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무기]미국산 불량품 고치다 탄생한 한국형 전차의 '눈'

전차 운용자의 '눈' 역할하는 조준경 국산화
외산 조준경의 불량으로 K1A1 전차용 개발 시작
개발자 혜안으로 레이저 신기술 도입
K2전차 등 모든 전자장비 국산화 토대 역할
  • 등록 2016-04-23 오전 7:00:00

    수정 2016-04-23 오후 1:57:33

이무기는 상상 속 동물이다. 이무기는 천 년을 물속에서 살며 기다리다 때를 만나면 천둥, 번개와 함께 승천해 용(龍)이 된다. 우리 군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1960년대부터 국산무기 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다. 50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은 해외 수출로 이어지며 결실을 맺고 있다. ‘용이 된 이무기’ 국산무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탱크’(Tank)로 불리는 전차는 장갑을 둘러 탑승자를 보호하고 포나 기관총을 탑재한 전투차량이다. 병력수송 능력이 있는 장갑차와는 구분된다. 100mm 이상의 대구경포와 그 만한 대구경의 포탄을 방어할 수 있는 장갑을 갖춘 지상전의 총아다.

이같은 전차의 ‘눈’ 역할을 하는 것이 조준경이다. 조준경은 전방을 관측하고 목표물을 탐지·추적해 궁극적으로 운용자가 사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광학장치다.

조준경은 전차장이 사용하는 전차장 조준경(CPS)과 포수가 사용하는 포수조준경(GPS)이 있다. 두 조준경의 기능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운용자의 용도에 따라 특정 기능이 다르다. 전차장 조준경과 포수 조준경은 전차 기관포 좌우에 탑재된다.

조준경의 구성품은 △안정된 조준선을 제공하는 안정화장치 △주·야간에 전방을 관측하는 주간광학장치 및 열상장치 △표적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구성돼 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주력 전차로 사용돼 온 ‘M47’이나 ‘M48’ 전차 등의 1~2세대 전차에서는 단순한 망원경이나 광학식 거리측정기 정도만 갖춘 형태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M1’ 전차나 ‘K1’ 전차와 같은 3세대 전차가 개발되면서 복합 다기능의 조준경으로 발전했다.

육군 5기갑여단의 K1 전차가 줄지어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K1 전차 외산 포수경 불량으로 국산화 시작

우리가 복합 다기능의 조준경을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미국 제네럴 다이내믹스(GDLS)의 도움으로 K1 전차를 개발할 때다. K1 전차의 포수 조준경은 미국 휴즈 제품을, 전차장 조준경은 프랑스 SFIM 제품을 선택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K1 전차 시험을 끝내고 한국에서 전차 생산이 시작됐다. 이때 포수 조준경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던 휴즈가 가격을 2배 이상 올렸다. 결국 다른 미국 방산업체인 티아이(TI)사의 포수 조준경으로 모델을 바꿔 기술도입 생산에 착수했다. 1987년 1단계 국산화 제품 납품 시점에 티아이사의 조준경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레이저 거리 측정이 되지 않는 등 도저히 전차에 장착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포수 조준경 납품이 중단됐고 티아이사 주도로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공은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로 넘어왔다. ADD는 1년여간의 연구끝에 관련문제를 해결했고 이 과정에서 티아이사 포수 조준경 기술을 파악할 수 있었다. 티아이사 불량품이 국산 조준경 개발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ADD는 1992년 K1전차 포수 조준경 독자 개발에 나서 1996년 국내 기술로 만든 포수 조준경을 선보였다.

이렇게 개발한 포수 조준경은 현재 우리 육군의 기갑부대 핵심 전력인 K1A1 전차에 장착해 사용 중이다. 전차 포수조준경 개발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포수 조준경과 기술적으로 유사한 전차장 조준경과 탄도계산기 등 전차 사격통제장치들이 뒤따라 개발됐다. 현재 이들 역시 K1A1전차에 탑재해 운용하고 있다. 또 ADD는 K1A1전차 조준경 기술을 바탕으로 K2 전차와 K21보병전투장갑차 등의 조준경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한국형 포수조준경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CO2 레이저 vs 라만 레이저’

모든 국산 무기체계 개발이 그렇듯 한국형 포수 조준경 개발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ADD 개발진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레이저 거리측정기 방식을 어떤 것으로 선택하느냐였다.

당시 주로 사용되던 레이저 거리측정기는 앤디야그(Nd-YAG) 레이저와 씨오투(CO2) 레이저 2가지였다. 엔디야그 레이저는 당시 미국의 모든 M1 계열 전차에 장착이 돼 있었다. 문제는 눈에 레이저를 맞으면 실명이 되는 등 눈에 해롭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개발된 것이 씨오투 레이저였다. 하지만 부품이 많고 무게가 무거운데다 비싸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개발진은 조준경에 사용할 레이저로 눈에 안전하고 구성이 간단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라만 레이저(Raman-Shifted)를 선택했다. 라만 레이저는 전차용으로는 사용된 전례가 없었다. 육군을 설득하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ADD 관계자는 “조준경 개발에는 성공하겠지만 전력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개발진은 기술적 흐름을 봤을 때 라만 레이저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포수 조준경 개발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인 1995년 유럽에서 전차에 라만 레이저를 사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뒤이어 미국도 같은 정책이 결정됐다. ADD는 이를 근거로 군과 국방부의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했다. 결국 군 운용시험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전력화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개발자의 혜안이 얼마나 무기체계 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육군 20사단의 K1A1 전차가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한국형 포수 조준경, 60% 비용 절감

한국형 포수 조준경은 미국의 M1A2나 독일의 LEOPARD2, 이스라엘의 MERKAVA 전차의 조준경과 대등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기존 조준경에 비해 기동 중 안정화 정확도와 관측 선명도, 배율 등이 증가돼 K1 전차보다 사거리가 늘어난 K1A1 전차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화면 녹화 기능이 있기 때문에 포수가 실제 사격하거나 비사격 훈련 시 표적에 대한 조준점의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훈련 효과 증진과 사격 결과 검증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또 기존의 조준경에 비해 레이저와 열상장치가 독립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편리하고 열상장치 고장 시에도 정상사격이 가능하다. 무색투명한 창을 사용하고 있어 주간 광학계 영상이 자연색으로 표현돼 관측이 편리하다. 또 기존 조준경에 비해 전력 소모가 약 40% 감소해 전차가 시동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동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적에게 발견되지 않고 조용히 기동할 수 있는 ‘기도비닉’시 사용하는 데 유리해진 것이다.

경제적 효과도 컸다. 기존 미국 티원사의 포수 조준경에 비해 가격이 60% 이하 수준으로 줄어 K1A1 전차 장착시 막대한 국고 절약에 기여했다. K1 전차의 씨오투 레이저 거리측정기 부품이 단종돼 유지·보수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준경 국산화는 단순히 외산 대체를 넘어서 전력 유지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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