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도 꽃은 핀다[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23>

▲페르메이르, 툴루즈-로트레크, 반 고흐가 본 '사창가'
동전 한닢에 성 사고파는 장면 담은 페르메이르
사창가 머물며 관찰해 삶을 본 툴루즈-로트레크
매춘 여성과의 연민·사랑에 인생 걸었던 반 고흐
화가 각자 화면에 묻혀낸 교훈과 일상, 애정까지
  • 등록 2022-02-12 오전 12:01:00

    수정 2022-02-13 오후 12:59:05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뚜쟁이’(1656). 햇빛 드는 고요한 실내 정경을 깊은 색채와 정밀한 구도로 그린, 단 35점으로 세계적 화가가 된 페르메이르의 초기작이다. 이후 작품들에 비해 크고 소란스러운 거의 유일한 그림이다. 작은 캔버스에 적은 수의 인물이 든 중산층 가정을 즐겨 그렸던 페르메이르는 17세기 중엽 다른 화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됐다. 덕분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에게 대단히 독특한 작품으로 여겨져 왔다. 화면의 왼쪽 인물을 화가 자신일 거라고 추측하기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캔버스에 유채, 143×130㎝, 독일 드레스텐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소장.


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역사적으로 사창가는 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파리·런던·베를린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무역이 활발했던 암스테르담 같은 곳에서는 법적으론 금지했으나 못 본 척 눈감아주기도 했다. 사창가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여성들은 법망을 벗어난 사회의 최약체로, 상시 성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의 위협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호객을 하고 웃음을 파는 여성과 남성 손님들을 그린 사창가의 장면은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이는 그런 모습이 그저 흥겹고 보기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실내의 고요한 정적을 밀도 있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도 초기에 사창가를 주제로 한 그림을 남겼다. ‘뚜쟁이’(1656)는 페르메이르가 24세가 되던 해에 그린 것이다. 사건은 동양풍의 러그와 모피코트가 걸쳐 있는 난간의 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노란 상의를 입은 젊은 여성이 손을 펴 한 남성으로부터 동전 한 닢을 받고 있다. 깃털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 쓴 이 남성은 한 손을 여성의 가슴에 올린 채 다른 한 손으로 반짝이는 동전을 여성의 손에 쥐여주려 한다. 거래가 성사되기 직전인 것이다.

돈을 지불하는 남자와 비열한 웃음 머금은 노파

이들의 뒤쪽에 앉은 인물은 검은 천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노파인데, 이 인물의 존재가 그림에 전형성을 부여한다. 17세기에 그려진 이러한 장면, 그러니까 성을 사고팔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이러한 유형의 노파인 것이다. 이 노파야말로 그림의 주인공인 ‘뚜쟁이’다. 여성이 받고 있는 돈 역시 이 노파가 관리할 것이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는 노파의 손에 직접 돈을 주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 시기 그림 속 ‘뚜쟁이 직군’의 노파들은 하나같이 수전노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노파의 등장은 이 매매춘이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은 화면의 왼쪽에 있는 남성이다. 이 남성은 깃털 모자의 남성보다 더 잘 갖춰 입었고, 난간의 모피코트도 그의 것으로 보인다. 흰 레이스칼라에 벨벳모자를 쓴 그는 악기와 술잔을 들고 화면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고 있는 듯하다. 이 웃음은 노파의 음흉한 미소와는 어쩐지 좀 달라 보인다.

페르메이르의 자화상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거울을 쳐다보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은 이 남성의 모습에 화가의 자화상이 담겼을 거라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페르메이르 자신이든, 아니면 모델이 돼 준 친구일지라도, 이 남성은 우리를 쳐다보며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다. ‘이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달리 무엇을 말하겠는가’라며 마치 이 장면의 진실을 똑똑히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건배를 위해 든 잔을 그림 바깥쪽 우리와 부딪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돈으로 성을 사는 이런 장면은 종종 성경 신약에 등장하는 ‘돌아온 탕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모진 고생 끝에 다시 돌아와 따스한 환대를 받는 아들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그림의 깃털 모자 남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탕자일 것이다. 결국 뼈저리게 후회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과정에서, 허랑방탕하게 벌인 일의 대명사가 성을 사는 일이라는 것, 또 그저 뚜쟁이 노파의 배를 불려주는 일이란 것은, 그림 속 인물들의 포즈만으로도 금세 알 수 있다.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갈 뿐…담담한 시선

교훈을 깔아두더라도, 이 주제는 화가들의 흥을 돋우기 충분했다. 고요한 화면의 대가인 페르메이르가 이 정도인데, 시끌벅적한 장면을 선호했던 다른 화가들은 얼마나 흥청망청 그려댔겠는가. 옷이 벗겨지고 침대로 뛰어가고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이 넘쳐났다.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장르가 된 이 시기의 떠들썩한 그림들과는 달리, 매춘업소에 머물며 관찰했던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1864∼1901)의 화면에서 여인들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물랭 가의 살롱’(1894). 19세기 후반 파리의 환락가던 몽마르트르에 아틀리에를 차리고 13년간 물랭루주를 비롯해 술집·매음굴·뮤직홀 등의 정경을 소재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의 작품이다. 당시 그린 회화는 50여점, 드로잉은 100여점에 달한다. 툴루즈-로트레크는 날카롭고 박력있는 소묘가 특히 유명한데, 그 소묘의 힘에 바탕을 둔 유화작품들은 어둡지만 강렬한, 부드럽지만 각이 잡힌 특유의 화풍을 입고 있다. 카드보드지에 유채, 111.5×132.5㎝, 프랑스 알비 툴루즈-로트레크 미술관 소장.


‘물랭 가의 살롱’(1894)에서는 화려한 기둥과 거울로 둘러싸인 붉은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 여인들이 보인다. 화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검은 스타킹에 속옷 차림으로 등받이에 기대 쉬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는 피곤함이 느껴진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목까지 감싼 옷을 입은 여인도 늙고 지쳐 보인다. 어떤 여인은 사실적으로, 어떤 여인은 코믹하게 과장돼 있지만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에 빠져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 반만 그려진 여인은 속옷 치마를 걷어 올리고, 정기적인 의료점검, 그러니까 매독이나 임질에 대한 검사를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

툴루즈-로트레크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어린시절 다리가 부러져 하반신 성장이 멈춘 채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았다. 불완전한 신체에 평생을 알코올중독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화구만 주어지면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 덕에 파리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쉬는 공간을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받고, 그들의 이면을 그릴 수 있었다.

툴루즈-로트레크의 그림 속에서 여성들은 화려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으며 유혹적이지도 않다. 어쩌다가 그곳까지 흘러들게 된 인생의 여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모습으로만 그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화가는 모델이 된 여성들에 대한 감정적 공감보다는 화면의 남다른 구성, 과감한 색채와 면 분할, 크고 작은 요소들의 배열이란 조형적 의지를 두드러지게 내보인다.

자신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매춘부 향한 연민

반면 비슷한 시기에 정말로 한 매춘 여성을 향한 연민과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에서는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반 고흐와 한 시기를 같이 살았던 거리의 매춘부 시엔은 임신을 한 상태로 그를 만났다. 임신으로 거리에 더 나갈 수도 없었던 시엔에게 반 고흐는 모델을 제안했고, 그것은 물론 생계를 해결해주기 위한 고안이었다. 그 자신도 늘 가난에 허덕였지만 반 고흐는 시엔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곧 태어난 아기에게도 사랑을 쏟았다. 하지만 반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잘 알려진 목사의 아들이며, 화상이던 동생 테오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은 이 관계를 더 지속하지 못하게 한 요인이 됐다. 그들은 2년간 함께한 후 헤어졌고, 시엔은 선원이던 남성과 결혼을 한 차례 했지만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담배를 들고 있는 시엔’(1882). 임신부로 길거리를 헤매던 매춘부 시엔(크리스틴 클라지나 마리아 후르닉)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반 고흐는 자신의 빵을 나눠주고 집세를 보태주고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시엔을 그린 60여점 중 한 점이다. 동생 태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있어.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종이에 연필과 목탄, 45.5×47㎝,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뮐러 미술관 소장.


반 고흐는 시엔을 모델로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그의 그림들 속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아기를 돌보는 등 전형적인 부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엔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포즈를 취하지 않은 듯한 ‘담배를 들고 있는 시엔’(1882)에서는 험하게 살아왔던 과거가 지워지지 않은 듯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마르고 굽은 등으로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담배를 든 채 난로를 쬐고 있다.

시엔은 자신이 성실하지 못해 매춘부가 됐다고 자책했지만, 사실 그녀를 부추긴 것은 부모와 남동생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불운은 한꺼번에 몰려와 그녀를 가까이 했던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버렸고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을 낳았으며, 반 고흐와의 사랑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엔의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는 알 것만 같다. 반 고흐는 이 여인을 그저 조형적 완성을 위한 모델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깊이 아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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