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호가 털어놓은 PS이야기..."곰 두 마리 업고 뛴 기분"

  • 등록 2011-11-03 오전 9:51:40

    수정 2011-11-03 오전 9:56:50

▲ SK 정상호. 사진=SK와이번스
[이데일리 스타in 박은별 기자] "진짜 곰 두 마리가 내 허리와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어요."

SK '안방마님' 정상호는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아주 듬직한 외모다. 좀처럼 아플 것 같지도 않은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

하지만 그런 그에게 포스트시즌 전경기 출석은 힘든 일이었나보다. SK는 역대 최다 포스트시즌 경기(14경기) 기록을 세웠다. 정상호는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모든 경기를 소화한 유일한 포수다. 데뷔 후 올시즌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과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하루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 때문이었다.

뛰고, 부딪히고, 막아내고. 궃은 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직책의 특성상 허리, 무릎, 골반 등 아픈데가 없는 그였다. 그의 옆에만 가면 파스 냄새가 진동했을 정도였다. 여기에 목 감기, 콧물 감기까지 걸려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즌을 마친 이틀 뒤 정상호는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아쉽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직 끝난 것 같지 않고 오늘도 옷입고 게임하러 가야할 것 같고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아직까지는 시즌의 여운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이만수 SK 감독이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고마움을 느꼈던 선수는 정상호였다. 이 감독의 인터뷰마다 정상호의 이름이 빠진 적은 거의 없었다. 아픈 몸에도 힘든 기색없이 팀을 이끄는 그가 대견할 뿐이었다.

정상호는 "경기 전 훈련도 하지 못했을 때는 정말 몸이 안좋았다. 곰 두 마리가 허리랑 다리랑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는 잠도 못잤을 정도였다.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잘 안오지 않나. 이렇게 야구를 힘들게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동료들, 취재진들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아픈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던 그다. 그러나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쓰라렸던 것은 아쉬운 팀 성적이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긴 올라갔는데 우승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팀이 우승하는 걸 꼭 보고 싶었는데…. 경기가 끝난 뒤 감독님과 미팅을 했는데 사실 울컥했다. '수고했다. 끝까지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짧은 말이었는데, 듣는 순간 울컥하더라."

그렇다면 정상호가 꼽은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삼성과 한국시리즈 5차전이다.

"5차전 1사 만루에서 삼진을 당한 것이 가장 많이 떠올랐다. (마지막 공에) 커트하려고 했는데 몸쪽으로 공이 잘 왔고 볼이었는데 내가 어떻게든 쳐야한다고 생각하다보니 방망이가 나갔다. 그 때 점수가 났더라면 몇 경기 더 했을수도 있었고,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찬스였는데 놓쳐서 정말 아쉬웠다."  
▲ SK 정상호(왼쪽). 사진=SK와이번스
비록 방망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 정상호지만 수비에서 보여준 활약은 단연 최고였다. SK 마운드가 시리즈 내내 위력을 떨친 데에는 그의 활약이 컸다. 투수 리드와 볼배합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성근 SK 전 감독도 "투수 리드에 있어서 '아 이놈 봐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많이 안정돼 있고 듬직하게 성장했다"라고 높게 평가했을 정도.

하지만 정상호는 여전히 겸손하다.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기보다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직은 내가 뭘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앞으로 투수의 심리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투수가 지금 뭘 원하고, 왜, 무엇때문에 불안해하는지 등 그런 부분들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포수는 단순히 볼배합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그 무언가가 필요한 보직이다. 투수, 그리고 야수들까지 안심하고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누구보다 심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 한 가지. 정상호는 이번 한국시리즈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적군의 안방마님 진갑용을 통해서였다.

"갑용이 형한테 많이 배웠다. 특히 4차전에서 윤성환이 치용이 형한테 삼진을 잡아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치용이 형한테 전 타석에서 변화구, 유인구로 승부했고, 그 다음 찬스에서는 직구 네 개를 바깥쪽으로 연속해서 던지게 하더라. 타자들이 앞에 뭘 던졌나, 특히 초구와 마지막구를 신경쓰는데 극단적으로 가는 것이 좋은 승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그게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볼배합이다.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는 다들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베짱 큰 사람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극단적인 볼배합와 갑용이 형의 과감함에 대해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교훈을 발판삼아 이제는 2012시즌을 준비한다. 정상호는 '대복수극'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왜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해야하는지 정말 알겠더라. 체력적인 부담이 엄청 크다. 그래서 내년에는 1위에 재도전하겠다. 삼성에게 되갚아줄 것이다. 작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리가 이겼고 올해는 삼성이 이겼다. 이제 1승1패 동률이다. 내년에도 꼭 삼성이랑 붙고 싶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고 했다. 또 아름다운 패배란 없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2위 SK가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진한 자욱을 남긴 데에는 정상호의 역할이 컸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보물' 정상호의 야구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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