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해우소]"가해자는 교수됐는데 난 고통 속" 끝나지 않은 간호사 '태움'

신규 임용교수 '태움' 가해자 지목 논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
명목은 교육이지만 실상은 과도한 인격 모독과 욕설 난무
열악한 근무환경과 괴롭힘이라는 악순환 속 '태움' 사라지기 어려워
  • 등록 2021-03-13 오전 12:02:00

    수정 2021-03-13 오전 12:02:00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병원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에 시달렸던 서울아산병원 故 박선욱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현장 간호사들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내게 가래통 붓고 부모 욕까지…태움 간호사, 대학교수 됐더라”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현직 간호사 A씨가 9년 전 한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던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선배 B씨가 간호학과 교수가 됐다며 울분을 토한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A씨는 “취미로 우연히 만나게 된 간호학과 학생을 통해 과거에 폭행, 폭언을 일삼았던 B씨가 교수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며 자신이 당한 괴롭힘을 상세히 올렸다.

A씨는 “무거운 장비 이동 등 일을 제대로 못하면 명치와 등을 때렸다. 어차피 때릴 거라면 소리지르지 말고 빨리 얻어맞고 끝났으면 좋겠다”라며 “그 선배는 언제나 반소매, 긴 바지인 펄럭거리는 연분홍색 유니폼으로 가려지는 부위만 때렸다”고 적었다.

그는 “B씨가 외모를 비하하고, 부모님을 모욕하는 등 언어폭력을 가하거나 심지어 중환자의 분비물을 뿌려 뒤집어쓰게 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멍투성이인 상체를 촬영해 노동조합에 가입하러 갔지만 ‘계획 없는 임신으로 보복성 근무를 서다 유산한 간호사도 안 왔는데 네가 왔느냐’는 노조 관계자의 말에 결국 사직서를 쓰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가해자인 B씨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이번 폭로가 간호사들의 ‘태움’ 악습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B씨가 속한 대학은 A씨가 당했다고 주장하는 괴롭힘 사례와 관련 조사를 B씨를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끝나지 않는 간호사 ‘태움’…‘충분한 인력 충원’ 이뤄져야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료계 직장 내 ‘태움’은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 이후 실제 근무 환경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난 2018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로 근무한 故 박 간호사와 2019년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던 故 서지윤 간호사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딜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9년 정부는 근로기준법 제76조2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라는 법 조항을 만들어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돼 발생한 질병을 산업재해(산재)로 인정해 故 박씨와 故 서씨의 사망도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받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하지만 산재를 인정한다고 실제 근무환경에 ‘태움’이란 문화가 사라지긴 역부족이었다.

현직 간호사들은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간호사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인력 부족에 따른 초과근무, 위계적인 업무 시스템과 불충분한 식사 시간, 근무스케줄 등은 여전히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으로 치닫게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간호사 배치기준은 간호사 1명 당 환자 약 12명으로 미국(5.3명), 영국(8.6명)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강도가 높은 수준이다.

인력 부족으로 바쁘고 과중한 업무의 연속인 상황에서 신규간호사가 들어오다 보니 결국 모든 일은 선임간호사의 업무로 돌아오게 된다. 제대로 된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열악한 근무환경 속 현장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간호사에게 과중한 업무부담과 안전사고 위험 노출로 이어져 ‘태움’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달 15일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 김주희 간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즉 ‘태움’은 누구 한 명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직장 내 괴롭힘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사도 사람이고 우리가 살아야 간호를 할 수 있다. 간호사가 살아서 간호를 할 수 있는 병원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최정화 간호사도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연료쯤으로 여기는 간호노동에 대한 생각을 벗어던지고 생명을 다루는 정말 소중한 인력으로 대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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