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마른 벤처에 '악마의 유혹'…고리대 장사 나선 증권사들

[고금리 장사 먹잇감 된 K-벤처]①
실리콘밸리 벤처대출 모델, 국내 도입 시동
국내에선 고금리 장사로 변질 조짐
원리금 상환 조건에 10%대 고금리
불리한 특약도 다수
  • 등록 2022-08-11 오전 3:00:00

    수정 2022-08-12 오후 3:47:35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벤처기업 전용대출 확대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실리콘밸리식 벤처대출 모델을 차용해 스타트업 등에 돈 빌려주는 상품을 도입한 곳이 늘고 있다. 그러나 기본 10%대 고금리에 증권사의 리스크만 최소화하는 방식이어서 벤처기업 재무사정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일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인 증권사와 중기특화 증권사를 중심으로 벤처기업 전문 대출 ‘벤처뎃(Venture Debt)’이 도입되고 있다. 벤처뎃은 미국의 벤처금융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제공하는 혁신기업 대출 모델을 차용한 대출 상품이다. 자금이 필요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성장성을 보고 자금을 내어줘 모험자본 공급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현재 증권사 IB 영업팀 사이에서는 잠재적 대출 후보군을 선별한 리스트가 공유되고 있다. 기업별 매출 동향과 관계 시장, 매출 등을 분석한 자료를 기반으로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검토하는 양상이다. IB업계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후보 리스트에 거론되는 기업들은 배달플랫폼 ‘요기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왓챠’, 성형정보플랫폼 ‘강남언니’ 등이다. 대출 리스크 분산을 위해 특정 기업에 공동 대주를 제공할 대주단을 꾸리는 물밑 협상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에서 공동 대주 제안이 들어와서 들여다보고 있다”며 “당사의 경우 아직 본격적으로 대출 실행 보다는 내부 검토 중인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벤처기업 ‘착취’ 수준 대출…원리금상환에 10%대 고금리


문제는 국내 증권사들이 도입해서 개조한 벤처대출 모델의 조건을 들춰보면 해외와 다르게 벤처기업에 불리한 조건이 많다는 점이다. 미국 SVB 대출의 경우 통상 10% 안쪽의 이자율에 원금 상환 유예기간을 부여한다. 대출을 받은 기업에는 해당 SVB가 연계해주는 사모펀드나 VC에서 투자를 받고 대출을 상환할 기회도 열려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우선 시작 이자율이 10%부터다. 도입 초기 단계지만 평균 12~13% 이상으로 영업 목표가 설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 범위를 2.25~2.50%로 끌어올린 만큼 상단은 이미 한국 기준금리 2.25%를 넘어선 상태다. 그럼에도 국내 증권사의 벤처대출 금리가 미국 SVB보다 높은 것이다.

게다가 이자 유예 기간 없이 대출 실행 익월부터 바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원리금 상환 구조다. 해당 기업이 매월 매출분이 입금되는 내역을 사전에 인증한 계좌를 대상으로 대출금 자동이체를 건다. 이밖에 대출을 진행할 기업별로 각 여건에 다르게 특약도 걸린다. 일반적으로는 선순위 변제조항 및 월별 매출동향 정보 제공 등 채무상환 가능성과 관련해 증권사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사항을 다수 포함하는 내용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팀 실무 담당자는 “원리금상환 방식을 쓰면 회사(증권사)가 안게 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벤처 기업 영역은 이자라도 높이지 않으면 사실상 대출을 내줄 수가 없다”며 “실리콘밸리 유형으로 완전히 똑같이 갈 수는 없다. 시장 환경이나 기업 성장 상태가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이같은 유형의 대출이 정착되면 벤처기업들의 재무사정만 악화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벤처캐피탈(VC) 대표는 “시중은행에서 마련 못할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의도라면 살펴볼 부분이 있겠다. 급해서 일시적으로라도 빌리려고 하는 사례들이 나올 것 같다”며 “문제는 벤처기업들이 그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유동성 악화에 휘청이는 기업 속출…고금리 고통 감수할 듯

증권사들이 기업에 크게 불리한 조건을 책정하고도 대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최근 시장 유동성이 말랐기 때문이다. 가파른 금리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에 주요 VC와 기관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고 투자를 꺼리는 상황. 우량 기업도 자금 조달에 실패하거나, 목표 자금 모집에 현저히 미달하는 사례가 흔해진 시기다. 성장 초기 단계라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거나, 안정기에 돌입하기까지 자금 투입이 더 필요한 벤처기업의 재무 사정은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고금리더라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투자 유치를 받기 전까지 숨통을 틔우기 위해 대출을 원할 곳들이 많을 것이라는 평가다.

증권사 IB 영업팀에서 공유되는 대출 검토 가능한 기업을 선별한 리스트.(자료=투자은행업계)
실제 왓챠의 경우 1000억원 규모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에 실패한 뒤 단기자금 조달을 위해 자본시장 곳곳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 ‘오늘회’도 유동성 악화 문제로 협력업체에 대금 정산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오늘회 관계자는 “업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대금 정산 지연은 회사의 정산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 일시적 문제”라며 “지연 문제는 현재 순조롭게 해결되고 있다”고 입장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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