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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바람의 아들' 이종범(42)은 맛의 고향 광주 출신이다. 타고난 미식가이기도 하지만 못 먹는 거나 가리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가 잘 먹지 않는 것이 한가지 있다. 달걀이 그것이다. 특히 삶은 달걀은 좀처럼 입에 대지 않는다. 집에서는 더더군다나 먹은 적이 없다.
물리도록 많이 먹었던 기억이 달걀에 대한 그의 미각을 가져가버린 탓이다.
이종범은 가난했다. 또 그가 막 야구를 시작했던 초.중학교 시절엔 주변의 모두가 생활이 여의치 않았다.
합숙 훈련이래봐야 학교에서 책상을 붙여 침대삼아 잠 자며 지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나이. 그들에게 주어진 간식은 감독이나 야구부장 집에서 쪄 온 달걀이 전부였다.
이종범은 "그때 달걀을 정말 너무 많이 먹었다. 더는 먹기 싫었던 적도 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또 그렇게라도 먹어야 영양 보충을 할 수 있었다. 달걀을 아주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찾아 먹지도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로 대학에 진학한 뒤 화려한 서울의 밤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 "내가 꼭 여기서 최고가 될거다."
이종범의 너무도 현실적이었지만 간절했던 지향점은 가난 탈출이었다. 그처럼 분명한 목표는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종범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에게 롤 모델이 됐거나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선수가 있나요?" 그는 한참을 생각해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런 선수 없다."
처음엔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이유를 들은 뒤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종범은 일찌감치 최고가 된 선수다. 그의 가장 화려한 시즌은 데뷔 2년차였던 1994년이었다.
하지만 이종범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적이 외부에 있었다면 '대충' 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전성기를 지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노릴 수 있는 건 '제4의 외야수'. 하지만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만 있다면 그는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땀 흘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또 경쟁할 수 있다는 것에 마냥 즐거워했다. 후배들의 훈련과 동일한 스케줄을 묵묵히 해냈다.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건넨 첫 마디는 "야마사키(43. 라쿠텐에서 주니치로 컴백한 이종범의 전 동료)도 뛰는데 걔 만큼은 나도 해야지. 이번 훈련은 정말 잘 견뎠어"였었다. 이번에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만족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한달이 채 되지도 않은 어제, 이종범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야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왔다. 지금껏 들어봤던 그의 목소리 중 가장 밝은(척) 톤으로... <핫이슈 ☞ 바람의 아들 `이종범 은퇴` 기사 보기> ▶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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