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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메이저리그가 드디어 중국에 상륙합니다. 오는 3월15~16일 베이징 올림픽 신야구장에서 LA 다저스-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사상 처음으로 시범경기를 벌입니다. 13억 인구의 세계 최대 시장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중국은 야구의 불모지입니다. 한국보다 앞선 19세기께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생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던 중국 야구(중국에선 ‘봉구’라고 합니다. 막대기로 볼을 친다는 뜻이니깐 일본식 한자인 야구보다 훨씬 정확한 표기입니다)는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들해지다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0년대 전면 금지됩니다. 마오쩌둥이 ‘서구 자본주의 패악’ 중 하나로 규정한 탓이었습니다.
그렇게 지하 창고에 묻혀 있던 중국 봉구는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 흐름을 타고 햇빛을 봅니다. 1986년 당시 다저스 구단주였던 피터 오말리가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75마일 떨어진 텐진에 ‘다저스타디움’을 건설하고 코치들을 파견한 덕분이었습니다. 봉구 금지, 40년만이었습니다.
이후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 정부와 일찌감치 이 거대 시장을 넘본 다저스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중국 봉구는 발전 도상에 오릅니다. 급기야 다저스 출신 감독이 지도한 중국 봉구는 2005년 야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한국의 대학 선발팀을 꺾는 이변을 연출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프로처럼 훈련해 온 한국 야구엔 크나큰 망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중국 봉구는 일천합니다. 2003년 프로리그(CBL)가 생겼으나 6개팀에 불과하고 봄, 가을로 나눠 시즌을 치릅니다. 스폰서는 최초 미국 회사들에서 일본 기업들로 넘어가고, 흥행도 경기당 50명으로 ‘공동묘지에서 지들끼리 치고받고 노는’ 수준입니다. 그러다보니 전국적인 스타는 아예 없고 선수들의 월급도 250 달러에 불과합니다.
선수 노조까지 “다른 국제 경기 때는 불평하는 선수들이 많았는데 이번엔 그런 말을 하는 선수들이 없다”며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더욱 현 중국의 2인자 원자바오 총리는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본 총리와 캐치볼을 할 정도로 야구광입니다(그에게 이번에 시구도 맡긴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는 비록 NBA 농구에 한발 뒤졌지만 중국 시장 공략에 자신감이 넘쳐흐릅니다. 만반의 준비도 갖췄습니다. 이미 지난해 여름 베이징에 사무소를 설치하면서 10만으로 추산되는 젊은 선수들을 가르칠 중국 코치들의 연수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NBA처럼 ‘야구의 야오밍’을 만들겠다는 야심의 발로입니다.
선수노조 사무국장인 진 오르자는 예리하게 중국인의 특성과 문화를 연관시켜 야구의 연착륙을 장담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발레를 좋아한다. 야구에는 수많은 발레가 있다. 또 그들은 복잡한 것을 즐긴다. 야구만큼 복장한 운동이 또 어디 있는가?”
무늬만 빅 리거가 아닌 트레버 호프만 같은 대스타 등 정예들을 파견하는 메이저리그가 1만2000석의 올림픽 신야구장을 가득 채우고 야구의 진수를 보여줘 의심 많은 중국인들에게 야구의 이국적인 재미를 일깨워줄 것인 지, 그래서 몇 년 후면 ‘짝퉁‘ 양키스 모자와 T-셔츠가 범람하는 중국의 거리를 진품으로 채울 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메이저리그의 중국 공정이 본격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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