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국'…BOE, 파운드화 쇼크 막으려 또 돈 푼다(종합)

영란은행, 무한정 장기국채 매입 결정
'파운드화 쇼크' 대응 위해 또 돈 풀기
"뒤죽박죽 통화정책"…곳곳서 비판론
  • 등록 2022-09-29 오전 3:18:39

    수정 2022-09-29 오전 5:42:09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영국 영란은행(BOE)이 결국 시장 개입에 나섰다. 새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 탓에 파운드화 가치가 역대급 폭락하자, 가격이 추락하는 장기국채를 무한정 사들여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다소나마 안도하는 기류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고육지책이라는 혹평이 더 많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돈줄을 조였다가, 눈 앞의 금융시장 대혼란을 막고자 다시 돈을 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갈팡질팡 하는 영국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중장기적으로 파운드화 가치는 더 고꾸라질 수 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영란은행(BOE) 총재. (사진=AFP 제공)


BOE, 무한정 장기국채 매입 결정

28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BOE는 이날 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 다음주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던 장기국채 매각을 다음달 말까지 한 달간 중단하는 동시에 필요한 만큼 제한 없이 장기국채를 다음달 14일까지 다시 매입하기로 했다. 이번 국채 매입은 영국 재무부가 전액 보상한다.

앞서 영란은행은 최근 두 차례 연속 50bp(1bp=0.01%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리는 빅스텝을 밟았다. 이와 함께 최근 10여년간 지속했던 양적완화(QE)를 끝내고 장기국채를 팔기로 결정했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돈줄을 조이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이 계획은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날 조짐이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감세안으로 인해 파운드화 가치가 역대 최저치 폭락하는 등 시장이 대혼란을 겪자, BOE가 이날 전격적으로 시장 개입을 선언해서다. BOE는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영국 국채를 무한정 사들이는 과정을 통해 가격을 회복시킨다는(국채금리 하락) 복안이다. 돈을 다시 풀어서 급한 불을 끄겠다는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에 따르면 이번 감세안은 1972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BOE는 이날 시장 개입을 두고 “최근 영국과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가격 조정을 예의주시해 왔다”며 “이같은 기능 장애가 지속하거나 혹은 더 악화한다면 영국은 금융 안정성에 있어 중대한 위험을 겪을 수밖에 없고 실물경제 유동성 흐름도 급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영국 가계와 기업의 신용 상태가 악화하는 위험을 미리 줄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뒤죽박죽 통화정책”…비판론 커

BOE의 깜짝 카드에 시장은 일단 안도하고 있다. 파운드·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파운드당 1.0915달러까지 상승했다(파운드화 강세·달러화 약세). 파운드·달러 환율은 근래 1.03달러대까지 폭락했다. 미국 뉴욕 증시와 유럽 주요국 증시는 모처럼 반등하고 있고,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4% 이상 오르고 있다.

야누스 핸더슨의 베서니 페인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BOE가 시장이 불안할 경우 QE를 다시 한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에 안전장치가 있는 것으로 다소 안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일뿐이라는 비판론도 많다. 돈을 풀어 시장에 안도감을 주면 당장의 위기는 넘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영국을 향한 투자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CNBC에 나와 “BOE가 QE라는 ‘라라랜드’에 더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낮아지는 금리, 혼란스러운 시장, 우스꽝스러운 개입, 왜곡된 자산 배분 등으로 출구를 찾기 더 어려워진다”며 “(이번 조치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해야 하는 일과 반대인 만큼 정책 일관성 결여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투자은행(IB)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의 수잔나 스트리터 선임분석가는 “BOE가 정책을 뒤죽박죽으로 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정책 선회를 꺼리는 정부가 완강히 버티고 있는데 대한 좌절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새로 출범한 영국 정부가 정치적인 타격을 염려해 감세안 철회를 주저하자, 중앙은행인 BOE가 대신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앤드루 그리피스 재무부 부장관은 이날 “정부의 감세 정책은 옳다”며 “영국 경제의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쿼지 콰텡 재무장관의 사임을 포함한 ‘감세안 유턴’은 없다는 의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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