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경기가 끝나면 각 구단 홍보팀은 기록지를 보도자료로 보낸다. 중계가 없는 연습 경기 특성상, 경기 내용을 전할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연습경기서 누가 안타 몇 개를 치고 삼진을 얼마나 잡았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실제 시즌에 들어가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지 속엔 그 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현재 그 팀의 훈련 상황과, 앞으로 다가 올 시즌을 엿볼 수 있는 힌트들이 숨어있다. 암호처럼 나열돼 있는 숫자들을 찾아가다 보면 마치 보물 찾기 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야구 가뭄의 시기, 연습경기 기록지는 갈증을 달래줄 수 있는 매우 좋은 친구다.
△팬의 관점
사실 연습 경기서 주축 선수들의 성적을 보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잘 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못 치면 못 치는대로 이유가 있어서다. 타격 폼 수정 중이거나 페이스를 떨어트리고 있는 타이밍에 경기가 걸린 것일 수도 있다.
연습 경기의 백미는 역시 신예들의 가능성을 살펴보는데 있다. 기록지 탐방도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좋다.
전력 분석의 대가인 김정준 한화 코치는 “일단 누가 나왔나, 어느 포지션을 보나, 얼마나 뛰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 팀이 그 선수를 통해 뭘 하고 싶은 건지 포지션을 통해 알 수 있고, 얼마나 뛰었는지를 보면 몸 상태를 볼 수 있다. 신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질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교대되는 건 좋은 신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일단 기록지 하나를 보자. 한화 홍백전 중 한 경기다.
박노민은 포수 자원이다. 한화의 4~5번 포수 정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번 캠프서 주로 외야수로 나서고 있다. 그의 타격 능력을 살려 부족한 외야 자원을 보충해 보겠다는 한화 벤치의 의도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용규 최진행의 부상을 김성근 감독이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차선의 차선까지 대비해 보겠다는 의도다.
여기서 전현태는 수비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나섰다. 상대 팀에 수비수로만 나선 박한결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현태는 타격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지 못하면 경기 출장 기회가 많지 않을 수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기록지는 1등팀 삼성이다.
그런데 경기 후 류중일 감독은 “구자욱이가 확실히 잘 치긴 잘 친다”고 말했다. 이후 경기서는 1루수가 아닌 다른 포지션, 즉 3루나 외야수로 나설 수도 있다. 외야수로 많이 나설 경우, 구자욱을 백업이 아닌 주전으로 쓰고 싶다는 감독의 의지를 읽어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문가 관점
기록지 안의 몇 타수 몇 안타가 꼭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선수의 현재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힌트는 있다.
우선 A가 좌투수 B에게 연타석 안타를 쳤다. A는 원래 좌투수에 약했다. 그렇다면 A가 훈련을 통해 단점을 보완했는지 눈으로 체크해 봐야 한다.
전력 분석팀은 보다 세밀하게 들어가야 한다. 좌투수에 약했다 해도 슬라이더가 장기인 투수에 약했는지, 체인지업에 약했는지 분류해야 한다. 또 140km대와 150km 투수 사이의 차이도 있다. A가 친 좌투수 B의 유형과 그의 지난 궤적까지 살펴보고, 체크 상황을 다음 경기서 눈으로 보며 확인해야 한다.
몰린 카운트에서 안타 맞지 않은 투수 체크법도 있다.
직구를 많이 던졌는지 변화구를 썼는지 체크해야 한다. 직구였다면 그만큼 지금 구위가 많이 올라왔다는 뜻. 반대로 변화구라면 ‘연습경기서도 지기 싫어하는 투지, 볼넷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 혹 새롭게 익힌 구종이 있는지’ 등으로 분류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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