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14년 만에 통합우승 이룬 박미희표 '엄마 리더십'

  • 등록 2019-03-29 오전 6:00:00

    수정 2019-03-29 오전 6:00:00

27일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외국인선수 톰시아를 뜨겁게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엄마 리더십’.

여자배구 흥국생명을 12년 만에 통합우승으로 이끈 박미희(56) 감독을 이보다 더 잘 소개하는 수식어는 없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은 지난 27일 막을 내린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19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와 챔피언결정전에서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흥국생명의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이자 2006~07시즌 이후 12년 만에 달성한 통합우승이었다.

박미희 감독은 한국 프로스포츠 여성 사령탑 중 최초로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2년 전인 2017년에는 팀을 정규리그 정상으로 이끌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에 패해 통합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개인 통산 2번째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통합우승이라는 대위업을 이뤘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박미희 감독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선수들을 한 명씩 꼭 안아줬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후배들을 잘 이끈 베테랑 센터 김세영(38)과 주장인 리베로 김해란(35)은 더욱 길게 끌어안았다.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며 기뻐하는 와중에도 박미희 감독의 눈에선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울음이 계속되자 구단 관계자가 급히 뛰어나가 휴지를 챙기기도 했다. 우승에 대한 기쁨 만큼이나 ‘여성 감독은 안돼’라는 불편한 편견을 깨버렸다는 후련함이 그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박미희 감독은 “2년 전 누군가 ‘박미희가 가는 길은 역사가 된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며 “그동안 힘들었던 적도 많았고 그만두려고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말을 떠올리며 여기까지 왔다”고 털아놓았다.

이어 “솔직히 여성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사실 내가 어깨가 무거울 이유가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최소한 (다른 여성 감독의)길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내게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박미희 감독은 전형적인 명장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누구가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카리스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늘 싱글싱글 웃으면서 선수 및 관계자들과 허물없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박미희 감독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다.

박미희 감독은 눈물도 많다. 2년 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에 1승3패로 패했을때도 많이 울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눈물은 180도 다른 의미다. 동시에 흥도 많다. 지난 V리그 올스타전에선 신나는 댄스음악이 나오자 이재영과 함께 ‘부비부비’ 댄스를 함께 추기도 했다.

박미희 감독은 선수들에게 ‘친엄마’ 같은 존재다. 그냥 여성이라서 붙은 수식어가 아니다. 엄마처럼 질책하기 보다 자상하게 선수들을 독려한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선수를 비난하거나 질타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선수를 감싸고 장점을 부각한다.

리베로 김해란은 우승 인터뷰에서 “박미희 감독님은 진짜 엄마 같다. 함께 생활할 때 배구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많이 한다”며 “예를 들어 ‘방 환기 잘 시켜라’, ‘분리수거 똑바로 헤라’, ‘야식을 먹을때도 밥은 꼭 챙겨먹어라’ 같은 얘기다”고 말했다. 집에서 엄마가 자식에게 해주는 얘기, 딱 그거다.

박미희 감독이 무조건 ‘오냐~오냐~’ 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 부임 후 초반에는 너무 유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자로서 경험까지 쌓이면서 채찍과 당근을 모두 적절히 활용하는 감독이 됐다.

주포 이재영을 아끼는 박미희 감독의 생각에서 그런 부분이 잘 나타난다. 이재영은 신인 시절부터 팀의 에이스로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일찍 주목을 받다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다. 지난 시즌에는 국가대표 차출 거부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마음고생이 극에 달했다.

박미희 감독은 그런 이재영을 꽉 품었다. 단지 달래기만 한게 아니라 품어줄 때 품어주고, 다그칠 때 다그치면서 이재영의 중심을 잡아줬다. 박미희 감독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은 이재영은 다시 즐겁게 배구를 할 수 있었고 이번 챔프전에서 만장일치로 MVP에 등극했다.

이재영은 ”감독님은 혼내야 할 때 혼을 내고 달래야 할 때 잘 달래주신다“며 ”잘할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감독님이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미희 감독은 ”이재영에게 칭찬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반대로 잘못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칭찬해주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절제했다“며 ”이재영은 아직 어린 선수다. 올해 잘 했지만 새로운 목표가 계속 생겨야 한다. 목표를 가는 길에서 벗어나면 계속 많인 얘기해 줄 것. 오늘은 칭찬해주겠다“고 말했다.

배구계에선 ‘박미희가 가는 길은 곧 역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코트의 여우’로 불릴 정도로 영리한 플레이가 돋보였던 박미희 감독은 사상 첫 여성 해설위원을 가져 2014년 부터 흥국생명 감독 직을 맡아 역시 여성 사령탑 최초의 통합우승 기록을 세웠다.

박미희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말대로 정말로 그가 가는 길은 대한민국 배구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이번 우승으로 감독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힌 그가 또 어떤 역사를 새로 써내려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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