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뒤틀리고 휘어진 노거수, 500년간 성주를 품다

500년간 경북 성주를 지켜온 숲을 거닐다
성주읍 이천변에 50여 그루의 왕버들 숲
마을 보호하는 비보림으로 조성해
임진왜란 직후 밤나무 대신 왕버들 심어
세종대왕자태실·한개마을 등도 볼거리
  • 등록 2022-04-22 오전 4:00:02

    수정 2022-04-22 오전 4:00:02

경북 성주 이천변에 자리한 성밖숲에는 수령 300~500년 왕버들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성주(경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기묘하게 뒤틀린 가지와 갈라진 몸통, 가슴과 등허리에 박힌 옹이들. 나무도 나이를 들어서일까. 세월만큼 깊어진 상처를 안은 노거수들이 하나같이 지팡이를 짚은 채 맥문동 푸른 싹들을 발치에 키우며 숲을 이루고 있다. 경북 성주의 성박숲(천연기념물 제403호) 풍경이다. 이 숲은 옛 성주읍성의 서문 밖, 성주읍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상류 이천변에 자리하고 있는 왕버들숲이다. 이 숲의 정식명칭은 ‘성주 경산리 성밖숲’. 무슨무슨 공원도 아닌, 그냥 ‘성밖숲’이다. 풀이하면 성 밖의 숲이라는 뜻이다. 직관적인 이름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그 의미는 또 달라진다. 성 밖에서 안을 품은 숲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500년 간 성주를 품은 숲을 거닐다

온 나라에 연둣빛 붓질이 시작됐다. 바람은 싱그럽고 햇볕은 따뜻하다. 보이는 풀과 나무마다 꽃답지 않은 게 없다. 성주에도 제법 향기 나는 호젓한 명소들이 곳곳에 있다.

성밖숲의 왕버들 노거수에도 신록의 향기가 가득하다. 성밖숲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이 아니라 인공숲이다. 마을을 보호하는 비보림으로, 과거부터 집중호우에 하천이 범람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전에는 밤나무 숲이었는데 임진왜란 직후 다 베이면서 그 자리에 왕버들을 심었다. 그 후부터 이 숲의 주인이 된 왕버들은 5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나이를 먹어가며 천변에 가지를 뒤틀고 있다.

경북 성주 성밖숲의 1호 왕버들나무


왕버들은 버드나뭇과에 속하는 식물. 이름 앞에 ‘왕’자가 붙은 것도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왕버들의 평균 키는 무려 13m에 달한다. 그중에는 16m가 넘는 것도 있는데 둘레가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16.7m에 이른다.

500년을 버텨온 숲에 사연 하나 없을까. 근래 들어 이 숲이 사라질 뻔한 위기가 있었다. 1980년대 국내에 잠사업이 성행했다. 이에 성주도 누에고치를 만들기 위해 뽕나무밭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이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성주 사람들은 거칠게 반대했다. 결국 이들의 노력으로 숲을 지켜낼 수 있었다.

사라질 위기를 넘긴 노거수들은 그 험난했던 수백년의 세월을 새겨놓은 듯 주름지고, 뒤틀리고, 이끼가 덧입혀졌다. 가지 하나하나가 숲의 이력인 셈이다. 그저 운치 있다는 말 한마디로 끝맺기에는 아쉬운, 성밖숲의 진짜 모습이다. 이곳 사람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성밖숲을 찾아 흙길을 따라 걷고 달리거나, 쌍쌍이 나무의자에 앉아 속삭여 댄다.

경북 성주 성밖숲의 1호 왕버들나무


성밖숲에는 약 1km의 둘레길이 있다. 숲은 그리 넓지 않아서 어른 걸음으로 걸으면 10~15분 남짓 걸린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거목들이 풍겨내는 기운 때문일까. 숲으로 들어서면 실제 규모보다 더 거대하고 웅장하게 느껴진다. 어른 셋이 팔을 뻗어야 겨우 감싸안을 수 있을 정도인 굵기도 엄청나지만, 뒤틀리고 울퉁불퉁한 나뭇결 따라 켜켜이 자라는 이끼가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대하게 뻗어나간 가지마다 생명력 넘치는 연둣빛 나뭇잎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덕분에 숲은 온통 맑고 푸른 기운으로 넘실댄다.

나무 밑동 근처에는 저마다 번호표가 꽂혀 있다.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나무가 1번 나무다. 숲과 조금 떨어져 있는 덕분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람한 만큼 그늘도 가장 커서 마을 주민이 가장 사랑하는 쉼터다. 나무 둘레를 따라 둥글게 놓인 벤치는 수십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하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면 성밖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유히 흐르는 강 풍경과 함께 바라보는 숲의 모습이 그림 같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파크_정견모주의길


성주의 깊은 역사를 느리게 둘러보다

성주에 눈에 확 들어오는 풍경은 없다. 대신 느긋한 뒷짐과 느린 걸음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곳들은 여럿 있다. 조선 왕족들의 태를 묻은 태실 무리가 잘 보존된 ‘세종대왕자태실’과 조상들의 발자취가 서린 전통마을인 ‘한개마을’, 가야시대 고분군이 떼지어 깔린 ‘성산동 고분군’이 있다. 또 연초록 파도가 넘실거리는 성주호에선 ‘선비산수길’을 걸으며 잠시 머리를 식혀갈 수 있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뒤편에는 산책하기 좋은 정견모주의 길이 있다. 이 길에서는 최근 숲속 명상과 숲 피닉을 체험해볼 수 있다.


특히 가야산 중턱에선 고대국가인 가야의 역사를 곱씹어볼 수 있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과 그 뒤편의 산책로 등으로 구성돼 있는 가야역사신화공원이 이곳에 있어서다. 테마관에서는 가야 건국 설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뒤편에는 산책하기 좋은 정견모주의 길도 있다. 가야산 원시림 사이로 나무덱을 설치해 걷기 편하다. 최근에는 숲속 명상과 숲 피크닉도 체험해볼 수 있다. 가야산의 정기가 가득한 숲속에 앉아 마음공부를 한 후 성주참외와 참외빵·잼 등이 담긴 피크닉세트를 들고 소풍 가듯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선비산수길 1코스 성주호둘레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인 부교


성주호에선 호수와 어우러진 걷기길인 ‘선비산수길’을 만날 수 있다. 선비산수길은 1코스 성주호 둘레길과 2코스 가야산 에움길로 구성돼 있다. 1코스는 가천삼거리에서 출발해 성주호 주변을 빙 둘러 독용산성에 이르는 23.9km의 긴 구간이다. 1코스는 가야산 자락의 숲길을 걷는 11.3km의 2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지만 그만큼 볼거리도 많다. 오르막과 내리막, 덱과 물 위에 떠 있는 부교를 지나는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코스여서 지루함을 잊게 만든다.

회연서원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한강 정구가 세웠다.


수륜면 신정리의 회연서원의 빼어난 봄풍경도 만날 수 있다. 회연서원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한강 정구가 말년에 후학들을 길러내던 초당 자리에 들어선 서원. 앞마당 앞의 400년 된 느티나무의 신록이 한창인 이즈음의 회원서원은 그야말로 빼어나다 못해 가슴이 저릿해질 정도다. 정구는 생전에 회연서원 옆으로 흐르는 대가천 물길을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아홉 곳을 골라 ‘무흘구곡’이라 이름하고 노닐었다. 서원 뒤편에 봉긋 솟은 봉비암이 제1곡이다.

월향면 대산리의 한개마을은 손을 덜 대 옛 마을 분위기가 살아 있는 전통마을이다. 한개란 ‘큰 개울’ ‘큰 포구’를 뜻한다. 한자 말로는 대포(大浦)다. 조선 세종 때부터 560여년을 이어온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60여가구가 사는 이 마을의 한옥·초가 등 살림집과 재실·정자 등 건물 75채가 지방 문화재와 문화재 자료로 지정돼 있다.

손을 덜 대 옛 마을 분위기가 살아 있는 전통마을인 ‘한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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