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중년 여성의 다이어트와 이완기 심부전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1-10-16 오전 12:03:42

    수정 2021-10-16 오전 12:03:42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많은 환자들과 면담을 마치고 오후 외래가 거의 끝날 무렵 이미 해는 졌고, 당일 접수를 한 마지막 외래 환자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조심스레 문을 여신다. 의도치 않게 오래 기다리시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혈압과 환자의 얼굴, 가슴 x-ray를 본 순간 ‘이런, 입원을 하셔야겠네’ 하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친다.

55세로 폐경을 한지 몇 년이 지난 환자는 키가 160 cm에 체중은 80kg 정도로 복부 비만이 있었고, 측정한 혈압은 수축기 240mmHg 에 이완기 120mmHg 로 매우 높았다. 가슴 x-ray 로 보이는 심장의 크기는 비교적 큰 상태였다. 머뭇거리며 말씀을 잘 못하시는 환자분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먼저 손을 잡고 가슴 청진을 하면서 이야기를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건넨다. “많이 힘드셨죠. 가슴이 많이 답답하시고 머리도 아프셨을 텐데 왜 이제 오셨어요.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중풍이 안 온 게 다행이네요. 입원해서 우선 혈압을 조절하고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많이 참으셨었는지 울먹이며 이야기를 했다. 젊은 시절 이혼을 한 이후,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원래 약간 복스러울 정도의 체격이었으나 밤에 들어와 힘든 상태에서 식사를 하면 피곤해서 자고, 다음날 또 일을 나가야 해서 운동할 시간은 없었다. 체중은 점차 늘어 어느 날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뚱뚱해 보여 마음 먹고 식사량을 줄여 보지만 작심삼일로 오히려 다음에 폭식을 하고, 국수나 초콜릿, 음료수 등을 사서 먹게 되었다. 폐경을 한 이후로는 정말 식사량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살이 전혀 빠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제 다 대학에 가서 각자 자기 일로 바쁘고, 어느 순간 환자분 옆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만 들고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평소 아이들을 챙기느라 본인의 건강은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한데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고 한다. 내원하기 일주일 전부터는 도대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안되겠다 싶어 병원을 방문했는데 너무 높은 혈압으로 기다리는 내내 초조하기만 했다.

심장 초음파를 시행하였을 때, 환자의 심장의 수축기, 즉 심장이 피를 짜내는 능력은 정상적이었으나 심한 고혈압으로 심실이 두꺼워져 있었다. 그로 인해 심장이 피를 받는 능력, 즉 이완 기능이 매우 떨어진 이완기 심부전 환자였다. 이완기 심부전은 고령, 폐경기 이후의 여성, 비만 환자, 고혈압, 당뇨 환자 등에서 잘 동반되는 심부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그 수가 증가하여 심부전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기저질환인 당뇨와 고혈압을 잘 조절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원칙이다.

환자는 입원하면서 혈압을 조절하였고, 고혈압, 폐경기 여성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협심증을 확인하였을 때. 심한 관상동맥의 협착이 있어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안정화되어 퇴원을 하였을 때, 환자가 복용해야만 할 약물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협심증 등 10가지 이상이 되었다. 퇴원할 때, 열심히 운동도 하고, 체중 조절을 하겠노라고 굳게 다짐한 환자는 한 달 후, 외래를 방문하였을 때 이전보다 체중도 더 늘고, 당 조절도 더 안되었으며, 혈압도 퇴원할 때 보다 더 증가하여 약물이 더 필요한 상태였다. 환자는 정말 억울하다며,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고, 남들보다 더 일하고 있어 운동량도 클 것 같은데 살은 전혀 빠지지 않고, 한두 번 폭식을 하면 2~3kg는 금방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갱년기 전후의 여성들은 몸 안, 특히 배 주변으로 지방이 잘 쌓일 수밖에 없고, 기초대사량과 근육량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젊은 시절과 동일하게 움직이거나 식사를 해도 당연히 체중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에스트로겐의 감소는 근골격의 탄력성을 떨어지게 해서 조금만 과격하게 운동을 해도 잘 다칠 수 있어 운동 전, 후 충분히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또한,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의 감소도 함께 있기 때문에 갱년기 여성들에게서는 이전보다 더 심한 우울감이나 외로움이 커지게 되고, 그와 함께 코르티솔의 증가가 발생하여 조금 음식을 참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국수류나 초콜릿, 음료수 등 단 음식을 찾게 되거나 한번 먹을 때 과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다시 자신에 대한 초라함과 죄책감이 생겨 다시 우울감이 찾아오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거울 속의 자신이 미워지게 된다.

나는 다시 한번 환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말씀드렸다. “괜찮아요. 저랑 같이 해보시죠. 이제껏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셔서, 자신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모르셔서 그런 것 같네요. 의학적인 부분은 제가 책임지고 같이 가겠습니다. 제 외래 때 오시면 좋아하는 것, 마음이 설레었던 것 한 가지씩만 이야기해주세요”

환자와 면담 시간을 늘리기 위해 외래 마지막에 예약을 잡고 환자에게 아침, 저녁으로 스트레칭 10분, 저녁 시간에 30분만 즐거운 음악 혹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식사는 최대한 챙겨 드시되 콩과 두부, 생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과 제철 채소를 먹고 입안이 달게 느껴지거나 짜게 느껴지는 것은 삼가 보시도록 이야기를 드렸다.

9개월이 지난 후, 지난달 외래 문을 열고 밝게 웃으시며 나타난 환자는 80kg에서 20kg나 감량한 60kg의 몸무게로 체지방은 반 이상 줄었고, 혈압과 당은 거의 정상화되어 퇴원 시 복용했던 10알 이상의 알약이 2알로 줄었다. 아울러 비대했던 심장은 그 크기도 줄어 정상화되었다. 바빠서 못할 줄 알았는데 10분만 스트레칭을 하라는 이야기만 꾸준히 실행해 보니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걷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더 걷고 싶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화에 취미를 붙인 환자는 외래에 오시면 물감을 어떻게 구입하는지 어떤 붓이 좋은지 조잘대고 소녀처럼 이야기하시며, 감사하다고 그림을 건네고 가신다. 주치의로서 환자에게 해드린 건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에 덧붙여 따뜻한 말과 용기로 친구가 되어 드린 것 밖에 없는데 환자는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 가정의 어머니로 자신을 돌보는데 익숙하지 않던 중년 여성의 다이어트는 체중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고 알아가면 저절로 아름다움과 건강이 따라오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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