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부

한광범

기자

그해 오늘

  • “이모”라 부르며 낮술도…폐지 줍던 여성은 이웃에 살해당했다 [그해오늘]
    아파트 이웃 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박씨.(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2022년 4월 23일.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이 부검을 통해 타살 정황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로 세 딸을 키우다 자녀들이 독립한 후 홀로 남게 된 60대 여성 A씨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A씨는 평소 폐지를 수집하면서 경제 활동을 이어갔으며, 자녀들은 명절 때마다 사위와 손주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오곤 했다. A씨는 아파트 내 마트 주인, 관리사무소 직원 등 동네 주민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그러던 중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4월 22일. A씨를 관리하던 사회복지사는 A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곧바로 A씨 자택에 출동한 경찰은 집 안에서 이미 사망한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60대 여성 A씨의 사망 당시 자택 내부 모습.(사진=E채널 캡처)키 155cm에 몸무게 40kg 정도로 왜소한 체격이었던 A씨는 발견 당시 손과 발 등 신체 일부가 묶여있는 상태였다. 얼굴은 박스테이프로 결박돼 있었는데, 이를 벗기자 입 안엔 구겨진 마스크가 발견됐다. A씨의 속옷 안에는 통장 8개가 들어있었고 A씨의 돈 190여 만원이 사라진 상태였다.경찰은 A씨가 시신을 발견한 당일이나 그 전날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을 요청했다. 국과수는 “타살 정황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냈다.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A씨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던 40대 남성 박모씨였다. A씨와 박씨는 친한 사이로, A씨는 박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해주는 등 박씨를 가장 먼저 도와주기도 했다.경찰이 CCTV를 분석한 결과, 사망 전 A씨는 박씨와 아파트 인근 공터에서 낮술을 마시는 등 일부 동선이 겹쳤다. 결정적인 증거는 박씨의 지문이었다. A씨 집에서 나온 쪽지문(일부만 남은 지문 자국)과 박씨의 지문을 대조한 결과 90% 이상 일치한 것이었다.수사에 박차를 가한 경찰은 A씨의 시신을 발견한 지 3일 만인 25일 오전 12시57분 경기도 부천의 한 모텔에서 박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박씨는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달아나 해당 모텔에 숨은 것으로 드러났다.60대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40대 박씨가 부천의 한 모텔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다.(사진=채널A 캡처)박씨는 영구 임대아파트 입주 권리자였던 어머니가 숨지면서 퇴거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 보험료 등으로 받은 1500만원은 유흥비로 이미 탕진한 뒤였다.결국 박씨는 평소 안면이 있던 A씨가 돈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폐지를 팔러 간 사이 집 안의 돈을 훔치려 했지만, A씨가 갑자기 귀가를 해 살인을 했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었다.2022년 9월 열린 1심에서 박씨는 징역 2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는 박씨를 평소 조카처럼 여겼고 박씨도 (피해자를) ‘이모’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냈다”며 “좋은 관계를 배신해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사건의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다만 재판부는 박씨가 범행 당시 모친을 여의고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였던 점, 처음부터 강도나 살인을 계획하지는 않았던 점 등을 참작했다. 박씨는 2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돼 현재 복역 중이다.
    권혜미 기자 2024.04.23
    아파트 이웃 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박씨.(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2022년 4월 23일.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이 부검을 통해 타살 정황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로 세 딸을 키우다 자녀들이 독립한 후 홀로 남게 된 60대 여성 A씨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A씨는 평소 폐지를 수집하면서 경제 활동을 이어갔으며, 자녀들은 명절 때마다 사위와 손주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오곤 했다. A씨는 아파트 내 마트 주인, 관리사무소 직원 등 동네 주민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그러던 중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4월 22일. A씨를 관리하던 사회복지사는 A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곧바로 A씨 자택에 출동한 경찰은 집 안에서 이미 사망한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60대 여성 A씨의 사망 당시 자택 내부 모습.(사진=E채널 캡처)키 155cm에 몸무게 40kg 정도로 왜소한 체격이었던 A씨는 발견 당시 손과 발 등 신체 일부가 묶여있는 상태였다. 얼굴은 박스테이프로 결박돼 있었는데, 이를 벗기자 입 안엔 구겨진 마스크가 발견됐다. A씨의 속옷 안에는 통장 8개가 들어있었고 A씨의 돈 190여 만원이 사라진 상태였다.경찰은 A씨가 시신을 발견한 당일이나 그 전날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을 요청했다. 국과수는 “타살 정황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냈다.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A씨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던 40대 남성 박모씨였다. A씨와 박씨는 친한 사이로, A씨는 박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해주는 등 박씨를 가장 먼저 도와주기도 했다.경찰이 CCTV를 분석한 결과, 사망 전 A씨는 박씨와 아파트 인근 공터에서 낮술을 마시는 등 일부 동선이 겹쳤다. 결정적인 증거는 박씨의 지문이었다. A씨 집에서 나온 쪽지문(일부만 남은 지문 자국)과 박씨의 지문을 대조한 결과 90% 이상 일치한 것이었다.수사에 박차를 가한 경찰은 A씨의 시신을 발견한 지 3일 만인 25일 오전 12시57분 경기도 부천의 한 모텔에서 박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박씨는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달아나 해당 모텔에 숨은 것으로 드러났다.60대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40대 박씨가 부천의 한 모텔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다.(사진=채널A 캡처)박씨는 영구 임대아파트 입주 권리자였던 어머니가 숨지면서 퇴거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 보험료 등으로 받은 1500만원은 유흥비로 이미 탕진한 뒤였다.결국 박씨는 평소 안면이 있던 A씨가 돈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폐지를 팔러 간 사이 집 안의 돈을 훔치려 했지만, A씨가 갑자기 귀가를 해 살인을 했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었다.2022년 9월 열린 1심에서 박씨는 징역 2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는 박씨를 평소 조카처럼 여겼고 박씨도 (피해자를) ‘이모’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냈다”며 “좋은 관계를 배신해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사건의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다만 재판부는 박씨가 범행 당시 모친을 여의고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였던 점, 처음부터 강도나 살인을 계획하지는 않았던 점 등을 참작했다. 박씨는 2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돼 현재 복역 중이다.
  • 8일 만에 끝난 '무기수의 귀휴'…"원망 말자 세상에"[그해 오늘]
    [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2015년 4월 22일 전주교도소에서 19년 동안 복역 중이던 무기수 홍승만이 4박 5일 귀휴를 나갔다가 잠적해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다.2015년 4월 21일 귀휴 뒤 잠적한 무기수 홍승만(47)의 모습이 담긴 부산 금정구 노포동버스종합터미널 CCTV(사진=뉴스1)2015년 4월 17일 오전 10시 강도살인죄로 복역하던 무기수 홍승만(47)씨는 어머님의 병세 악화로 4박 5일간의 귀휴를 얻어 교도소에서 나와 하남으로 향했다.당시 전주교도소는 홍씨가 무기수임에도 모범수였다는 이유로 교도관의 동행이나 감시 없이 영치금 전액인 250만 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그런데 홍씨가 교도소로 복귀하기로 한 21일 그는 오전 보고를 마지막으로 잠적했다.교정 당국은 홍씨가 고향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가 20일 친형과 함께 형의 집이 있는 서울 송파구로 이동해 하룻밤을 묵은 뒤 친형의 집을 혼자 나서는 것을 확인했다.경찰은 CCTV를 통해 21일 오전 7시 30분 홍씨는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이동한 뒤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간 것을 확인했지만, 홍씨가 계속해서 이동하는 탓에 검거가 쉽지 않았다. 홍승만 현상수배 전단(사진=뉴스1)결국 교정당국은 홍씨 잠적 이틀 후인 23일 ‘170㎝의 키에 70㎏의 체격으로, 안경을 착용 중’이라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하고 1000만 원의 현상금을 걸어 공개 수배를 내렸다.당초 전주교도소는 22일부터 역과 터미널 등에 수배전단을 붙여 공개 수배에 나섰으나,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감자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공개 수배 사실을 거부했다.이로 인해 경찰의 검문검색이 늦어져 대중교통을 이용해 활보하는 홍씨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경찰은 홍씨가 강원도와 부산을 거쳐 24일 울산에 잠입한 것을 확인했으나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29일 오전 경찰에 창녕군 한 사찰에 거주하는 A(79·여)씨의 사위 B(54)씨로부터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장모집에 머물다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이에 수색작업에 나선 경찰은 홍씨인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남긴 소지품과 메모지 3장을 발견했다. 메모지에는 ‘어머니, 형님 등 모두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내용과 애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C씨의 이름을 거론하며 ‘먼저 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그 누굴 원망하지도 말자, 세상에 사랑에 아등바등 구걸하지 말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글귀도 있었다.경찰은 홍씨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지자 지방청 광역수사대와 기동대, 보안수사대 등 500여 명을 투입해 현장 주변을 수색했다. 그 결과 근처 한 야산에서 숨진 홍씨를 발견했다.경찰은 “홍씨가 더는 도주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당시 홍씨의 잠적 이유가 홍씨의 여자친구인 C씨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들이 나왔다.C씨는 3년 전 종교단체를 통해 복역 중이던 홍씨를 소개받은 뒤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유지했다.홍씨는 전주교도소 안에서 C씨에 청혼했고, C씨는 이를 거절했다. 홍씨가 잠적하기 직전까지도 C씨에게 청혼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무기수였지만 모범수였던 홍씨가 C씨와의 결혼을 통해 가석방을 기대하다가 C씨가 끝내 거절하자 극단적인 마음을 품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그러나 홍씨가 숨지며 이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다. 1996년 20대에 불과했던 홍씨가 내연 관계에 있던 40대 여성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친 뒤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아 시작된 19년간의 복역 생활은 홍씨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채나연 기자 2024.04.22
    [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2015년 4월 22일 전주교도소에서 19년 동안 복역 중이던 무기수 홍승만이 4박 5일 귀휴를 나갔다가 잠적해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다.2015년 4월 21일 귀휴 뒤 잠적한 무기수 홍승만(47)의 모습이 담긴 부산 금정구 노포동버스종합터미널 CCTV(사진=뉴스1)2015년 4월 17일 오전 10시 강도살인죄로 복역하던 무기수 홍승만(47)씨는 어머님의 병세 악화로 4박 5일간의 귀휴를 얻어 교도소에서 나와 하남으로 향했다.당시 전주교도소는 홍씨가 무기수임에도 모범수였다는 이유로 교도관의 동행이나 감시 없이 영치금 전액인 250만 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그런데 홍씨가 교도소로 복귀하기로 한 21일 그는 오전 보고를 마지막으로 잠적했다.교정 당국은 홍씨가 고향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가 20일 친형과 함께 형의 집이 있는 서울 송파구로 이동해 하룻밤을 묵은 뒤 친형의 집을 혼자 나서는 것을 확인했다.경찰은 CCTV를 통해 21일 오전 7시 30분 홍씨는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이동한 뒤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간 것을 확인했지만, 홍씨가 계속해서 이동하는 탓에 검거가 쉽지 않았다. 홍승만 현상수배 전단(사진=뉴스1)결국 교정당국은 홍씨 잠적 이틀 후인 23일 ‘170㎝의 키에 70㎏의 체격으로, 안경을 착용 중’이라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하고 1000만 원의 현상금을 걸어 공개 수배를 내렸다.당초 전주교도소는 22일부터 역과 터미널 등에 수배전단을 붙여 공개 수배에 나섰으나,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감자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공개 수배 사실을 거부했다.이로 인해 경찰의 검문검색이 늦어져 대중교통을 이용해 활보하는 홍씨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경찰은 홍씨가 강원도와 부산을 거쳐 24일 울산에 잠입한 것을 확인했으나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29일 오전 경찰에 창녕군 한 사찰에 거주하는 A(79·여)씨의 사위 B(54)씨로부터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장모집에 머물다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이에 수색작업에 나선 경찰은 홍씨인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남긴 소지품과 메모지 3장을 발견했다. 메모지에는 ‘어머니, 형님 등 모두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내용과 애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C씨의 이름을 거론하며 ‘먼저 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그 누굴 원망하지도 말자, 세상에 사랑에 아등바등 구걸하지 말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글귀도 있었다.경찰은 홍씨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지자 지방청 광역수사대와 기동대, 보안수사대 등 500여 명을 투입해 현장 주변을 수색했다. 그 결과 근처 한 야산에서 숨진 홍씨를 발견했다.경찰은 “홍씨가 더는 도주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당시 홍씨의 잠적 이유가 홍씨의 여자친구인 C씨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들이 나왔다.C씨는 3년 전 종교단체를 통해 복역 중이던 홍씨를 소개받은 뒤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유지했다.홍씨는 전주교도소 안에서 C씨에 청혼했고, C씨는 이를 거절했다. 홍씨가 잠적하기 직전까지도 C씨에게 청혼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무기수였지만 모범수였던 홍씨가 C씨와의 결혼을 통해 가석방을 기대하다가 C씨가 끝내 거절하자 극단적인 마음을 품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그러나 홍씨가 숨지며 이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다. 1996년 20대에 불과했던 홍씨가 내연 관계에 있던 40대 여성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친 뒤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아 시작된 19년간의 복역 생활은 홍씨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 흉기로 母 찌르고 여친 집 간 아들…엄마는 용서했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지난해 4월 21일 저녁, 40대 남성 이 씨는 집에서 어머니와 다투다가 급기야 흉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격분해 어머니의 옆구리를 흉기로 찔렀고, 이 사고로 어머니는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게티이미지)이날 이 씨와 어머니는 ‘고사’를 지내는 것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 이 씨의 어머니는 이 씨와 대화하던 중 “고사를 지내겠다”고 말했고, 이에 이 씨는 “냄새가 나니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그러자 어머니는 “집에서 나가라”며 “너는 가족도 아니다”라고 소리쳤고 서로 물건을 던지는 등 다툼이 격해졌다.이 부분에서 이 씨는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고 한다.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그는 자신의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던 어머니에게 다가가 흉기로 옆구리를 찔렀다.이 씨는 범행 이후 119에 신고했지만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해 어머니를 방치했다.재판에서 이 씨는 살해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시했다.지난해 9월 2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모친과 다투다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존속살해미수)로 기소된 이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재판부는 “범행의 결과가 미수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반인륜적·반사회적이라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이어 “어머니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하고 있고 아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 이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초범인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원 기자 2024.04.21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지난해 4월 21일 저녁, 40대 남성 이 씨는 집에서 어머니와 다투다가 급기야 흉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격분해 어머니의 옆구리를 흉기로 찔렀고, 이 사고로 어머니는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게티이미지)이날 이 씨와 어머니는 ‘고사’를 지내는 것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 이 씨의 어머니는 이 씨와 대화하던 중 “고사를 지내겠다”고 말했고, 이에 이 씨는 “냄새가 나니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그러자 어머니는 “집에서 나가라”며 “너는 가족도 아니다”라고 소리쳤고 서로 물건을 던지는 등 다툼이 격해졌다.이 부분에서 이 씨는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고 한다.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그는 자신의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던 어머니에게 다가가 흉기로 옆구리를 찔렀다.이 씨는 범행 이후 119에 신고했지만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해 어머니를 방치했다.재판에서 이 씨는 살해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시했다.지난해 9월 2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모친과 다투다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존속살해미수)로 기소된 이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재판부는 “범행의 결과가 미수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반인륜적·반사회적이라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이어 “어머니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하고 있고 아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 이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초범인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 “93세 아버지가 성폭행...때려죽였다” 진실은 [그해 오늘]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50대 딸은 93세 아버지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다툼이 생겨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당초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2021년 4월 20일 항소심에 이르러 재판이 뒤집혔다.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이다. 이들 부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사진=게티 이미지)지난 2019년 5월 A(당시 93세)씨가 대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집 안은 각종 집기가 깨지고 부러진 채 어지럽혀진 상태였다.같은 시간대 함께 술을 마시며 집에 있었던 A씨의 딸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그는 집에 있던 물건들을 던지고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수사기관에선 대체로 혐의를 부인하지 않던 딸은, 1심 법정에서 돌연 ‘사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성폭력을 시도했다’고 주장을 펼쳤다.저항하는 과정에서의 정당방위였다는 것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숨겼다고도 주장했다.현장엔 숨진 아버지와 딸밖에 없었던 상황.딸의 진술을 놓고, 1심은 “피고인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다”면서도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진실일 가능성도 함부로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공소 제기 후 법정에 이르러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피고인이 진술한 전후 사정, 사건 당일 피해자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했고, 단순한 말다툼으로 아버지와 심한 몸싸움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범행인 만큼 피고인의 진술이 진실일 가능성도 있다는 취지였다.그러나 검찰의 항소로 사건을 다시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딸의 진술이 경찰과 검찰, 법정에서 계속 달라진 데다 존속상해치사로 무거운 벌을 받게 된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숨기려 했다는 주장, 또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경위 등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A씨의 명예를 위해 자신이 다 안고 가기로 마음먹었다던 딸이 처음 8개월간은 정당방위를 주장하지 않았고 A씨의 장례절차를 마친 뒤 엄마에게 ‘장례를 마치면 이사 간다. 세상에 저런 엄마는 없다’고 보낸 문자를 보면 딸은 이 사건 이전부터 가족들을 원망한 것으로 보이는 점도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봤다.딸의 진술과 실제 현장 상황들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근거로 제시됐다. 딸은 ‘아버지가 웃옷을 벗고 있었다’고 했지만 피해자 웃옷에서 상처 부위 혈흔이 발견됐다. 또 ‘치마가 벗겨진 상태였다’는 딸의 말과 달리 그의 치마에 적지 않은 핏자국이 발견된 점 등이 의심을 샀다.대전고법 제3형사부(정재오 부장판사)는 A씨의 딸인 B(52)씨의 존속상해치사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딸은 실형을 선고하고 구속 절차를 진행한 재판부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홍수현 기자 2024.04.20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50대 딸은 93세 아버지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다툼이 생겨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당초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2021년 4월 20일 항소심에 이르러 재판이 뒤집혔다.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이다. 이들 부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사진=게티 이미지)지난 2019년 5월 A(당시 93세)씨가 대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집 안은 각종 집기가 깨지고 부러진 채 어지럽혀진 상태였다.같은 시간대 함께 술을 마시며 집에 있었던 A씨의 딸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그는 집에 있던 물건들을 던지고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수사기관에선 대체로 혐의를 부인하지 않던 딸은, 1심 법정에서 돌연 ‘사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성폭력을 시도했다’고 주장을 펼쳤다.저항하는 과정에서의 정당방위였다는 것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숨겼다고도 주장했다.현장엔 숨진 아버지와 딸밖에 없었던 상황.딸의 진술을 놓고, 1심은 “피고인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다”면서도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진실일 가능성도 함부로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공소 제기 후 법정에 이르러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피고인이 진술한 전후 사정, 사건 당일 피해자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했고, 단순한 말다툼으로 아버지와 심한 몸싸움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범행인 만큼 피고인의 진술이 진실일 가능성도 있다는 취지였다.그러나 검찰의 항소로 사건을 다시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딸의 진술이 경찰과 검찰, 법정에서 계속 달라진 데다 존속상해치사로 무거운 벌을 받게 된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숨기려 했다는 주장, 또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경위 등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A씨의 명예를 위해 자신이 다 안고 가기로 마음먹었다던 딸이 처음 8개월간은 정당방위를 주장하지 않았고 A씨의 장례절차를 마친 뒤 엄마에게 ‘장례를 마치면 이사 간다. 세상에 저런 엄마는 없다’고 보낸 문자를 보면 딸은 이 사건 이전부터 가족들을 원망한 것으로 보이는 점도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봤다.딸의 진술과 실제 현장 상황들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근거로 제시됐다. 딸은 ‘아버지가 웃옷을 벗고 있었다’고 했지만 피해자 웃옷에서 상처 부위 혈흔이 발견됐다. 또 ‘치마가 벗겨진 상태였다’는 딸의 말과 달리 그의 치마에 적지 않은 핏자국이 발견된 점 등이 의심을 샀다.대전고법 제3형사부(정재오 부장판사)는 A씨의 딸인 B(52)씨의 존속상해치사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딸은 실형을 선고하고 구속 절차를 진행한 재판부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 “이승만 하야하라”…4.19혁명 공로자 처우는? [그해 오늘]
    4.19혁명 기록물 자료(사진=문화재청)[이데일리 김형일 기자]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해 4.19혁명으로 불리는 민주 항쟁을 일으켰다. 4.19혁명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3.15마산의거에 참여했던 김 열사는 실종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고, 전국적인 시위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당시 김 열사와 학생, 시민은 3월 15일 실시된 부정선거를 문제 삼았다. 자유당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함 바꿔치기 등으로 자행했고, 학생과 시민은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열사의 죽음에도 희생은 반복됐다.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이 당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에 몰려들었지만, 무력 진압으로 100여명의 사망자와 45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거와 대통령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은 다시 모여들었고, 서울 소재 대학교수 259명은 대통령 등이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결국 12년간의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방송을 통해 직접 하야의 뜻을 밝혔으며 다음날 대통령사임서도 국회에 제출했다. 5월 29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극비리에 미국 하와이로 떠났고, 1965년 7월 19일 현지 요양원에서 90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1989년 작고한 김 열사의 모친 권찬주 여사를 비롯해 가족과 친구는 4.19혁명 63년째인 작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특히 국가보훈처는 권 여사가 3.15의거 이후 김 열사 죽음을 은폐하려는 권력기관의 부당한 행위에 항거해 4.19혁명 확산에 기여했다고 봤다. 김 열사 시신을 발견해 인양한 어부 김경영 씨도 작년에서야 3.15의거 참여자로 인정받았다. 김 씨는 김 열사 시신을 배에 싣고 부두로 인양한 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3년 후인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김 열사 최루탄 제거 수술에 참여한 의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김 열사 시신 상태와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 외곽 시위 상황, 부상자 이송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3.15의거 진상규명에도 참여했다. 한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정된 4.19혁명 유공자는 작년 기준 1164명이다. 대구 2.28민주운동,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 참여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4·19혁명을 하루 앞둔 18일 유족이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형일 기자 2024.04.19
    4.19혁명 기록물 자료(사진=문화재청)[이데일리 김형일 기자]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항해 4.19혁명으로 불리는 민주 항쟁을 일으켰다. 4.19혁명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3.15마산의거에 참여했던 김 열사는 실종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고, 전국적인 시위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당시 김 열사와 학생, 시민은 3월 15일 실시된 부정선거를 문제 삼았다. 자유당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함 바꿔치기 등으로 자행했고, 학생과 시민은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열사의 죽음에도 희생은 반복됐다.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이 당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에 몰려들었지만, 무력 진압으로 100여명의 사망자와 45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거와 대통령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은 다시 모여들었고, 서울 소재 대학교수 259명은 대통령 등이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결국 12년간의 장기 집권은 막을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방송을 통해 직접 하야의 뜻을 밝혔으며 다음날 대통령사임서도 국회에 제출했다. 5월 29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극비리에 미국 하와이로 떠났고, 1965년 7월 19일 현지 요양원에서 90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1989년 작고한 김 열사의 모친 권찬주 여사를 비롯해 가족과 친구는 4.19혁명 63년째인 작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특히 국가보훈처는 권 여사가 3.15의거 이후 김 열사 죽음을 은폐하려는 권력기관의 부당한 행위에 항거해 4.19혁명 확산에 기여했다고 봤다. 김 열사 시신을 발견해 인양한 어부 김경영 씨도 작년에서야 3.15의거 참여자로 인정받았다. 김 씨는 김 열사 시신을 배에 싣고 부두로 인양한 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3년 후인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김 열사 최루탄 제거 수술에 참여한 의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김 열사 시신 상태와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 외곽 시위 상황, 부상자 이송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3.15의거 진상규명에도 참여했다. 한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정된 4.19혁명 유공자는 작년 기준 1164명이다. 대구 2.28민주운동,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의거 참여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4·19혁명을 하루 앞둔 18일 유족이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에베레스트 최악의 눈사태로 16명 사망…역대 최악의 인명사고[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4년 4월 18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6명이 사망했다. 눈사태는 이날 오전 6시 45분께 정상(8850m)까지 오르는 산행 중 가장 인기 있는 경로의 베이스캠프 바로 위쪽 ‘팝콘필드’로 불리는 해발 5800m 지점에서 일어났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 사고로 16명이 숨졌는데 희생자 모두 내달 초 기상 여건이 좋아져 등반객이 몰릴 성수기에 앞서 등반용 밧줄을 고치러 갔다던 셰르파로 알려졌다.사고 원인은 아이스폴 상부에 있는 ‘세락(serac)’ 붕괴 때문이었다. 세락은 빙하가 급경사를 내려올 때 갈라진 틈과 틈이 교차해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집채보다 크다. 산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세락을 통과하는 것이다.이번 사고는 지난 1996년 눈폭풍으로 8명이 숨진 이후 하루 동안에 발생한 인명피해로는 최악의 규모다. 사고 지역은 위험지역인 쿰부 얼음폭포로 가는 길목의 ‘팝콘필드’라 불리는 곳으로 에베레스트 등반객들의 단골 등반로에 있다.에베레스트 정상은 5월 15일부터 30일까지가 오르기 가장 좋은 시점이어서 산악인들이 4월부터 에베레스트를 찾아 고도 적응 훈련을 한다. 5월부터 두 달간 에베레스트 등정 허가를 받아둔 외국 6 334명이며 400명의 셰르파가 동반 등정을 할 예정이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에 의해 처음 고지가 밟힌 뒤 현재까지 3000명 이상이 정상에 올랐고, 약 250명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턱에서 희생됐다.
    김민정 기자 2024.04.18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2014년 4월 18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6명이 사망했다. 눈사태는 이날 오전 6시 45분께 정상(8850m)까지 오르는 산행 중 가장 인기 있는 경로의 베이스캠프 바로 위쪽 ‘팝콘필드’로 불리는 해발 5800m 지점에서 일어났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이 사고로 16명이 숨졌는데 희생자 모두 내달 초 기상 여건이 좋아져 등반객이 몰릴 성수기에 앞서 등반용 밧줄을 고치러 갔다던 셰르파로 알려졌다.사고 원인은 아이스폴 상부에 있는 ‘세락(serac)’ 붕괴 때문이었다. 세락은 빙하가 급경사를 내려올 때 갈라진 틈과 틈이 교차해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집채보다 크다. 산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세락을 통과하는 것이다.이번 사고는 지난 1996년 눈폭풍으로 8명이 숨진 이후 하루 동안에 발생한 인명피해로는 최악의 규모다. 사고 지역은 위험지역인 쿰부 얼음폭포로 가는 길목의 ‘팝콘필드’라 불리는 곳으로 에베레스트 등반객들의 단골 등반로에 있다.에베레스트 정상은 5월 15일부터 30일까지가 오르기 가장 좋은 시점이어서 산악인들이 4월부터 에베레스트를 찾아 고도 적응 훈련을 한다. 5월부터 두 달간 에베레스트 등정 허가를 받아둔 외국 6 334명이며 400명의 셰르파가 동반 등정을 할 예정이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에 의해 처음 고지가 밟힌 뒤 현재까지 3000명 이상이 정상에 올랐고, 약 250명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턱에서 희생됐다.
  • "내밀지도 않은 혀가 절단?"...친구 남친에 강제 키스한 女에 '일침' [그해 오늘]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혀는 입안에 있는 신체 부분으로 통상 내밀지 않으면 절단되기 어렵다”2015년 4월 17일, 대구지법 제3형사부(김형한 부장판사)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에게 강제로 키스한 20대 여성에 한 말이다.해당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박모(당시 23) 씨는 2013년 6월 서울 영등포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일행인 친구의 남자친구가 만취해 쓰러지자 부축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사건 당시 남성이 박 씨의 혀를 깨물었고, 박 씨는 혀 일부가 절단됐다.박 씨는 남성에게 키스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대구지법은 박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남성을 강제추행한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원심과 같은 벌금 300만 원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특히 대구지법은 “특히 물어뜯는 상해 행위는 치아를 사용해 이뤄지는 것임에도 내밀지도 않은 혀가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다는 여성 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한편, 상대 남성은 박 씨의 혀를 깨물어 일부가 절단되는 중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이 남성은 “강제추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넘어선 행동”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지혜 기자 2024.04.17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혀는 입안에 있는 신체 부분으로 통상 내밀지 않으면 절단되기 어렵다”2015년 4월 17일, 대구지법 제3형사부(김형한 부장판사)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에게 강제로 키스한 20대 여성에 한 말이다.해당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박모(당시 23) 씨는 2013년 6월 서울 영등포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일행인 친구의 남자친구가 만취해 쓰러지자 부축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사건 당시 남성이 박 씨의 혀를 깨물었고, 박 씨는 혀 일부가 절단됐다.박 씨는 남성에게 키스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대구지법은 박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남성을 강제추행한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원심과 같은 벌금 300만 원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특히 대구지법은 “특히 물어뜯는 상해 행위는 치아를 사용해 이뤄지는 것임에도 내밀지도 않은 혀가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다는 여성 측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한편, 상대 남성은 박 씨의 혀를 깨물어 일부가 절단되는 중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이 남성은 “강제추행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재판부는 “정당방위를 넘어선 행동”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거짓, 또 거짓말...불륜 발각만 수차례, 결국 총 든 남편 [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2013년 4월 16일. 천안의 한 도로에서 40대 남성 A씨가 공기총을 치켜들었다. 그는 30대 남성 B씨를 향해 머리와 등에 총을 쐈고, B씨는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숨졌다. A씨는 119에 스스로 신고를 하고 순순히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며 “B씨는 아내의 내연남”이라고 말했다.A씨가 경찰 조사를 받는 모습. (사진=MBN 방송 갈무리)A씨 가정의 비극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학원을 운영하던 A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며 아내 C씨와 자주 다퉜고, C씨는 수영장에서 만난 미혼 남성 B씨를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B씨와 C씨의 내연 관계는 오래지 않아 A씨에게 발각됐다.A씨는 수영장 앞으로 찾아가 B씨에 “불장난이면 여기서 끝내라”며 경고를 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이혼해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B씨는 C씨와 헤어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두 사람은 A씨 몰래 잦은 만남을 이어갔다.결국 A씨는 아내와 B씨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아내의 가족에게도 불륜 사실을 알렸다.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도 밟았다. 하지만 아내 C씨가 “다시는 B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빌자 어린 자녀가 눈에 밟혀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두 번의 용서에도 두 사람은 또 만났다. 2013년 1월 A씨는 또다시 아내가 B씨를 만난 사실을 알게 됐다. 분노에 휩싸인 A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봐줄 만큼 봐줬으면 그만 해야 될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 이번에도 A씨는 “정리했다”는 아내의 말을 믿었지만, 그 해 4월에 또 두 사람이 만난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또 빌었고, A씨는 그 약속을 믿었다.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인 4월 15일에는 A씨가 아내를 미행해 한 모텔에서 차를 주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노한 A씨는 아내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B씨에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전화를 피했고, A씨는 다음날인 4월 16일 새벽 아내의 휴대전화로 B씨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B씨가 받았다.B씨는 아내와 만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가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었다. A씨는 이미 두 사람의 반복된 기만에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 A씨는 B씨를 만나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만약 B씨가 거절하면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안에 보관하던 공기총을 꺼내 들었다.B씨는 A씨와 만나 순순히 각서를 써 줬다. 이에 A씨는 민형사상 책임을 B씨에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 줬다. 마지막으로 A씨는 B씨에 “내 아내를 만날 것이냐”고 물었는데, B씨는 이를 비꼬는 듯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답했다. 이 한 마디로 A씨는 살인을 결심했다.A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자신의 아내와 B씨의 계속된 불륜에 오랜 기간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고자 인내하고 노력했던 점을 아무리 감안 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지들은 물론 지인들, 학원 학부모들까지 A씨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간곡한 탄원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A씨가 이러한 극단적 범행을 저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며 “B씨가 각서를 주고받은 후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비꼬는 말투로 무시하자 A씨가 끝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2심에서 A씨는 징역 10년으로 감경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 아내를 만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줬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만남을 계속했고 사건 당일에도 A씨를 자극하는 언행을 계속했다”며 이는 특별 감경 요소가 된다고 봤다. A씨는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김혜선 기자 2024.04.16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2013년 4월 16일. 천안의 한 도로에서 40대 남성 A씨가 공기총을 치켜들었다. 그는 30대 남성 B씨를 향해 머리와 등에 총을 쐈고, B씨는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숨졌다. A씨는 119에 스스로 신고를 하고 순순히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며 “B씨는 아내의 내연남”이라고 말했다.A씨가 경찰 조사를 받는 모습. (사진=MBN 방송 갈무리)A씨 가정의 비극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학원을 운영하던 A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며 아내 C씨와 자주 다퉜고, C씨는 수영장에서 만난 미혼 남성 B씨를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B씨와 C씨의 내연 관계는 오래지 않아 A씨에게 발각됐다.A씨는 수영장 앞으로 찾아가 B씨에 “불장난이면 여기서 끝내라”며 경고를 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이혼해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B씨는 C씨와 헤어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두 사람은 A씨 몰래 잦은 만남을 이어갔다.결국 A씨는 아내와 B씨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아내의 가족에게도 불륜 사실을 알렸다.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도 밟았다. 하지만 아내 C씨가 “다시는 B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빌자 어린 자녀가 눈에 밟혀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두 번의 용서에도 두 사람은 또 만났다. 2013년 1월 A씨는 또다시 아내가 B씨를 만난 사실을 알게 됐다. 분노에 휩싸인 A씨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봐줄 만큼 봐줬으면 그만 해야 될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 이번에도 A씨는 “정리했다”는 아내의 말을 믿었지만, 그 해 4월에 또 두 사람이 만난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또 빌었고, A씨는 그 약속을 믿었다.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인 4월 15일에는 A씨가 아내를 미행해 한 모텔에서 차를 주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노한 A씨는 아내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B씨에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전화를 피했고, A씨는 다음날인 4월 16일 새벽 아내의 휴대전화로 B씨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B씨가 받았다.B씨는 아내와 만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가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었다. A씨는 이미 두 사람의 반복된 기만에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 A씨는 B씨를 만나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했다. 만약 B씨가 거절하면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집안에 보관하던 공기총을 꺼내 들었다.B씨는 A씨와 만나 순순히 각서를 써 줬다. 이에 A씨는 민형사상 책임을 B씨에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 줬다. 마지막으로 A씨는 B씨에 “내 아내를 만날 것이냐”고 물었는데, B씨는 이를 비꼬는 듯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답했다. 이 한 마디로 A씨는 살인을 결심했다.A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자신의 아내와 B씨의 계속된 불륜에 오랜 기간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고자 인내하고 노력했던 점을 아무리 감안 하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지들은 물론 지인들, 학원 학부모들까지 A씨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간곡한 탄원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A씨가 이러한 극단적 범행을 저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며 “B씨가 각서를 주고받은 후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비꼬는 말투로 무시하자 A씨가 끝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도 고려했다”고 했다.2심에서 A씨는 징역 10년으로 감경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 아내를 만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줬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만남을 계속했고 사건 당일에도 A씨를 자극하는 언행을 계속했다”며 이는 특별 감경 요소가 된다고 봤다. A씨는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 침대 위 살해된 母子…증거가 가리키는 ‘단 한 사람’ [그해 오늘]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1년 4월 15일,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조모 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도예가인 조 씨는 왜 아내와 아들을 무참히 살해했을까.사건은 2019년 8월 22일에 발생했다. 관악구 재개발 지구 안 빌라에 살던 여성 박 씨(당시 41)와 아들 조모 군(6)이 침대 위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하지만 용의자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안 물건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안방의 귀중품도 그대로였다. 피해자들이 불과 30초 만에 다발성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것은 범행의 목적이 살인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피해자들이 상당량의 피를 흘렸음에도 혈흔에 남아 있을 법한 범인의 지문과 족적 등이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범행 과정이 치밀하고 깔끔했다. 범인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뒤 불까지 끄고 빠져나가는 등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 힘든 여유를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경찰이 주목한 것은 외부 침입이 없던 것과 사망 추정 시간에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사람은 조 씨라는 점이었다. 사건 50일 만에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지만 조 씨가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더군다나 조 씨는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고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남편이자 아빠”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 씨 측과 경찰의 줄다리기가 이뤄지던 어느 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을 통해 피해자들의 위 속에 남은 음식물로 사망 시간을 추정했다. 부검 당시 박 씨와 조 군의 위에서는 다 소화되지 않은 죽 형태의 내용물이 발견됐다. 국과수는 “식후 완전히 소화(위에서 소장으로 모두 이동)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통상적으로 식후 6시간 이내 살해됐을 것”으로 봤다.(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통상 저녁을 오후 6~7시쯤 먹었다면 범행은 새벽 1시 전에 이뤄졌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조 씨가 집에 머문 시각은 오후 8시 56분부터 오전 1시 35분 사이였다. 경찰은 이를 증거로 조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그렇다면 조 씨가 사용한 흉기와 살해할 때 혈흔이 묻은 옷가지는 어디로 갔을까.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물건은 주방에 있던 6개의 칼 세트 중 하나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도예가였던 조 씨는 사건 발생 6일 후 기자재 판매 사이트에 자신이 사용한 전기 가마를 매물로 내놓았다. 해당 가마를 구매한 A씨는 “상태가 좋은데 싼 가격에 올라와 바로 구입했다”고 했다.1000도 이상까지는 전기 가마를 이용해 흉기를 없앴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혈액이 묻은 옷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흉기는 녹지 않았다.흉기도,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옷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 씨에 대한 살인 혐의는 짙어졌다. 그 배경에는 5년의 결혼생활이 있었다.박 씨는 고정 수입이 많지 않았던 조 씨에 결혼 전부터 금전 지원을 했으며 결혼 후에는 생활비 및 도예 작업 비용 등으로 매달 2~300만 원을 지원했다. 또 철거를 앞둔 전세 빌라에 지내면서도 남편에게는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아 78평형 신식 오피스텔을 매입해 도예 공방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외 공방의 공과금, 차량 할부금, 작업 도구 및 재료 구입비, 모발 이식 수술비용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줬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그러다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박 씨는 금전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조 씨는 분노를 나타내며 이혼을 요구했고 별거에 들어갔다.조 씨의 통장 잔액은 1900원까지 내려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됐다. 아내에 이혼을 철회하며 급변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 씨의 생각은 견고했다. 부모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쓰던 조 씨는 경마장을 찾았다가 베팅에 성공하면서 매주 2~3회 경마장을 찾았다. 그러나 카드론 대출, 현금서비스 등으로 마련한 800만 원을 베팅하고 전부 잃는 등 경제적 상황은 악화됐다. 경찰이 조 씨의 노트북을 포렌식 한 결과 보험 사이트에서 아내의 사망 보험금 수령액과 본인이 피보험자인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이 밝혀졌다. 아내는 5건의 손해보험이 있었고 사망시 보험금 1억 7500만 원을 수령하도록 돼 있었다.이뿐만이 아니었다. 결혼 6개월 후부터 불륜 관계를 이어온 내연녀가 있었던 그는 내연녀와 월 평균 17회의 만남을 가지는 반면 아내와는 월 1회만 만났다. 조 씨의 부모도 이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연녀가 일방적으로 아들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설사 외도라고 해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는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이후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에 제 3자가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었으며, 조 씨가 부인과 갈등 관계였다는 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였다는 점 등을 범행 동기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항소심 재판부도 “위 내용물을 통한 사망 추정 시간 증거는 법의학적 신빙성이 있다”며 “사망 추정 시간과 피고인이 집에 머문 시간이 대체로 일치한다”고 봤다. 대법원도 “형사재판에서 증거는 반드시 직접증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그러면서 “사망 시간 추정이나 3자의 살해 가능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 살인 동기 등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원심이 판결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강소영 기자 2024.04.15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1년 4월 15일,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조모 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도예가인 조 씨는 왜 아내와 아들을 무참히 살해했을까.사건은 2019년 8월 22일에 발생했다. 관악구 재개발 지구 안 빌라에 살던 여성 박 씨(당시 41)와 아들 조모 군(6)이 침대 위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하지만 용의자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안 물건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안방의 귀중품도 그대로였다. 피해자들이 불과 30초 만에 다발성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것은 범행의 목적이 살인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피해자들이 상당량의 피를 흘렸음에도 혈흔에 남아 있을 법한 범인의 지문과 족적 등이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범행 과정이 치밀하고 깔끔했다. 범인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뒤 불까지 끄고 빠져나가는 등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 힘든 여유를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경찰이 주목한 것은 외부 침입이 없던 것과 사망 추정 시간에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사람은 조 씨라는 점이었다. 사건 50일 만에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지만 조 씨가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더군다나 조 씨는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고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남편이자 아빠”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 씨 측과 경찰의 줄다리기가 이뤄지던 어느 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을 통해 피해자들의 위 속에 남은 음식물로 사망 시간을 추정했다. 부검 당시 박 씨와 조 군의 위에서는 다 소화되지 않은 죽 형태의 내용물이 발견됐다. 국과수는 “식후 완전히 소화(위에서 소장으로 모두 이동)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통상적으로 식후 6시간 이내 살해됐을 것”으로 봤다.(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통상 저녁을 오후 6~7시쯤 먹었다면 범행은 새벽 1시 전에 이뤄졌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조 씨가 집에 머문 시각은 오후 8시 56분부터 오전 1시 35분 사이였다. 경찰은 이를 증거로 조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그렇다면 조 씨가 사용한 흉기와 살해할 때 혈흔이 묻은 옷가지는 어디로 갔을까.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물건은 주방에 있던 6개의 칼 세트 중 하나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도예가였던 조 씨는 사건 발생 6일 후 기자재 판매 사이트에 자신이 사용한 전기 가마를 매물로 내놓았다. 해당 가마를 구매한 A씨는 “상태가 좋은데 싼 가격에 올라와 바로 구입했다”고 했다.1000도 이상까지는 전기 가마를 이용해 흉기를 없앴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혈액이 묻은 옷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흉기는 녹지 않았다.흉기도,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옷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 씨에 대한 살인 혐의는 짙어졌다. 그 배경에는 5년의 결혼생활이 있었다.박 씨는 고정 수입이 많지 않았던 조 씨에 결혼 전부터 금전 지원을 했으며 결혼 후에는 생활비 및 도예 작업 비용 등으로 매달 2~300만 원을 지원했다. 또 철거를 앞둔 전세 빌라에 지내면서도 남편에게는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아 78평형 신식 오피스텔을 매입해 도예 공방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 외 공방의 공과금, 차량 할부금, 작업 도구 및 재료 구입비, 모발 이식 수술비용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줬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그러다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박 씨는 금전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조 씨는 분노를 나타내며 이혼을 요구했고 별거에 들어갔다.조 씨의 통장 잔액은 1900원까지 내려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됐다. 아내에 이혼을 철회하며 급변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 씨의 생각은 견고했다. 부모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쓰던 조 씨는 경마장을 찾았다가 베팅에 성공하면서 매주 2~3회 경마장을 찾았다. 그러나 카드론 대출, 현금서비스 등으로 마련한 800만 원을 베팅하고 전부 잃는 등 경제적 상황은 악화됐다. 경찰이 조 씨의 노트북을 포렌식 한 결과 보험 사이트에서 아내의 사망 보험금 수령액과 본인이 피보험자인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이 밝혀졌다. 아내는 5건의 손해보험이 있었고 사망시 보험금 1억 7500만 원을 수령하도록 돼 있었다.이뿐만이 아니었다. 결혼 6개월 후부터 불륜 관계를 이어온 내연녀가 있었던 그는 내연녀와 월 평균 17회의 만남을 가지는 반면 아내와는 월 1회만 만났다. 조 씨의 부모도 이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연녀가 일방적으로 아들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설사 외도라고 해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는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이후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에 제 3자가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었으며, 조 씨가 부인과 갈등 관계였다는 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였다는 점 등을 범행 동기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항소심 재판부도 “위 내용물을 통한 사망 추정 시간 증거는 법의학적 신빙성이 있다”며 “사망 추정 시간과 피고인이 집에 머문 시간이 대체로 일치한다”고 봤다. 대법원도 “형사재판에서 증거는 반드시 직접증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그러면서 “사망 시간 추정이나 3자의 살해 가능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 살인 동기 등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원심이 판결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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