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나 전쟁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백년전쟁(1337~1453년)은 영국이 프랑스를 전장으로 삼고 여러 차례 휴전과 속전을 반복하면서 지어진 명칭이다. 길고 긴 기간에 포인트를 준 셈이다. 칼을 맞댄 주체에 주목하기도 한다. 장미 문장을 쓰는 두 왕실 집안 간 싸움인 장미전쟁이 그런 사례로 사뭇 문학적인 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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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대전은 시기적으로 삼국시대 3대 전쟁 가운데 가장 빠르다. 적벽대전이 삼국정립을 만들었고 이릉대전이 촉의 멸망을 재촉했다면 관도대전은 승상 조조가 하북을 점령하고 가장 큰 세력으로 부상케 한 싸움이다. 한때 지역 패권을 거머쥐었던 원소는 패배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 병사하고 아들들 간 ‘왕자의 난’이 벌어지더니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전투로 힘이 빠진 병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원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하지만 원소는 거듭된 승리에 스스로를 과신했다. 전풍의 반대를 물리치고 병력을 내려 보낸다”고 했다.
하북 지역을 평정한 원소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자 조조는 관도에 절반도 안 되는 병력을 보내 응전한다. 최 교수는 “원소는 (조조의 계략에 빠져) 백마전투, 연진전투에서 패하고 맹장 안량, 문추를 잃었다”면서 “조조가 농성에 들어가면서 계절은 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보급상에도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장기전은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원정군에 불리하다.
‘삼국지’를 기록한 진수는 “초나라 항우는 범증의 계략을 듣지 않아 왕업을 잃었는데, 원소가 전풍을 죽인 것은 항우의 실책보다 더한 것”이라고 적었다. 이처럼 관도대전은 지도자가 권력에 취해 주변으로부터 귀를 닫으면 오게 되는 말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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