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의 숨은 정치학

'선거없는 지금이 인상 적기' 10년 전과 데자뷰
여야 공수 뒤바뀐 찬반 논리 속 법개정 진통 예고
  • 등록 2014-09-12 오전 6:00:01

    수정 2014-09-12 오전 11:15:58

[이데일리 박수익 강신우 기자] 10년 만에 다시 정치권에 ‘담뱃값 인상’ 화두가 던져졌다. 담배 가격을 올리는 것은 정치인들이 꺼내 들기 어려운 민감한 소재다. 성인남성 흡연율 43.7%라는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성인여성 흡연자를 제외한 단순계산으로도 전체 유권자의 20% 이상이 흡연자라는 얘기다. 여기에 흡연자의 70%가 담뱃값 인상에 반대한다는 보건복지부 조사를 더해보면 반대여론이 선거결과를 뒤바꾸고도 남을 만한 수치다.

그럼에도 ‘정부 주연, 여당 조연’으로 담뱃값 인상을 강력 추진하고, 야당은 ‘서민증세’라는 논리로 반대하는 배경에는 선거 공백기 등 ‘숨은 정치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거없는 지금이 담뱃값 인상 적기”

10년 전인 2004년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할 때는 그해 상반기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열린우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해였다. 아울러 지방선거(2006년)와 대통령선거(2007년)까지 2년간 전국단위 선거가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은 집권 첫해인 2003년부터 담뱃값 인상을 강력 주장했지만, 1년 이상 검토와 재검토를 반복하며 결론을 내지 못했고, 총선을 지나 2004년 연말에야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은 지방선거에서 선전했고, 최대규모로 치러진 7.30재보선에서는 압승했다. 동시에 국회의원선거(2016년)와 대선(2017년)까지 향후 2년여간 큰 선거가 없는 정치적 공백기를 마주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대정부가 번번이 담뱃값 인상에 실패해온 것은 정부의 인기가 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담뱃값 인상 반대론자들은 현 정권에서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선거가 없는 시기에 정부·여당이 인상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전과 공수교대.. 뒤바뀐 찬반논리

“담배가격을 인상함으로써 금연을 유도,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할 수 있다.”

“정부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한 푼의 소중함과 어려움을 아는가.”

2004년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담뱃값 인상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표결에 앞서 진행된 찬반토론에서 나온 핵심논리들이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의 김춘진 의원은 찬성토론에서 “우리나라 담배가격은 선진국의 20~30%에 불과하고 소득수준과 구매력을 감안한 상대가격은 50~70% 수준”이라며, 담뱃값을 올려야 금연을 유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는 11일 정부가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담뱃값 인상은 가장 강력한 흡연율 감소정책’이라는 논리와 일치한다.

반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소속 고경화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담뱃값 인상은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고, 흡연자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다른 사업에 충당하려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 역시 11일 새정치연합이 내놓은 ‘서민 호주머니 터는 손쉬운 증세’라는 당대변인 공식논평과 일맥상통한다.

내년초 인상 위해선 정기국회 통과해야.. 진통 예상

2004년 담뱃값 인상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표결 결과도 흥미롭다. 재석 244명 의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64명, 반대 75명, 기권 5명으로 가결됐다. 찬성의원에는 박영선 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한길 전 대표 등 현 야당 핵심의원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담뱃값 인상 찬성토론자로 나왔던 김춘진 의원은 현재 관련논의를 국회에서 주도적으로 담당할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당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에는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현재 ‘당·정·청’ 핵심 인사들이 포진한 점도 이색적이다. 당시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기권한 5명 중 한 명 이었다

아울러 당시 담뱃값 인상에 반대했던 한나라당 의원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을 향해 ‘국회가 통법부(通法府,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부정책에 손들어준다는 의미)냐’는 비판을 했는데, 이는 지금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을 향해 자주 쓰는 용어라는 점도 역설적이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정부가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논의가 본격시작된다. 정부 계획대로 내년 1월1일부터 담배가격을 올리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주도한 담뱃값 인상에서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과도한 인상은 안된다’는 전제하에 동의했고, 야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10년 전과 ‘같은 듯 다른’ 지금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국회에서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도출될지 관심이 쏠린다.

자료: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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