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첫 '나체 질주자' 등장[그해 오늘]

1974년 미국서 처음 시작된 '나체 질주' 스트리킹, 전 세계 확산
같은 해 3월 13일, 韓 첫 스트리커 고대 앞 도로 200미터 질주 후 잠적
경찰, 전담 수사반까지 편성했지만 검거엔 실패
인습에 대한 도전·반문화 행동 표방...美 하버드대 전통으로 자리잡아
  • 등록 2023-03-13 오전 12:03:00

    수정 2023-03-13 오전 9:14:14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비 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야이야이야이야이야~” 국내 대표 혼성 록밴드 자우림의 히트곡 ‘일탈’의 가사 중 일부다. 이 노랫말에 언급된 ‘벗고 조깅하기’는 1974년 전 세계적인 일탈 행위로 유행했다. 소위 ‘스트리킹(streaking)’으로 불리는 바로 그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의 스트리킹 모습. 사진=The Harvard Crimson.
1974년 3월 13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스트리커(streaker) 즉 나체 질주자가 출몰한 날이다. 전국적으로 아침 기온이 대부분 영하까지 내려간 초봄의 추운 날이었다.

오전 8시를 조금 넘긴 수요일 출근길,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 차도 한복판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느닷없이 뛰어들었다. 옷을 모두 벗은 채였다.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청년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 명은 나체 질주하는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옷을 들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카메라를 들었다. 청년은 200여 미터 정도 거리를 내달리다 골목길로 돌연 사라졌다. 이들의 신원은 그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튿날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스트리킹이라는 광태가 급기야 서울 거리에 출현하고 말았다. 참으로 통곡할 일이다”라고 썼다. 스트리킹은 ‘벌거벗고 대중 앞에서 달리는 일’을 뜻하는 영단어로, 1974년 초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소수 개인의 일탈로 시작됐지만 곧 단체 질주로 확대됐고 그 규모 역시 점차 커졌다.

심지어 197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데이빗 니븐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소개하던 중 갑자기 스트리커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고 카메라를 향해 당당히 브이(V) 자를 그리며 사라졌다. 이 당시 ‘20세기 가장 더러운 전쟁’으로 명명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고조된 반전 운동과 히피 문화를 자양분으로 일탈 행위를 꿈꾸는 젊은이들에 의해 처음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적인 동기 없이 벌거벗고 달리는 문화적 행위의 일종으로, 인습에 대한 도전과 반문화 행위라는 행동 철학도 담았다.

이 즈음 시작된 세계 최고의 명문 사학 미국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의 집단 스트리킹 ‘원시의 비명(Primal Scream)’ 행사는 지금도 매년 12월 연례행사로 열린다. 시험 시작 전날 학생들이 모여 30분 간 스트리킹을 하는 전통으로, 시험과 공부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하버드 공붓벌레들’의 유쾌한 일탈로 자리잡았다.

1974년 시작된 미국의 스트리킹 열풍은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까지 삽시간에 전파됐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스트리킹이 발생한 날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역시 첫 스트리커가 등장했다. 헬멧을 쓴 채 맨몸으로 히로시마 시내를 질주한 이 스트리커는 망치를 들고 등에는 ‘탄원하다’는 뜻의 ‘강소(强訴)’란 글자를 크게 써넣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스트리킹이 발생하고 이틀 뒤인 3월 15일엔 전국적으로 3곳에서 스트리킹 사건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17일 밤에는 서울 금호동에서 20대 인쇄공이 스트리킹을 하려고 옷을 벗다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트리킹을 하면 2차를 사겠다는 친구들의 말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스트리킹에 대한 처벌을 강화, 공공장소에서의 음란행위죄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즈음 전국적으로 다시 장발 단속령도 내려졌는데 그것도 스트리킹 유행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고려대 앞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우리나라 첫 스트리커가 장발족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경찰은 안암동 스트리커를 체포하기 위해 전담 수사반까지 편성했지만 그를 검거하는 덴 끝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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