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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끄덕끄덕]다 알고 있었으면서

  • 등록 2021-09-16 오전 6:10:00

    수정 2021-09-16 오전 6:10:00

정덕현 문화평론가
[정덕현 문화평론가]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가 화제다. 2014년 서비스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던 김보통 작가의 웹툰 이 원작이다. 탈영병을 쫓는 탈영병 체포조(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서 좀체 다루지 않았던 군대이야기, 그것도 너무나 리얼한 군대 내 가혹행위를 소재로 했다. 반응은 뜨겁다. 이 드라마를 보고 군대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고 할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로 먼저 군필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냈고, 군대 내 위계에 의한 폭력이 사회에서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까지 담아내면서 군 경험이 없는 여성들까지 공감했다. 해외 반응도 뜨거워 넷플릭스 공개 이후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권에서도 시청 상위권에 올랐다.

는 군대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탈영병 체포조라는 특수한(?) 군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군 부대 안에서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탈영병을 추적, 체포하기 위해 수시로 ‘사제 공기’를 맡는 안준호(정해인)와 선배 한호열(구교환)의 수사과정은 그래서 형사물 같은 스릴러와 액션의 재미요소를 더했다. 하지만 이러한 재미요소는 가 진짜 하려는 이야기를 위한 ‘당의정’ 같은 것일 뿐이다. 실상 탈영병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안준호와 한호열이 맞닥뜨리게 되는 건, 탈영병들이 왜 그렇게 선을 넘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됐는가 하는 그 이유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가혹행위들이 ‘장난’처럼 벌어지는 군대의 폭력 속에서 저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선을 넘는다. 결국 모멸감을 꾹꾹 눌러왔던 그 뇌관이 터지는 것.

하지만 이러한 피해자들을 만든 건 악마 같은 가해자들뿐이었을까. 는 단순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을 가하는 판타지적 대리충족을 선사하지 않는다. 파국을 만들어낸 조석봉(조현철)이 그 절망의 끝에서 던지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충격적이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들 방관했으면서..” 가해자만큼 이 파국을 만들어낸 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방관자들이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 이 서비스됐던 2014년에는 실제로 ‘윤일병 사망사건’과 ‘임병장 총기 난사사건’으로 군대 내 가혹행위가 다시금 중대한 이슈로 떠올랐던 시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들은 이런 이슈들과는 상관없는 군대를 미화하고 나아가 환상을 심어주는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MBC <진짜사나이>는 군대를 연예인들의 체험 공간으로 그렸고, 2016년 방영됐던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유시진(송중기)이라는 판타지적 군인 영웅을 그려 공전의 히트를 쳤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 군대를 소재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고, 드라마가 똑같은 군대를 소재로 해도 담아내려는 장르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당시 군대의 가혹행위 같은 일들이 시대적 의제로 떠오르던 시기에 대중문화 콘텐츠 어디에서도 이를 정면으로 응시한 프로그램이나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당시에 나온 김보통 작가의 웹툰 은 유독 도드라질 수 있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콘텐츠 제작자들이나 이를 소비하는 대중들도 군대의 진짜 현실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방관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가짜사나이>, <강철부대>가 새로이 군대 콘텐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역시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한 인기까지 얻었지만 여기서도 군대 내 실상에 대한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았다. <가짜사나이>는 혹독한 군사훈련을 자극적인 시선으로 담아냈고, <강철부대>는 그런 과정을 거쳐 초인적인 체력과 능력, 정신력을 가진 군인을 판타지화했으며, <사랑의 불시착> 역시 영웅 서사로서의 군인을 그리는데 그쳤다. 이것 역시 그 자체로는 잘못됐다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편향된 콘텐츠들만 나옴으로써 군대의 어두운 그림자는 가려졌다. 가 기존의 플랫폼들(지상파, 케이블, 종편 같은)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고 소개됐다는 건 그래서 꽤 의미심장하다. 특히 드라마에 있어 군대 소재는 안 된다는 그 관성적인 방관이 사실은 꺼내놓기 불편해 없는 것처럼 치부해온 우리 모두의 공조로 이어져온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서다.

가 워낙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여야 대선주자들까지 드라마 감상평과 함께 군 관련 공약을 내놓게 되면서 국방부는 불편한 입장을 내놓았다.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연 국방부의 입장처럼 병영 환경은 바뀌었을까. 최근에만 해도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피해 부사관이 2차 피해를 지속적으로 당함으로써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군대 사망사고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군대 내에서 매년 50명 이상이 죽었으며, 그 중 과반이 자살이라고 했다. 2020년에도 무려 42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사실 2005년에도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작품이 있었다. 군대 내 고질적인 가혹행위를 다뤘던 그 작품은 어째서 이 문제가 한두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가를 변화를 꿈꿨지만 결국 좌절하게 되는 승영(서장원)을 통해 담아낸 바 있다. “고참 되면 내가 다 바꿀 것”이라고 말하는 승영에게 고참이지만 친구인 태정(하정우)은 이렇게 말한다. “말이 쉽지.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냐?” 피해자가 방관자를 거쳐 가해자로 거듭나는 그 군대의 고질적인 서열 시스템 안에서 모두가 바뀌지 않으면 결코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2005년에 그려진 <용서받지 못한 자>의 군대와 2021년 가 담아낸 군대의 풍경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건 뼈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김보통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통해 “내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즉 진짜 변화는 ‘다 알고 있었으면서’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살아온 그 관성을 깨는 데서부터 비롯한다는 걸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군사문화의 부조리가 여전히 곳곳에 숨겨져 있는 직장 같은 조직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체 해온 조직의 부조리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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