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닌' 월드컵으로 힘든 나날 보낸 이동국

우루과이전 단 한번 기회, 정확하게 차려다 그만…

성원해주는 팬도 있는데 골에 너무 얽매였나봐요
  • 등록 2010-07-16 오전 8:08:34

    수정 2010-07-16 오전 8:08:34

[조선일보 제공] 지난달 27일 한국과 우루과이의 남아공월드컵 16강전. 후반 42분 이동국(31)에게 한 번의 찬스가 왔다. 그의 '한 방'이면 1대2로 패색이 짙은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공격수로서 이런 순간을 얼마나 꿈꿔 왔던가. 월드컵을 앞두고 수천번도 더 그렸던 상황이다. "(골대) 밖으로 차면 안 돼. 안으로 차야 해. 강한 슛이 아니라 정확해야 해." 이동국은 자블라니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차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의 발은 뒤땅을 먼저 찼고, 공은 정확히 맞지 않았다. 12년을 기다린 끝에 그가 월드컵에서 날린 단 한 번의 슈팅은 골키퍼 몸에 맞고 골문 쪽으로 힘없이 굴러갔고, 결국 수비가 걷어냈다. 이것으로 이동국의 남아공월드컵은 끝났다.

14일 전화로 연결된 이동국은 당시의 순간을 몇 번씩 본 영화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귀국 후 외부 접촉을 피해 온 그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한국을 8강에 올려놓았을 수도 있었던 찬스를 놓친 심정을 물어봤다.

"그런 상황에서 골도 넣어 봤고, 실수도 해 봤어요. 평소 경기 같으면 아마 강하게 찼을 겁니다. 안 들어가도 다음에 기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월드컵이었어요. 그것도 16강전…. 경기도 막 끝나가고 있었기에 다음 기회란 없을 걸로 봤죠. 정확히 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생각대로 안 됐습니다. 심리적 부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동국은 괴로운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신 있게 찼어야 했다"며 "혹시 다음에 그런 기회가 온다면 강하게 슈팅할 것"이라고 했다.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이동국은 누구보다 비장했다. 19세이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15분 정도 출전한 이후 12년 만에 다시 밟는 무대였다. 각종 평가전에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이 뛰었다. 한국의 주전 공격수로 월드컵에 나서는 것은 축구 선수 이동국의 마지막 꿈이었다.

막상 허정무호(號)에 승선했지만 정작 남아공에서 이동국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표팀 주변에선 '실미도에서 지옥훈련을 받았지만 출격 명령을 받지 못한 상황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남아공에서 그가 뛴 시간은 38분(아르헨티나전 9분, 우루과이전 29분)에 불과했다.

남아공대회가 끝나고 이동국은 "내가 (남아공대회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이게 아닌데…"라는 말을 했었다. 무슨 뜻이었느냐고 물었더니 "결정적인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치면서 끝나는 그런 드라마 같은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뛸 기회가 적었던 점이 억울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공격수는 3번 기회에 한 번 정도 성공하는데…"라고 했다. '만약 이동국이 매 경기를 주전 공격수로 뛰었다면 우루과이전의 처음이자 마지막 찬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31세의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또 '멍 자국'으로 남았다. 4년 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얘기하기에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동국도 "특별히 대표팀에 욕심은 없다"며 "최소한 후배 공격수들이 잘 못해서 내가 다시 월드컵에 가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잘하든 못하든 저를 성원해주는 팬을 위해 K리그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동국이 월드컵의 멍 자국을 그냥 안고 살기는 아직 젊은 나이라고 말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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