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100일 여행기

시작은 중앙아시아 5개국 100일 여행
여행의 권태를 해소하려 건너간 코카서스 3국
사람 만나러 가서 사랑 받고 온 유럽
  • 등록 2019-08-11 오전 12:14:08

    수정 2019-08-11 오전 9:22:37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배낭여행에 재미를 붙였다. 다음 여행지를 찾아보던 중에 중앙아시아가 눈에 들어왔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분명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름 말고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주변에도 중앙아시아에 가봤다는 사람도 없고, 인터넷에 정보도 별로 없었다. 구글에 검색된 사진을 보니 때묻지 않은 자연이 아름다워 보이긴 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자연이 아름답다? 다음 여행지로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첫 여행 다녀온 지 2년 만에 중앙아시아로 떠났다. 100일 동안 중앙아시아 5개국을 도는 게 원래 목표였는데, 역시나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시작한 여행은 상상도 못했던 장소들을 거쳐서 베를린에서 끝나게 됐다. 100일이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중앙아시아 여행 전반부가 자연에 취하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역사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중앙아시아 ? ?끗한 자연에 실크로드 역사를 더하다

중앙아시아 여행의 시작은 꽤 순조로웠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시작해서 산과 계곡, 호수를 가리지 않고 트레킹, 승마, 캠핑, 온천 등 여행자가 체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경험했다. 아프리카 여행 때는 그렇게 만나기 힘들던 한국인들도 만나서 같이 트레킹도 하고 밥도 얻어먹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자연도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딱히 힘든 게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가면서 여행이 조금 드라마틱해졌다. 원래는 타지키스탄의 유명한 ‘파미르 하이웨이’를 자전거로 여행할 계획이었는데, 자전거 탄 지 하루 만에 한계를 느끼고 자전거를 버렸다. 그리고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대중교통은커녕 차도 거의 안 다니는 곳이라서 히치하이킹이 될까 싶었는데, 그게 됐다. 아무런 친분도, 돈도 없이 엄지손가락만 치켜든 여행자에게 하루 한 대 이상의 차들이 꼬박꼬박 호의를 베풀어줬다. 그리고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다른 여행자들을 사귈 수 있었는데, 그들이 소개해준 장소들이 정말 취향저격이었다. 생각도 못한 타지키스탄의 아름다운 자연에 카메라 셔터가 쉴 틈이 없었다. 눈 정화는 덤이었다.

그 다음에 향한 우즈베키스탄은 역사여행의 맛을 알려준 곳이었다. 아프리카 여행 때부터 줄곧 여행의 목적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즈벡에서 천 년 전 이슬람 사원, 학교, 무덤 등을 접하면서 여태 책으로만 배웠던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너무나 단편적이고 건조했던 역사는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천 년 전 우즈벡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며 삶이란, 역사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사색할 기회를 가졌다. 한식당이 많아서 하루가 멀다 하고 한식을 먹던 것은 우즈벡 여행의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그렇게 중앙아시아 여행은 자연의 풍성한 아름다움에 취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도 얻는 알찬 시간이 됐다.

조로아스터교 성지와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 등 코카서스 3국은 개성이 넘치는 곳들이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코카서스 3국 ? 조로아스터교?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아프리카 여행 때도 그랬는데, 중앙아시아 여행 한 달 반 정도를 넘기니 전에 없던 권태감이 찾아왔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도 없고, 무얼 봐도 이전에 봤던 것 같았다. 몸에 힘도 없었다. 우즈벡 여행을 마쳤을 때가 딱 그랬다. 원래 계획대로면 카자흐스탄을 둘러봐야 하는데, 이렇게 아무런 감흥 없이 카자흐스탄 여행을 계속하는 건 시간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지도를 뒤적거리던 중에 카자흐스탄 서쪽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른바 코카서스 3국을 발견했다. 처음 듣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이 새로운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예정에 없던 전혀 새로운 여행인데.’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고, 그렇게 카스피해를 건너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도박을 감행했다.

도박은 성공했다. 코카서스 3국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독특함이 있었다. 우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에 있는 세계 3대 조로아스터교 성지 ‘아테시카 사원’에선 이름으로만 접했던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배워볼 수 있었다. 2만 년 전 암각화가 가득한 고부스탄(Qobustan), 대장장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 라히즈(Lahij), ‘칸사라이 궁전’과 옛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가 남아 있는 쉐키(Shaki)까지. 아제르바이잔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곳이었다.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도 새롭긴 마찬가지였다. 중앙아시아부터 아제르바이잔까진 계속 이슬람 문화권이라서 이슬람 양식, 분위기에 익숙했는데, 아르메니아에선 모든 게 달랐다. 구경하는 건축물도 모스크, 마드라사에서 수도원, 교회로 바뀌었고 그에 맞춰서 사람들과 도시, 자연의 분위기까지 달라진 느낌이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의해 아르메니아인이 150만 명 이상 학살당했단 사실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기념관’을 가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이어주는 조지아는 ‘동유럽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경이로운 자연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비록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오갈 때 잠시 머물기만 해서 여행은 못했지만, 나중에 꼭 제대로 여행을 해봐야겠다 싶은 곳이 바로 조지아였다.

계획에 없던 코카서스 여행은 결국 성공적이었다. 여태껏 알던 범주를 벗어나는 다양한 매력이 숨어 있는 곳이 바로 코카서스였다. 이왕 경로에서 이탈한 거, 어디까지 갈지 이젠 감도 안 잡혔다. 다만 현재의 여정은 확실히 즐거웠다.

아프리카에서 맺은 인연은 나를 유럽으로 이끌었다. 리투아니아에서 과분한 대접을 베풀어줬던 비타와 프란체스코.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유럽 ? 여행이 이어준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준 여행

코카서스 여행을 마친 뒤의 발걸음은 유럽으로 향했다. 사실 유럽은 예전부터 끌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여행도 많이 가고,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안 나서 재미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유럽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교회를 다니던 지인 한 명은 오스트리아에, 아프리카 나미비아를 여행할 때 만났던 커플은 리투아니아에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같은 기숙사에 살았던 동창이 독일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이 사람들을 직접 찾아갈 기회가 지금이 아니면 있을까 싶어 유럽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일정은 지인 찬스 덕에 굉장히 편했다. 뭘 구경할지 안 찾아봐도 되고,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저곳 부딪히며 시행착오를 거칠 일도 없었다. 지인이 데려가주는 대로 가고, 먹여주는 대로 먹으면 됐다. 마침 지인이 건축학도라서 성당이나 궁전을 데려가면 디테일이 살아 있는 설명을 곁들여주기도 했다.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그리고 비엔나를 여행하는 내내 엄청난 힐링을 받았다. 여행이 이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나미비아에서 만났던 커플, 비타와 프란체스코를 리투아니아에서 재회했을 땐 정말 감동이었다. 나미비아에서 차도 없고 투어도 못 구한 채 사막에 못 가고 끙끙대던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게 바로 그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동행했던 3박4일은 아프리카 여행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추억으로 남았다. 은인이나 다름없던 그들을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들은 변함없이 친절했고 나를 진심으로 대해줬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고, 생일파티도 함께 즐겼다. 1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자신들의 집에 편하게 머물도록 배려해주기까지 했다. 한국도 아닌 곳에서 이런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유럽의 마지막은 졸업 7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장식해줬다. 비록 졸업 이후로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지만, 베를린 지하철역에서 다시 만났을 땐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어제 같이 놀다가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친구를 잘 둔 덕에 베를린은 아주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과거 동독, 서독이었던 지역이 현재까지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 수제버거는 어디가 맛있는지, 영화 <베를린>은 어디서 촬영했는지 등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해줬다. 또 친구가 자취방에서 직접 끓여준 설렁탕과 부대찌개는 여행 중에 먹었던 어떤 한식보다도 더 맛있었다. 짧은 재회의 시간이었지만 다시 만난 반가움과 베풀어준 친절의 감동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만남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한 유럽에서의 시간은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이나 시행착오는 없어도,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지쳤던 마음이 다시 회복됐다. 오히려 고마움과 감동으로 더 많이 채워졌다. 어딜 가서 뭘 보고 무슨 사진을 찍었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남들 다 가는 유럽이라고 안 갈 줄 알았는데, 결국 사람 보러 갔다. 중앙아시아 여행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베를린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준 친구와 인사를 하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 시작할 땐 중앙아시아 5개국만 돌자던 여행이 베를린에서 끝이 날 줄 누가 알았을까? 역시 여행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너무 재미있었다. 이번 여행은 아마 정리하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걱정 반 즐거움 반의 마음으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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