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없었으면…포스트 봉준호 문제의식에 공감대

  • 등록 2020-02-20 오전 8:21:36

    수정 2020-02-20 오전 8:21:36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제2의, 제3의 봉준호는 나올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아카데미 다관(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계기로 ‘한국영화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영화계 안팎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봉준호 첫 번째 장편 ‘플란다스의 개’
국내 영화산업은 지난해 5편의 천만영화를 배출한 이면에 중박영화 실종, 중저예산 영화 부진, 다양성 부재 등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12일 발표한 2019년 한국영화산업결산에 따르면, 1~3위의 영화의 하루 상영횟수는 지난해보다 1.7%포인트 늘어난 69.2%를 차지하며 스크린 독과점이 더 심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독립·예술영화는 ‘벌새’(14만명) ‘윤희에게’(11만명) 등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선전에도 전체로는 810만명으로 전년 대비 5.6% 감소하며 더 침체됐다.

영화 전문가 및 산업 종사자들은 점점 더 창의적인 영화와 감독을 배출하기 힘든 제작 환경임을 지적한다. 단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장편 ‘플란다스의 개’가 나왔던 2000년의 제작 환경과 지금의 제작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플란다스의 개’는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반려견 실종사건을 통해 현대인의 도덕 불감증과 위선을 그린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 작품이다. 흥행에 실패를 했으나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을 흥미롭게 본 송강호가 주연한 덕분에 신인감독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살인의 추억’은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살인의 추억’은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이 됐다. 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괴물’의 제작자인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은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등이 나온 시절에는 감독뿐 아니라 제작자도 투자자도 ‘이 영화는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제작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자본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점점 더 안전한 투자만 하게 되고, 다양한 영화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봉준호 감독이 등장했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최근 회생절차에 들어간 시네마서비스를 비롯해 중소 배급사 및 제작사가 여럿 존재했다. 그들로 인해서 영리적 목적의 영화만이 아닌 다양한 영화가 꽃피울 수 있었다. ‘쉬리’를 거쳐 첫 천만영화 ‘실미도’가 탄생하고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임상수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등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극장은 지금처럼 소수의 영화가 스크린을 독식할 수 없었다. 지금도 회자되는 국내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2002년 상영시간표는, 전체 16개 상영관에 16개의 영화가 퐁당퐁당 없이 상영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황금 편성’이다.

한국영화산업은 대기업 자본의 주도로 지금 같은 상업영화 중심의 산업구조로 고착됐다. 거대 자본이 산업을 키우고 한국영화의 양적·질적 성장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나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최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이 청년 시절 영화 공부를 하면서 가슴속에 간직해온 말이라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소감이 인상적이었는데, 과연 지금의 한국은 개인적인 것들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인가 의문이 든다”며 “대기업이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의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제2의, 제3의 봉준호 감독이 나올 수 있다”고 주지시켰다. 그러면서 업계의 불공정 행위가 만연한 데에는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의 방조 책임이 크다며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크린 독과점을 방지하는 여러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화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스크린 상한제를 골자로 한 영화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작과 투자, 배급이 모두 1000만 관객에 매달리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제2의, 제3의 봉준호를 만들 수 없다”며 “오는 2월 국회에서 스크린 독과점 방지법 통과부터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인재 발굴 및 육성의 중요성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재능 있는 인재를 키워낼 여건과 분위기를 갖췄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원승환 관장은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실패에도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올 수 있었던 건 감독의 비전과 작품의 가능성을 믿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라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비전을 구현할 수 있고,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의 기회를 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한동안 침체해있던 한국영화산업에 새로운 활기 및 자극을 불어넣고 있는 모양새다. 최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영화계뿐 아니라 영화계 밖에서까지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제2의 봉준호가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한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한국영화와 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내세웠다. 영진위 비상임 위원으로 활동 중인 최재원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대표는 “우리는 물론 미국사회에서도 다들 놀란 굉장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얼마만큼 한국영화계에 포지티브한 혁명을 가져올지 지금 당장 판단하기 어려우나 포스트 봉준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유의미 하다”고 짚었다.

‘기생충’
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한 봉준호 감독
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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