크림 토스트. 200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아마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 ‘캔모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캔모아는 단순 카페를 넘어 많은 이들의 동네 아지트였고 만남의 장소였다. 특히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와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그리고 생과일이 잔뜩 들어간 눈꽃빙수·파르페 등은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캔모아는 1998년 1호점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500여 개의 가맹점을 내며 전성기를 맞았다.부천점 캔모아의 내부 모습.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가 여전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추억의 장소가 돼 버렸다. 캔모아 본사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9곳뿐이다. 그마저도 서울에는 한 곳도 남지 않았다.일각에서는 캔모아가 사라지게 된 이유를 두고 무한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캔모아 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디저트 업계가 커피를 주력 메뉴로 삼는 업종 위주로 재편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부천점 캔모아에서 주문한 빙수와 파르페. (사진=송혜수 기자)실제로 세계적인 시장조사 전문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2007년 6억 달러에서 2018년 약 43억 달러로 급증했다. 2007년까지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원두나 믹스커피를 구매해 커피를 소비하는 성향이 강했지만 2018년부터 커피 소비가 대부분 카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이후 캔모아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자 스파게티, 떡볶이 등 식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추가했지만 손님들을 잡지 못했다. 여기에는 점차 카페를 작업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수요가 늘어났던 점도 한몫했다.가게 테이블에 남아 있는 낙서.(사진=송혜수 기자)20년이 흐른 지금 캔모아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예전 분위기와 맛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방문했다.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게 내부는 공주풍으로 꾸며진 장식들과 꽃무늬 의자 등이 있었고 지난날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님들의 낙서도 곳곳 보였다.대부분 ‘우리 사랑 영원히’ ‘꿈 이루게 해주세요’ ‘멋쟁이들만 앉아’ ‘OO이 다녀감’ 등의 내용이었는데, 그중 ‘추억 찾아 사랑 찾아 부천까지 왔습니다’라는 낙서가 눈에 띄었다.(사진=송혜수 기자)가게에는 손님이 한 팀 있었다. 인기 좌석인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을 보며 기자도 서둘러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주문한 메뉴는 시리얼 빙수와 생과일 빙수, 그리고 생과일 파르페다. 가격은 각각 5500원. 저렴한 가격에 기자가 학창 시절 자주 먹던 메뉴였다.홀로 가게를 지키던 중년의 여성 사장은 캔모아의 시그니처인 생크림 토스트와 함께 주문한 메뉴를 정갈히 담아 제공했다. 각각의 디저트에는 한눈에 봐도 재료를 아끼지 않은 듯 생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듬뿍 올라가 있었다. 기본 제공 생크림 토스트. 곁들여 발라 먹는 생크림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영상=송혜수 기자)기본으로 나오는 생크림 토스트는 식빵 3장을 반으로 잘라 총 6조각으로 제공됐다. 따뜻하게 데워진 식빵은 바삭하고 쫄깃했다. 곁들여 발라먹는 생크림은 우유 향이 진하게 났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각종 시리얼이 들어간 시리얼 빙수는 생크림과 초코 아이스크림이 탑처럼 쌓여 있었고 화려한 초코 드리즐이 인상적이었다. 맛은 변함없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에 바삭한 시리얼은 고소함을 더했다.생과일 빙수는 상큼했다. 바나나와 복숭아, 파인애플, 배 등 각종 생과일이 먹기 좋은 크기로 한가득 들어가 있었다. 이 밖에 딸기 아이스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고 시리얼과 딸기 시럽 등으로 맛을 더했다. 생과일 파르페 역시 신선한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층층이 예쁘게 담긴 과일은 보는 재미까지 있었다. 복숭아와 배는 아삭아삭했고 파인애플과 멜론은 촉촉하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줄줄 흘렀다. 파르페 역시 딸기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다.시리얼 빙수. 화려한 초코드리즐이 인상적이다 (사진=송혜수 기자)2007년도에 캔모아 가맹점 350번째로 장사를 시작해 15년간 굳건히 가게를 지켜온 사장은 이곳이 자신의 인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가게를 시작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사장의 자녀는 어느새 서른이 됐고 초등학생이던 단골손님은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사장은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캔모아 유행 끝 무렵에 기차를 타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라며 “가게는 학생들의 아지트로 불리며 초반에 번창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서서히 잊혀졌다”라고 설명했다. 사장에 따르면 시험 기간 캔모아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공부방이었다. 그러나 중저가 카페가 생긴 뒤로 학생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생과일 빙수. 신선한 생과일이 한가득 들어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힘든 시기에도 사장은 자신의 가게였기에 버텨냈다. 그는 “돈을 떠나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가게’라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가게를 하면서 얻은 소중한 인연들 역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라고 말했다. 사장이 언급한 ‘소중한 인연’은 바로 가게의 주 손님이던 아이들이다. 사장은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며 “가게 곳곳에 그려진 낙서들 역시 초반에는 전부 지웠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가게에서 아이들과 자주 소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애정이 깊어졌다고 했다.생과일 파르페. 층층이 생과일이 예쁘게 담겨져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후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가게 곳곳에 낙서하도록 놔뒀다고 한다. 사장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의 추억을 간직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라며 “훌쩍 커버린 꼬마 손님들이 20대, 30대가 되어 자신의 낙서를 찾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이들 중에는 학창 시절 사귀던 이성과 와서 이름을 남겼다가 헤어지고 찾아와 이름을 지우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이 과거에 남긴 낙서를 찾아 그 밑에 새로 작성하기도 했다고. 가게에 남아 있는 낙서. ‘우리 사랑 영원히’ 라고 적혀 있지만 하트에는 금이 갔다. (사진=송혜수 기자)낙서 말고도 사장은 초등학생이던 한 단골손님이 결혼하고 다시 찾아와 ‘태어날 아이와 함께 다시 방문할 테니 그때까지 가게를 닫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캔모아는 단순 디저트 가게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던 것이다.이에 사장은 가격과 맛 모두 예전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점의 캔모아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만 리필 시 1000원을 더 받는다. 그 외의 가격은 변동하지 않았다는 게 사장 설명이다.그는 “솔직히 가격을 올리고 싶다”라며 “예전에는 열대과일이 저렴했다. 바나나 한 송이도 2000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라고 했다. 이어 “이제 와서 선뜻 가성비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을 차리기에는 메리트가 없는 게 분명하다”라고 밝혔다.(영상=송혜수 기자)하지만 사장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인건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그는 “부담이 없어야지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 들린다”라며 “요즘 가게들은 전부 1인 1메뉴를 고수하지만 우리 가게는 그렇지 않다. 돈 없는 학생들도 다 같이 빙수 한 그릇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게 바로 5000원의 행복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사장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장사를 이어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는 “다행히 주말에는 식구들이 도와줘서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라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지금처럼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추억을 지켜내겠다”라고 다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10.08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달 28일 경기도 부천에 남아 있는 캔모아 가게를 직접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그네 의자와 무한 리필 생크림 토스트. 200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아마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 ‘캔모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캔모아는 단순 카페를 넘어 많은 이들의 동네 아지트였고 만남의 장소였다. 특히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와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그리고 생과일이 잔뜩 들어간 눈꽃빙수·파르페 등은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캔모아는 1998년 1호점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500여 개의 가맹점을 내며 전성기를 맞았다.부천점 캔모아의 내부 모습.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가 여전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추억의 장소가 돼 버렸다. 캔모아 본사 홈페이지는 폐쇄됐고 현재 남아 있는 가게는 단 9곳뿐이다. 그마저도 서울에는 한 곳도 남지 않았다.일각에서는 캔모아가 사라지게 된 이유를 두고 무한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캔모아 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디저트 업계가 커피를 주력 메뉴로 삼는 업종 위주로 재편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부천점 캔모아에서 주문한 빙수와 파르페. (사진=송혜수 기자)실제로 세계적인 시장조사 전문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 시장 규모는 2007년 6억 달러에서 2018년 약 43억 달러로 급증했다. 2007년까지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원두나 믹스커피를 구매해 커피를 소비하는 성향이 강했지만 2018년부터 커피 소비가 대부분 카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이후 캔모아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자 스파게티, 떡볶이 등 식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추가했지만 손님들을 잡지 못했다. 여기에는 점차 카페를 작업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수요가 늘어났던 점도 한몫했다.가게 테이블에 남아 있는 낙서.(사진=송혜수 기자)20년이 흐른 지금 캔모아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예전 분위기와 맛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가게 한 곳을 직접 방문했다.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게 내부는 공주풍으로 꾸며진 장식들과 꽃무늬 의자 등이 있었고 지난날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님들의 낙서도 곳곳 보였다.대부분 ‘우리 사랑 영원히’ ‘꿈 이루게 해주세요’ ‘멋쟁이들만 앉아’ ‘OO이 다녀감’ 등의 내용이었는데, 그중 ‘추억 찾아 사랑 찾아 부천까지 왔습니다’라는 낙서가 눈에 띄었다.(사진=송혜수 기자)가게에는 손님이 한 팀 있었다. 인기 좌석인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을 보며 기자도 서둘러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주문한 메뉴는 시리얼 빙수와 생과일 빙수, 그리고 생과일 파르페다. 가격은 각각 5500원. 저렴한 가격에 기자가 학창 시절 자주 먹던 메뉴였다.홀로 가게를 지키던 중년의 여성 사장은 캔모아의 시그니처인 생크림 토스트와 함께 주문한 메뉴를 정갈히 담아 제공했다. 각각의 디저트에는 한눈에 봐도 재료를 아끼지 않은 듯 생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듬뿍 올라가 있었다. 기본 제공 생크림 토스트. 곁들여 발라 먹는 생크림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영상=송혜수 기자)기본으로 나오는 생크림 토스트는 식빵 3장을 반으로 잘라 총 6조각으로 제공됐다. 따뜻하게 데워진 식빵은 바삭하고 쫄깃했다. 곁들여 발라먹는 생크림은 우유 향이 진하게 났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각종 시리얼이 들어간 시리얼 빙수는 생크림과 초코 아이스크림이 탑처럼 쌓여 있었고 화려한 초코 드리즐이 인상적이었다. 맛은 변함없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에 바삭한 시리얼은 고소함을 더했다.생과일 빙수는 상큼했다. 바나나와 복숭아, 파인애플, 배 등 각종 생과일이 먹기 좋은 크기로 한가득 들어가 있었다. 이 밖에 딸기 아이스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고 시리얼과 딸기 시럽 등으로 맛을 더했다. 생과일 파르페 역시 신선한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층층이 예쁘게 담긴 과일은 보는 재미까지 있었다. 복숭아와 배는 아삭아삭했고 파인애플과 멜론은 촉촉하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줄줄 흘렀다. 파르페 역시 딸기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씩 올라가 있었다.시리얼 빙수. 화려한 초코드리즐이 인상적이다 (사진=송혜수 기자)2007년도에 캔모아 가맹점 350번째로 장사를 시작해 15년간 굳건히 가게를 지켜온 사장은 이곳이 자신의 인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가게를 시작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사장의 자녀는 어느새 서른이 됐고 초등학생이던 단골손님은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사장은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캔모아 유행 끝 무렵에 기차를 타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라며 “가게는 학생들의 아지트로 불리며 초반에 번창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서서히 잊혀졌다”라고 설명했다. 사장에 따르면 시험 기간 캔모아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공부방이었다. 그러나 중저가 카페가 생긴 뒤로 학생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생과일 빙수. 신선한 생과일이 한가득 들어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힘든 시기에도 사장은 자신의 가게였기에 버텨냈다. 그는 “돈을 떠나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가게’라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가게를 하면서 얻은 소중한 인연들 역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라고 말했다. 사장이 언급한 ‘소중한 인연’은 바로 가게의 주 손님이던 아이들이다. 사장은 “사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며 “가게 곳곳에 그려진 낙서들 역시 초반에는 전부 지웠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가게에서 아이들과 자주 소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애정이 깊어졌다고 했다.생과일 파르페. 층층이 생과일이 예쁘게 담겨져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후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가게 곳곳에 낙서하도록 놔뒀다고 한다. 사장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의 추억을 간직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라며 “훌쩍 커버린 꼬마 손님들이 20대, 30대가 되어 자신의 낙서를 찾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이들 중에는 학창 시절 사귀던 이성과 와서 이름을 남겼다가 헤어지고 찾아와 이름을 지우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이 과거에 남긴 낙서를 찾아 그 밑에 새로 작성하기도 했다고. 가게에 남아 있는 낙서. ‘우리 사랑 영원히’ 라고 적혀 있지만 하트에는 금이 갔다. (사진=송혜수 기자)낙서 말고도 사장은 초등학생이던 한 단골손님이 결혼하고 다시 찾아와 ‘태어날 아이와 함께 다시 방문할 테니 그때까지 가게를 닫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캔모아는 단순 디저트 가게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던 것이다.이에 사장은 가격과 맛 모두 예전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점의 캔모아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생크림 토스트만 리필 시 1000원을 더 받는다. 그 외의 가격은 변동하지 않았다는 게 사장 설명이다.그는 “솔직히 가격을 올리고 싶다”라며 “예전에는 열대과일이 저렴했다. 바나나 한 송이도 2000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라고 했다. 이어 “이제 와서 선뜻 가성비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을 차리기에는 메리트가 없는 게 분명하다”라고 밝혔다.(영상=송혜수 기자)하지만 사장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인건비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 그는 “부담이 없어야지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 들린다”라며 “요즘 가게들은 전부 1인 1메뉴를 고수하지만 우리 가게는 그렇지 않다. 돈 없는 학생들도 다 같이 빙수 한 그릇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게 바로 5000원의 행복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사장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장사를 이어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는 “다행히 주말에는 식구들이 도와줘서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라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지금처럼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추억을 지켜내겠다”라고 다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사라진 ‘치즈 등갈비’…그 많던 가게는 다 어디로 갔나[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7일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 치즈 등갈비 가게를 직접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15년 대한민국에는 치즈 붐이 일었다. 등갈비부터 주꾸미, 닭갈비 등에 치즈를 곁들인 각종 퓨전 음식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치즈를 활용한 여러 디저트와 음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번화가에서는 어김없이 치즈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풍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는 통계자료로도 증명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연도별 치즈 생산·소비 현황’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치즈 소비량은 13만 2593톤(t)을 기록했다. 2010년(8만 8608t)과 비교했을 때 49.64%나 급증한 수치다. 직전년도인 2014년(11만 7827t)과 비교해도 12.53% 증가했다.치즈 등갈비가 한창 유행했을 당시 가게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치즈는 특히 매운맛을 잡기에 제격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끌었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치즈 등갈비다. 매콤한 양념의 등갈비를 치즈에 감싸 먹는다는 발상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맛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했다. 특히 치즈 등갈비계의 ‘원조’로 불렸던 곳은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어 전국에 120여 개의 지점을 내기도 했다. 당시 해당 업체 관계자는 여러 매체를 통해 “매장 평균 매출이 1억 원에 이를 정도로 고수익 창업 아이템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지만 현재 치즈 등갈비는 추억의 음식이 됐다.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치즈 퓨전 음식 열풍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며 ‘가짜 치즈’에 대해 언급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가짜 치즈 논란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방송에서는 식물성유지인 팜유와 레닛카세인, 유화제 등의 식품첨가물을 섞어 만든 가짜 치즈가 자연 치즈와 맛이 비슷해 구별하기 어렵다고 짚었는데, 이를 악용해 몇몇 음식점에서 가격이 저렴한 가짜 치즈를 손님에게 알리지 않고 쓰는 경우가 있다고 고발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또 다른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후 소비자의 치즈를 고르는 시각은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내가 먹는 치즈가 행여 가짜일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온라인상에선 가짜 치즈와 자연 치즈의 구별법 등이 등장했다.치즈에 대한 소비자의 경계심, 여기엔 치즈 등갈비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줄여 이르는 말)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치즈 등갈비는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인식이 생겼다.결국 가게를 찾는 이가 점차 줄면서 전국 곳곳의 치즈 등갈비집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전문가는 여기에 치즈 등갈비 특성상 배달이 안 된 점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권태용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부회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배달 음식 수요는 높아졌는데, 치즈 등갈비는 치즈가 굳어 배달이 어렵다”며 “이 때문에 인기가 오래가지 못했다”라고 말했다.치즈 안에는 옥수수콘과 할라피뇨 등이 들어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재료에 대한 경계심과 비싼 가격, 배달 불가. 치즈 등갈비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이것이 전부일까? 한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던 치즈 등갈비의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 17일 서울에 남아 있는 치즈 등갈비 가게 두 곳을 직접 찾았다.먼저 들른 곳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가게다. 이 가게는 포털사이트에 ‘본점’이라고 명시된 곳으로, 치즈 등갈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러나 가게가 문을 여는 오후 2시에 맞춰 도착했음에도 문은 닫혀 있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또 다른 가게를 방문했다.명동에 있는 가게는 2층과 3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과거 유행을 실감할 수 있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가게 앞에 줄지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부터 한 방송에 출연했던 모습 등이 보였다.명동에 위치한 치즈 등갈비 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내부는 한산했다. 점심 때가 지난 탓도 있었지만,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이곳의 치즈 등갈비는 치즈의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다. 1인 기준 ‘보통’은 1만5000원, 치즈가 조금 많이 들어간 것은 1만7000원, 치즈가 아주 많이 들어간 것은 1만9000원이었다.이날 주문한 메뉴는 치즈가 아주 많이 들어간 등갈비 2인분이다.(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직원은 등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주면서 “오늘 1~2팀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점심보다 저녁에 손님이 더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가게 직원이 주문한 등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주고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뼈를 따라 잘린 등갈비의 조각 수는 총 9개였다. 맛은 예상했던 맛 그대로였다. 매콤한 소스를 입힌 고기는 뼈에서 부드럽게 발렸다. 따뜻하게 데워진 치즈를 고기에 돌돌 말아 한입에 맛보니 묵직한 식감이 느껴졌다.치즈에는 옥수수와 할라피뇨 등이 들어가 있어 느끼하지 않고 깔끔했다. 특히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는 치즈의 고소함을 더욱 끌어올렸다. 등갈비에 따뜻하게 데워진 치즈를 돌돌 말아 먹으면 된다. (영상=송혜수 기자)다만 먹는 과정이 다소 불편했다. 직원이 치즈를 말아 건네준 등갈비 이후로는 스스로 적당히 치즈를 감싸기가 어려웠다. 고기와 치즈를 같이 먹고 싶었지만 치즈만 쏙 빠져버리기도 했다.치즈가 빨리 굳어버린다는 점도 아쉬웠다. 치즈를 덜어 앞접시에 올려놓으니 금세 굳어 질겨졌고, 식감 역시 뚝뚝 끊어졌다. 고기가 탈 것 같아 팬에 불을 껐더니 이번엔 치즈가 팬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영상=송혜수 기자)직원은 치즈 특성상 어쩔 수 없다며 이 때문에 배달 역시 어렵다고 말했다. 간혹 포장을 주문하는 경우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치즈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직접 치즈를 녹여 먹기를 원하는 경우 따로 담아준다는 것이다.이곳의 사장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장사를 이어왔다고 했다. 사장은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가맹점 형태였지만 현재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한창 유행할 당시에는 소자본 창업으로 입소문이 나 전국에 수백 개의 가맹점이 생겼다”라며 “명동의 경우엔 2, 3층 홀이 언제나 가득 찼고 대기하는 인원도 늘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치즈 등갈비를 다 먹고 나면 팬에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는 것도 일품이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러나 이제는 전국에 자리 잡은 수백 개의 가맹점 대다수가 사라진 상태라고 했다. 여기에는 치즈 등갈비에 대한 사회적 동조 현상이 점차 줄어든 탓도 있었다. 사장은 명동점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손님이 있어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고발 방송의 가짜치즈 논란에 대해선 “실제로 체감되는 큰 타격은 없었다”며 “늘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가짜치즈 논란에 해당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사실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한참일 때였다”라며 “명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외국인 손님도 많이 찾아왔는데 코로나19 이후 확 줄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장이 생각해낸 방법은 족발 장사였다. 유행을 타지 않는 음식인 족발을 함께 판매하니 굳이 치즈 등갈비가 아니더라도 족발을 찾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가게 유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장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장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늘 똑같이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할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고 방문해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09.24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17일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 치즈 등갈비 가게를 직접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15년 대한민국에는 치즈 붐이 일었다. 등갈비부터 주꾸미, 닭갈비 등에 치즈를 곁들인 각종 퓨전 음식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치즈를 활용한 여러 디저트와 음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번화가에서는 어김없이 치즈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풍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는 통계자료로도 증명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연도별 치즈 생산·소비 현황’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치즈 소비량은 13만 2593톤(t)을 기록했다. 2010년(8만 8608t)과 비교했을 때 49.64%나 급증한 수치다. 직전년도인 2014년(11만 7827t)과 비교해도 12.53% 증가했다.치즈 등갈비가 한창 유행했을 당시 가게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치즈는 특히 매운맛을 잡기에 제격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끌었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치즈 등갈비다. 매콤한 양념의 등갈비를 치즈에 감싸 먹는다는 발상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맛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했다. 특히 치즈 등갈비계의 ‘원조’로 불렸던 곳은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어 전국에 120여 개의 지점을 내기도 했다. 당시 해당 업체 관계자는 여러 매체를 통해 “매장 평균 매출이 1억 원에 이를 정도로 고수익 창업 아이템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지만 현재 치즈 등갈비는 추억의 음식이 됐다.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치즈 퓨전 음식 열풍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며 ‘가짜 치즈’에 대해 언급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가짜 치즈 논란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방송에서는 식물성유지인 팜유와 레닛카세인, 유화제 등의 식품첨가물을 섞어 만든 가짜 치즈가 자연 치즈와 맛이 비슷해 구별하기 어렵다고 짚었는데, 이를 악용해 몇몇 음식점에서 가격이 저렴한 가짜 치즈를 손님에게 알리지 않고 쓰는 경우가 있다고 고발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또 다른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후 소비자의 치즈를 고르는 시각은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내가 먹는 치즈가 행여 가짜일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온라인상에선 가짜 치즈와 자연 치즈의 구별법 등이 등장했다.치즈에 대한 소비자의 경계심, 여기엔 치즈 등갈비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줄여 이르는 말)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치즈 등갈비는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인식이 생겼다.결국 가게를 찾는 이가 점차 줄면서 전국 곳곳의 치즈 등갈비집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전문가는 여기에 치즈 등갈비 특성상 배달이 안 된 점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권태용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부회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배달 음식 수요는 높아졌는데, 치즈 등갈비는 치즈가 굳어 배달이 어렵다”며 “이 때문에 인기가 오래가지 못했다”라고 말했다.치즈 안에는 옥수수콘과 할라피뇨 등이 들어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재료에 대한 경계심과 비싼 가격, 배달 불가. 치즈 등갈비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이것이 전부일까? 한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던 치즈 등갈비의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 17일 서울에 남아 있는 치즈 등갈비 가게 두 곳을 직접 찾았다.먼저 들른 곳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가게다. 이 가게는 포털사이트에 ‘본점’이라고 명시된 곳으로, 치즈 등갈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러나 가게가 문을 여는 오후 2시에 맞춰 도착했음에도 문은 닫혀 있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또 다른 가게를 방문했다.명동에 있는 가게는 2층과 3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과거 유행을 실감할 수 있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가게 앞에 줄지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부터 한 방송에 출연했던 모습 등이 보였다.명동에 위치한 치즈 등갈비 가게 내부 모습. (사진=송혜수 기자)내부는 한산했다. 점심 때가 지난 탓도 있었지만,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이곳의 치즈 등갈비는 치즈의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다. 1인 기준 ‘보통’은 1만5000원, 치즈가 조금 많이 들어간 것은 1만7000원, 치즈가 아주 많이 들어간 것은 1만9000원이었다.이날 주문한 메뉴는 치즈가 아주 많이 들어간 등갈비 2인분이다.(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직원은 등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주면서 “오늘 1~2팀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점심보다 저녁에 손님이 더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가게 직원이 주문한 등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주고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뼈를 따라 잘린 등갈비의 조각 수는 총 9개였다. 맛은 예상했던 맛 그대로였다. 매콤한 소스를 입힌 고기는 뼈에서 부드럽게 발렸다. 따뜻하게 데워진 치즈를 고기에 돌돌 말아 한입에 맛보니 묵직한 식감이 느껴졌다.치즈에는 옥수수와 할라피뇨 등이 들어가 있어 느끼하지 않고 깔끔했다. 특히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는 치즈의 고소함을 더욱 끌어올렸다. 등갈비에 따뜻하게 데워진 치즈를 돌돌 말아 먹으면 된다. (영상=송혜수 기자)다만 먹는 과정이 다소 불편했다. 직원이 치즈를 말아 건네준 등갈비 이후로는 스스로 적당히 치즈를 감싸기가 어려웠다. 고기와 치즈를 같이 먹고 싶었지만 치즈만 쏙 빠져버리기도 했다.치즈가 빨리 굳어버린다는 점도 아쉬웠다. 치즈를 덜어 앞접시에 올려놓으니 금세 굳어 질겨졌고, 식감 역시 뚝뚝 끊어졌다. 고기가 탈 것 같아 팬에 불을 껐더니 이번엔 치즈가 팬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영상=송혜수 기자)직원은 치즈 특성상 어쩔 수 없다며 이 때문에 배달 역시 어렵다고 말했다. 간혹 포장을 주문하는 경우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치즈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직접 치즈를 녹여 먹기를 원하는 경우 따로 담아준다는 것이다.이곳의 사장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장사를 이어왔다고 했다. 사장은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가맹점 형태였지만 현재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한창 유행할 당시에는 소자본 창업으로 입소문이 나 전국에 수백 개의 가맹점이 생겼다”라며 “명동의 경우엔 2, 3층 홀이 언제나 가득 찼고 대기하는 인원도 늘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치즈 등갈비를 다 먹고 나면 팬에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는 것도 일품이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러나 이제는 전국에 자리 잡은 수백 개의 가맹점 대다수가 사라진 상태라고 했다. 여기에는 치즈 등갈비에 대한 사회적 동조 현상이 점차 줄어든 탓도 있었다. 사장은 명동점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손님이 있어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고발 방송의 가짜치즈 논란에 대해선 “실제로 체감되는 큰 타격은 없었다”며 “늘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가짜치즈 논란에 해당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영상=송혜수 기자)사장은 “사실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한참일 때였다”라며 “명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외국인 손님도 많이 찾아왔는데 코로나19 이후 확 줄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장이 생각해낸 방법은 족발 장사였다. 유행을 타지 않는 음식인 족발을 함께 판매하니 굳이 치즈 등갈비가 아니더라도 족발을 찾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가게 유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장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장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늘 똑같이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할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고 방문해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기생충' 송강호 한마디에…다시 돌아온 '대왕 카스테라'[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인근의 한 카스테라 가게를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17년 한 집 건너 한 집엔 ‘대왕 카스테라’가 있었다. 유독 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 덕에 그 인기는 상당했다. 특히 ‘대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크기는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혜성처럼 나타나 전국 곳곳을 점령했던 대왕 카스테라. 하지만 그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음식 고발 프로그램에서 대왕 카스테라에 다량의 식용유가 들어간다고 지적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당시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과도한 양의 식용유가 들어가 일반 카스테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지방이 검출됐다며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놀란 일부 소비자들은 여러 대왕 카스테라 업체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영화 기생충의 스틸컷. 해당 장면에서 기택(송강호 분)은 대만 카스테라 가게를 차렸다가 망한 뒤 발렛을 했다고 밝혔다.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한 대왕 카스테라 업체 대표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업체 대표는 “케이크를 비롯해 빵 안에는 기름이 들어간다. 빵 스타일에 따라 버터를 넣거나 콩기름, 마가린을 넣기도 한다”라며 “대만 전통 방식은 식용유를 넣는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전문가들 역시 방송이 과장됐음을 지적했다. 문정훈 서울대 식품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논란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제빵에선 쇼트닝과 식용유를 오랜 기간 원래 써 왔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라며 “제빵 시 식용유를 넣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프레임으로 방송을 만들면 소비자들을 매우 오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최낙언 식품공학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버터는 콜레스테롤이 많은 동물성 포화지방이고 식용유는 콜레스테롤이 없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이다. 식품에는 특성이 있지 선악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어 “요즘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탄수화물 위주의 카스테라와 지방이 보충된 카스테라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식용유 덕분에 식감이 부드러워졌으면 좋은 것이고, 맛있다고 더 먹었으면 나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애초 논란을 자초한 고발 프로그램은 결국 전문가 의견이 포함된 후속 방송을 내보내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후 전국 곳곳에 자리 잡았던 가게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하나둘 문을 닫았다. 여기에는 카스테라 창업의 진입 장벽이 낮았다는 점과 짧은 시간 동안 난립한 프랜차이즈, 주재료인 달걀값의 폭등 역시 한몫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해당 장면에서 지하실에 사는 근세(박명훈 분)는 대만 왕수이 카스테라 가게를 차렸다가 망했다고 언급했다.그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대왕 카스테라는 뜻밖의 곳에서 언급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과 근세(박명훈 분)가 대왕 카스테라를 거론한 것이다. 영화에서 이들은 대왕 카스테라 가게를 열었다가 결국은 망했다고 토로했다.이 짧은 대사가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논란 이후 2022년 현재 대왕 카스테라 가게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인근의 가게를 직접 찾았다.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간 가게에선 입구부터 달콤한 향이 물씬 풍겼다. 마침 카스테라가 오븐에서 막 나오려던 참이었다. 계산대 뒤로 깔끔한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투명한 냉장고에 말끔히 정리해둔 달걀과 크림 등 재료들이 눈에 띄었다.메뉴판을 살펴보니 오리지널 카스테라부터 생크림, 녹차, 초콜릿, 치즈 등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었다. 메뉴판 밑으로는 ‘100% 우리쌀 카스테라, 100% 유기농밀 카스테라 신메뉴 출시’라고 적혀 있었다.이날 주문한 카스테라는 생크림 카스테라다. 가격은 1만2000원. 갓구운 카스테라에 우유크림을 가득 넣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크기를 재보니 가로 13㎝, 세로 19㎝, 높이는 7㎝였다.적당히 먹을 만큼 잘라 한입 먹어보니 포근하고 보드라운 식감이 제일 먼저 입안을 감쌌다. 빵 자체로도 퍽퍽한 느낌은 없었다. 우유크림은 꾸덕하기 보다 물기가 있어 빵을 더욱 촉촉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달지 않았고 논란이 일었을 당시 일각에서 제기된 ‘미끄덩’한 식감은 전혀 없었다.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맛보는 사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30분 동안 5팀이 다녀갔다. 손님들은 주로 포장을 했고, 전화 등을 통해 미리 주문을 넣은 이들도 있었다. 중년의 남성 사장은 쉴 새 없이 카스테라를 만들었다.갓 나온 오리지널 카스테라 (사진=송혜수 기자)이 가게는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부부는 5년간 한자리에서 카스테라를 만들어왔다고 했다. 사장 부부는 반짝 유행했던 시기부터 논란으로 힘들었던 때를 지나 현재에 오기까지 안 해본 시도가 없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손님들로부터 고발 방송에서 제기된 식용유 과다 첨가, 액상 달걀 사용, 화학첨가제 사용 등의 오해를 살까 봐 재료에 더욱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여성 사장은 반짝 유행했던 시기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업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최단기간 전국에 3500여 개의 가게가 생겼다”라며 “2016년 12월 남편의 퇴직금 1억 원으로 가게를 차리며 대왕 카스테라 업계에 발을 들이밀었다”라고 밝혔다.그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지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카스테라를 먹어본 사람들이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동네에 입소문을 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 덕에 부부의 가게는 오픈 첫날부터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사장은 “당시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있어 달걀값이 심할 땐 1만2000원 수준이었다. 달걀값이 비싸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일했다”라며 “가게 문을 연 지 3개월가량이 지났을 때 고발 방송이 나왔다”라고 회상했다.초코칩 카스테라의 모습. 초콜릿이 빼곡히 박혀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고발 방송은 위기의 시작이었다. 사장은 “방송은 일부 가게만 찾아가서 문제가 될 법한 부분을 과장 시켜 전달했다”라며 “식용유 5000㏄를 들이붓는 단 1초의 장면으로 많은 이들이 혐오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그는 “공업용 기름을 넣은 것도 아니고 모든 가게에서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닌데, 방송 이후 손님들 발길은 뚝 끊겼고 지나가는 몇몇은 가게 앞에서 손가락질을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죄지은 것도 아닌데 대왕 카스테라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라며 “가게를 한다는 사실 자체로 창피함을 느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했다.처음 장사를 시작할 땐 서울의 각 구마다 대왕 카스테라 가게를 만들어보자는 당찬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방송 이후 논란이 터지자 본사를 비난하는 기사가 이어졌다고 했다. 사장은 “그해 5월 본사가 먼저 문을 닫았다”라며 “그렇게 퇴직금을 날리고 월세 400만원, 관리비 40~50만원씩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여 가게를 유지하고자 투잡까지 뛰었다”고 말했다.(영상=송혜수 기자)월세가 저렴한 곳으로 가게를 옮기고 꾸역꾸역 장사를 이어가는 동안 제일 비참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고 했다. 사장은 “논란의 가게를 왜 아직도 하고 있느냐는 식의 말들이 견디기 힘들었다”라며 “한 손님은 카스테라 선물 포장을 해갔는데 도로 다시 가지고 오면서 ‘선물 받은 이가 이런 거 안 먹는다고 해서 가지고 왔다’라고 말했다. 그때 속으로 많이 울었다”라고 털어놨다.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장사가 안됐기에 오히려 시간이 많아진 부부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나섰다. 대만이 원조인 대왕 카스테라는 기존 레시피대로라면 촉촉함을 유지하기 위해 식용유가 500㎖에서 700㎖까지 들어갔지만, 그 점이 문제가 될까 식용유 양을 천천히 줄여봤다고 했다.그는 “식용유 양을 10, 20, 100, 200㎖ 줄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카스테라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라며 “설탕을 줄이고 무항생제 달걀을 넣어 만드는 등 건강한 카스테라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라고 밝혔다.이어 “철저한 시장 분석도 했는데 손님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카스테라를 분석해 맛을 연구했다. 최근에는 100% 쌀가루를 이용한 쌀 카스테라를 출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랬더니 몇몇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라며 “단골손님들은 카스테라를 먹고 뒤탈이 없고 담백해 맛있다고 칭찬했다”고 전했다.이후엔 영화 ‘기생충’에서 카스테라가 언급되면서 단골손님 외에도 찾아오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했다. 또 몇 차례 공중파 방송사에서 ‘추억의 맛’을 전하기 위해 연락이 왔었다며 2020년도에는 한 유튜버가 먹방(먹는 방송)을 하면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고 말했다. 전국에 택배 주문이 이어졌고 덕분에 코로나19가 터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지나고 느낀 점은 대왕 카스테라 업계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이유에는 고발 방송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들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라며 “남들이 한다고 유행처럼 무작정 뛰어든 결과인 것”이라고 말했다.사장은 “고발 방송이 없었어도 3500여 개의 가게가 지금까지 성황리에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론은 본사도, 업주도, 소비자들도 모두가 피해자”라며 “내 가게이니 실패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실패를 경험한 뒤 더욱 단단해졌다는 사장은 최근 들어 가게로 분점을 내달라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정중히 거절의사를 전했다는 사장은 앞으로도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한자리에서 맛있는 카스테라를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09.09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지난 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인근의 한 카스테라 가게를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2017년 한 집 건너 한 집엔 ‘대왕 카스테라’가 있었다. 유독 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 덕에 그 인기는 상당했다. 특히 ‘대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크기는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혜성처럼 나타나 전국 곳곳을 점령했던 대왕 카스테라. 하지만 그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음식 고발 프로그램에서 대왕 카스테라에 다량의 식용유가 들어간다고 지적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당시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과도한 양의 식용유가 들어가 일반 카스테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지방이 검출됐다며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놀란 일부 소비자들은 여러 대왕 카스테라 업체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영화 기생충의 스틸컷. 해당 장면에서 기택(송강호 분)은 대만 카스테라 가게를 차렸다가 망한 뒤 발렛을 했다고 밝혔다.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한 대왕 카스테라 업체 대표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업체 대표는 “케이크를 비롯해 빵 안에는 기름이 들어간다. 빵 스타일에 따라 버터를 넣거나 콩기름, 마가린을 넣기도 한다”라며 “대만 전통 방식은 식용유를 넣는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전문가들 역시 방송이 과장됐음을 지적했다. 문정훈 서울대 식품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논란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제빵에선 쇼트닝과 식용유를 오랜 기간 원래 써 왔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라며 “제빵 시 식용유를 넣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프레임으로 방송을 만들면 소비자들을 매우 오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최낙언 식품공학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버터는 콜레스테롤이 많은 동물성 포화지방이고 식용유는 콜레스테롤이 없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이다. 식품에는 특성이 있지 선악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어 “요즘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탄수화물 위주의 카스테라와 지방이 보충된 카스테라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식용유 덕분에 식감이 부드러워졌으면 좋은 것이고, 맛있다고 더 먹었으면 나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애초 논란을 자초한 고발 프로그램은 결국 전문가 의견이 포함된 후속 방송을 내보내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후 전국 곳곳에 자리 잡았던 가게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하나둘 문을 닫았다. 여기에는 카스테라 창업의 진입 장벽이 낮았다는 점과 짧은 시간 동안 난립한 프랜차이즈, 주재료인 달걀값의 폭등 역시 한몫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해당 장면에서 지하실에 사는 근세(박명훈 분)는 대만 왕수이 카스테라 가게를 차렸다가 망했다고 언급했다.그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대왕 카스테라는 뜻밖의 곳에서 언급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과 근세(박명훈 분)가 대왕 카스테라를 거론한 것이다. 영화에서 이들은 대왕 카스테라 가게를 열었다가 결국은 망했다고 토로했다.이 짧은 대사가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논란 이후 2022년 현재 대왕 카스테라 가게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 근황을 알아보러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인근의 가게를 직접 찾았다.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간 가게에선 입구부터 달콤한 향이 물씬 풍겼다. 마침 카스테라가 오븐에서 막 나오려던 참이었다. 계산대 뒤로 깔끔한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투명한 냉장고에 말끔히 정리해둔 달걀과 크림 등 재료들이 눈에 띄었다.메뉴판을 살펴보니 오리지널 카스테라부터 생크림, 녹차, 초콜릿, 치즈 등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었다. 메뉴판 밑으로는 ‘100% 우리쌀 카스테라, 100% 유기농밀 카스테라 신메뉴 출시’라고 적혀 있었다.이날 주문한 카스테라는 생크림 카스테라다. 가격은 1만2000원. 갓구운 카스테라에 우유크림을 가득 넣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크기를 재보니 가로 13㎝, 세로 19㎝, 높이는 7㎝였다.적당히 먹을 만큼 잘라 한입 먹어보니 포근하고 보드라운 식감이 제일 먼저 입안을 감쌌다. 빵 자체로도 퍽퍽한 느낌은 없었다. 우유크림은 꾸덕하기 보다 물기가 있어 빵을 더욱 촉촉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달지 않았고 논란이 일었을 당시 일각에서 제기된 ‘미끄덩’한 식감은 전혀 없었다.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맛보는 사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30분 동안 5팀이 다녀갔다. 손님들은 주로 포장을 했고, 전화 등을 통해 미리 주문을 넣은 이들도 있었다. 중년의 남성 사장은 쉴 새 없이 카스테라를 만들었다.갓 나온 오리지널 카스테라 (사진=송혜수 기자)이 가게는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부부는 5년간 한자리에서 카스테라를 만들어왔다고 했다. 사장 부부는 반짝 유행했던 시기부터 논란으로 힘들었던 때를 지나 현재에 오기까지 안 해본 시도가 없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손님들로부터 고발 방송에서 제기된 식용유 과다 첨가, 액상 달걀 사용, 화학첨가제 사용 등의 오해를 살까 봐 재료에 더욱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여성 사장은 반짝 유행했던 시기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업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최단기간 전국에 3500여 개의 가게가 생겼다”라며 “2016년 12월 남편의 퇴직금 1억 원으로 가게를 차리며 대왕 카스테라 업계에 발을 들이밀었다”라고 밝혔다.그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지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카스테라를 먹어본 사람들이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동네에 입소문을 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 덕에 부부의 가게는 오픈 첫날부터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사장은 “당시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있어 달걀값이 심할 땐 1만2000원 수준이었다. 달걀값이 비싸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일했다”라며 “가게 문을 연 지 3개월가량이 지났을 때 고발 방송이 나왔다”라고 회상했다.초코칩 카스테라의 모습. 초콜릿이 빼곡히 박혀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고발 방송은 위기의 시작이었다. 사장은 “방송은 일부 가게만 찾아가서 문제가 될 법한 부분을 과장 시켜 전달했다”라며 “식용유 5000㏄를 들이붓는 단 1초의 장면으로 많은 이들이 혐오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그는 “공업용 기름을 넣은 것도 아니고 모든 가게에서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닌데, 방송 이후 손님들 발길은 뚝 끊겼고 지나가는 몇몇은 가게 앞에서 손가락질을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죄지은 것도 아닌데 대왕 카스테라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라며 “가게를 한다는 사실 자체로 창피함을 느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했다.처음 장사를 시작할 땐 서울의 각 구마다 대왕 카스테라 가게를 만들어보자는 당찬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방송 이후 논란이 터지자 본사를 비난하는 기사가 이어졌다고 했다. 사장은 “그해 5월 본사가 먼저 문을 닫았다”라며 “그렇게 퇴직금을 날리고 월세 400만원, 관리비 40~50만원씩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여 가게를 유지하고자 투잡까지 뛰었다”고 말했다.(영상=송혜수 기자)월세가 저렴한 곳으로 가게를 옮기고 꾸역꾸역 장사를 이어가는 동안 제일 비참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고 했다. 사장은 “논란의 가게를 왜 아직도 하고 있느냐는 식의 말들이 견디기 힘들었다”라며 “한 손님은 카스테라 선물 포장을 해갔는데 도로 다시 가지고 오면서 ‘선물 받은 이가 이런 거 안 먹는다고 해서 가지고 왔다’라고 말했다. 그때 속으로 많이 울었다”라고 털어놨다.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장사가 안됐기에 오히려 시간이 많아진 부부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나섰다. 대만이 원조인 대왕 카스테라는 기존 레시피대로라면 촉촉함을 유지하기 위해 식용유가 500㎖에서 700㎖까지 들어갔지만, 그 점이 문제가 될까 식용유 양을 천천히 줄여봤다고 했다.그는 “식용유 양을 10, 20, 100, 200㎖ 줄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카스테라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라며 “설탕을 줄이고 무항생제 달걀을 넣어 만드는 등 건강한 카스테라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라고 밝혔다.이어 “철저한 시장 분석도 했는데 손님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카스테라를 분석해 맛을 연구했다. 최근에는 100% 쌀가루를 이용한 쌀 카스테라를 출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랬더니 몇몇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라며 “단골손님들은 카스테라를 먹고 뒤탈이 없고 담백해 맛있다고 칭찬했다”고 전했다.이후엔 영화 ‘기생충’에서 카스테라가 언급되면서 단골손님 외에도 찾아오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났다고 했다. 또 몇 차례 공중파 방송사에서 ‘추억의 맛’을 전하기 위해 연락이 왔었다며 2020년도에는 한 유튜버가 먹방(먹는 방송)을 하면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고 말했다. 전국에 택배 주문이 이어졌고 덕분에 코로나19가 터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지나고 느낀 점은 대왕 카스테라 업계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이유에는 고발 방송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들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라며 “남들이 한다고 유행처럼 무작정 뛰어든 결과인 것”이라고 말했다.사장은 “고발 방송이 없었어도 3500여 개의 가게가 지금까지 성황리에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론은 본사도, 업주도, 소비자들도 모두가 피해자”라며 “내 가게이니 실패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실패를 경험한 뒤 더욱 단단해졌다는 사장은 최근 들어 가게로 분점을 내달라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정중히 거절의사를 전했다는 사장은 앞으로도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한자리에서 맛있는 카스테라를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 ‘후루룩 짭짭’ 맛좋은 국수… 여기에 담긴 한 남자의 사연 [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국숫집을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김씨! 밥은 먹었는가?”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국숫집 앞에는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여름철 별미인 시원한 열무국수를 먹으러 동네에서 소문난 국숫집을 찾은 것이다.2007년에 문을 연 이 가게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익금 전액이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과 청소년들의 장학금, 그리고 어린이들의 꿈을 위해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게 곳곳에는 ‘내가 먹은 국수 한 그릇, 장학생의 후원자가 됩니다’ ‘여러분이 산 참기름 한 병, 어르신 일자리가 늘어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가게 내부는 깔끔하고 정갈하다. 오픈된 주방인 점과 ‘무한리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다고 국수가 비싼 것은 절대 아니다. 잔치국수는 6000원, 비빔국수와 열무국수는 6500원, 만두는 4000원이다. 이마저도 사실 물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에서야 올린 가격이다. 큰 대접에 한가득 담아주면서도 부족하면 무한 리필을 해준다. 그야말로 ‘만원의 행복’인 셈이다. 이날 주문한 국수는 총 세 그릇.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열무국수를 시켰다. 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는 만두도 추가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둘러보니 깔끔하고 정갈한 내부와 오픈 주방인 점이 눈에 띄었다. 잔치국수 위에는 애호박과 양파, 김가루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먼저 맛본 잔치국수는 진하게 우려진 따뜻한 멸치육수가 속을 훈훈하게 데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간을 맞춘 삼삼한 국물을 먹고 있자니 찬밥을 말아 겉절이 김치를 올려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함께 들어간 재료는 애호박과 양파, 김 가루 등이었다. 재료가 전부 아낌없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맛보니 탱글탱글한 면발이 호로록 들어왔다. 면은 퍼지지 않아 먹는 내내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비빔국수 양념에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사진=송혜수 기자)두 번째로는 비빔국수를 먹었다. 양념을 버무릴 때 나는 찰진 소리가 제일 먼저 귀를 간질였다. 면이 서로 엉겨 붙지 않아 양념이 골고루 묻어났다. 맛은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했다. 고소한 참기름 향도 은은하게 퍼졌다. 고명으로 올라간 시원한 무와 오이는 자칫 텁텁할 뻔한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었다.시원한 열무 국수의 모습. 열무가 한가득 올라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세 번째로는 열무국수를 맛봤다.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이 침샘을 자극했다. 국수 위에 산처럼 쌓아 올린 열무는 아삭하고 상큼했다. 열무 줄기를 씹으니 시원한 열무김치 국물이 쭉 들어와 목구멍을 적셨다. 열무와 함께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먹어보니 찰기 가득한 면발이 입안을 찰싹 때렸다. 함께 주문한 고기만두를 곁들여 먹으니 감칠맛이 배가 됐다.만두는 8개에 4000원이다. 만두피는 쫀득하고 속은 따뜻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찜기로 푹 쪄낸 만두는 고기와 김치만두 각 4알씩 총 8알이 나왔다. 크기는 한입 크기로 적당했다. 따뜻한 만두는 간장에 찍어 먹거나 김치에 싸 먹어도 좋지만, 국수와 함께 먹을 때 그 빛을 발했다. 고기만두는 비빔국수와 열무국수에 잘 어울렸고, 김치만두는 잔치국수와 궁합이 잘 맞았다.봉지만두를 제외한 모든 메뉴가 만원을 넘지 않는다. 오른쪽 사진은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기부 메시지 (사진=송혜수 기자)가격이 싸다고 재료가 부실하거나 음식 맛이 형편없는 게 아니었다. 김동운(74) 대표는 애초 가게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역사회를 돕기 위한 밑천을 마련하고자 15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는 김 대표는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제한 수익 100%를 기부했다고 한다.그가 처음 지역사회를 돕고자 마음먹었던 계기는 1997년 어느 날 방화동에서 독거노인의 시신이 보름 만에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 대표는 ‘방화동이 개발되면서 곳곳에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쓸쓸히 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때부터 그는 노인을 위한 일을 하나둘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작한 일은 다니던 교회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역 내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건강식’ 전달 봉사였다. 이후에는 노인에게 활기를 찾아주고자 사비와 후원금을 모아 2002년 노인연합회를 만들고, 2006년 전문 교육을 받아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노인대학을 세웠다.김 대표의 도움으로 당시 노인들은 어린이도서관 등에서 이야기보따리 강사를 하거나 지역 순찰대인 북치는 실버순찰대,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 등으로 일하게 됐다. 국숫집은 이 시기에 문을 열었다. 동네 사람들은 배불리 국수를 먹고 그 수익금으로는 노인과 학생을 돕는다는 목적이었다.(영상=송혜수 기자)김 대표는 “장사가 잘될 때는 한 달에 180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다”라며 “그 돈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축제도 열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영우장학회도 세웠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3호점까지 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국숫집은 현재 1호점만 남아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졌다”라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이후엔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 인건비 챙기기도 빠듯해 수익 기부 활동이 잠정 중단됐다”라고 밝혔다.잔치국수는 김치와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럼에도 김 대표는 힘닿는 데까지 계속 국숫집의 문을 활짝 열어두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최근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수원 세 모녀와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극단적 선택 뉴스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나온다”라며 “배고파서 죽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의 무관심에서 죽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이어 “복지는 마음의 빵을 주는 것과 같다”라며 “먹는 빵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면서 다시 일어날 희망과 힘을 길러주는 게 제일 필요한 것 같다”라고 했다.김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힘닿는 데까지 국수집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 때문에 김 대표는 계속 국숫집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국숫집을 방문하는 이들이 음식을 배불리 먹고 주변에 따뜻한 관심을 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김 대표는 “노인이 춤추고 청소년과 장애인이 신나고 어린이가 꿈꾸며 행복해지는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08.27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국숫집을 찾았다. (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김씨! 밥은 먹었는가?”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국숫집 앞에는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여름철 별미인 시원한 열무국수를 먹으러 동네에서 소문난 국숫집을 찾은 것이다.2007년에 문을 연 이 가게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익금 전액이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과 청소년들의 장학금, 그리고 어린이들의 꿈을 위해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게 곳곳에는 ‘내가 먹은 국수 한 그릇, 장학생의 후원자가 됩니다’ ‘여러분이 산 참기름 한 병, 어르신 일자리가 늘어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가게 내부는 깔끔하고 정갈하다. 오픈된 주방인 점과 ‘무한리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렇다고 국수가 비싼 것은 절대 아니다. 잔치국수는 6000원, 비빔국수와 열무국수는 6500원, 만두는 4000원이다. 이마저도 사실 물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에서야 올린 가격이다. 큰 대접에 한가득 담아주면서도 부족하면 무한 리필을 해준다. 그야말로 ‘만원의 행복’인 셈이다. 이날 주문한 국수는 총 세 그릇.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열무국수를 시켰다. 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는 만두도 추가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둘러보니 깔끔하고 정갈한 내부와 오픈 주방인 점이 눈에 띄었다. 잔치국수 위에는 애호박과 양파, 김가루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먼저 맛본 잔치국수는 진하게 우려진 따뜻한 멸치육수가 속을 훈훈하게 데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간을 맞춘 삼삼한 국물을 먹고 있자니 찬밥을 말아 겉절이 김치를 올려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함께 들어간 재료는 애호박과 양파, 김 가루 등이었다. 재료가 전부 아낌없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맛보니 탱글탱글한 면발이 호로록 들어왔다. 면은 퍼지지 않아 먹는 내내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비빔국수 양념에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사진=송혜수 기자)두 번째로는 비빔국수를 먹었다. 양념을 버무릴 때 나는 찰진 소리가 제일 먼저 귀를 간질였다. 면이 서로 엉겨 붙지 않아 양념이 골고루 묻어났다. 맛은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했다. 고소한 참기름 향도 은은하게 퍼졌다. 고명으로 올라간 시원한 무와 오이는 자칫 텁텁할 뻔한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었다.시원한 열무 국수의 모습. 열무가 한가득 올라가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세 번째로는 열무국수를 맛봤다.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이 침샘을 자극했다. 국수 위에 산처럼 쌓아 올린 열무는 아삭하고 상큼했다. 열무 줄기를 씹으니 시원한 열무김치 국물이 쭉 들어와 목구멍을 적셨다. 열무와 함께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먹어보니 찰기 가득한 면발이 입안을 찰싹 때렸다. 함께 주문한 고기만두를 곁들여 먹으니 감칠맛이 배가 됐다.만두는 8개에 4000원이다. 만두피는 쫀득하고 속은 따뜻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찜기로 푹 쪄낸 만두는 고기와 김치만두 각 4알씩 총 8알이 나왔다. 크기는 한입 크기로 적당했다. 따뜻한 만두는 간장에 찍어 먹거나 김치에 싸 먹어도 좋지만, 국수와 함께 먹을 때 그 빛을 발했다. 고기만두는 비빔국수와 열무국수에 잘 어울렸고, 김치만두는 잔치국수와 궁합이 잘 맞았다.봉지만두를 제외한 모든 메뉴가 만원을 넘지 않는다. 오른쪽 사진은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기부 메시지 (사진=송혜수 기자)가격이 싸다고 재료가 부실하거나 음식 맛이 형편없는 게 아니었다. 김동운(74) 대표는 애초 가게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역사회를 돕기 위한 밑천을 마련하고자 15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는 김 대표는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제한 수익 100%를 기부했다고 한다.그가 처음 지역사회를 돕고자 마음먹었던 계기는 1997년 어느 날 방화동에서 독거노인의 시신이 보름 만에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 대표는 ‘방화동이 개발되면서 곳곳에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쓸쓸히 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상=송혜수 기자)이때부터 그는 노인을 위한 일을 하나둘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작한 일은 다니던 교회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역 내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건강식’ 전달 봉사였다. 이후에는 노인에게 활기를 찾아주고자 사비와 후원금을 모아 2002년 노인연합회를 만들고, 2006년 전문 교육을 받아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노인대학을 세웠다.김 대표의 도움으로 당시 노인들은 어린이도서관 등에서 이야기보따리 강사를 하거나 지역 순찰대인 북치는 실버순찰대,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 등으로 일하게 됐다. 국숫집은 이 시기에 문을 열었다. 동네 사람들은 배불리 국수를 먹고 그 수익금으로는 노인과 학생을 돕는다는 목적이었다.(영상=송혜수 기자)김 대표는 “장사가 잘될 때는 한 달에 180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다”라며 “그 돈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축제도 열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영우장학회도 세웠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3호점까지 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국숫집은 현재 1호점만 남아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졌다”라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이후엔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 인건비 챙기기도 빠듯해 수익 기부 활동이 잠정 중단됐다”라고 밝혔다.잔치국수는 김치와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럼에도 김 대표는 힘닿는 데까지 계속 국숫집의 문을 활짝 열어두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최근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수원 세 모녀와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극단적 선택 뉴스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나온다”라며 “배고파서 죽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의 무관심에서 죽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이어 “복지는 마음의 빵을 주는 것과 같다”라며 “먹는 빵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면서 다시 일어날 희망과 힘을 길러주는 게 제일 필요한 것 같다”라고 했다.김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힘닿는 데까지 국수집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이 때문에 김 대표는 계속 국숫집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국숫집을 방문하는 이들이 음식을 배불리 먹고 주변에 따뜻한 관심을 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김 대표는 “노인이 춤추고 청소년과 장애인이 신나고 어린이가 꿈꾸며 행복해지는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 이영자가 반한 통닭집…정용진·김연아도 단골이라고?[쩝쩝박사]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말복(末伏)을 맞아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근 통닭집에 방문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지금 오셨어요? 2시간 넘게 기다리셔야 하는데…”말복(末伏)이었던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근 통닭집 앞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의 마지막인 이날 몸보신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것이다. 방송인 이영자가 MBC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한방통닭집을 소개한 바 있다. (사진=MBC)이곳은 평소 ‘이영자 소화제’로도 유명한 곳이다. 방송인 이영자는 MBC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체하면 생각난다며 바로 이 한방통닭집을 소개한 바 있다. 방송 이후 ‘이영자 맛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 통닭집은 사실 오래전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피겨퀸’ 김연아 등 수많은 유명인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왔다.가게 앞 장작불에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통닭의 모습 (영상=송혜수 기자)말복 당일 오픈런에 실패한 기자는 다음 날 다시 통닭집을 찾았다. 영업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는데, 가게 주변은 이미 열기로 가득했다. 가게 한쪽에서 장작불에 닭이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이날 주문한 통닭은 총 두 마리. 그간 명성이 자자했던 한방통닭과 양념구이를 시켰다. 가격은 2마리에 4만원 정도였다. 가게 내부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테이블이 몇 없었고, 홀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가 미안해 포장을 선택했다. 집에 도착해 가져온 음식을 살펴보니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기름기가 쫙 빠진 한방통닭의 모습.(사진=송혜수 기자)먼저 맛본 것은 한방통닭이었다. 손으로 통닭을 잡고 쭈욱 찢어보니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 찰밥이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찰밥 속에는 인삼, 대추, 통마늘 등이 고루 들어가 있었고 한약재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한입 먼저 먹어보니 찹쌀의 쫀득함이 제일 먼저 혀를 감쌌다. 찰밥은 씹으면 씹을수록 담백함과 고소함이 배가 됐다. 푹 익힌 통마늘을 찰밥 위에 으깨어 비벼 먹으니 감칠맛이 더해졌다.통닭 안에는 육즙을 가득 머금은 찰밥이 가득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기름기가 쫙 빠진 한방통닭은 첫맛과 끝맛 모두 깔끔했다. 보통 튀겨낸 고기를 먹고 나면 금방 물려 입가심으로 늘 탄산음료가 필요했는데, 이곳의 통닭은 바짝 구워내어 질리지 않고 담백했다. 신기한 점은 가슴살과 같이 퍽퍽한 부위가 결대로 찢어지면서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는 점이다. 통닭에는 달큼한 양념소스와 겨자소스, 그리고 소금이 제공된다. 기호에 따라 찍어 먹으면 되는데 겨자소스가 새로웠다. 달콤하면서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알싸함이 중독성 있었다.양념구이 통닭.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달콤한 소스가 아닌 고추장으로 맛을 냈다. (사진=송혜수 기자)두 번째로는 양념구이를 맛봤다. 양념구이를 주문할 당시엔 어느 치킨집에나 있는 달콤한 소스로 버무린 양념통닭이겠거니 싶었지만, 포장 용기의 덮개를 여는 순간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매콤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소스만 따로 먹어보니 캡사이신을 넣은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닌 고추장을 베이스로 만든 듯한 깔끔한 매운맛이 느껴졌다. (영상=송혜수 기자)고기는 달착지근하면서 끝으로 갈수록 매콤함이 살아나는 맛이었다. 안쪽 살까지 양념이 고루 배어 있어 촉촉함이 일품이었다. 고기 위에 파 고명이 올라가 얼핏 보면 닭볶음탕 느낌도 났지만, 닭 껍질에서부터 느껴지는 쫀득한 식감은 어떤 닭요리에도 견줄 수 없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가게에 남긴 친필 사인. “10년 전부터 한방통닭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혀있다.(사진=송혜수 기자)2대째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임성우(43)씨는 이러한 맛의 비법으로 ‘신선한 재료’를 꼽았다.임씨는 “한방통닭의 핵심 재료인 닭과 장작은 부모님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한 업체에서 가져와 쓰고 있다”라며 “늘 꼼꼼하게 검수하고 최상의 재료들로 통닭을 만드는 것이 우리 가게의 철칙”이라고 말했다.특히 “통닭이 가장 맛있을 때는 구워진 직후”라며 “닭이 구워졌을 때 바로 손님께 나가는 게 원칙이기에 제때 손님께 제공되지 못한 통닭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폐기한다”라고 덧붙였다.20년째 한 업체에서 가져와 쓰고 있다는 장작들. 임씨는 맛의 비법이 신선한 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는 “솔직히 돈을 더 벌려면 미리 초벌을 해두고 더 많은 손님께 통닭을 팔아도 되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며 “고유한 맛을 내는 비법에는 닭 염지 과정, 장작불 조절 기술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구운 닭을 가장 맛있을 때 손님께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임씨는 “단순하지만 이것이 20년째 한 곳에서 통닭집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며 “닭 안에 들어가는 찹쌀, 마늘, 인삼, 대추를 딱 알맞은 양만 넣어 구워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정량에 따라 찰밥에 배는 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정량을 맞추지 않으면 닭을 구울 때 고기와 찰밥의 익는 속도가 서로 안 맞을 수 있다고 했다.‘피겨퀸’ 김연아가 가게에 다녀간 모습. 오른쪽에는 방송인 이영자와 유병재가 남긴 사인도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기본에 충실할 때 최고로 맛있는 통닭이 된다는 그의 신조는 실제로 손님들의 발걸음을 가게 앞으로 불러 모았다. 임씨에 따르면 이 가게의 하루 평균대기 시간은 주중 30분에서 1시간, 주말과 공휴일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다.하지만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장시간 가게 앞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이 준비되면 임씨가 일일이 손님께 전화를 걸어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손님들은 한남동 근처에서 각자의 볼일을 보다가 순서가 되면 다시 가게를 방문한다.가게 내부에 한가득 붙어 있는 유명인사들의 친필 사인.(영상=송혜수 기자)이러한 시스템을 적용한 이유에 대해선 ‘고객 편의’와 ‘고객 배려’를 들었다. 임씨는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동네 주민이기보다 멀리서 오신 분들이다. 한남동 오신 김에 동네 구경도 해보시라는 차원에서 힘들지만 일일이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끝으로 용산구 시립노인복지관에 10년째 통닭 기부를 하고 있다는 임씨는 동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장사를 하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닥치게 마련인데, 특히 코로나19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라며 “한남동에도 구석구석 좋은 가게들이 많으니 꼭 방문해보시라”고 권했다. *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송혜수 기자 2022.08.20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말복(末伏)을 맞아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근 통닭집에 방문했다.(사진=송혜수 기자)[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지금 오셨어요? 2시간 넘게 기다리셔야 하는데…”말복(末伏)이었던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근 통닭집 앞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의 마지막인 이날 몸보신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것이다. 방송인 이영자가 MBC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한방통닭집을 소개한 바 있다. (사진=MBC)이곳은 평소 ‘이영자 소화제’로도 유명한 곳이다. 방송인 이영자는 MBC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체하면 생각난다며 바로 이 한방통닭집을 소개한 바 있다. 방송 이후 ‘이영자 맛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 통닭집은 사실 오래전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피겨퀸’ 김연아 등 수많은 유명인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왔다.가게 앞 장작불에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통닭의 모습 (영상=송혜수 기자)말복 당일 오픈런에 실패한 기자는 다음 날 다시 통닭집을 찾았다. 영업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는데, 가게 주변은 이미 열기로 가득했다. 가게 한쪽에서 장작불에 닭이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이날 주문한 통닭은 총 두 마리. 그간 명성이 자자했던 한방통닭과 양념구이를 시켰다. 가격은 2마리에 4만원 정도였다. 가게 내부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테이블이 몇 없었고, 홀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가 미안해 포장을 선택했다. 집에 도착해 가져온 음식을 살펴보니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기름기가 쫙 빠진 한방통닭의 모습.(사진=송혜수 기자)먼저 맛본 것은 한방통닭이었다. 손으로 통닭을 잡고 쭈욱 찢어보니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 찰밥이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찰밥 속에는 인삼, 대추, 통마늘 등이 고루 들어가 있었고 한약재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한입 먼저 먹어보니 찹쌀의 쫀득함이 제일 먼저 혀를 감쌌다. 찰밥은 씹으면 씹을수록 담백함과 고소함이 배가 됐다. 푹 익힌 통마늘을 찰밥 위에 으깨어 비벼 먹으니 감칠맛이 더해졌다.통닭 안에는 육즙을 가득 머금은 찰밥이 가득 있다. (영상=송혜수 기자)기름기가 쫙 빠진 한방통닭은 첫맛과 끝맛 모두 깔끔했다. 보통 튀겨낸 고기를 먹고 나면 금방 물려 입가심으로 늘 탄산음료가 필요했는데, 이곳의 통닭은 바짝 구워내어 질리지 않고 담백했다. 신기한 점은 가슴살과 같이 퍽퍽한 부위가 결대로 찢어지면서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는 점이다. 통닭에는 달큼한 양념소스와 겨자소스, 그리고 소금이 제공된다. 기호에 따라 찍어 먹으면 되는데 겨자소스가 새로웠다. 달콤하면서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알싸함이 중독성 있었다.양념구이 통닭.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달콤한 소스가 아닌 고추장으로 맛을 냈다. (사진=송혜수 기자)두 번째로는 양념구이를 맛봤다. 양념구이를 주문할 당시엔 어느 치킨집에나 있는 달콤한 소스로 버무린 양념통닭이겠거니 싶었지만, 포장 용기의 덮개를 여는 순간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매콤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소스만 따로 먹어보니 캡사이신을 넣은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닌 고추장을 베이스로 만든 듯한 깔끔한 매운맛이 느껴졌다. (영상=송혜수 기자)고기는 달착지근하면서 끝으로 갈수록 매콤함이 살아나는 맛이었다. 안쪽 살까지 양념이 고루 배어 있어 촉촉함이 일품이었다. 고기 위에 파 고명이 올라가 얼핏 보면 닭볶음탕 느낌도 났지만, 닭 껍질에서부터 느껴지는 쫀득한 식감은 어떤 닭요리에도 견줄 수 없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가게에 남긴 친필 사인. “10년 전부터 한방통닭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혀있다.(사진=송혜수 기자)2대째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임성우(43)씨는 이러한 맛의 비법으로 ‘신선한 재료’를 꼽았다.임씨는 “한방통닭의 핵심 재료인 닭과 장작은 부모님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한 업체에서 가져와 쓰고 있다”라며 “늘 꼼꼼하게 검수하고 최상의 재료들로 통닭을 만드는 것이 우리 가게의 철칙”이라고 말했다.특히 “통닭이 가장 맛있을 때는 구워진 직후”라며 “닭이 구워졌을 때 바로 손님께 나가는 게 원칙이기에 제때 손님께 제공되지 못한 통닭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폐기한다”라고 덧붙였다.20년째 한 업체에서 가져와 쓰고 있다는 장작들. 임씨는 맛의 비법이 신선한 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사진=송혜수 기자)그는 “솔직히 돈을 더 벌려면 미리 초벌을 해두고 더 많은 손님께 통닭을 팔아도 되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며 “고유한 맛을 내는 비법에는 닭 염지 과정, 장작불 조절 기술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구운 닭을 가장 맛있을 때 손님께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임씨는 “단순하지만 이것이 20년째 한 곳에서 통닭집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며 “닭 안에 들어가는 찹쌀, 마늘, 인삼, 대추를 딱 알맞은 양만 넣어 구워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정량에 따라 찰밥에 배는 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정량을 맞추지 않으면 닭을 구울 때 고기와 찰밥의 익는 속도가 서로 안 맞을 수 있다고 했다.‘피겨퀸’ 김연아가 가게에 다녀간 모습. 오른쪽에는 방송인 이영자와 유병재가 남긴 사인도 있다. (사진=송혜수 기자)기본에 충실할 때 최고로 맛있는 통닭이 된다는 그의 신조는 실제로 손님들의 발걸음을 가게 앞으로 불러 모았다. 임씨에 따르면 이 가게의 하루 평균대기 시간은 주중 30분에서 1시간, 주말과 공휴일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다.하지만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장시간 가게 앞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이 준비되면 임씨가 일일이 손님께 전화를 걸어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손님들은 한남동 근처에서 각자의 볼일을 보다가 순서가 되면 다시 가게를 방문한다.가게 내부에 한가득 붙어 있는 유명인사들의 친필 사인.(영상=송혜수 기자)이러한 시스템을 적용한 이유에 대해선 ‘고객 편의’와 ‘고객 배려’를 들었다. 임씨는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동네 주민이기보다 멀리서 오신 분들이다. 한남동 오신 김에 동네 구경도 해보시라는 차원에서 힘들지만 일일이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끝으로 용산구 시립노인복지관에 10년째 통닭 기부를 하고 있다는 임씨는 동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장사를 하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닥치게 마련인데, 특히 코로나19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라며 “한남동에도 구석구석 좋은 가게들이 많으니 꼭 방문해보시라”고 권했다. *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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