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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 곳 찾아라'…PEF와 VC, 무한경쟁 돌입

[투자 춘추전국시대]②
PEF 지방까지 돌며 초기기업 물색
스틱인베 등 다수 사모대출도 진출
VC, 투자금액 올려 경영권 도전
"중장기 전략과 맞아 투자처 물색"
"복수의 투자러브콜에 수익률 미지수
운용사 실력 따라 옥석가리기 본격화"
  • 등록 2022-05-17 오전 3:40:00

    수정 2022-05-17 오전 6:45:48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한 중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다니는 A씨는 이전과 비교해 일이 확 늘었다. 회사에서 펀드 규모를 키우기로 하면서 투자처로 들여다보는 회사 숫자가 몰라보게 늘어난 영향이다. 하우스(사내) 분위기는 이미 치열해진지 오래다. ‘남들보다 한발 빨라야 한다’거나 ‘딜소싱(투자처 물색)에서 밀리면 안 된다’라는 기조 아래 벤처캐피털(VC) 영역인 초기 투자까지 검토하면서 지방 출장도 늘었다.

파트너급과 주니어급 직원들 사이 투자 방향을 두고 의견 차이가 빚어지기도 한다. 최근 주목받는 투자처에 자금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니어 의견에 과거 트랙레코드(투자경험) 등을 앞세워 투자를 끌고 가려는 파트너들의 견해가 충돌한 탓이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내던지고 PEF 업계에 뛰어든 A씨지만 최근에는 불안감도 지울 수 없다. 공격적인 투자에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게 긍정적이라면 펀드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마주쳐야 할 파장도 만만치 않아서다. A씨는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률이 더 중요해졌다”면서도 “괜찮은 투자처가 정해져 있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막 오른 투자 춘추전국시대…거세지는 영역 파괴

넘쳐나는 유동성(시중자금)에 펀드 규모를 키운 PEF 운용사와 VC들의 ‘투자 춘추전국시대’ 막이 올랐다. 기업 초기(시드) 투자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 차익을 먹거리로 하던 VC와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이후 밸류업(가치상향)으로 차익을 노리던 PEF 운용사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PEF 운용사들이 시드 투자 성격의 자금을 투입하거나 사모 대출시장에 나서는 한편 엑셀러레이터나 VC들이 바이아웃까지 검토하는 영역 파괴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뜨거운 분위기는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100곳 넘는 중견 기업들에 시드 투자를 단행한 엑셀러레이터 B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회사 설립 최초로 바이아웃을 검토하다 투자를 철회했지만 엑셀러레이터가 경영권 인수를 검토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B사 관계자는 “기존 투자사들과의 시너지는 물론 회사가 중장기 전략과도 방향성이 맞아 투자를 검토했다”며 “여러 상황상 투자를 철회했지만 추후에도 투자처 물색을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자본시장 내 영역 파괴 바람을 두고 자본시장 내 운용사들 보유 자금이 급증한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자금은 늘어났는데 자금을 뿌릴 투자처가 제한적이다 보니 복수의 투자 러브콜은 물론 투자처별 자금 규모까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 VC 관계자는 “과거에는 투자처당 2억~3억원을 투자했다면 요즘에는 2~3배 또는 그 이상의 금액을 바로 투자해야만 뺏기지 않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전세난 시기 ‘전세 계약’에 비유하기도 했다. 투자에 앞서 회사 상황을 꼼꼼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일단 투자를 단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운용사들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투자자 중심이었다면 요즘에는 투자처들이 주도권을 쥐는 경우도 많다”며 “일단 앞선 투자 단계에 들어가야 다른 투자 주체가 들어와도 유리하기 때문에 조속히 투자를 집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자저 다각화 나선 PEF…VC들 초긴장

조 단위 펀드를 앞다퉈 조성하고 있는 PEF 운용사들도 투자 다각화에 따른 수익률 사수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사모대출펀드 조성과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등과 같은 투자처 확대다.

국내 PEF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이달 1일 크레딧 투자 본부를 신설하고 사모대출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PEF 운용사들은 지난해 10월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투자 영역이 직접대출과 메자닌 등으로 확대되자 앞다퉈 사모대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사모대출펀드는 바이아웃보다 수익률은 낮지만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미 IMM PE가 지난 2020년 IMM크레딧솔루션을 설립하고 SK루브리컨츠 지분 49% 인수(1조원)와 온라인 패션 플랫폼 W컨셉(1000억원)에 투자를 단행했다. 글랜우드PE도 사모신용펀드(PCF)를 조성하고 LG S&I코퍼레이션 건설 부문 인수에 1000억원을, 한화솔루션 첨단소재 사업부 지분 49% 인수에 약 6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VIG파트너스 역시 지난해 12월 3600억원 규모의 크레딧 펀드를 조성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사모대출 시장 규모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미쳐 예상하지 못했다”며 “운용사 입장에서도 바이아웃 말고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기 위해 추구하는 하나의 전략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형 PEF 운용사와 VC들 사이에서 가업승계 이슈가 있는 지역 중소기업을 눈여겨 보고 있다. 투자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인수 이후 기업 개선에 나서기 수월한 구조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재 자본시장 흐름이 이상적이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결국 자금에서 밀리는 VC나 엑셀러레이터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또 자금력을 앞세운 사모펀드들이 매물을 쓸어가면서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M&A에 나서는 기업들이 기회를 잡기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시중에 있는 유동성이 언제 마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모두가 수익률이 잘 나올 수 있는 시장 구조는 안 될 것이다”며 “운용사별로 실력이 드러나는 옥석가리기 국면이 앞으로 본격화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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