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꾸고 머리 자른 '위대한 엄마'.."도쿄 넘어 베이징 간다"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이도연 선수 인터뷰
46세 나이에도 완주행진..연일 감동드라마
특유의 친화력으로 북한 선수단과도 친분
"허송세월한 15년 아쉬워..최선 다하며 살 것"
  • 등록 2018-03-18 오전 10:08:19

    수정 2018-03-18 오후 6:08:44

13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패럴림픽 장애인바이애슬론 여자 10㎞ 좌식 경기에서 한국 이도연이 결승선을 통과 후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평창=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12위, 13위, 11위, 19위...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노르딕스키(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에 출전한 이도연 선수의 성적표다. 종목별 출전 선수가 15명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꼴지에 가까운 결과다. 하지만 관중들이 보낸 환호성은 금메달 못지 않다. 14일 경기 직후 한 중년 여성이 꽃다발을 전달하자 환호와 박수소리는 더욱 커졌다. 기자가 완주 소감을 묻자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어떻게 포기하냐”며 밝게 웃었다.

올해로 마흔여섯. 이도연 선수는 국가대표 스키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도 그의 막내딸보다 어리다. 하지만 동료들을 대하는데는 스스럼이 없다. 스무살 이상 어린 북한 선수들이 그를 “엄마”라 부를 정도다.

그는 “올해 초 독일 월드컵 대회에서 코스를 가르쳐주며 북한 선수들과 친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북한 선수들과 함께 코스를 둘러봤다. 동계패럴림픽 첫 출전인 북한 선수들에게 그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됐다. 이 선수는 “(북한 선수단은)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면 들은 척도 안하는데 내가 부탁하면 사진도 잘 찍어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기 때마다 소리쳐 서로를 응원했다.

11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2018평창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좌식경기가 열리기 전 진행된 훈련에서 한국 이도연 선수(맨 오른쪽)가 북한 마유철, 김정현 선수 등 북한팀에게 코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름 바꾸고, 머리 자르고 ‘세상 속으로’

이도연은 열아홉이 되던 1991년. 사고로 허리를 다쳤다. 집 밖으로 나서는 일도 별로 없었다. 15년만에 그를 대문 밖으로 이끈 건 탁구였다. 1997년 어머니의 끈질긴 권유로 가까운 생활체육센터에서 라켓을 잡았다.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이 국가대표가 되자 국가대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극마크의 벽은 높았다. 2012년 육상으로 종목을 바꿨다. 장애인전국체전에서 창, 원반, 포환던지기 모두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좌절해야했다. 그의 성적으로는 국제대회 출전권조차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육상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체력소모가 큰 종목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핸드사이클에 도전한 이유다. 사이클을 타겠다고 결심한 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법원. 이름을 바꾸고 새 삶을 살고 싶었다. 가족들은 ‘나이 먹어서 무슨 개명이냐’며 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용실에 들러 긴 머리도 짧게 잘랐다. 기분이 상쾌했다. 개명 전 이름을 묻자 “움츠린채로 살았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곧바로 “이도연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스팔트’에서 ‘눈밭’으로

핸드사이클 국가대표 이도연 선수.(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다시 태어난 이도연은 금빛 질주를 시작한다. 핸드사이클에 입문한지 5개월만에 국내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태극마크를 단 그는 이듬해인 2014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 월드컵에 이어 세계선수권대회 도로독주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괴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개인도로 경기 중 사이클이 뒤집혀 한쪽 페달이 망가졌는데도 다른쪽 페달만 돌려 3등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핸드사이클 입문 3년만에 리우패럴림픽에 출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에는 눈밭으로 나섰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앞두고 선수를 찾던 감독들의 눈에 띄었다. 노르딕스키는 어깨와 팔을 주로 사용하고 폐활량과 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핸드사이클과 사용하는 근육이 비슷하다. 폐활량과 지구력을 갖춘 이 선수가 딱이었다. 하지만 훈련은 쉽지 않았다. 그는 “눈밭은 도로와 많이 달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며 “추위와도 싸워야했다”고 말했다. 넘어지면 혼자 장비를 풀고 헤쳐나오기를 수차례. 결국 원하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를 힘들게 한건 눈밭만이 아니다. 이 선수는 “장애인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실업팀이 많지 않아 장비나 훈련비용을 사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장애인 선수들을 광고모델로 발탁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는 “배동현 선수단장이나 권지훈 노르딕스키연맹 사무국장 등 도움을 주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이번 패럴림픽을 계기로 조금씩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5년 허송세월 아쉬워..도쿄 넘어 베이징 도전”

패럴림픽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이도연 선수가 14일 경기 직후 평창 패럴림픽 선수촌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선물받은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는 요즘 ‘배려’를 배우고 있다. 이 선수는 “사이클 선수로 승승장구할 때는 하위권 선수를 이해할 생각조차 못해봤다”며 “내가 웃고 있을 때 꼴등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걸 요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꼴등한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는걸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면서 “핸드사이클 경기에 나서더라도 하위권 선수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선수가 가장 아쉬워하는건 ‘나이’다. 그는 “조금만 더 젊었다면 더 많은 종목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장애를 얻은 이후 숨어살다시피 했던 15년이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패럴림픽 금메달이 꿈이기 때문에 힘 닿는데까지 도전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주 종목인 핸드사이클 합숙훈련이 예정돼있다. 휴식기간은 단 2주 뿐. 2020년 도쿄 하계패럴림픽에 도전하기 위한 강행군이다. 출전권을 얻으려면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컵 등에서 반드시 두 번 이상 우승해야하기 때문에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지난 리우패럴림픽 때 놓쳤던 금메달을 반드시 따고야 말겠다”며 “젊은 선수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만큼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에서도 노르딕 스키 국가대표로 나서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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