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일 베이스 “묵묵히 걸은 길.. 이제 덴마크 여왕이 제 ‘보스’”

亞 최초 덴마크 로열오페라 종신계약
세계서 가장 화려한 철옹성 뚫은 건 꾸준함
청각 이상에 성악 그만둘 뻔.. “가족이 힘”
  • 등록 2019-06-17 오전 6:00:00

    수정 2019-06-17 오전 6:00:00

고경일 베이스(오른쪽)가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에서 페란도 역을 맡아 노래하고 있다. 그는 270년을 자랑하는 덴마크 로열오페라극장과 종신계약을 맺은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성악계에 다시 경사다. 덴마크 로열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던 고경일 베이스가 종신계약을 맺었다. 2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이 아시아인과 종신계약을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유학을 떠난 후 17년간 프랑스와 독일 등 성악의 본고장을 종횡무진하다 결실을 보았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고 바리톤은 12일 이데일리와 진행한 서면인터뷰에서 “성악가로서 덴마크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평생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명예이자 영광”이라며 “인생의 반을 유럽에서 보내며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잦았는데 묵묵히 버텨내니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덴마크 로열 오페라극장 종신 솔리스트가 된 소감을 알려주세요

“덴마크 코펜하겐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평생을 노래한다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입니다. 사실 유럽 오페라극장의 대부분의 솔리스트는 단기 계약으로 활동을 합니다. 스포츠선수들이 팀을 옮겨다니는 것처럼요. 저 역시 2020년 7월까지 계약이라 연장이 안 될 경우 이곳을 떠나야 하나 생각했는데 종신계약을 맺었습니다. 솔리스트의 종신계약은 극장의 엄청난 결정입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죠.”

-종신계약을 맺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덴마크 로열 오페라극장은 270년간 한 번도 아시아인과 전속계약을 맺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보수적이죠. 처음이라는 게 많이 힘듭니다. 처음 오디션을 하고 난 후에도 극장 측에서 일주일 뒤에 한 번 더 다른 레퍼토리로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오페라는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인들의 삶 일부분입니다. 우리 판소리를 외국인이 하면 신기해 보이듯이 아시아인이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게 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익숙하지 않았을겁니다. 어쩌면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약해온 선배 성악가의 도움을 받은 듯해요. 길을 닦아놓으셨기에 제가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아시아인이라 겪은 편견이나 오해가 있었나요

“편견이라기보다 익숙함 때문입니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아시아인보다 유럽 출신을 우선합니다. 이를 뛰어넘으려면 그들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더 공부하고 컨디션을 관리해야합니다. 생김새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다른 장점을 살려야 하죠. 이를테면 성실함입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며 공연과 리허설을 취소한 적은 없습니다. 극장 측에서 종신계약을 제안한 것도 이 점을 높게 평가한 듯합니다.”

-최근 덴마크 왕세자 내외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왕가의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기에 이들과 겪은 일화가 궁금해요

“어느 날 덴마크 여왕께서 공연을 보러 오셨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데 무대감독이 여왕이 앉아계신 곳에 가서 먼저 인사를 하고 관객을 바라보더라고요. 극장 안에 여왕 전용석도 있지요. 유럽에서 수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이제는 여왕께서 오셨다고 하면 자동으로 그쪽을 향해 예의를 올립니다. 어쩌면 제가 다니는 직장의 ‘보스’이시잖아요.”

-덴마크 로열 오페라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노래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오페라극장을 봤을 때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천장에 도금을 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오페라하우스거든요. 출근할 때마다 이곳의 솔리스트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타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가끔 향수병에 걸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일했던 2010년엔 왼쪽 귀가 잘 안 들리고 이명이 생겨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성악을 그만둬야하나 했죠. 다행히 6개월여 만에 청력을 되찾았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극복의 힘은 가족 덕입니다. 2016년부터 덴마크 국립방송국 합창단에서 일하는 아내를 비롯해 지난해 8월에 태어난 사랑스러운 딸이 힘이 됩니다.”

-유럽에 도전하려는 후배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렵네요. 다들 각자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술이라는 길을 택한 이상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저 역시 수없이 실패를 겪었습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타이밍과 운이 따랐을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욕심부려선 안 되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다보면 일이 잘 풀리는 순간이 올 겁니다.”

고경일 베이스
고경일 베이스가 종신계약을 맺은 덴마크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무대. 선박왕인 멕킨리 모엘러가 5000억원을 들여 지었고 이후 덴마크 정부에 헌납해 2005년 베르디의 ‘아이다’로 개관했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오페라극장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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