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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은 오기택의 고향이다. 고향 후배들이 선배의 이름을 내건 가요제를 만들었다. 그의 이름이 갖는 무게감이 전해지기에 충분했다. 오기택은 “한번도 못가본 게 아쉽죠”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만큼 그는 스타였다.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며 지금은 남아 있는 재산이 아파트 한채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주머니에 돈이 흘러넘쳤다. 과거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 앞에만 가면 악단 단장들이 지방 공연을 가자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넣어줬다. 돈을 한참 벌 때는 하루에 밤무대 6~7곳을 돌았다. 일본에서도 대박을 낸 한류스타의 ‘진정한 원조’였다.
1962년 데뷔하자마자 ‘영등포의 밤’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해병대에 다녀온 후에도 ‘고향무정’을 비롯해 부르는 대로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파산 직전에 있던 레코드사는 오기택을 데뷔시키며 기사회생했을 정도다.
활동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는데 인기는 더 커졌다. 7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아빠의 청춘’이 히트하면서 국내 방송에도 다시 출연하게 됐다.
옆에 부모가 있는데도 오기택에게 다가와 볼에 입을 맞추는 여성 팬이 있는가 하면 오기택을 그리다 상사병에 걸린 여성도 있었다고 했다.
병상에 있는 지금도 박상철, 홍원빈, 배일호, 진성, 태진아 등등 후배 가수들이 문병을 온다. ‘의리의 사나이’였던 오기택에 대한 동경과 감사의 마음이 깔려있을 게다. 오기택은 가수들이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면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밤무대 공연을 갔다가 일행을 괴롭히는 지역 조직들이 있으면 앞장서서 막았다. 그의 배포를 각 지역 조직 우두머리들도 인정을 했고 친분을 나눌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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