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로 ‘외도’했다가 씨름판으로 돌아온 이태현(34·구미시청)이 최근 30도를 웃도는 경북 구미시 사곡동 구미시청 씨름단에서 구슬땀을 쏟아내고 있다.
이태현은 지난 6월 문경단오장사씨름대회에서 백두장사(무제한급)에 올라 통산 백두장사 최다우승(19회) 기록을 세우며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만기 KBS 해설위원과 공동으로 보유했던 최다우승 기록을 깨뜨린 것이다. 1993년 민속씨름판에 데뷔한 이태현은 화려한 기술과 출중한 외모로 인기몰이를 했다. 2006년까지 472승158패(승률 74.9%)에 1994·2000·2002년 3차례나 천하장사에 오르는 등 10년 넘게 ‘씨름판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이종격투기를 택했다. 그는 가장의 책무 때문에 씨름판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태현은 “팀이 없어지고 씨름의 인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승2패의 초라한 성적만을 남겼고, 자신이 설 곳은 격투기 매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샅바를 잡았던 구미초등학교 5학년 때 스승인 김종화 감독(50)이 몸담고 있는 구미시청에 어렵게 입단했다. 김 감독은 “시 체육위원들에게 ‘1년 안에 우승 못하면 나도 그만두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설득했다”면서 “올해 초 백두장사에 오르면서 내 목숨도 살았다”고 웃었다.
한때 2억7000만원이었던 연봉이 5500만원으로 줄었지만 이태현은 지금이 행복하다. 그는 “내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알게 됐다. 전에는 말로만 ‘즐기면서 운동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씨름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목표도 단순하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씨름을 하기 위해 부상 없이 운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2006년 용인대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운대 경호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이태현은 “구미에서 열리는 추석장사씨름대회를 기대해 달라”며 “나이도 먹었는데 ‘황태자’보다 다른 별명이 없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내심 ‘황제’를 꿈꾸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