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인사이드] 사는 게 사이클인 것처럼…

사이클에서 경륜, 경륜에서 다시 사이클로 돌아온 조호성

오르막 있으면 내리막 경륜황제? 성에 안 차…

두 번 거른 올림픽 무대 2년 뒤엔 꼭 메달 딸 것
  • 등록 2010-07-23 오전 8:15:17

    수정 2010-07-23 오전 8:15:17

[조선일보 제공] 사이클 국가대표 조호성(36)이 지난 17일 자기 팔뚝에 문신을 새겼다. 자기와 아내, 세살 된 딸 채윤, 7일 태어난 아들 준혁의 영문 이름이다. "핸들을 잡고 달릴 때 늘 바라보는 곳에 새겼습니다.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요."

조호성은 세계 정상에 가장 근접한 사이클 스타다. 시드니 올림픽 40㎞ 포인트 레이스에서 4위를 거뒀다. 이 종목은 길이 250m 트랙을 160바퀴 돌면서 10바퀴마다 포인트를 얻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 뒤 두 번의 올림픽을 건너뛰었던 조호성이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돌고 돌다 다시 트랙으로 왔지만 그의 목표는 정해졌다. 한국 사이클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1점 차로 놓친 올림픽 메달

조호성의 올림픽 시계는 2000년 시드니에 멈춰 있다. 1999년 월드컵시리즈 챔피언인 그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그런데 부담을 이기지 못했고 마지막에 힘까지 빠지면서 다 잡았던 메달이 1점차로 날아가 버렸다.

"잠을 못 잤어요.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를 짓눌렀죠." 큰 점수 차로 졌다면 오히려 나을 뻔했다. '1점'이란 아쉬움이 그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조호성은 2004년 아테네로 가는 대신 경륜(競輪)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륜 황제가 되다

같은 자전거지만 쉬울 리가 없었다. 그의 주 종목은 40㎞를 달리는 것인 데 비해 경륜은 333m 트랙을 6바퀴 도는 단거리 승부였다. 조호성은 순간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체중을 15㎏ 불렸고 이를 악물고 근육을 키웠다.

거짓말처럼 그의 시대가 왔다. 조호성은 2005년부터 4년 연속 상금 랭킹 1위였다. 2006년엔 최고 상금(2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5년간 번 돈이 10억원 가깝다. 통산 승률은 90.4%,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박수를 보낸다? 이건 경륜에선 통하지 않아요. 갬블이니까요. 어쩌다 2~3등 하면 베팅한 고객으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요.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빠졌습니다."

■다시 꾸는 올림픽 꿈

올림픽 때 일부러 TV를 보지 않았다. 미련이 생기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기간 우연히 인터넷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스페인의 야레나스였다. 야레나스는 시드니올림픽 포인트레이스 금메달리스트였다.

그가 39세의 나이로 2008년 올림픽에서 또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간신히 억눌렀던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 스멀스멀 살아났다. 조호성은 적어도 5년은 매해 2억원 이상씩 벌 수 있었다.

그런데 2008년 12월 미련 없이 사이클로 돌아왔다. 꿈을 좇으며 살고 싶어서였다. 복귀는 쉽지 않았다. 조호성은 2009년 3월 아마추어 복귀 무대였던 투르드 타이완에서 도로를 질주하다 언덕 아래로 추락했다.

4시간 만에 눈을 떴을 땐 '이젠 끝이구나' 싶었다. 다행히 가벼운 목뼈 골절이었다. 두 달 만에 그는 다시 사이클을 탔지만 화불단행(禍不單行), 올 4월 투르드 코리아에선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그의 몸엔 100바늘 이상 꿰맨 자국이 있다. 어깨, 머리, 팔꿈치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저도 무서워요. 그렇지만 주저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 선수 생활은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사이클의 기억들

남들이 창피하다고 놀려대는 '쫄쫄이' 유니폼이 멋있어 시작한 사이클이었다.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어린 시절 세발자전거도 타 보지 못했지만 중1 때부터 각종 대회에 입상했다.

젊은 시절 무명복서였던 아버지는 아들도 복서가 되길 바랐지만 조호성은 "맞는 것보다 페달 밟는 게 좋다"며 고집을 부렸다. 부모는 정육점을 하며 매일 아들 저녁상에 육회 300g을 올렸다.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금메달 따고 시상대에서 내려오면서 지금의 아내 황원경(30)씨를 경기장 가운데로 데려왔다. 두 사람의 키스가 전광판을 장식했다.

강렬한 프러포즈였다. 조호성은 뮤지컬 배우인 아내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챙기느라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한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면 마음껏 '외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후회 없이 쏟아붓겠다

경북 영주 경륜훈련원에서 생활하는 조호성은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8~9시간 훈련한다. 많게는 19살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경쟁하지만 즐겁다. 눈앞의 목표는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이다.

주 종목 포인트레이스가 올림픽에서 퇴출됐지만 그는 웃는다. 조호성은 스프린트, 포인트레이스 등 6종목의 합계로 승부를 가리는 옴니엄을 전략 종목으로 삼았다. 올 4월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해, 일단 가능성이 확인했다.

"사이클은 인생과 닮았어요. 오르막 때는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지만 내리막에서 바람을 맞고 달리면 모든 고통을 잊습니다. 저도 굴곡이 있었지만 시원한 내리막을 타는 기분으로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럼 웃을 수 있을 겁니다."

☞ 조호성은

▲1974년 6월 15일 부천 출생

▲1m75, 71㎏

▲부인 황원경(30)씨와 딸 채윤(3), 아들 준혁(1)

▲약대초-부천북중-부천고-중앙대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포인트레이스 금메달, 1998 방콕아시안게임 단체추발 금메달, 2000 시드니올림픽 포인트레이스 4위, 2002 부산아시안게임 포인트레이스·메디슨 금메달, 2005~2007 경륜 그랑프리 3연패, 2005~2008 경륜 상금랭킹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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