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14>토함산부터 '오방색 희망' 몰고 오다

▲박생광 '토함산 해돋이'에 깃든 기원
부처·영물·대자연 어울린 '토함산 해돋이'
보살·무당 한폭에 담어냔 '반가사유상'도
서민 근원 파고든 불교·무속 동시에 녹여
코로나 사투 속 다가온 '부처님 오신 날'
이념 떠나 평화·치유의 정신 퍼져나가길
  • 등록 2021-05-14 오전 3:30:00

    수정 2021-05-14 오전 3:30:00

박생광이 그린 ‘토함산 해돋이’(1981). 화면을 위아래로 나눠, 오색의 서기가 뻗치는 배경에 붉은 해를 내려다보는 석굴암 본존불의 옆모습과 비스듬히 선 보현보살을, 또 토함산 산줄기 배경에 금강역사와 새끼를 어르고 있는 어미 표범, 얽혀 있는 한 쌍의 봉황 등을 그렸다. 박생광은 모노크롬이 유행하던 1980년대 초에 민화·불화·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를 오방색으로 소화해 한국 전통화와 현대화를 동시에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 그림을 두고 ‘위대한 만년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잖다. 단청과 탱화, 민화와 무속화란 불교미술과 민간미술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절정의 색채감’으로 완성해서다. 종이에 수묵채색, 135×140㎝,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오는 19일은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매년 이날이 되면 가까운 사찰 한두 곳을 방문해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욕’을 하고 절을 올립니다. 그러곤 부처가 모든 중생의 행복을 기원했듯 우리 가정과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합니다. 부처는 고대 인도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나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불평등한 세상을 극복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깨우치는 평생의 진리를 설파하다가 80세 완전한 해탈에 이른 인류의 큰 스승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 후반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뒤 왕조와 사회 이념은 바뀌었어도 언제나 우리의 삶과 함께해 왔습니다. 이런 유구한 전통으로 우리의 인식과 생활 속에는 자연스럽게 불교문화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많은 불교문화재가 조성됐고 화원이나 일반 선비화가들도 불교적 내용이 담긴 작품들을 여럿 남겼습니다. 불교에서 유래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꽤 수준 높은 작품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고유한 정신세계와 역사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은, 내고 박생광(1904∼1985)의 ‘토함산 해돋이’(1981)가 그중 한 점입니다.

‘색채의 마술사’이자 ‘민족혼의 화가’ 박생광

그림 상단에는 오색의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토함산의 능선이 구불거리는데 그 사이에 부처가 우측 붉은 해를 바라보고 앉아 있습니다. 머리는 노란 테두리의 두광이, 몸은 금색으로 장엄돼 있습니다. 왼쪽에는 보관을 쓴 보살이 부처와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 장식이 있고 하늘의 옷이란 천의를 입고 있습니다. 붉은 해 속에는 파도 같은 구름이 지나가고 붉은 꽃잎이 산화하고 있습니다.

하단에는 왼쪽으로 봉황 한 쌍이 엉켜 있고 오른쪽에는 호랑이 어미가 새끼를 어르고 있습니다. 문양은 표범에 가깝지만 우리나라에는 표범이 없기에 호랑이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금강역사가 우람한 근육을 뽐내며 택견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석굴암 금강역사상과 흡사하지만 어쩌면 한반도 지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붉은 바지와 청색 상반신이 대조를 이룬 모습도 그런 감상을 뒷받침해줍니다. 머리 뒤로 흰색의 큰 두광이 매우 인상적인데 ‘박생광 채색의 완성은 흰색’이란 세간의 평가가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품은 조선후기 불화의 특징인 여백이 없고 구름 문양을 장식적으로 활용하는 특징을 잘 이어받았습니다. 세부 표현도 부처의 나발(불상 중 소라모양으로 올린 여래상의 머리카락), 삼도(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한 세 줄기 주름), 보살의 영락(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 등 불화를 알지 못하면 정확히 그릴 수 없는 기법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한국 근현대화가 중 최고의 진채화가답게 강렬한 색깔로 여백까지 채워 그렸고 대자연과 불보살(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보살), 성스러운 동물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석굴암 본존 부처의 신비로운 기운이 온누리에 펼쳐지는 듯한 감동을 주는 걸작입니다.

박생광은 한국의 전통 소재와 색채를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 화가입니다. 1920년 일본 유학을 통해 신일본화를 습득하고 여러 활동을 하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지만 왜색화풍이란 이유로 활동에 제약을 받자 30여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기나긴 방황의 시기를 보냅니다. 이런 속에서도 자신을 덧씌운 왜색화가란 오명을 털어내기 위해 전국의 산천과 민족혼이 배어 있는 문화재나 사찰 등을 돌면서 한국적 미감과 소재를 수집하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준비해 나갔습니다.

1977년 일본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귀국한 박생광은 단청·탱화 등에 나타나는 한민족의 색채미와 표현기법으로 불교 소재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전통불화의 눈으로 보더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박생광이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진주 의곡사에 출가해 몇 달 동안 불교를 공부하다가 속세로 내려온 경험, 고등학교 동기이자 고향 친구인 조계종 큰스님 청담 스님과의 깊은 인연 등이 있었습니다.

천경자도 감탄한 ‘토함산 해돋이’

‘토함산 해돋이’는 불교를 밖에서 지키는 신장(불교의 수호신)을 앞에 배치하고 불보살을 뒤에 배치한다거나 불상과 보살의 세부표현 등에서 불화의 깊은 이해를 드러냅니다. 작품을 본 화가 천경자(1924∼2015)가 생전에 박생광에게 “‘토함산 해돋이’를 제게 주시고, 제 그림 중 선생의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다 가져가세요”라고 했을 만큼 동료 화가에게도 인정을 받은 작품입니다.

박생광의 ‘반가사유상’(1981). 한국 근현대화가 중 ‘최고의 진채화가’란 별칭답게, 여느 작품보단 톤을 좀 낮춘 듯하지만 여전히 강렬한 색감으로 무속세계와 불교세계를 병치하고 있다. 궁궐·관청의 장엄, 종교적 예배, 민간의 치장 등에서 보이는 진채화를 박생광은 궁화·불화·무속화·민화 등 색채를 흡수해 통합했고 여기에 건축의 한 부분이라 할 단청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종이에 수묵채색, 소재 미상.
이 시기 박생광의 뛰어난 작품을 한 점 더 꼽는다면 ‘반가사유상’(1981)이 있습니다. 한국 불교에서 반가사유상은 보통 뺨에 손을 대고 사유하는 미륵보살을 의미하는데 이 작품에도 뺨에 손을 댄 보살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오른쪽에 사유하는 보살 아래 노란 저고리를 입고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흰 쌀과 검은 콩이 든 그릇이 있고 그 밑으로는 소가 얼굴만 내밀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무당이 부채를 펼치고 방울을 흔들고 있고 아래쪽에는 꽃들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불교와 무속의 대비, 보살과 여인의 대비로 해석할 수 있으나 그렇게 단순히 볼 수 없는 이유는 가운데 푸른빛의 거울 때문입니다. 원형의 푸른 빛 아래로 손잡이가 달려 있으니 거울은 거울이나 좀 특별합니다. 불교에서는 죽은 뒤 심판의 장소에 가면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다 보이는 ‘업경대’란 거울이 있는데, 이것이 아마도 업경대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푸른 거울 안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치 어떤 인물이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을 들고 서 있는 듯한 표현이 있는데 한때 출가했던 박생광 자신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비, 노란색과 녹색의 적극적 사용, 여기에 미술사학자 김원용(1922∼1993)이 ‘섬뜩하게까지 보이는 백색의 악센트’라고 표현한 흰색까지 어울려 작품은 색채의 마술사다운 박생광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삼국시대에 시작해 1500여년 이어진 연등회 풍습

박생광의 작품에서 무속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서민생활과 밀접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굿이나 유명한 무당들의 굿을 직접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 책에서 “샤머니즘의 색채, 이미지, 무당, 불교의 탱화, 절간의 단청, 이 모든 것이 서민생활과 직결된, 그야말로 ‘그대로’ 나의 종교인 듯하다”라고 고백했듯이 박생광은 서민들에게 깊이 밴 근원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입으로 붓을 빨곤 했는데 주변에서 빨간색 주사에는 수은이 들어있다고 말려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서인지 1985년 그는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무명의 빛을 밝히는 연등이 달리고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고 꽃을 공양하며 절을 합니다. 이는 삼국시대에 불교를 들여온 이후 1500여년 넘게 이어진 오랜 풍습이자 문화이고 모두의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체 의식입니다. 부처에게 절을 하는 것은 자신을 한껏 낮추며 부처의 훌륭한 삶을 본받아 나와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진의 다짐입니다. 그래서 아마 박생광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행사 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세상 모든 종교의 신념과 이념을 떠나 모두의 행복을 기원해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지치고 힘겨운 이웃들이 조금만 더 기운을 냈으면 하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바람이 있지 않습니까. 부처의 자비를 빌려 고통스러운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빌어봅니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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