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반전을 꿈꾸다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
코마·산타·알타임죠 등 한국 작가 10인
캔버스·팝아트·레터링·디지털프린팅 등
그래피티 뿌리서 가지 낸 30여점 걸고
러·우크라 전쟁 속 '평화 메시지' 붙여
  • 등록 2022-05-25 오전 12:01:01

    수정 2022-05-25 오전 12:01:01

서울 중구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 전경. 한국 그래피티 작가 10인이 단순한 볼거리를 예술로 키워낸, ‘즉흥적인 낙서’ 이상의 실험·자유·저항정신과 맞물린 새로운 시도를 펼쳐낸다. 전시장 초입에 걸린 알타임죠의 캐릭터 작품이 보인다. 애니메이션 아톰을 주인공으로 세운 ‘전쟁하지 마’(2022·왼쪽), 마이클 잭슨의 입을 빌린 듯한 ‘세상을 치유하다’(2022)(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 중구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 전경. 젊은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전시장으로 들어온 ‘반전의 낙서’들을 둘러보고 있다. 앞쪽으로 산타의 ‘나의 소녀’(2015), 안쪽 정면으로 위제트의 ‘전쟁은 끝’(2022)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반전’은 예술이다. 적어도 이 공간에선 그렇다.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이든, 판을 홀랑 뒤집는 ‘반전’이든, 이보다 더 강렬한 색과 형체를 담아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 ‘반전의 예술’이다. 그 가장 적극적인 형태라면 단연 ‘그래피티 아트’를 꼽아야 한다. ‘스트리트 아트’라며 자유를 대신하고, ‘거리예술’이라며 담 너머 세상까지 내다본 그것 말이다. 어느 나라 어느 길에서도 결코 빠지지 않는 그래피티 아트가 서울 한복판에 판을 벌였다. 중구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이 기획전으로 꾸린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에서다.

‘즉흥적인 낙서’로 뭉뚱그려온 단편적인 인식을 깨보자는 의도가 시작이다. 그중 가장 특별한 것이라면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는 ‘작가 10인’일 터. 모두 한국 작가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해외작가가 다시 나서겠거니 했을, 그 갇힌 생각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일에서부터 이들 10인이 의기투합한 셈이다. 그만큼 전시는 단순한 볼거리를 예술로 키워낸, 실험·자유·저항정신과 맞물린 그래피티의 새로운 시도를 펼쳐낸다. 하지만 태생이 그랬듯, 함께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뜨거운 메시지 역시 놓치지 않았다. ‘반전과 평화’, 바로 이번 전시에 깔아둔 테마다.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에 걸린 산타의 ‘푸틴에게 평화를’(2022·위)과 ‘전쟁 말고 사랑을 하라’(2022). 이번 전시테마인 ‘반전·평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5년 역사 한국 그래피티 1세대 작가 대거 나서

한국에서 그래피티 아트의 기원이라면 1990년대 후반쯤으로 본다. 25년 안팎의 짧은 역사지만 그 시절을 누구보다 길게 살아온 ‘그래피티 1세대 작가’들이 이번 전시에 대거 나섰다. 뭘 좀 그리고 냅다 도망가다가 붙잡히면 ‘경범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던 낙서문화. 그 자체를 신세계로 끌어낸 코마, 산타, 알타임죠 등이 선두그룹이다.

그때 그 시절이 무색하게 코마는 벽을 향하던 스프레이를 캔버스로 옮겨 정통회화를 넘보는 팝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 선명한 색상의 캔버스화 ‘눈물은 그만’(2022), ‘전쟁은 끝’(2022) 등을 전시에 내놨다. 산타는 그래피티의 영역확장에 기여가 많은 작가다. 패션·인테리어는 물론 캐릭터·로고개발을 보탠 디자인분야에도 발을 담그는 중이다. ‘비상’(2014), ‘나의 소녀’(2015) 등 캔버스화, ‘푸틴에게 평화를’(2022) 등 디지털프린트를 걸었다. 알타임죠는 한국의 낙서판이 좁다고 세계로 뛰쳐나갔다. 그만큼 글로벌하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화면에 들여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 많다. 애니메이션 아톰을 주인공으로 세운 ‘전쟁하지 마’(2022), 마이클 잭슨의 입을 빌린 듯한 ‘세상을 치유하다’(2022) 등 디지털페인팅이 있다.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에 걸린 코마의 두 점. ‘눈물은 그만’(2022·왼쪽)과 ‘전쟁은 끝’(2022)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에 걸린 라카스타일의 작업. 평면작품 ‘옐로우’(2022), ‘블루’(2022) 옆으로 ‘신발 커스텀’을 꺼내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라카스타일과 위제트는 힙합·아이돌 뮤지션과 협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뮤직비디오 속 그래피티 아트를 감독하거나 글자를 디자인하고 기업브랜드와 콜래보도 망설이지 않는다. 진스BH와 쌔미TR의 공통 키워드는 ‘한글’이다. 텍스트 혹은 단어를 캔이나 강철판 등에 붙이고 색을 입힌 뒤 의미를 다시 포장하는 작업을 진스BH가 한다면, 쌔미TR은 골판지·스티로폼 등 버리는 오브제로 글자를 다시 꾸며낸다.

이들 외에도 단순화한 도형과 화려한 색감으로 메시지보단 그림을 꺼내놓는 엔조, 즉흥적 행위로서의 그래피티에 충실하며 전형적인 스트리트 아트를 고수하는 스피브, 간결하고 위트있는 캐릭터를 잔뜩 모아 군중의 결집한 담론을 전달하는 제이플로우 등이 제각각 자신들만의 ‘시선’을 새겨넣었다.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 전경. 왼쪽으로 엔조의 캔버스화 ‘위험은 최고의 멘토’(2022·왼쪽 위), ‘적게 말하고 두 번 들을 것’(2022·왼쪽 아래) 등 연작 6점 옆으로 제이플로우의 ‘전쟁하지 마’(2022) 두 점이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에 걸린 스피브 작품. ‘술집에서 우주를 보는 남자’(2022·왼쪽)와 ‘우연한 만남’(2022)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제약 여전해도…한국 그래피티 작가 벌써 100여명

한 손이면 충분하던 한국의 그래피티 작가가 이젠 100여명을 내다본단다. “초창기 활동? 그림 그릴 장소를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치고 빠지는, 진짜 벽낙서에서 시작한 셈이다. 작가 10인 중 큰형인 코마는 ‘압구정 토끼굴’도 귀띔했다. ‘거기선 편하게 작업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난 그래피티 성지라고. 하지만 “여전히 바깥 활동에는 제약이 많다”고도 했다.

전시는 그래피티란 뿌리 위에 각자 다른 가지를 낸 작가 10인이 한국 그래피티의 오늘을 더듬는 의미가 적잖다. 낙서로 세상을 꼬집던 그 출발을 되돌아보며 말이다. 덕분에 전시작 30여점은 거친 정교함, 가벼운 깊이를 골고루 묻히고 있다. 지난해 3월 아트스페이스선이 개관전으로 띄웠던 6인6색 ‘스트리트 아트’ 전의 명맥도 잇는다. 셰퍼드 페어리, 존 마토스 크래시, 존 원, 뱅크시, 제우스, 빌스 등 내로라할 그들이 평정하고 떠난 그 판을 한국 후배들이 뒤집는다. 역시 ‘반전’이다. 전시는 6월 17일까지.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에 걸린 진스BH 작품. ‘치유’(2022)와 ‘회복’(2022)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트스페이스선 ‘그래피티 아트: 우연히 마주친 울림’ 전 전경. 젊은 관람객들이 쌔미TR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오른쪽부터 ‘전쟁하지 마!! 판옵티콘 06’(2022), 전쟁하지 마!! 판옵티콘 05’(2022)가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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