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고 상당 부분은 안전시설·안전경영 등 구조적 문제가 크지 단순 실수가 아니다. 사망 사고에 대한 처벌의 열쇠는 법원이 쥐고 있다.”(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 노력에도 지난해 공공기관의 산업재해 사망 사고는 오히려 전년보다 늘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책임 강화와 현장 관행 개선 등을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산업 안전 정책 목표인 ‘산재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가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재 예방 정책 방향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형배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만든다고 현장에서 실행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 업무관행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작업의 수가 늘어나면 사망자수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명구 교수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은 대규모도 있지만 중소규모 사업장 수가 더 많은 것도 원인일 수 있다”며 “중소기업 대상으로 징벌 위주보다 계도 위주의 산재 예방 안전대책을 수립해 집중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로 현장 근로감독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면 아직도 정부 정책은 초보 단계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사업장별 안전 감찰보다 사업장 스스로 산재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재 예방 정책 수립에 필요한 산재보호기금은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중소규모 사업장의 산재 예방 활동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산재 예방 활동 사업비 상향이 필요하지만 매년 산재기금 2.4% 내외인 3700억원 가량만 책정한다”며 “산재기금 주수입원은 개별사업장에서 징수한 산재보험료로 여유자금이 전체 50%를 상회하는데 이는 예방사업비 책정을 지나치게 절감했거나 산재보험료를 필요 이상으로 징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일반회계에서 산재기금 전입금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정부 전입금은 매년 155억원으로 산재 벌금·과태료보다도 적다”며 “산재기금은 기업체가 공동 보험기금을 형성하고 운영 책임을 정부에 의뢰한 것으로 기금 지출입 계획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산재 예방 정책의 전문성·책임감의 필요성을 들었다. 그는 “정책을 만드는 고위 공무원과 현장 감독관은 잦은 인사이동으로 전문성이 떨어지고 책임감도 덜하다”며 “페이퍼상으로 충분한 것처럼 보이는 대책을 만들어도 현장에서 작동하기가 어려운 이유”라고 꼬집었다.
|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은 공공기관에도 중요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중대재해법 제5조에서 도급·용역·위탁 등에서 실질 지배·운영·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 발주자의 책임을 부여해 공공발주 대표 발주자인 공공기관장의 책임이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해당 법의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의 차별성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중대재해법 당초 제정 목적은 불량 사업장에 대한 산안법 양형 기준이 지나치게 낮고 실질 경영자 처벌이 어렵다는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며 “영국의 경우 양형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의 2.5~10%에서 벌금을 부과하고 심각한 위반은 상한선을 배제하는데 중대재해법은 여전히 벌금 규정이고 중대재해에 대한 벌칙 하한선 규정도 도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38명이 사망한 이천 화재사고 1심 판결에서 기업은 벌금 3000만원을 선고 받고 경영책임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며 현재 처벌 수준의 미미함을 지목했다. 그는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 열쇠는 법원이 쥐고 있는데 법원은 산재 사망에 대해 여전히 실수로 사람이 죽으면 강하게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사망 사고는 단순 실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하위법령에서 법에서 정하지 못한 세부 규정을 노사단체, 전문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으로 제정한다면 산재 감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